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1)
신마의선-431화(431/500)
신마의선 (431)
“의외로군.”
종극진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만에 하나……, 이 안에서 누군가와 마주친다면 다른 자일 거라 생각했거늘.”
종극진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저벅.
양손을 늘어트린 종극진이 단악선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 보마다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자욱한 마기가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반면 그의 눈빛은 이전과 다르게 매우 평범했다.
하지만 단악선은 그 모습이 더욱 소름 끼쳤다.
살의마저 깊이 갈무리한 종극진의 두 눈 너머로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가공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발전했나?”
자신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 내고도 담담한 단악선의 모습에 종극진이 살짝 감탄했다.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을 뿌리는 단악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위를 압도하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종극진이 오만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상대가 너무 나빴구나.”
콰앙!
폭음과 함께 단악선의 신형이 사정없이 나가떨어진 건 그 직후였다.
“왁!”
한 모금의 피를 뱉어 낸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종극진을 응시했다.
한순간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체 그가 무슨 수로 자신을 공격했는지 볼 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마지막으로 곤륜산에서 마주쳤을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비록 통렬한 일격을 허용하긴 했으나 버틸 만했다.
마지막 순간에 가슴을 향해 짓쳐들어온 경력을 본능적으로 비틀어 쳐 올리는 것으로 상당한 충격을 흘려 냈기 때문이다.
종극진 역시 의외였는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단악선이 재빨리 일어나 종극진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불쑥 입을 열었다.
“천인혈정.”
“……?”
“지금까지 모두가 천인혈정을 특별한 방법으로 제조된 비약이라 짐작했어요. 그런데 아니었군요.”
종극진의 눈 위로 흥미롭다는 감정이 담겼다.
단악선이 전각을 에워싼 짙은 흑무를 가리켰다.
“바로 이곳 신지를 에워싼 진법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었어요.”
“용케 알아챘군.”
종극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단악선이 침음했다.
신지에 설치된 진법의 목적에 대해 의심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제갈산과의 대화를 통해 이상한 부분을 여럿 찾아냈기 때문이다.
마교 본단에 설치되어 있던 진법과는 성질 자체가 달랐다.
그러다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처음부터 이곳의 진법은 외부인의 침임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내부에 가둔 마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진 마기는 중앙의 전각으로 모여든다.
이토록 단시간에 종극진이 강해진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문득 무언가에 생각이 미친 단악선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마치…….”
종극진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이어질 단악선의 말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북명신공(北冥神功)과 닮았다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상대의 원정(元精)을 갈취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마교의 저주받을 무공.
하지만 오래전에 실전되어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종극진이 다시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네 어미가 전대 천마를 죽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
“그분은 내 조부였다.”
이어진 종극진의 말에 단악선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사혈을 찔리고도 곧바로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열흘 넘게 버텼지.”
“……!”
“그를 대신할 새로운 천마가 필요하다 판단한 육마존은 결국 방법을 찾아냈다.”
“그게 뭐죠?”
“수수흡룡력(收受吸龍力)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의아해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종극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희게 웃었다.
“본래는 소뢰음사의 것이었다. 지금은 실전되어 본교만이 지니고 있는 심법이지. 그 또한 북명신공과 비슷한 흡정공(吸精功)의 일종이다.”
그제야 단악선은 소뢰음사가 마교와 뜻을 함께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걸 미끼로 소뢰음사를 끌어들인 것이군요.”
종극진이 비릿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당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육마존은 내게 그것을 익히게 했다.”
천마의 존재만큼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여의의 자리를 채울 새로운 천마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모험을 감행했다.
“나는 그것을 통해 조부의 모든 내공을 내 것으로 만들었지.”
그리고 내공을 잃은 종여의는 결국 숨이 끊어졌다.
단악선은 종극진이 나이에 비해 그토록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수수흡룡력은 불완전한 무공이었다. 무엇보다 서둘러 익힌 탓에 내가 거둔 내공은 본래 조부께서 지니고 있던 내공의 칠 할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전대 천마보다 강하다 들었어요.”
“육마존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지.”
아직 종여의에게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종극진에게 자신의 내공을 바쳤다.
“그럼에도 중원 위에 군림하는 마도천하를 이루기에는 부족했다.”
신지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원래 이곳은 천마가 완성되는 곳.
잃어버린 북명신공을 유일하게 대신할 수 있는 마교의 비전이 바로 이곳에 설치된 진법이었다.
“그럼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하지.”
종극진은 여유로웠다.
앞서 교환한 한 수.
이를 통해 단악선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충분히 가늠했기 때문이다.
종극진이 늘어트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그극.
일대를 에워싼 마기가 한 차례 꿈틀거리나 싶더니 아지랑이처럼 종극진의 양손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그가 한 걸음씩 다가설 때마다 더욱 짙어져, 종국에는 그의 신형 전체를 삼켜 버렸다.
그 안에서 차갑게 번뜩이는 종극진의 눈.
심연 깊숙한 곳에 내재된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원초적인 살의가 느껴졌다.
하나 이를 마주하고도 단악선은 조용히 웃었다.
“아니요. 이제 시작이죠.”
콰직.
단악선이 갑자기 묵룡을 휘둘러 가까이 있던 전각의 기둥 하나를 박살 내 버렸다.
종극진의 눈에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무슨 짓을!”
단악선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돌연 섬뜩한 느낌과 함께 가슴 부근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퍼석.
방금 전 단악선이 서 있던 자리가 움푹 꺼지며 그 공간 안에 존재하던 모든 것이 그대로 지워져 버렸다.
뒤늦게 사나운 경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본능적으로 그 일격을 피하긴 했으나 단악선은 가슴이 철렁했다.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아무런 사전 동작 없이 시전된 종극진의 공격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었다면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을 터.
단악선이 묵룡을 휘두른 것도 그때였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오싹한 느낌 때문이었다.
꽈앙!
묵룡을 휘둘러 내려친 공간이 일그러지며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큭!”
단악선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손목을 타고 올라오는 저릿한 충격이 내부까지 뒤흔들고 있었다.
거칠게 요동치는 묵룡을 움켜쥔 단악선의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새어 나왔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갈가리 찢긴 손바닥은 뼈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묵룡을 놓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단악선은 재차 묵룡을 휘둘렀다.
우지끈.
또 다른 기둥 하나를 박살 낸 단악선이 종극진을 향해 씨익 웃었다.
“바로 이런 짓이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종극진의 얼굴이 이내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것이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감히!”
종극진의 얼굴 위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전각을 지탱하고 있던 여섯 개의 기둥.
이 중 두 개가 부서지자 일대를 에워싸고 있던 진법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를 에워싸고 있던 마기가 급격히 전각을 에워싼 흑무로 빨려 들듯 되돌아갔다.
이를 확인한 단악선이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훔치며 씨익 웃었다.
“이제 아무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어요. 그게 당신이라 할지라도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종극진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단악선은 일찍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법 밖의 마인들의 숫자가 더 줄어들기 전에 그쪽에 합류할 심산인 것이다.
당연히 이를 순순히 허락할 수는 없었다.
이유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만은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만나게 해서는 안 돼!’
일부러 진법 일부를 파괴해 흐름을 뒤틀어 버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정확하게 종극진의 허를 찔렀다.
“이 안의 진법은 더 이상 당신 편이 아니에요.”
단악선은 진법이 스스로 마음껏 날뛰도록 자유를 허락했다.
“흥!”
차갑게 코웃음 친 종극진이 전각을 에워싼 흑무 안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한순간 그의 신형이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튕기듯 밖으로 밀려 나왔다.
종극진의 눈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천하제일이라 자부하던 그가 고작 진법 따위에 갇히다니!
눈앞에 일렁이는 흑색 안개를 노려보던 종극진이 돌연 벼락같이 일 장을 뿌렸다.
꽈릉!
웅혼하기 짝이 없는 강맹한 경력이 전면의 안개를 후려쳤다.
그러나 그 위력적인 장력은 흐릿한 안개 속에 삼켜져 종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
비로소 종극진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소용없어요. 이 안의 생문(生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곳에는 이제 우리 둘뿐이에요.”
반대로 그들은 자유를 박탈당했다.
완벽하게 외부와 단절된 위리안치(圍籬安置).
그것이 가시덤불이냐 진법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종극진은 기가 막혔다.
설마 단악선이 이처럼 무모한 동귀어진의 수법을 사용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제는 일대의 공간 자체가 비틀리고 왜곡되어 그조차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보죠.”
묵룡을 거머쥔 단악선이 이를 기울여 종극진을 향해 겨누었다.
단악선의 계획은 실로 단순했다.
상대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저 버티고 계속 버티는 것이었다.
너무 단순해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제대로만 해낸다면 이보다 상대에게 골치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단악선은 자신이 있었다.
“당신이 나를 죽이려 하면 할수록 진법은 더욱 강해질 거예요.”
신지 안의 마기를 모아 이곳에 공급하던 본래의 진법은 이제 끝을 모르는 탐식자로 바뀐 상태였다.
이 안에서 몰아치는 경력과 그로 인한 충격을 흡수해 그만큼 더욱 위력이 커지는 것이다.
그 말에 종극진이 실소했다.
그렇다면 이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했다.
빠르게 단악선을 죽이고 위력이 더 강해지기 전에 봉쇄진을 빠져나가면 그뿐인 것이다.
종극진의 살기를 읽은 단악선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걸요.”
“과연 그럴까?”
싸늘한 일갈과 함께 종극진의 손에서 붉은 섬광이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나타난 붉은 선들이 단악선의 눈앞을 어지럽게 가득 메웠다.
그것이 하나같이 예리한 강기라는 것을 깨달은 단악선은 재빨리 몸을 굴렸다.
카가가각.
단악선이 서 있던 자리에서 소름 끼치는 기음이 터져 나왔다.
종극진 역시 단악선이 피하리라는 것을 예상했는지 재차 공격을 이어 갔다.
또다시 종극진의 손에서 뇌전과 같은 핏빛 섬광이 번뜩였다.
따앙!
본능적으로 묵룡을 휘둘러 가슴을 향해 날아든 핏빛 강기를 쳐 낸 단악선은 전신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부터 어찌어찌 막아 내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지금도 의아했다.
상대의 마공이 발현되기 직전의 전조를 느끼는 것이라 막연히 짐작할 뿐이었다.
아마도 진법을 통과하기 위해 받아들였던 마공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흥!”
종극진이 차가운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번엔 방법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