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25)
신마의선-425화(425/500)
신마의선 (425)
뇌옥에 들어선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퀴퀴한 공기 속을 떠도는 음습한 기운과 끔찍하리만치 지독한 악취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뇌옥 안은 빛 한 점 들지 않아 칠흑처럼 캄캄했다.
하나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위화신공을 끌어 올려 기감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한 것이다.
공기의 흐름과 소리의 반향.
이를 통해 내부의 구조와 지형지물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거기에 왕소군이 만들어 준 지도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뇌옥 안을 감시하는 옥졸들의 무공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눈에 보이는 옥졸들을 한 명씩 제압하며 나아간 단악선은 이윽고 저 멀리 은은한 빛이 감싸고 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뒤늦게 그것이 천장에 박힌 야명주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콰직.
묵룡을 휘둘러 뇌옥 입구를 봉인하고 있던 자물쇠를 박살 냈다.
거적을 뒤집어쓰고 뇌옥 안에 누워 있던 인영 하나가 그 소리에 반응해 부스스 신형을 일으켰다.
“제갈산 대협이신가요?”
뇌옥 안으로 들어선 단악선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제갈산이 피식 실소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이지?”
“모시러 왔어요.”
단악선의 대답에 제갈산이 비웃음을 던졌다.
“터무니없는 소리.”
이곳이 어디라고 이렇게 구조 인원을 투입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자신을 떠보기 위한 같잖은 연막이 분명했다.
제갈산이 냉소적인 웃음을 말아 올렸다.
“이미 뒈진 수보는 아닐 테고……. 조음서 그자인가?”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기이한 빛이 일렁이는 제갈산의 눈빛은 정상인의 그것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하긴.’
이 답답한 뇌옥에 그토록 오래 갇혀 있었으니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저는 단악선이라고 해요.”
“네가?”
제갈산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네가 신마의선이라고?”
그 말과 함께 제갈산이 성큼 걸음을 옮겨 단악선에게 다가섰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단악선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코를 파고드는 끔찍한 악취는 둘째 치고, 끔찍하게 망가진 상대의 처참한 몰골 때문이었다.
제갈산이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증명해 봐.”
“네?”
“네가 신마의선이라는 걸 내게 납득시키라고.”
“지금은 그럴 때가…….”
“당장!”
단악선이 제갈산과 시선을 마주했다.
얼굴은 몹시 초췌하고 비틀거리는 신형도 위태로워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이 순간에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단악선은 품속에서 이화궁주에게 받았던 옥피리를 꺼내 보였다.
제갈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것도 아닌 이화궁주의 신물은 감히 흉내 낼 수 없었다.
실제로 강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
제갈산이 새삼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왕소군을 통해 전해 온 이화궁의 정보들.
그 가운데 단연 그의 흥미를 끈 것은 다름 아닌 단악선의 존재였다.
하나 이렇게 막상 직접 대면하자 기가 막혀 일순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이미 나이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니 생각보다 훨씬 어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그토록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인가!’
사파인을 위해 구대문파를 돌며 연판장을 만들고, 이를 통해 무위를 금지로 선포해 사파인을 규합한 업적은 천하의 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디 그뿐인가.
중원 제일 상단으로 자리매김한 신마상단과 중원 제일 의가로 위상을 공고히 한 신마의가도 눈앞의 소년이 있기에 가능했다.
육마존 중 둘을 제거하고, 초원의 혈풍을 잠재운 것도 단악선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게다가 지금은 정사를 한데 묶어 마교와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해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나가서 하시죠. 시간이 없어요.”
단악선의 말에 제갈산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전달받지 못한 것인가?”
“무엇을 말인가요?”
“분명 나를 그냥 내버려 두라 하였을 텐데?”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중원 모두를 위해 희생하신 영웅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아직 어리군.”
“네?”
“그래서 도의 따위에 연연하는 것이겠지.”
자조적인 웃음을 머금은 채 제갈산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이곳에 와서는 안 되었다.”
“…….”
“들어올 때는 수월하더라도 탈출하는 건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말끝을 흐린 제갈산이 어딘가를 노려봤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온 것도 동시였다.
“저자가 이곳을 감시하고 있는 이상 더더욱.”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초로인이 제갈산의 말에 하얗게 웃었다.
“신마의선이라……. 제갈산이라는 미끼에 생각지도 못한 대어가 걸려들었군.”
단악선 역시 뒤쪽에서 일어나는 섬뜩한 기파를 느끼고 있었다.
단악선이 신형을 돌려 상대를 응시했다.
“당신은 사마존 중 한 명이겠군요.”
앞서 곤륜에서 천마를 수행하던 그와 조우한 적이 있었지만 정확한 신분 내력에 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 내가 바로 조음서다.”
음마(音魔), 명환혈적(冥換血笛) 조음서가 소름 끼치는 눈빛을 흘리며 뇌옥의 출구를 막아섰다.
그는 덩치가 왜소하고 팔도 가늘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부러질 것처럼 볼품없어 보였다.
그런데 막상 그런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태산 같은 중압감이 일대를 완벽히 장악해 버렸다.
그야말로 실낱같은 틈도 보이지 않았다.
이 순간 제갈산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단악선을 잃는 건 중원 무림에 있어 뼈아픈 실책인 것이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침음성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제갈산을 바라봤다.
“괜찮아요. 절 믿으세요.”
단악선이 미소를 건넸지만 제갈산의 마음은 반대로 더욱 어두워졌다.
그만큼 상대가 나빴기 때문이다.
무공의 고하는 둘째 문제였다.
무엇보다 상성과 장소가 너무 나빴다.
서늘한 웃음소리가 뇌옥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암존, 그 친구가 네 손에 당했다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조음서는 키득대며 웃기 시작했다.
“모르면 몰랐을까, 이렇게 직접 보니 너무 황당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군.”
그렇게 한참을 웃던 조음서가 거짓말처럼 웃음을 그쳤다.
“어찌 되었든 일단은 네게 감사하지.”
“…….”
“덕분에 교주님께 면이 서겠어.”
단악선의 시선이 재빨리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했다.
암벽을 깎아 낸 복도 형식의 통로.
그 높이는 일 장에 조금 미치지 못했고, 너비는 그 반이 채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성인 두 명이 나란히 서서 간신히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장병기에 속하는 묵룡을 쓰기에는 제한적인 공간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찌르기뿐이었다.
문제는 상대도 이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음서가 입매를 말아 올리며 섬뜩한 기파를 뿜어냈다.
“알려 주마. 어째서 다른 마존들이 아닌 내가 이곳에 남았는지.”
그의 손에는 어느새 핏빛이 감도는 퉁소 하나가 들려 있었다.
지금의 그를 존재하게 만들어 준 성명병기.
사음혈적(邪音血笛)이었다.
단악선이 황급히 묵룡을 들어 조음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조음서가 조금 더 빨랐다.
삐익!
고막을 긁어 대는 날카로운 소리가 뇌옥 안을 뒤흔드는 순간.
“……!”
단악선은 하마터면 묵룡을 손에서 떨어트릴 뻔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속이 메스꺼워지나 싶더니 순식간에 기혈이 들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번 내부가 진탕되자 눈앞이 흐릿해졌다.
“큽!”
단악선이 황급히 위화신공을 끌어 올려 조음서의 음공을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 단악선을 향해 조음서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애써 보려무나. 하나 그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죽음을 노래하는 연주곡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음공(音功)인 멸혼곡(蔑魂哭).
그 앞에서는 제아무리 금강불괴를 이룬 고수라도 의미가 없었다.
독공을 제외하면 음공이야말로 대량 살상이 가능한 유일한 무공.
반면 고수를 상대로 한 일대일의 대결에서는 다소 불리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지형이 좁아 소리가 중첩되어 울리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겹치고 겹친 음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해지는 법.
다른 곳은 몰라도 이런 장소에서만큼은 천하의 그 누구도 쓰러트릴 자신이 있는 조음서였다.
단악선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어느새 조음서 뒤로 빼곡하게 도열한 마교도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대를 가득 메운 날카로운 소리를 저들이 듣지 못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정작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 순간에도 기혈을 파고드는 음공의 위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제갈산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조음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음공의 위력을 높여 가고 있었다.
반면 그의 뒤에 도열해 있는 마교도들은 멀쩡했다.
마존이라는 이름답게 그는 음공의 영향력이 미치는 방향마저 다스릴 수 있을 정도의 고수였던 것이다.
뇌옥 벽에 반향 되어 겹겹이 중첩된 음공.
그렇게 증폭된 위력이 연이어 내부를 뒤흔들며 타격하던 그 순간.
단악선의 눈빛이 반짝였다.
지금까지 음공을 직접 상대해 본 적은 없었지만 비슷한 위험은 이미 몇 번이나 겪어 본 뒤였다.
바로 진법 안에서였다.
위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위기에 빠트리는 온갖 수단 중에는 당연히 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리에 진기를 실어 상대를 공격하는 수법은 침입자의 감각을 극대화해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무너트리는 진법의 성격과도 흡사했다.
이를 상기한 단악선은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 하나를 떠올렸다.
우우웅.
웅혼한 진기를 흠뻑 빨아들인 묵룡이 나직한 울음을 토했다.
빠앙!
허공에 작렬하는 묵빛 섬광과 함께 폭약이 터진 듯한 굉음이 뇌옥 안을 가득 메운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 순간.
단악선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비록 찰나의 틈에 불과했지만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음공이 느껴지지 않았다.
‘효과가 있어.’
앞서 무수히 경험한 신마삼존과의 비무를 통해 얻은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은 몇 번이고 겪어 본 적이 있었다.
경력과 경력이 충돌하는 순간, 주위의 경물이 일그러지고 대기가 비틀리던 광경.
지독한 압력에 의해 주변의 공기가 급격히 빠져나가 공백 상태가 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진공 상태가 된 그 공간 안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음공은 소리를 이용해 적을 타격하는 무공.
그렇다면 소리 자체를 차단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꽈릉!
묵룡 끝에 맺힌 경력에 짓눌리고 압축된 공기가 연이어 터져 나갔다.
그렇게 생성된 폭음이 이내 하나의 뇌성을 만들어 냈고.
그때마다 묵룡 끝에서 날카로운 뇌광이 번쩍였다.
그러나 일대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 대응하는 단악선의 모습을 보고도 조음서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어리석은.”
제아무리 뛰어난 고수라도 결국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
그 육신을 지닌 이상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천하제일의 내공을 지녔다 한들 결국 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눈앞의 꼬맹이가 펼쳐 내는 수법은 한눈에 봐도 대단한 절학이 분명했다.
‘그걸 얼마나 계속 연이어 사용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단악선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진공 상태가 된 공간은 조음서와 단악선 사이에 존재하는 일 장 남짓한 공간뿐.
하나 아무리 한정적인 공간이라 해도 소리가 통과할 수 없는 완벽한 진공 상태를 유지하는 건 몹시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내력 소모가 심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단악선 덕분에 일시적으로 조음서의 음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제갈산이 황급히 외쳤다.
“호흡과 호흡 사이! 그 간격 사이에 음률이 흔들리는 틈이 존재하오. 그 순간을 노려 호흡의 경계를 끊어 낼 수만 있다면…….”
제갈산이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한 얼굴과 보랏빛으로 죽어 가는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단악선은 제갈산이 언급한 기회를 기다리며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울컥울컥 피를 게워 내면서도 제갈산이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바로 지금!”
그리고 그 순간.
단악선의 눈에서 섬뜩한 기운이 폭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