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4)
신마의선-434화(434/500)
신마의선 (434)
점차 멀어지는 의식 너머로 한 줄기 서늘한 음성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천마는 죽었고, 마교의 발호 역시 봉쇄되었다. 그러니 이제 모두 돌아가라.”
“당신들은?”
단악선은 질문을 던진 사람이 이화궁주 연옥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한설화가 대답했다.
“우리는 이곳에 남는다.”
그 뒤를 이어 범계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의원에 대해서는 관심 두지 않는 게 좋아.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만에 하나라도 허튼 생각을 품고 있다면…….”
범계위가 진심을 담아 으르렁댔다.
“우리를 먼저 상대해야 할 거야.”
대놓고 중원 무림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해 버리는 범계위였다.
‘고마워요.’
자신을 위해 늘 한결같은 세 사람.
그래서 단악선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 이 순간이 외롭지 않았다.
한편, 중원의 명숙들은 그들 나름대로 현재의 상황이 곤혹스러웠다.
모르면 몰랐을까, 이미 알게 된 이상 이토록 기경스러운 마기를 지닌 단악선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신마삼존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서 마인들과의 싸움을 통해 신마삼존의 진정한 무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그들이었다.
저들의 성격상 단악선을 위해서라면 중원 무림과의 전쟁도 불사할 터.
“산 넘어 산이라더니…….”
누군가가 흘린 침음성에 중원 무림인들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나니 그보다 더 험난한 상황과 맞닥뜨린 셈이다.
그들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순순히 돌아설 수도, 그렇다고 어느 누구 하나 나서 선뜻 입을 열지도 못하는 이유였다.
“그만하세요.”
“……!”
초악량과 범계위, 그리고 한설화가 깜짝 놀라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법을 벗어난 이후 단악선이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단악선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런 식으로 진기를 불어넣어 버티는 방식은 머지않아 한계에 부딪힐 거예요.”
아무리 그들이 대단한 고수라 해도 결국에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
결국에는 진기가 고갈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아무리 물을 채워 넣는다 한들 결국 깨진 독을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저는 의원이니 누구보다 제 상태를 잘 알아요.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마기의 영향 때문일까.
이 순간에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살심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운이 좋아 숨이 붙어 있게 된다 해도 이 상태로는 중원 무림에 또 다른 재앙이 될 뿐이었다.
통제할 수도, 다스릴 수도 없는 지독한 살의.
그 앞에 이성과 의지는 한없이 무력하기만 했다.
이대로 의식의 끈을 놓고 미쳐 날뛰는 마기가 육신을 지배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나마 아직까지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실낱같은 이성을 붙들고 있었지만, 당장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의지와 상관없는 거대한 살의가 지독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무엇보다…….”
단악선이 서글프게 웃었다.
“중원을 구하기 위해 나선 제가 중원의 재앙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그 처연한 미소가 모두의 가슴에 아프게 파고들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요, 우리.”
그 말을 끝으로 주위에 더없이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러기를 잠시.
“……?”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갑자기 온몸에 쏟아져 들어오는 진기가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아저씨?”
범계위였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초악량과 한설화 역시 남은 힘을 쥐어짜 내듯 단악선을 향해 진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단악선은 가슴이 울컥했다.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건 저들의 노력은 눈물겨웠지만 그래도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저벅.
한 사람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법료였다.
“너 이 땡중 놈?”
범계위가 흉악한 눈빛을 드러내며 이를 갈았다.
“말했을 텐데? 상관하지 말고 꺼지라고.”
그러나 법료는 범계위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다가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초악량과 한설화의 눈에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악선에게서 손을 뗄 수도 없는 상황.
법료가 근엄한 눈빛으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아미타불. 그렇다고 작금의 사태를 빈승이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뜻밖의 일이 벌어진 건 그 직후였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지니고 있던 것입니다.”
가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온 법료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소림을 상징하는 무보(武寶).
바로 대환단이었다.
그것도 무려 세 개나 들려 있었다.
“아마 이것도 부처님께서 미리 안배하신 큰 뜻이었겠지요.”
빙그레 미소 짓는 법료의 온화한 눈빛을 마주한 범계위가 뒤늦게 멋쩍은 헛기침을 토했다.
반면 초악량은 나직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눈앞이 아득하던 참이었다.
이대로는 한 시진 안에 진기가 고갈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나 대환단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로써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된 셈이다.
“고맙소, 나한당주.”
초악량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소림의 도움을 내 잊지 않으리다.”
법료가 빙긋 웃었다.
“이 모두가 지금까지 쌓아 온 단 시주의 공덕이지요.”
그것이 신호가 되었던 것일까.
신지를 에워싼 분위기가 급변했다.
“흥.”
차가운 코웃음과 함께 연옥상이 뒤쪽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그녀를 수행하던 이화궁의 무인 한 명이 작은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들고 다가와 초악량 앞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옥병이 들어 있었다.
“공청석유다.”
깜짝 놀라는 중인들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옥상이 말을 이어 갔다.
“오래전에 남궁세가에 일부를 팔아 버린 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것이 본 궁이 지닌 공청석유 전부다.”
연옥상이 지그시 초악량을 쏘아봤다.
지금의 이화궁을 존재하게 만든 지고의 영약.
이 귀한 가치를 지닌 영약이 눈엣가시 같은 초악량의 목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단악선을 죽게 놔둘 수는 없는 일.
“고맙…….”
마지못해 건네는 초악량의 말을 연옥상이 잘랐다.
“착각하지 마. 당신에게 그딴 공치사를 듣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니까.”
그 말과 함께 연옥상이 신형을 돌렸다.
그리고 이화궁의 여인들을 이끌고 그대로 신지를 떠났다.
뒤이어 지금까지 머뭇거리며 선뜻 나서지 못하던 구대문파의 명숙들도 앞다투어 움직였다.
평소 단악선과 유대가 깊던 아미파와 형산파를 시작으로 저마다 지니고 있던 영단과 영약들을 아낌없이 꺼내 놓기 시작한 것이다.
자소단과 태청신단.
거기에 중원의 온갖 내로라하는 영단과 영약이 금세 수북하게 쌓였다.
서로 시선을 마주한 신마삼존의 눈빛에 희망이 어리기 시작했다.
‘깨진 독에 물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렇다면 새는 물보다 더 많은 양을 쏟아부으면 그만이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웃기는 헛소리다.
인생은 무조건 다다익선(多多益善).
그것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언젠가 단악선도 그러지 않았던가.
영약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보이느냐?”
초악량이 단악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중원 무림은 너를 그리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구나.”
이어진 초악량의 말에 결국 단악선의 눈물샘이 터지고야 말했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우리 함께 조금만 더 힘내 보자꾸나.”
“그래, 단 의원. 우리만 믿어.”
“우리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것이다.”
범계위와 한설화도 단악선을 응원했다.
“……고마워요.”
지금 이 순간, 단악선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벅찬 감정도 오래가지 못했다.
“큭!”
돌연 단악선이 가슴을 움켜쥐며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다.
신마삼존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매우 불길한 징조였다.
거친 호흡과 불안정한 눈동자.
순식간에 붉어졌다 다시금 파래지는 것을 반복하는 단악선의 낯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빠르게 요동치는 맥박을 타고 단악선 내부에서 용틀임한 마기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
아슬아슬하게 다스리던 마기가 통제를 잃고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악선이 남은 힘을 쥐어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저는 이대로 심마(心魔)에 빠질지도 몰라요.”
“…….”
그 말에 신마삼존의 눈빛이 흔들렸다.
서로의 마음만큼이나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길 잠시.
가장 먼저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마라.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널 떠나지 않는다.”
단악선이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세 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약간의 시간을 두고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세 사람의 눈빛이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혹시라도 제가 마기에 사로잡혀 미쳐 날뛴다면…… 그때는 제게 안식을 허락해 주세요.”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잔인한 부탁이라는 걸 단악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피에 굶주린 악귀.
그것도 천마를 넘어서는 마기를 지닌 괴물이 중원을 활보하는 것만큼은 원치 않았다.
그리고 이는 신마삼존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원을 하나로 모아 마교의 발호를 꺾은 일대의 영웅을 무림인의 지탄을 받는 마인으로 오욕을 뒤집어쓰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걱정 말래도? 우리를……, 그리고 단 의원 자신을 믿어.”
범계위가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늘 그래 왔듯 이번에도 우리는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갈 테니까.”
“그 말대로다.”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리했듯이, 우리도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단악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쳐 날뛰는 마기를 당장은 어떻게든 다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깊은 무아지경(無我之境) 상태에 이른 의식은 이내 끝없는 삼매(三昧)의 바다를 헤매기 시작했다.
그런 단악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도 깊게 가라앉았다.
그들 모두가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다.
다른 의미의 진정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시간이 이처럼 한없이 길어질지는.
수없이 많은 계절이 지나도록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고, 기약 없이 싸움을 계속했다.
그렇게 겹겹이 쌓아 올린 시간만 무려 칠 년.
단악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 * *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오늘도 어김없이 빨래터를 찾은 아낙은 먼저 온 다른 여인들과 눈인사를 나누곤 가져온 빨래를 한쪽에 우르르 쏟아 놓았다.
그렇게 한참 주위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빨래를 이어 가길 잠시.
“꺄악!”
맞은편에서 들려온 샛된 비명에 여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비명이 울려 퍼진 곳으로 향했다.
저 멀리,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시신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이곳은 장강의 수많은 지류 중 하나.
그런 만큼 이렇게 이따금 익사한 시체가 떠내려오곤 했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만도 아니었던 것이다.
한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여인들의 안색이 이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떠내려오는 시신은 비단 한 구만이 아니었다.
무려 이십여 구가 넘는 시신이 물살에 휩쓸려 어지럽게 떠내려오고 있었다.
그중에는 지저분한 넝마를 걸친 거지도 있었고, 제법 도포를 잘 갖춰 입은 도사도 있었다.
“대체 무슨 사달이 났기에…….”
그런데 그때.
아낙들 가운데 그나마 눈썰미 좋은 누군가가 경악해 소리쳤다.
“저거 화산파 도포 아니유?”
소매 언저리에 수놓아져 있는 매화 문양.
화산파를 상징하는 홍매화였다.
그리고 이는 화산파 내에서도 오직 매화검수들만이 지닐 수 있는 상징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