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2)
신마의선-432화(432/500)
신마의선 (432)
그그극.
섬뜩한 소리와 함께 단악선은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들어 올리는 종극진의 손을 따라 짙은 흑색의 강기 벽이 전면의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동시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압력이 전신을 짓눌러 왔다.
‘천강마벽!’
단악선이 내심 바짝 긴장했다.
과거 곤륜에서 목도한 적이 있었던 천마의 절학이었다.
“어디 이것도 버텨 보아라.”
단악선을 한껏 비웃으며 종극진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콰르르르.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드는 강기 벽을 노려보며 단악선이 이를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짓이겨 버릴 것 같은 기세로 달려드는 강기 벽.
지금까지처럼 물러서는 것만으로는 답이 없었다.
실제로 피할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악선이 전력을 실어 낸 묵룡을 휘둘러 눈앞의 강기 벽을 후려쳤다.
까앙!
거친 금속성과 함께 단악선은 폐부가 으스러질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만큼 대단한 반탄력이었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묵룡은 금세라도 부러질 듯 휘청거렸고, 의지와 상관없이 단악선은 그대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런 단악선을 바라보며 종극진의 입매에 희미한 웃음이 맺혔다.
그의 신형이 사라진 것도 그때였다.
“……!”
돌연 종극진이 허깨비처럼 눈앞에 나타나자 단악선은 매우 놀랐다.
묵룡으로 반격하기엔 이미 늦었기에 단악선은 급히 금나수를 펼쳐 치명적인 강기들을 우선적으로 걷어 내려 했다.
콰앙!
세찬 경기가 주위를 휩쓸었다.
뚝.
단악선이 터져 나오는 비명을 애써 삼켰다.
팔목이 부러진 것이다.
반면 종극진은 단악선이 자신의 일격을 받아 낸 것이 뜻밖인 듯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천하가 놀랄 일이군. 약관도 지나지 않은 어린놈이 내 일격을 받아 내다니.”
종극진의 눈 위로 자욱한 살기가 일렁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네가 죽을 거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단악선은 여전히 고통이 밀려오는 손목을 뒤로 감추며 종극진을 노려봤다.
아직도 그가 시전한 천강마벽은 여전히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고, 유일하다 할 수 있는 퇴로는 종극진이 차지한 상태.
그러나 단악선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당신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말했을 텐데요.”
“……?”
“당신이 나를 죽이려 하면 할수록 진법은 더욱 강해질 거라고요.”
“뭐?”
그 순간.
드드드드.
단악선과 종극진이 딛고 서 있던 바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희뿌연 검은 안개가 두 사람을 집어삼켜 버렸다.
* * *
“으하하! 그래! 이거지!”
범계위의 쩌렁한 웃음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뻐억!
그를 향해 달려들던 마인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쉴 새 없이 대초자곤을 휘둘러 닥치는 대로 마인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느라 여념이 없던 그때.
갑자기 등줄기가 싸해졌다.
“……?”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돌린 범계위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한 줄기 묵빛 섬광이 핏빛 운무를 관통하나 싶더니, 그 뻥 뚫린 공간 사이를 내달리는 단악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전각을 에워싼 진법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초 형! 마녀!”
범계위의 당혹성에 멀리서 마인들을 쓰러트리고 있던 초악량과 한설화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왜 이리 호들갑이냐?”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초악량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걸어 나온 악귀 같았다.
그리고 상황은 한설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벽증에 가까운 그녀의 깔끔한 성격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마인을 베어 넘겼기 때문이다.
“또 헛소리를 지껄일 거라면…….”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던 한설화가 멈칫했다.
범계위가 손을 들어 단악선이 사라진 진법 쪽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단 의원이 혼자 들어가 버렸어!”
“뭐?”
“……!”
초악량과 한설화가 대경실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안에는 필시 천마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그들은 중앙의 진법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그들은 지닌바 모든 신위를 일거에 쏟아 냈다.
아무리 마인들이 필사적으로 달려들어도 그들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길을 뚫어 내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들의 뒤로 자욱한 피 보라와 고깃덩이로 다져진 팔다리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콰직! 콰드득!
거대한 공성추처럼 눈앞의 상대를 모조리 짓이기며 돌진하는 신마삼존의 신위는 아군조차 기함할 정도였다.
심지어 그 흉포한 기세에 이지가 남아 있지 않은 마인들조차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비켜서곤 했다.
이윽고 세 사람은 목적했던 전각 앞에 이르렀다.
전각을 에워싸고 있던 진법이 변화를 일으킨 것도 그때였다.
“어? 이거 왜 이래?”
범계위의 당혹성과 동시에 초악량과 한설화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처음 단악선이 그 안으로 사라졌을 때만 하더라도 짙은 흑무가 꿈틀거리며 전각을 휘도는 형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흑무가 한데 뒤엉켜 검은 구체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슬쩍 손을 뻗어 보니 섬뜩한 마기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이를 말없이 응시하던 초악량의 눈에서 싸늘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쿠웅.
초악량이 힘껏 발을 굴렀다.
그 힘이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순간, 나선을 그리는 동작을 따라 다리와 허리를 거쳐 회전력이 더해진 경력이 눈앞의 흑색 벽을 후려쳤다.
퍽.
“……!”
초악량의 눈매가 꿈틀했다.
전력을 다한 전사경(纏絲勁)이 솜뭉치를 두드린 것처럼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이거 이상한 거 맞지?”
범계위의 호들갑에 초악량이 침음성을 흘렸다.
츠츠츠.
끔찍한 한기가 일대를 집어삼킨 것도 그때였다.
한설화였다.
쩌저적.
눈앞의 흑색 운무를 뒤덮은 새하얀 서리를 향해 한설화가 손을 내리그었다.
쨍!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얼어 있던 흑색 장벽이 길게 갈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꿈틀대는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비어 있는 공간을 메워 버렸다.
이후로도 세 사람은 연이어 다른 시도를 감행했다.
하지만 경력과 빛, 심지어 소리마저도 삼켜 버리는 눈앞의 흑색 안개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 사람의 표정은 점차 심각해졌다.
하필 단악선이 그 안으로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기를 잠시.
“에잇! 답답해!”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범계위가 눈앞의 흑색 안개를 향해 몸을 던졌다.
“저 멍청이가!”
깜짝 놀란 초악량이 자신도 서둘러 뛰어들려던 찰나.
돌연 안개를 뚫고 범계위가 튀어 나왔다.
“너?”
초악량의 당혹성에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초 형이랑 마녀는 언제 들어온 거유?”
어리둥절해하던 범계위가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곤 상황을 깨달았다.
“어? 여기 진법 안이 아니라 밖이잖아?”
“네가 그 안에 몸을 던진 직후 바로 다시 나타났다.”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당황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그럴 리가? 분명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는데?”
“으음…….”
침음성을 흘리던 초악량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저 진법 자체가 인지 감각을 왜곡시키는 것 같다.”
“뭐? 그게 뭔 소리요?”
“진법 안에 들어서는 순간 평소의 모든 방향 감각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이다.”
범계위가 코웃음을 쳤다.
“초 형, 나 범계위요. 시답지 않은 잔챙이들과는 다르다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가 다시 한 번 진법 안으로 신형을 날렸다.
모르면 몰랐을까, 이미 상황을 파악한 이상 정신만 바짝 차리면 그만인 것이다.
“어?”
그러나 이번에도 제 발로 진법을 걸어 나와 초악량과 마주한 범계위가 당혹성을 흘렸다.
이후로도 몇 번이나 진법 안으로 뛰어들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만 같았다.
아무리 막무가내인 범계위였지만 상황이 이리되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절세 무공을 지닌 고수라도 저 안에서는 저자 뒷골목의 파락호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저 안에 단악선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짐작할 순 없었지만 저 안에서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초악량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이상해진 것은 진법만이 아닌 것 같군.”
초악량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범계위와 한설화는 그제야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진법도 진법이었지만 마인들의 행동 역시 달라져 있었다.
이성을 잃고 싸우던 와중에도 진법이 설치된 전각의 접근만큼은 필사적으로 몸을 던져 막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고삐가 풀린 것처럼 사방에 흩어져 닥치는 대로 중원의 정예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로 인한 아군의 피해는 실로 막대했다.
천하오절을 비롯한 장문인급의 고수들은 비교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다른 곳은 상황이 달랐다.
그야말로 시산혈해.
한 폭의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끔찍한 광경이 사방에 펼쳐졌다.
그러나 초악량을 비롯한 신마삼존은 당장 다른 이들을 구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은 진법 안의 단악선을 가장 우선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심을 거듭하던 초악량이 한 가지 결론을 냈다.
“어쩌면 위력이 부족한 걸지도.”
초악량과 시선을 교환한 범계위와 한설화가 그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신지에 들어서기 위해 외부 진법을 와해시켰던 방법.
그때처럼 자신들의 전력을 일거에 쏟아붓는다면?
어쩌면 눈앞의 이상한 진법이 파훼될 지도 몰랐다.
세 사람이 동시에 진기를 끌어 올려 기파를 개방하자 무시무시한 용권풍이 주위를 집어삼켰다.
그런데 그 순간.
“안 됩니다!”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색이 된 채 달려오는 제갈산의 모습이 보였다.
퍽!
초악량이 신형을 날려 제갈산을 향해 달려드는 마인 하나를 걷어찼다.
가슴이 으스러진 마인은 폭포수 같은 핏물을 뿜어내며 나가떨어졌다.
그대로 제갈산을 낚아채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초악량이 다그치듯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가쁜 숨을 몰아쉬던 제갈산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절대 저 진법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이어진 제갈산의 말에 신마삼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럴수록 단 의원님의 생환은 어려워질 테니까요.”
* * *
“컥!”
단악선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검은 안개.
그것이 유형화된 마기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온몸의 기혈들이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들끓고 있었다.
마치 시뻘건 용암이 온몸의 혈관을 내달리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녹슬고 무딘 칼이 온몸의 신경을 썰어 가닥가닥 잘라 내는 느낌이었다.
뒤이어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며 제멋대로 사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사지 육신을 짓이겨 버릴 것 같은 가공할 압력이 들이닥친 것은 그 직후였다.
사정없이 온몸을 헤집는 끔찍한 고통!
“……!”
단악선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무수한 위기를 넘겨 왔지만 이처럼 지독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살아서 지옥을 마주한 것만 같은 당장의 현실 앞에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순간.
―크아악!
어디선가 희미한 비명이 들려왔다.
‘천마!’
그것이 종극진의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은 단악선이 으스러져라 입술을 깨물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 비단 자신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주르륵.
단악선의 턱을 타고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아릿한 피 맛으로 흐려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들어 낼 수 있었다.
단악선의 눈에서 섬전 같은 안광이 일렁인 것도 그때였다.
‘그런가.’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자신들에게 벌어진 현상.
비로소 그 이유를 짚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