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29)
신마의선-429화(429/500)
신마의선 (429)
약간의 시간을 두고 제갈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의께서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자신들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지만 아직 채 피어 보지도 못한 어린 자식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의는 신마곡에 돌아갈 수 없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인 제갈산이 이야기를 다시 이어 갔다.
“마의께서는 일부러 객잔에 들렀습니다.”
몇 마디 대화를 통해 객잔 주인의 인품이 선량하다는 것을 파악한 그녀는 그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지니고 있는 패물을 값으로 치른 뒤, 풍진성에게 한 장의 서한과 물건들을 전해 달라 부탁한 것이다.
자신들 부부의 유산인 선앙침과 마령침이었다.
이후 깨끗하게 목욕을 한 뒤 정성스레 화장까지 마쳤다.
그녀는 곧바로 객잔을 나서 주위를 향해 외쳤다.
―잊고 있던 문제가 떠올랐다! 당장 남편을 만나야 한다! 만일 때를 놓친다면 너희들의 교주인 천마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은신해 있던 추적자가 모습을 드러낸 건 그 직후였다.
본래 그의 임무는 마의의 뒤를 밟아 인질로 삼을 단악선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발언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천마의 일신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추적자는 마의의 요구대로 그녀를 업은 채 경공을 펼쳐 곧장 천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떠났던 아내가 다시 돌아오자 신의는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아내가 돌아온 이유가 단지 순간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는 사실 그 또한 내심 우려하던 일이기도 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단악선이 한숨을 터트렸다.
“어리석게도 마교는 두 가지를 간과했군요.”
이후의 상황은 더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모친인 마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의원이라는 소명 때문에, 그리고 남편인 신의 때문에 애써 참고 있었을 뿐.
한번 분노하면 뒤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마교의 첫 번째 실수였고, 약속을 어기고 그녀에게 추적자를 붙인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치료를 마무리한다는 이유로 마의께서는 천마의 사혈에 침을 꽂아 넣었습니다.”
“…….”
단악선이 침음했다.
미물인 짐승도 자식의 위기 앞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법.
하물며 일찍부터 독기로 유명했던 마의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신의께서도 마의가 돌아온 순간부터 이미 예상을 하셨다 합니다. 그리고 그저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하셨다는군요.”
“어머니는요?”
“사랑한다고 하셨답니다. 당신을 납치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며.”
단악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두 분께서는 진짜 영웅이셨습니다. 그분들이 종여의를 막지 않으셨다면, 마교의 발호는 그만큼 훨씬 앞당겨졌을 테니까요.”
그런 제갈산의 말에 단악선은 눈을 들어 신지가 위치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이제 제가 부모님의 유지를 이을 차례군요.”
눈빛만큼이나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단악선이 말을 덧붙였다.
“내일 마교는 이 땅에서 사라질 거예요.”
완전히 달라진 단악선의 분위기에 제갈산이 흠칫했다.
스스로 다짐하듯 단악선이 재차 입을 열었다.
“반드시 제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으스러져라 움켜쥔 단악선의 주먹.
그 사이로 흘러내린 핏물이 이내 바닥을 적시며 붉게 물들였다.
* * *
다음 날 아침.
날이 밝기 무섭게 단악선은 눈앞에 드리워 일렁이는 짙은 안개를 향해 다가섰다.
단악선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이천을 헤아리는 중원의 정예들은 넓게 포진해 일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신마삼존과 천하오절이 서 있었다.
밤사이 이화궁주 연옥상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천하오절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천진(天陣)에 해당하는 건(乾) 방위를 선점한 단악선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넓게 둘러봤다.
저 멀리, 곤(坤) 방위를 지키고 있는 초악량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손(巽)과 감(坎) 방위에 자리한 범계위와 한설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진(震)과 태(兌), 간(艮)의 방위는 각각 법료와 진명진인, 강위룡이 맡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離)의 방위는 연옥상이 담당했다.
그렇게 여덟 명이 각자 여덟 방위 하나씩을 전담한 것이다.
이를 모두 확인한 단악선이 위화신공을 끌어 올렸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조심스레 묻는 제갈산의 물음에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제가 선택한 일인걸요.”
“하지만…….”
단악선이 고개를 저어 제갈산의 말을 잘랐다.
“아직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해요.”
“…….”
제갈산의 눈 위로 갈등의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내 무거운 한숨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우우웅!
묵룡이 포효하며 그 안에 담고 있던 경력을 일시에 토해 냈다.
단악선의 손이 움직인 것도 동시였다.
꽈앙!
있는 힘껏 전면을 후려갈긴 묵룡과 안개 사이에서 터져 나온 벼락같은 충격음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되었다.
앞서 단악선이 설명했던 대로 각자 자신들이 도맡은 방위를 선점하고 있던 일곱 명의 고수들 역시 자신들이 지닌 최고 절학들을 일거에 쏟아냈다.
드드드드!
연이어 터져 나온 폭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단악선이 두드린 천문(天門)을 시작으로 연달아 지문(地門), 풍문(風門)이 흔들리자 계곡 일대를 에워싼 짙은 안개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뒤이어 다른 고수들이 가세해 비룡문(飛龍門)과 호익문(虎翼門), 조상문(鳥翔門)마저 흔들어 버렸다.
“허!”
그토록 짙던 안개의 바다가 순식간에 와해되어 눈앞에서 흩어지는 광경을 목도한 제갈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천하의 탁요신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고수들이 한꺼번에 힘을 모아 진법을 파훼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잠시 후.
안개가 완전히 흩어지자 발밑 아래 자리 잡은 넓은 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안의 광경을 마주한 중원 무림인들은 저마다 침음성을 흘렸다.
곳곳에 서 있는 마인들.
그 숫자만 칠백을 헤아리는 그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이 뿜어내는 마기는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아미타불.”
그 모습에 법료가 나직이 불호를 외웠다.
저들이 모여 만들어 낸 지독한 마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심혼을 뒤흔드는 끔찍한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하나 그 형언하기 어려운 꺼림칙함은 고개를 돌린다 해서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 의원!”
쩌렁한 범계위의 음성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범계위가 다시 한 번 소리 높여 외쳤다.
“눈앞의 저놈들을 쓸어버리면 되는 거지?”
“네!”
“좋아!”
원하던 대답에 더없이 흡족한 웃음을 머금은 범계위가 절벽 아래로 훌쩍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이를 신호로 초악량과 한설화, 천하오절을 비롯한 중원의 정예들이 합류했다.
홀로 남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산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파도처럼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무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짓쳐들어오는 적을 앞에 둔 상대의 반응이 무언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천마가 웅크리고 있다 짐작되는 분지 중앙의 전각이었다.
전각을 에워싼 채 요동치는 짙은 흑색 안개.
‘위력이 훨씬 더 강해졌어!’
지난번 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절진을 확인한 단악선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니…….’
진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의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방금 고수들이 와해시킨 진법과 전각을 감싸고 있는 진법은 처음부터 하나로 연계되어 있었다.
형태를 달리하고 있을 뿐, 그 자체가 하나의 이중 진법이었기 때문이다.
와해된 외부의 진법.
그 안에 담겨 있던 힘을 고스란히 거두어들인 내부진은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때였다.
중앙 전각을 에워싼 흑색 안개가 한차례 크게 출렁이나 싶더니.
콰아아!
육중한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뒤이어 태풍처럼 일대를 뒤흔든 소름 끼치는 마기가 삽시간에 분지 안을 가득 채웠다.
멍하니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인들의 눈에서 형형한 안광이 뿜어져 나온 건 그 직후였다.
그와 동시에 마인들이 쇄도하는 중원 무림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어지럽게 뒤얽힌 양측.
비명도, 고함 소리도 없었다.
자욱한 피 보라와 함께 사방에서 거친 금속성과 폭음, 숨 막힐 듯한 긴장감과 서로를 향한 끝없는 살기만이 한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단악선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콰득.
묵룡을 휘둘러 달려들던 마인의 옆구리를 부숴 날려 버린 단악선의 눈에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묵룡에 얻어맞고 날아가 널브러졌던 마인이 비틀거리며 신형을 일으키더니 재차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큰 부상을 입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에도, 상대의 기세는 처음과 비교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흉포함이 더해져 더욱 농밀한 살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고통도,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혈대공?’
단악선은 뒤늦게 저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기를 역행시켜 스스로 주화입마에 드는 마교만의 동귀어진 수법.
선천지기와 잠력을 격발해 순간적으로 평소 지닌 무공의 몇 배에 달하는 무공을 쓰는 것이 가능해지지만 이는 시전자의 목숨을 담보로 했다.
짧은 시간 동안 평소보다 몇 배의 힘을 낼 수 있지만 그 끝에는 피할 수 없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이상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저들에게서는 주화입마의 전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은 곳곳에서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크아아!”
멀지 않은 곳에서 터져 나온 처절한 비명에 단악선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허공에 솟구치는 핏줄기를 뒤집어쓴 채 쓰러지는 무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도 몇 번인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 눈에 익은, 무위의 사파 무림인이었다.
그의 팔은 한쪽이 통째로 뜯겨 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팔을 뜯어낸 마인은 더욱 흉흉한 안광을 뿌리며 재차 달려들고 있었다.
단악선은 주저하지 않고 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묵룡이 사정없이 허공을 찢었고.
꽈직.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마인의 한쪽 어깨가 송두리째 짓이겨졌다.
그러나 그자 주변에서 싸움을 이어 가던 중원의 무인들은 이내 얼굴이 해쓱해졌다.
한쪽 상반신이 움푹 주저앉았는데도 태연히 일어나는 마교도의 모습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마인은 공격을 계속할 수 없었다.
서컥.
어느새 나타난 진명진인의 검에 목이 날아간 것이다.
단악선과 눈이 마주친 진명진인은 한눈에 봐도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단악선이 재빨리 주변 상황을 살폈다.
천하오절이나 신마삼존, 그리고 각파의 장문인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마인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중원의 정예들은 상황이 달랐다.
눈앞의 마인들은 숨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게다가 지니고 있는 마공 역시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역혈대공이 더해진 상태.
마인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두세 명씩이 합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쓰러지는 마인보다 아군이 무너지는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었다.
이대로라면 천하오절과 신마삼존을 비롯한 고수만 남을 터.
최후에 승리를 거머쥔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희생이 너무나 컸다.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아!’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분지 중앙에 위치한 전각을 응시했다.
‘저길 뚫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