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3)
신마의선-433화(433/500)
신마의선 (433)
진법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비단 마기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처음 진법에 들어섰던 그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마기에 대항하기 위해 단악선은 반마공 형태의 위화신공을 운용했다.
당시 뒤섞인 위화신공의 기운이 종극진에게도 흘러들어 간 것이다.
자신이 마기에 고통받는 것처럼 상대 역시 마찬가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단악선은 묵룡을 한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종극진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종극진과 다시 조우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단악선을 발견한 종극진이 소름 끼치는 안광을 흘리며 마주 걸어왔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격노해 부르짖는 종극진을 향해 단악선은 묵룡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나 상대는 천마.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차례 신형이 흔들리나 싶던 순간.
종극진은 이미 단악선의 지척에 이르러 있었다.
“갈가리 찢어 죽여 주마!”
콰아아아!
종극진이 손을 휘두르자 단악선은 일순 자욱한 핏빛 안개에 에워싸인 것 같은 광경을 마주했다.
실처럼 가늘게 뽑아 낸 강기가 겹겹이 중첩되며 만들어 낸 착시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파괴력만큼은 허상이 아니었다.
이를 알면서도 단악선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종극진과 거리를 좁히며 묵룡을 휘둘러 맞받아쳤다.
“소용없……!”
부질없는 반항이라 치부하던 종극진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힌 것도 그때였다.
찌이익.
맥없이 찢겨 나가는 강기를 목도한 종극진의 눈 위에 처음으로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난 건 그 직후였다.
광폭한 기세로 작렬하는 묵빛 섬광이 번쩍이나 싶더니, 그 빛을 삼킨 묵 빛 호선이 허공을 그었다.
소름 끼치도록 선명한 궤적과 종극진의 신형이 겹쳐진 것은 찰나였다.
그리고 그 묵빛 호선의 끝에서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콰직.
“크악!”
종극진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황급히 상체를 틀어 치명상을 면하긴 했지만 빗장뼈를 부수며 파고든 묵룡은 막아 내지 못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 순간 종극진은 몹시도 혼란스러웠다.
단악선이 휘두른 묵룡.
그 끝에서 뿜어져 나온 핏빛 강기는 분명 마공의 기운이었다.
단악선이 눈을 들어 종극진과 시선을 마주한 것도 그때였다.
“……!”
종극진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맑게 가라앉은 찻물처럼 깊은 정광이 자리 잡고 있던 눈동자.
하나 지금은 거칠게 요동치는 전율스러운 마기가 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너머에는 그조차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끔찍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단악선의 상태를 눈치챈 종극진이 당혹감을 드러냈다.
“주화입마?”
“…….”
단악선은 대답 대신 손등으로 입가에 흘러내린 핏물을 훔쳐 냈다.
종극진의 말대로였다.
남궁호와 노단양.
그리고 신지 안의 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화입마 상태에서는 평소 지닌 무공의 위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마기를 거부할 수 없다 판단한 단악선은 이를 받아들였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받아들인 마기를 폭주시켜 기꺼이 스스로 주화입마에 들어선 것이다.
오랫동안 주화입마를 치료해 온 단악선이었다.
따라서 그 선택에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장은 개의치 않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
일단 주화입마에 들어섰으니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터.
그 안에 어떻게든 천마를 쓰러트려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은 다 하는 것.
그런 단악선의 기세에 멈칫한 종극진은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비로소 단악선의 주화입마가 단순한 우연이 아닌, 목적을 가지고 의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종극진의 눈매가 꿈틀했다.
“가당치도 않은 짓을!”
종극진이 단악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그의 신형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허공에는 온통 희끗한 그림자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거침없이 그 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카카카칵!
연이어 충돌하는 강기와 묵빛 섬광.
충격파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일대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이백여 초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종극진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종극진이 내심 욕설을 씹어 삼켰다.
그야말로 그로서는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처음 손을 섞었을 때만 해도 분명 놈은 십초지적도 되지 않았다.
한데 지금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단악선의 공격은 눈에 띄게 정교해지고 있었고, 반면 자신은 어느새 열세에 처해 있었다.
이제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눈앞의 어린 놈에게 패배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천하의 그라 해도 초조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종극진은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다.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천마였다.
단 한순간이라도 패배를 떠올렸다는 사실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뒤이어 밀려든 수치심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종극진이 극성으로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그그.
그를 에워싼 주변의 대기가 일그러지며 거대한 흑색 강기 벽이 그 압도적인 신위를 드러냈다.
종극진이 내민 손을 따라 천강마벽이 단악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천강마벽이 지척에 이르렀음에도 단악선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눈빛을 뿌리며 이번에도 종극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종극진은 천강마벽 너머로 번뜩이는 기광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눈빛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광기와 맞닿아 있는 지독한 살의.
이를 마주한 종극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꽈앙!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가공할 경력이 일대에 휘몰아쳤다.
종극진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진 건 그 직후였다.
어느새 거리를 좁혀 온 단악선의 서늘한 눈빛을 지척에서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
두 눈을 부릅뜬 종극진은 경호성을 터트릴 여유도 없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단악선은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번쩍.
섬뜩한 묵빛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종극진은 한순간 눈앞의 공간이 갈라지는 착각이 들었다.
뒤이어 무시무시한 경력이 그 빈 공간을 채웠다.
우두둑.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종극진이 휘청이며 물러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쿨럭!”
입을 열기 무섭게 한 사발이 넘는 피를 토한 종극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악선을 노려봤다.
그에게 있어 단악선의 존재는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복병…….
아니, 재앙이었다.
가슴 부근에서 타고 올라오는 끔찍한 고통에 종극진이 고개를 숙였다.
가슴뼈와 폐부를 차례대로 으스러트린 뒤 등을 뚫고 나온 시커먼 봉이 눈에 들어왔다.
턱.
종극진이 떨리는 손으로 묵룡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결국 이를 뽑아내지는 못했다.
한바탕 부르르 신형을 떨던 종극진이 이내 폭포수 같은 피를 뿜어내며 천천히 무너졌다.
그러나 정작 종극진을 쓰러트린 단악선은 환호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았다.
그저 거친 숨을 헐떡이며 오연한 눈빛을 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르릉.
주변을 에워싼 기이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 단악선이 멈칫했다.
진법 안의 공간을 가득 메운 흑색 운무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안개처럼 꿈틀대던 마기가 돌연 단악선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곤 무서운 기세로 단악선의 온몸을 파고들었다.
“아악!”
온몸이 그대로 터져 나갈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 단악선이 비명을 터트렸다.
이건 단악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나 이 순간에도 거대한 둑이 무너진 것처럼 엄청난 양의 마기가 단악선을 향해 일거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크큭.”
어디선가 한 줄기 조소가 날아든 것도 그때였다.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에서 모로 누워 연신 핏물을 게워 내는 종극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른 웃음을 풀썩이는 그의 몰골은 실로 엉망이었다.
엉망으로 헝클어져 산발한 머리카락은 피로 젖어 뺨에 달라붙어 있었고, 처음의 위엄 넘치던 눈빛과 존재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우스운지 연신 키득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모래나 바위나 물에 가라앉는 건 똑같지.”
영문 모를 말에 단악선이 핏발 선 눈으로 종극진을 노려봤다.
종극진이 숨을 헐떡이며 다시 말했다.
“지금의 너를 봐라.”
“……?”
이어진 종극진의 말에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와 뭐가 다르지?”
그때였다.
“많이 다르지.”
난데없이 들려온 음성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범계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넌 죽을 테고, 우리 단 의원은 계속 살 테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의 손에 들려 있던 대초자곤이 맹렬하게 허공을 찢었다.
콰직.
“그러니 쓸데없는 관심 끄고 그만 갈 길 가라고.”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종극진의 머리를 짓이겨 버린 범계위가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친 범계위가 씩 웃었다.
방금 사람 머리통을 부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한 미소였다.
“괜찮아, 단 의원?”
“…….”
단악선은 비로소 눈앞의 안개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지 곳곳의 살풍경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자신이 종극진과 싸우는 동안 밖의 싸움도 마무리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마인들은 전무(全無).
그러나 아군의 생존자 역시 크게 줄어 있었다.
그만큼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다.
“단 의원?”
범계위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단악선에게 말을 건넸다.
여전히 말없이 서 있는 단악선의 모습이 그만큼 불안하고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느새 범계위 곁에 내려선 초악량과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그들의 눈빛에도 하나같이 우려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큼 단악선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기세와 존재감.
무엇보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마기는 그들조차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아미타불!”
나직한 불호가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신마삼존의 시야에 선장을 거머쥔 채 침중한 눈빛을 흘리는 법료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런데 법료뿐만이 아니었다.
화산의 진명진인을 비롯한 연옥상, 그리고 강위룡까지.
초악량을 제외한 천하오절 전원이 복잡한 눈빛을 흘리며 단악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악선에게서 느껴지는 마기가 그만큼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종극진의 시신과 단악선을 번갈아 바라보던 법료가 무거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단 시주께서는 지금 본인의 상태를 인지하고 계십니까?”
“…….”
단악선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대신 범계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어이, 땡중. 꿈도 꾸지 마.”
살기를 담아 나직하게 으르렁댄 범계위가 단악선 앞을 막아섰다.
“단 시주를 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찌 단 시주를 해하겠습니까? 다만…….”
법료가 진심을 채 말하기도 전이었다.
“컥!”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단악선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단 의원!”
“시주!”
주변에서 외치는 소리가 단악선의 귀에는 아득하게만 들렸다.
그러다 바닥에 널브러진 칼 한 자루가 보였다.
검신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단악선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더없이 창백한 안색과 그래서 더욱 선명히 대비되는 붉은 눈동자.
그 안에서 꿈틀대며 쏟아지는 자욱한 마기는 천마조차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괜찮아. 내가 할 일은 다 했어.’
다행이라면 자신이 마기에 잠식되어 날뛸 일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다들 고마워요. 직접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마지막 인사조차 뱉을 기력이 없었다.
천천히 감기는 눈.
힘 빠진 몸이 무너지듯 쓰러지려 할 때였다.
툭.
맹렬한 열기가 명문혈을 타고 들어왔다.
곧이어 얼음장 같은 한기와 무겁고 웅혼한 기운이 동시에 쓰러지는 몸을 지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