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28)
신마의선-428화(428/500)
신마의선 (428)
콰드득.
“끄어어!”
두 눈을 부릅뜬 척대광의 입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가슴을 뚫고 깊게 파고든 초악량의 손을 목도한 척대광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나 이조차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해도 심장이 터져 나가고 살아 있을 수는 없는 법.
팔꿈치까지 박혀 있던 손을 초악량이 천천히 비틀어 뽑아내자 간헐적인 경련을 마지막으로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안 돼!”
연이은 동료들의 죽음에 혁련호는 극도의 혼란과 공포에 휩싸였다.
정신이 흐트러지자 칼 또한 느슨해졌고, 한설화의 손짓을 따라 생성된 얼음 칼은 단번에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서컥.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세로 자신의 허리를 가르고 지나간 섬뜩한 예기를 느낀 직후.
“……!”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물러서던 혁련호의 상반신이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다.
‘이건 대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혁련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앞서 한설화를 상대했던 마영기에게 전해 들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직접 손을 섞어 보니 그때와 비교도 안 되는 더한 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주변의 전황을 확인한 단악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끝났군요.”
모처럼 제대로 손맛을 만끽한 범계위는 그 말에 흡족하게 웃었다.
반면 초악량과 한설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각자가 도맡아 이끌어 낸 삼마존의 죽음.
이로 인해 대회전은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자신들의 우두머리들이 죽자 그나마 남아 있던 마교 측 무인들도 전의를 잃고 저항을 포기했던 것이다.
속속 전장을 이탈하는 그들을 굳이 쫓을 필요는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단악선의 시선이 북서쪽으로 향했다.
바로 신지가 위치해 있는 방향이었다.
* * *
신마삼존의 활약으로 마교의 별동대를 수월하게 와해한 중원의 무인들은 곧장 신지로 향했다.
어차피 신지 안에 웅크리고 있는 마인들과 그들의 수장인 천마를 쓰러트리지 않는 이상 끝낼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신지 근처에 도착한 그들은 하루를 쉬어 가기로 결정했다.
최후의 일전이 기다리고 있는 만큼 조금은 쉬어 갈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갈산의 조언도 한몫했다.
운명을 결정하는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인 인화라는 것을 강조하며 중원의 명숙들을 설득했다.
단악선은 처음에 몸이 불편한 제갈산을 세가로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나 제갈산은 단악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고집스럽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중원 무림과 함께 움직였다.
운명의 향배를 가를 최후의 결전.
이를 앞두고 있는 만큼 반드시 단악선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제갈산과 마주 앉아 있던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공의 파훼법……. 반마공(反魔功)을 완성하셨다고요?”
깜짝 놀라 되묻는 단악선을 향해 제갈산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처음부터 이를 위해 마교에 잠입한 것이니까요.”
처음 조우했을 때와 달리 제갈산은 단악선에게 공대를 취했다.
나이를 떠나 현재 중원 무림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단악선이었다.
그런 만큼 그 역시 예의를 갖추기로 한 것이다.
“반마공이 중원 전역에 퍼진다면 마교의 발호를 저지하는 데 크게 일조할 것입니다. 자신들과 상극인 무공이 존재하는 이상 두 번 다시 중원을 넘보지 못할 테니까요.”
제갈산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제갈산이 연구한 반마공이 제 위력을 발휘한다면 그 자체로 마교를 억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을 중원 무림이 거머쥐게 되는 셈이었다.
단악선은 새삼 눈앞의 제갈산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앞서 뇌옥 안에서 치렀던 조음서와의 일전.
당시 주효했던 그의 조언을 통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처럼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은 또 의미가 달랐다.
“물론 천마에게도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천마가 익힌 철혼유마심공(鐵魂由魔心功)은 다른 마존들이 익힌 마공보다 한 차원 높은, 그야말로 지존공(至尊功)이니까요.”
“그래도 나뭇가지를 더듬어 가면 결국 뿌리에 도달하듯, 어느 정도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할 거예요.”
“그렇다면 좋겠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던 제갈산이 이내 빙긋 웃고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당장은 시간이 부족해 구결을 적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가급적 이 자리에서 외우도록 하십시오.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 암송하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갈산이 자신이 연구한 반마공의 구결을 읊기 시작했다.
약 반 각에 걸쳐 구결을 암송한 제갈산이 단악선을 바라봤다.
“구결이 다소 복잡할 수 있으나 몇 번 더 반복해 듣는다면…….”
“아뇨. 다 외웠어요.”
예상치 못한 단악선의 대답에 제갈산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벌써 다 외우셨다고요?”
“네.”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방금 전 제갈산이 말했던 구결을 순서대로 암송하기 시작했다.
제갈산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기가 막혔다.
자신도 어디 가서 머리 좋은 걸로는 밀리지 않는다 자부하는 그였지만, 단 한 번 만에 장문의 구결을 외워 암송하는 단악선의 영민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단악선이 암기한 구결에 오류가 없음을 확인한 제갈산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합니다.”
마주 미소 짓던 단악선은 문득 제갈산의 눈빛과 제갈세가의 가주가 닮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긴.’
피가 이어진 만큼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단악선은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을 떠올렸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경과 나누었던 대화들 중에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혹시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제게 말입니까?”
“네. 부친이신 가주님께 진법의 묘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지만 신지에 설치되어 있는 진법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하셨거든요.”
단악선은 예전에 신지에 들어섰을 당시 경험한 진법을 언급했다.
조용히 경청하던 제갈산의 눈에 이채가 자리 잡았다.
그 또한 이미 앞서 마교의 본단과 신지에 설치되어 있는 진법에 관해 오랜 시간 연구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법을 직접 겪은 당사자인 단악선의 이야기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했다.
“만약…….”
그렇게 운을 뗀 단악선은 하나의 가설을 세워 그 가능성 여부를 물었다.
“흠. 그런 경우라면…….”
제갈산 역시 오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두 사람은 상당히 오랜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밤이 깊었음을 깨달은 단악선이 조용히 웃으며 제갈산을 바라봤다.
“이렇게 보니 참 닮으셨네요.”
“누구와 말입니까?”
“아버님이신 가주님과요.”
제갈산이 실소하며 머쓱해했다.
아버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기에 당시의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기뻐하셨을 테지요. 저 외에는 달리 진법에 대해 토론하거나 이해를 함께할 상대가 없으셨으니까요.”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이고요. 그분께 가르침을 얻지 못했다면 그토록 수월하게 마교 본단의 진법을 뚫지 못했을 테니까요.”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하던 제갈산의 눈 위로 갈등의 빛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잠시 말없이 단악선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제갈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두 분 부모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
부모님의 죽음이 언급되자 단악선의 표정이 흐려졌다.
앞서 포달랍궁을 방문했을 당시.
달뢰라마를 통해 어느 정도는 설명을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정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알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단악선의 물음에 제갈산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수보, 그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당시의 상황을 꽤나 자세하게 설명했다.
두 사람의 죽음을 언급해 제갈산의 의지를 꺾고, 두려움과 절망을 안겨 쉽게 다루기 위해서였다.
“…….”
단악선은 침묵했다.
그렇게 복잡한 눈빛으로 고민을 이어 가길 잠시.
이윽고 마음을 굳힌 단악선이 눈을 들어 제갈산을 응시했다.
“알려 주세요. 부모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은 반드시 이유를 알아야 했다.
다시 한 번 낮게 한숨을 터트린 제갈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포달랍궁에서 발생한 환자들을 치료한 두 분께서는 곧바로 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단악선과 재회할 수 없었다.
“육마존을 필두로 한 마교의 고수들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포달랍궁의 고수가 그들 부부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그 많은 고수들을 감당하는 건 무리였다.
더구나 당시의 그 라마승은 어린 단악선을 위해 자신의 진원진기까지 소모해 가며 벌모세수를 시전한 뒤였다.
결국 그는 마교의 고수들에게 목숨을 잃었고, 신의와 마의 부부는 그대로 납치되어 마교로 끌려갔다.
마교에서 그들 부부를 납치한 이유는 하나였다.
당시의 교주였던 천마 종여의.
그의 치료를 위해서였다.
“천마는 정마대전 당시 기련산에서 벌어진 마지막 싸움에서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체적으로 치료를 했던 마교였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천마의 상태는 악화되었고, 그러다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의식마저 사라진 상태로 몇 년이 훌쩍 지나 버린 것이다.
천마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교는 결국 신의와 마의 부부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두 사람을 납치하기 앞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철저하게 정보를 수집했다.
그래서 중원 무림 대부분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의 혼인 사실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존재까지 파악해 놓았다.
처음에 마교는 그들 부부가 어딘가에 숨겨 놓은 단악선을 이용해 협박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협박은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마교가 대단해도 탁요신의 역작인 혼천미리암진(混天迷理暗陳)에 숨겨져 있는 신마곡을 찾지 못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결국 곤혹스러워진 마교는 방법을 달리했다.
두 부부의 정이 깊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마교는 그들 부부의 목숨을 볼모 삼아 협박을 계속했다.
이에 마의는 코웃음을 치고는 되려 마교 측 인사들을 비웃었다.
천마를 살리느니 차라리 함께 죽겠다는 그녀의 독기는 마교의 고위 인사들조차 질려 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신의는 생각이 달랐다.
차마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신의는 천마의 치료를 수락했고, 그런 남편의 결정에 마의는 크게 실망했다.
아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신의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끝내 마의도 고집을 꺾고 어쩔 수 없이 남편 곁에 남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천마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합심해 본격으로 치료에 들어가자 천마의 용태는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의 의술 덕에 천마는 의식을 회복해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마의 완치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신의는 마의를 놓아줄 것을 마교 측에 요구했다.
이미 힘든 과정은 지나왔으니 자신만으로도 완치시킬 수 있다 장담한 것이다.
당연히 마의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신의는 어린 단악선에게는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결국 마의는 마음이 흔들렸다.
더구나 마교는 신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천마의 완치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함부로 신의를 자극해 화를 자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의는 남편의 뜻에 따라 선앙침을 유품처럼 품에 지닌 채 마교를 떠났다.
그렇게 홀로 중원으로 향하던 중.
마의는 우연히 자신의 뒤를 밟는 마교 고수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 목적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로 신마곡과 단악선을 찾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