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24)
신마의선-424화(424/500)
신마의선 (424)
단악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구대문파 제자들 가운데 키와 체형이 비슷한 사람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신마삼존은 상황이 달랐다.
그들 정도 되는 고수만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와 특유의 존재감을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은 천하를 뒤져도 찾기 어려웠다.
“놈들 역시 우리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비우면 금세 놈들이 눈치챌 게야.”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의 입이 댓 발이나 튀어 나왔다.
“그건 단 의원도 마찬가지잖수.”
초악량이 고소를 머금었다.
“그거야 우리 생각이고.”
실제로 단악선은 고수였고, 소수의 몇 명만 제외하면 천하에서도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성장을 이룬 상태였다.
하지만 늘 자신들과 함께했기에 무인으로서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실제로 단악선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무인보다 의인(義人)으로서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보여 주면 놈들도 틀림없이 대역의 존재를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놈들의 전력이 우리에게 집중되는 만큼 단 의원의 안전도 확보되겠지.”
설마 단악선이 단독으로 움직이리라는 건 놈들도 눈치채지 못할 터.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모두가 매한가지였다.
단악선이 향한 곳은 그만큼 더없이 위험한 사지(死地)였기 때문이다.
“그 고집을 누가 꺾을까.”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가 씁쓸하게 웃었다.
앞서 신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만류를 뒤로한 채 진법 안으로 뛰어들던 단악선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했다.
“그저 무사하길 바라는 수밖에.”
한설화의 말에 범계위가 울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유독 단악선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그였다.
* * *
그렇게 신마삼존이 속으로 애를 태우던 그때.
단악선은 전면에 위치한 모옥을 응시하고 있었다.
반면 단악선 옆에 나란히 쪼그려 앉은 가두달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살다 살다 다시 마교의 본단에 잠입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것도 설마 정공법으로 진법을 해제하며 뚫고 들어오다니.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리는지 가두달은 애써 심호흡을 했다.
그 와중에도 혹시 모를 사태를 염두에 두며 언제든 신형을 뽑아 올릴 준비를 마친 그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디선가 걸어온 노파가 모옥 문을 여는 것이 보였다.
모옥 안으로 들어선 노파는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노파가 쥐고 있는 빗자루의 손잡이 부분이 비스듬하게 꺾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앞서 이화궁주가 언급했던 신호가 분명했다.
단악선이 가두달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두달 역시 울상을 지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신형을 날린 건 그 직후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가두달이 바짝 붙어 움직였다.
최대한 기척을 지우고 모옥에 접근한 두 사람이 은밀하게 모옥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것도 모른 채 탁자에 앉아 차를 기울이는 여인의 뒷모습이 단악선의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그렇게 왕소군의 위치를 파악한 단악선이 살짝 기파를 개방했다.
노파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노파는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태연히 창문을 닫아건 노파가 단악선을 향해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그분께서 보내신 것인가?”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화궁주님께서 보내신 것이라면 맞아요.”
“…….”
노파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불신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설마 이번 임무에 이처럼 앳된 티도 가시지 않은 청년을 보내리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에 단악선은 말없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이화궁주가 신물 대신 건넸던 작은 옥피리였다.
이를 본 노파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부복했다.
“천녀 백소연이…….”
단악선이 재빨리 노파를 제지하며 조용히 웃었다.
“지체할 틈이 없어요.”
단악선의 눈빛을 받은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왕소군을 향해 다가섰다.
노파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자 그녀가 뒤늦게 깜짝 놀라 일어섰다.
“구하러 왔어요. 함께 가시죠.”
단악선은 뒤늦게 그녀가 맹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빛은 맑았지만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노파가 그녀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
화들짝 놀란 왕소군이 황급히 노파로부터 손을 뺐다.
그리고 다급하게 탁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노파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뭐라고 하시는 건가요?”
단악선의 질문에 노파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 사이.
“우우!”
왕소군이 애타는 표정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비로소 노파가 입을 열었다.
“반드시 구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군요. 그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여기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분이 혹시 제갈 성에 산이라는 이름을 쓰시는 분인가요?”
노파가 단악선을 대신해 재차 왕소군의 손바닥에 글을 남겼다.
왕소군이 반색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그럴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단악선이 노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북서쪽 방향으로 이동하시면 잡목이 우거진 지역에 진법을 열어 두었어요. 약 일각 동안은 그 상태가 유지될 테니 서둘러 그쪽으로 빠져나가세요.”
노파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부욱.
자신의 치마를 찢어 탁자 위에 펼친 왕소군이 검지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콱.
이빨로 검지를 깨문 왕소군이 치마 위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내 왕소군은 노파를 보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뇌옥까지 가는 경로라고 하는군요.”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왕소군의 손을 보며 단악선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왕소군에게 다가가 터진 손가락을 지혈한 단악선은 뒤늦게 그녀가 그린 지도를 확인했다.
그 와중에도 무어라 뜻을 전하는 그녀를 대신해 노파가 입을 열었다.
“핏방울 하나가 대략 열 걸음이라 합니다.”
게다가 어느 방향으로 틀어 이동했는지 꽤나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왕소군이 그린 지도를 집어 들어 몇 번이고 눈에 새겨 넣은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그분을 찾는 것이 더욱 수월해질 것 같아요.”
그 순간.
화르륵.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지도가 그대로 타오르나 싶더니,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 모습에 가두달이 깜짝 놀랐다.
단악선의 무공이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일취월장했다 짐작은 했지만 삼매진화를 이처럼 능숙하게 다룰 정도였다니!
“제가 신호를 보내면 곧장 움직이세요.”
그 말과 함께 단악선이 모옥을 나섰다.
아니, 나섰다고 느끼는 순간 허깨비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열린 문 사이로 단악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한 호흡 정도.
“이제 움직이셔도 돼요.”
“감시는?”
가두달의 반문에 단악선이 슬쩍 웃었다.
“이미 처리했어요.”
“벌써?”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옥을 감시하는 인원들이 은신해 있는 위치는 일찌감치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다행히 그들 중 대단한 고수는 없었다.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노파가 이내 왕소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 순간.
허공을 더듬던 왕소군의 손에 단악선의 옷깃이 잡혔다.
“우우우…….”
왕소군이 입을 열어 무어라 외쳤다.
단악선이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비록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염려 마세요. 반드시 그분을 다시 만나게 해 드릴게요.”
왕소군이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보이지 않고 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손을 통해 전해진 온기만큼은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왕소군과 노파를 보낸 단악선이 곧장 금명옥으로 향했다.
뇌옥의 특성상 금명옥은 마교 내에서 교주전을 제외하면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
최대한 조심스럽게 뇌옥 입구로 접근한 단악선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운이 좋게도 마교의 정예들이 본단을 빠져나간 탓에 예상했던 것보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뇌옥의 입구를 응시하던 가두달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반드시 들킨다.”
뇌옥을 지키는 마교도는 여덟 명.
아무리 단악선이라도 저들을 소리 없이 처리하는 건 무리였다.
놈들의 무공 역시 얕잡아 볼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목을 속이고 은밀하게 잠입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저들의 발을 묶을 테니 뇌옥 안으로 들어가 그분을 모셔 오세요.”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가두달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이렇게 하자.”
“……?”
“내가 놈들의 시선을 끌 테니, 그사이에 네가 그를 탈출시키는 것이다.”
이어진 가두달의 말에 단악선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 안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수가 있다면 답이 없지 않겠느냐?”
그 말대로였다.
사마존 가운데 세 명이 중원으로 향했지만 아직 이곳에는 마존 한 명이 남아 있었다.
특히 천마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저들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곳은 이곳 뇌옥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렇게 하죠.”
단악선의 허락이 떨어지자 가두달이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이내 그대로 신형을 뽑아 올려 어딘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특기인 경공을 발휘해 표홀하게 움직였지만 실제로는 은연중에 기파를 살짝 드러낸 상태였다.
당연히 도처에 깔려 있는 삼엄한 기감의 그물을 비껴 갈 수 없었다.
“침입자다!”
누군가의 외침에 뇌옥 입구를 지키고 있던 마교도 중 일부가 가두달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자신을 추적하는 인물들을 확인한 가두달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더니 짧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 정도 실력으로 천하제일 신투인 나를 잡겠다고? 어림없다, 이놈들아.”
가두달의 조롱에 마교도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귀영마자(鬼影魔子)! 놈은 귀영마자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분노한 마교도들이 이를 갈았다.
과거 그가 교주전에 침입해 천마의 섭선을 훔쳐 간 일화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런 만큼 어떻게든 놈을 잡아 그때의 치욕을 만회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뇌옥을 지키던 마교도들이 가두달을 잡기 위한 대열에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천라지망을 펼쳐 어떻게든 가두달을 에워싸려 했지만 가두달도 만만치 않았다.
경공에 있어서만큼은 자부심을 지닌 그였다.
특히 달아나는 것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공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슬아슬한 거리를 내어 주며 일대를 헤집고 있었다.
결국 나중에는 뇌옥 입구를 지키고 있던 마교도 대부분이 포위망에 가담해 가두달을 쫓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되었다 싶었던지 가두달이 뇌옥 입구와 반대 방향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긴 꼬리를 달고 가두달이 사라지자 단악선도 행동에 나섰다.
지금 뇌옥 입구를 지키는 마졸은 한 명뿐.
단악선의 신형이 한차례 흔들리나 싶더니 어느새 유령처럼 사내의 등 위에 나타났다.
그것도 모른 채 사내는 짧게 혀를 찼다.
“쳇.”
자신도 공을 세우는 데 한 손 거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가장 말단의 후임자였기에 제일 귀찮은 일을 떠맡아야만 했다.
따분하기 짝이 없는 임무에 내심 툴툴거리던 그때.
“……!”
사내가 깜짝 놀랐다.
갑자기 목덜미 부근이 따끔했기 때문이다.
깜짝 놀라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한순간에 마혈을 점혈 당한 것이다.
‘아혈까지?’
심지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혈과 아혈을 동시에 점하는 고절한 수법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뒤늦게 주변 경계를 게을리한 자신을 탓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가두달과 동료들이 사라진 곳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던 터라 기척을 감추고 접근한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 불찰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어.’
반면 단악선은 단악선대로 마음이 급해졌다.
아무리 가두달이 뛰어난 경공을 지녔다 하나 이곳은 마교의 본단.
제때 제갈산을 구출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단악선의 신형이 뇌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