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
신마의선-43화(43/500)
신마의선 (43)
“이건 기적입니다! 완벽하게 치료되었습니다!”
남궁향을 진맥하던 의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빠, 이제 그만 하세요. 단 의원님께서 이미 다 나았다고 하셨잖아요.”
이런 식으로 다녀간 의원만 벌써 세 명째다.
“나도 안다. 그래도 그저……. 그 완치되었다는 말이 계속 듣고 싶어 그랬다.”
남궁백이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련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딸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남궁향이 포옥 한숨을 흘렸다.
“조금만 더 머물다 가시지…….”
뒤늦게 이유를 깨달은 남궁백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계속 권해 봤는데, 치료할 환자가 있어 지체할 수가 없다더구나.”
“제대로 된 보답도 못 해 드렸는데…….”
“그러게 말이다. 치료비로 겨우 오래된 목함 하나만 요구하더구나. 여비도 받지 않으려 하는 걸 겨우 쥐여 주었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겠죠?”
“물론이다. 내가 자리를 마련해 보마.”
그 순간 남궁향의 얼굴 위로 내려앉은 노을빛 홍조를 남궁백은 놓치지 않았다.
그런 딸의 모습에 남궁백은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 * *
무한을 벗어나 호북성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림맹주가 돈이 많긴 많네.”
상자 가득 담겨 있는 은자를 확인한 범계위가 연신 싱글벙글했다.
“이게 다 얼마야? 여비라고 건네기에 밥값 조금 넣었다 싶더니만 집 몇 채 살 돈이 들어 있네?”
한설화가 피식 웃었다.
얼마를 넣어야 할지 고민 꽤나 했을 남궁백의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치료비는 둘째 치고 자신과의 안면을 생각해서라도 푼돈을 넣진 못했을 터.
그때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동안 약값은 걱정 없겠어요.”
범계위와 한설화가 어이없는 눈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비싼 약재가 나오면 망설임 없이 가산을 탕진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까닭이다.
“그나저나 모두 두 분 덕이에요.”
단악선의 칭찬에 한설화는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반면 범계위는 환하게 웃으며 단악선에게 바짝 붙었다.
“그치? 내가 생각해도 좀 잘한 것 같아. 말이 쉽지 그 뭐랬더라? 위화……. 하여튼 무슨 무슨 요법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맞아요. 범 아저씨는 정말 대단해요.”
“흐흐. 칭찬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더 해도 된다.”
“내가 어쩌다 저런 멍청이와…….”
한심하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한설화를 향해 범계위가 눈을 부라렸다.
“내가 할 소리거든? 그리고 칭찬받는 게 뭐 어때서? 초 형처럼 괜히 점잖은 척하는 게 더 꼴불견이야!”
“거기서 왜 갑자기 내 이름이 튀어나와!”
마차 밖에서 초악량이 소리쳤다.
덜컹.
이때 바퀴가 돌부리에 걸렸는지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범계위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초 형! 마차 좀 똑바로 모슈! 마차 처음 몰아 봐?”
“처음이다! 이 자식아!”
“그럼 내려서 직접 끌든가! 우리 단 의원 놀라잖아! 이제 내공도 쓸 수 있다면서!”
“하……!”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하던 초악량은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소태 씹은 얼굴이 되었다.
“언젠 고맙다며? 고마우면 보답을 해야지. 어디서 말로 대충 때우려고! 계속 이런 식으로 굴면 앞으로 치료 안 도와주는 수가 있수?”
졸지에 마부 취급을 당한 초악량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의 입이 화근이었다.
범계위와 한설화가 치료를 도와준 것이 고마워 마부석에 앉기를 자청했는데, 되레 범계위의 기만 살려 준 꼴이 되었다.
이때 단악선이 범계위를 만류했다.
“전 괜찮아요. 그러니 초 아저씨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내가 안 괜찮아. 우리 단 의원의 편한 여행을 위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데. 그건 그렇고……, 어라?”
범계위가 별안간 소리쳤다.
“초 형! 내가 마차 똑바로 몰라고 했소? 안 했소? 이 방향이 아니잖아!”
“뭐, 인마?”
“장안으로 가려면 오른쪽 길로 가야지! 왜 왼쪽으로 말을 모냔 말이오? 거긴 난주로 가는 길이잖수!”
“우리가 장안을 왜 가?”
“저번에 여행 계획 세울 때 장안 들른다며?”
단악선이 대신 대답했다.
“사무심이라는 분이 기다린다고 하셨잖아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환자부터 봐야죠.”
“아! 그랬지?”
괜히 무안해진 범계위가 초악량을 탓했다.
“그러게 애초에 장안으로 보내 놓지 왜 난주로 가라고 해서는…….”
“그래! 내가 죽일 놈이다! 내가 아주 큰 죄를 지었어!”
“알면 반성하슈. 그렇게 툭툭대지 말고.”
비록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단악선은 이 순간 초악량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장안은 안 들러도 괜찮아요. 저는 지금도 너무 즐거운 걸요.”
“그래?”
범계위가 웃으며 넌지시 운을 뗐다.
“그럼 평생 이렇게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뜻밖의 대답에 범계위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진짜?”
“그런데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요.”
“그게 뭔데?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마.”
“이번 기회에 엄마 아빠의 의술을 하나로 모아 보려고 하거든요.”
“그건 내가 도와줄 수가 없는데…….”
살짝 풀이 죽은 범계위의 모습에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걸 끝내기 전에는 곡을 벗어날 수 없어요. 자료도 방대해서 간신히 순서대로 정리했거든요.”
“두 분의 의술이 단 의원만의 것으로 재탄생되는 거로군.”
한설화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께서 제게 남긴 숙제 같은 거죠.”
그렇게 말한 단악선이 문득 호기심이 생긴 듯 마차 한쪽에 놓여 있는 목함을 보았다.
“그런데 저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요?”
“왜? 궁금해? 부숴 볼까?”
덥석 목함을 움켜쥐는 범계위의 모습에 단악선이 손사래를 쳤다.
“아뇨, 괜찮아요.”
단악선이 서둘러 말을 이어 갔다.
“기관이 설치되어 있어서 열쇠 없이 열면 내용물이 망가질 수도 있다면서요? 그래서 무림맹에서도 안 건드린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었나?”
고개를 갸웃하는 범계위를 뒤로한 채 단악선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네요. 이 작은 목함에 기관을 설치하다니.”
“돈지랄이지, 뭐.”
“빨리 난주에 도착했으면 좋겠어요.”
대체 목함에 무엇이 들어 있길래 그가 목숨까지 걸며 매달렸던 것일까.
무엇보다 단악선은 그것이 궁금했다.
* * *
마차는 감숙성 경계를 한참 지나 난주에 들어섰다.
“그럼 전 의가로 돌아가겠습니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거든요.”
초악량과 자리를 바꾸어 마부석에 오른 풍진성이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 뒤 마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런데 그분을 어떻게 찾죠?”
단악선의 질문에 초악량이 뜨끔했다.
난주 진성의가 근처로 가라 했을 뿐 따로 약속을 하거나 접선지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여기서 사실대로 말하면 범계위만 신날 터.
괜한 약점은 잡히고 싶지 않았다.
“일단 사람 많은 곳으로 가 보자.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게다.”
일단 그렇게 둘러댄 초악량이 일행을 시장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시장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초악량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있구나.”
혹시라도 찾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했던 것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디요?”
단악선의 물음에 초악량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길가에 자리 잡은 아름드리나무 아래. 작은 간이 탁자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중! 나는 가운데에 걸겠네!”
“나는 오른쪽!”
“아냐, 왼쪽이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기이한 열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선택이 옳다며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투전판이 벌어진 것이다.
승부사들이 걸었던 돈을 거두어들인 야바위꾼이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찻잔 세 개를 동시에 들어 올렸다.
그 짧은 찰나에 사람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환호하는 일부와 한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야말로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조용히 숨어 있으랬더니.”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뭐, 변장은 제대로 했네.”
단악선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저게 뭐 하는 건데요?”
“야바위라는 거다. 저 세 개의 찻잔 중 하나에 구슬을 넣고 이리저리 섞는 거지. 그중 하나에 돈을 걸고 맞추면 두 배의 돈을 받는단다.”
“맞추지 못하면 찻잔을 움직이는 사람이 가지는 거고요?”
“그렇지.”
“그럼 야바위를 하는 사람에게 훨씬 유리한 거 아닌가요? 사람들은 왜 불리한 내기를 하는 거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행운이 확률을 넘어설 거라 생각하거든.”
그때였다.
“이거 사기 아니야?”
“내 돈 내놔!”
돈을 잃은 사람들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어허. 아까 땄을 때는 가만히 계셔 놓고선?”
야바위꾼의 말에 몇몇 사람은 얼굴을 붉혔지만 돈 잃고 속 좋은 사람 없는 법.
“저놈 잡아!”
누군가가 야바위꾼으로 위장한 사무심을 향해 달려들자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한데 뒤엉킨 사람들로 인해 시전은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사람들 사이로 온갖 욕설과 고함, 그리고 비명이 난무했다.
그런데 정작 이 소란을 만든 당사자인 사무심은 미꾸라지처럼 돈만 챙겨 그곳을 빠져나온 뒤였다.
그리곤 순식간에 담벼락을 넘어 사라졌다.
“엇? 놓쳐 버렸어요!”
단악선의 당혹성에 범계위가 여유 있게 웃음을 흘렸다.
“흐흐. 걱정 마, 단 의원. 뛰어 봐야 벼룩이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까마득한 높이까지 올라간 범계위가 다시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미곡상이 모여 있는 골목 쪽으로 가던데?”
“우리도 가 봐요.”
범계위가 단악선을 업고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미곡상이 늘어서 있는 시전 골목에 도착했다.
“내가 가서 잡아 올까?”
범계위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만 지켜보고요.”
반쯤은 호기심이었지만 나름 진지한 단악선이었다.
어쨌거나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지도 모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심은 미곡상을 돌아다니며 구입한 곡식과 먹거리를 수레에 싣고 마을 외곽으로 향했다. 그리곤 그 물품들을 난주의 뒷골목에서 생활하는 거지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렇게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순간.
사무심 앞에 한 사람이 뚝 떨어져 내렸다.
“헉!”
헛바람을 들이켠 사무심이 이내 초악량을 알아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셨습니까?”
물끄러미 사무심을 보던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난 갑자기 의문이 든다.”
“뭐가 말입니까?”
“넌 나쁜 놈이냐? 착한 놈이냐?”
그제야 자신의 행적이 들킨 것을 깨달은 사무심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기 지루해서 잠깐 놀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이때 범계위가 업고 있던 단악선을 내려놓았다.
“인사부터 해라. 너를 치료해 주실 분이다.”
“예?”
사무심이 무슨 말인가 싶어 범계위와 그 옆에 나란히 선 단악선을 번갈아 보았다.
둘 중에 어느 누구도 자신을 치료해 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이 꼬마가 제 주화입마를 치료해 주신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그 순간 사무심은 섬뜩한 예기가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한 끔찍한 느낌에 휩싸였다.
초악량과 범계위의 눈에서 쏟아진 살기 때문이었다.
“딸꾹.”
무림맹에게 쫓길 때도 느껴 본 적 없던 위기감에 절로 딸꾹질이 나왔다.
사무심이 재빨리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무심이라 합니다.”
“단악선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고개를 들던 사무심이 깜짝 놀랐다.
단악선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목함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