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0)
신마의선-430화(430/500)
신마의선 (430)
분지를 가득 메운 기이한 마기의 진원지.
저 안에 천마가 웅크리고 있다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금이 기회였다.
단악선의 신형이 한순간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났다.
순식간에 마인들 사이를 파고든 단악선의 묵룡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빠바바박!
폭죽이 터지는 듯한 타격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마인들이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거침없이 내달리던 단악선이 어느 순간 주춤했다.
이성이 남아 있지 않은 무의식 상태에서도 마인들은 끝까지 사력을 다해 달려들며 중앙 전각으로 접근하는 것을 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진하던 단악선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단악선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 순간에도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마인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앞의 마인들이 일시에 장력을 뿌렸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을 자아내는 핏빛 기운.
저들의 절학인 혈옥수였다.
콰르르르.
“……!”
단악선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마인들의 무공 자체도 이미 경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물며 수십 명이 동시에 쏟아 낸 경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내 거대한 해일처럼 내달리는 경로상의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쇄도해 오고 있었다.
“피해!”
“조심해!”
곳곳에서 터져 나온 고함 소리와 함께 중원의 정예들이 분분히 좌우로 비켜섰다.
그러나 단악선은 물러설 수 없었다.
설명하기 힘든 위기감이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서두르라 다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앗!”
누군가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홀로 남아있는 단악선을 발견한 것이다.
삽시간에 단악선 주위의 경물이 일그러져 보였다.
대기가 비틀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인들의 장공은 가공할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핏빛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단악선이 전면을 향해 묵룡을 내지른 것도 그때였다.
번쩍.
한 줄기 묵빛 섬광이 가공할 장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폭사되었다.
쩌엉!
동시에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거친 소음이 터져 나오며 갈가리 찢긴 핏빛 경력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사방에서 돌조각과 흙먼지가 솟구쳤다.
채 가라앉지 않은 흙먼지를 뚫고 한 줄기 묵빛 그림자가 그대로 핏빛 운무를 꿰뚫었다.
그리고…….
비록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지 중앙의 전각과 단악선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이 열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악선이 신형을 날렸다.
“헉헉.”
전각 앞에 도착한 단악선은 거친 숨을 헐떡였다.
이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 전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일대를 에워싼 채 꿈틀대는 흑색 안개를 응시하길 잠시.
단악선이 그 안으로 신형을 던졌다.
‘아!’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차단한 순간.
단악선은 무언가 상황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전에도 겪어 본 현상이었다.
그러나 피부로 실감하는 위기감은 이전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마기는 말할 것도 없었고, 더없이 낯선 이질적인 기운이 마음속 깊은 곳의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
단악선은 소름이 쭉 끼쳤다.
사방을 에워싼 채 끔찍하게 휘몰아치던 마기가 돌연 전신을 파고들며 빠른 속도로 잠식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썰물처럼 빠르게 진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명맥이 끊어져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마교의 저주받은 무공인 흡정공(吸精功)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스스로 의지를 지닌 것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어 집요하게 파고드는 마기는 마치 먹이를 포식하기 위한 생명 활동처럼 느껴졌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단악선이 이를 악물었다.
지독한 위력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 역시 충분히 상정해 두었던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서 제갈산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당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단악선은 제갈산이 알려 준 반마공의 구결을 떠올렸다.
그 구결에 따라 진기를 운용하자 전신을 파고들어 기혈을 들끓게 만들던 마기가 주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부족해!’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제갈산이 언급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반마공이라 할지라도 과연 천마의 마공에 통할지는 장담할 수는 없다던 그의 말이 실제로 현실이 된 것이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속도만 늦춰졌다 뿐이지 이 순간에도 내부로 흘러들어 온 마기가 위화신공의 진기를 천천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었다.
시간을 끈다 해도 이어질 결과는 하나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단악선의 눈 위로 결연한 의지가 떠올랐다.
‘이 진법 자체가 오직 천마만을 위한 것.’
단악선이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반마공의 구결에 맞추어 운용하던 위화신공을 풀어 버렸다.
그토록 떨쳐 내기 위해 애쓰던 마기를 더 이상 거부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잠식해 들어오는 마기를 거리낌 없이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과 반대로 마공 구결에 따라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그러자…….
일대를 에워싸고 있던 마기들이 빠르게 단악선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만약 신마삼존이나 다른 고수들이 보았다면 펄쩍 뛰고도 남을 광경이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감행한 도박이 제대로 성공했다는 점이었다.
이미 단악선은 반쪽짜리 가짜 마공 비급으로 인한 주화입마를 치료한 경험이 있었다.
그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마공 구결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악선이 선택한 방법은 부족한 부분을 직접 보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닌 의학 지식과 무리(武理)들을 토대로 불완전한 마공의 비어 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앞서 경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주화입마를 우려해 금지시키긴 했지만 단악선은 초악량과 한설화, 범계위의 내공 심법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심법들은 하나같이 인세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뛰어난 절학이었고, 당연히 높은 이해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단악선은 이미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상태였다.
“크윽.”
단악선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온 것도 그때였다.
단악선의 입술은 창백하다 못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얼굴에서는 연신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마기를 받아들여 마공을 연성하는 과정은 그만큼 버거운 일이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육신을 지탱하던 위화신공이 무의식의 단계에서 이질적인 기운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단악선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한계에 이르렀다.
실제로도 벌써 몇 번이나 의식의 끈을 놓을 뻔했다.
상반된 기운이 서로 충돌하며 빚어진 반발력.
이로 인해 기맥은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눈앞에서는 연신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야말로 언제 주화입마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단악선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툭.
갑자기 코피가 터졌다.
“……!”
좌정하고 있던 단악선이 움찔했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돌연 뜨거운 무언가가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나 싶더니.
주룩.
단악선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핏물이 턱 끝에 맺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안 돼!’
단악선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애써 다잡아 온 평정심이 일거에 무너져 내리자 애써 다스리던 진기가 폭주하며 거침없이 기맥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의지와 상관없이 온몸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이 순간에도 빠르게 엄습해 오는 불길한 느낌.
주화입마였다.
지금까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위기를 극복해 내지 못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억울한 기분뿐이었다.
그러다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가슴을 채웠다.
하지만 결국…….
종국에는 하나의 감정이 그 모든 것을 대신했다.
바로 슬픔이었다.
이제 모두 끝이라 생각하니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들이 한 명 한 명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말로만 듣던 주마등(走馬燈)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자 단악선은 그만 서러움에 목 놓아 울고만 싶어졌다.
‘미안해요.’
초 아저씨, 범 아저씨. 그리고 한 아주머니…….
남겨질 그들이 자신 때문에 슬퍼할 것을 잘 알기에 단악선은 슬픔에 가슴이 찢겨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고 가혹했다.
점멸하듯 멀어지는 의식을 뒤로한 채 가부좌를 틀고 있던 단악선의 신형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시간이 멈추고 지극히 고요한 찰나의 상태가 단악선을 감싸 안았다.
이 세상과 완전히 동떨어져 오직 홀로 고립된 기분.
무저갱을 헤매는 의식 사이로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 네게도 그런 때가 찾아올 것이다.”
“……!”
단악선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만큼 반가운 목소리였다.
그 순간 단악선은 낯선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이제 보니 낯설지가 않았다.
단악선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장소였던 것이다.
신마곡 내부에 있는 폭포.
그 아래 자리 잡은 연못이었다.
고요한 어둠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고, 연못 속에서 흔들리는 달빛은 따듯하게 주위를 감싸 안고 있었다.
하늘과 물이 하나로 어우러져 달이 연못에 떨어졌는지, 연못에서 달이 떠오르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빚어내는 신마곡만의 비경.
그때 또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에 막혀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린다면…….”
언제부터인가 자신 앞에 서 있는 누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그리운 한 사람을 마주한 단악선이 울컥했다.
“아버지?”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한 신의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때는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가장 무거운 것부터 내려놓아라.”
“……!”
“그렇게 비우고, 또 비우다 보면 다시금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부드럽고 온화한 음성.
단지 몇 마디 말에 불과했지만 단악선은 무겁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해 준 이야기였다.
이제껏 모르고 있던 자신의 짐을 마주한 것은 그 직후였다.
원래라면 인지하지 못했을 업의 무게가 느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누군가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 버거운 짐을 차곡차곡 쌓아 온 사람은 정작 자신이었다.
강해져야 한다는 일념.
그것이 오히려 큰 족쇄가 되어 진정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비우고 버린다……, 그리고 내려놓는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바늘 하나 꽂을 자리조차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마침내 대자유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홀가분한 기분을 느낀 것은 그 직후였다.
마음속 깊은 기저에 깔려 있던 의식의 세계.
그 안에 존재하던 강박의 굴레가 부서지며 심신을 얽매고 있던 속박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더 이상의 불안함도, 그 어떤 고통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옆에는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한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셨다.
“고마워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단악선이 천천히 눈을 떴다.
“…….”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복잡한 문자와 그림이 새겨진 전각의 기둥이었다.
드디어 내부로 진입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각 외부에는 아직도 지독한 마기를 한껏 머금은 검은 안개가 맹렬하게 울부짖으며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천마!’
전각 중앙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 단악선의 눈빛 위로 맹렬한 투지가 타올랐다.
그 기세를 느꼈던 것일까.
눈을 감고 있던 종극진도 천천히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