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6)
신마의선-436화(436/500)
신마의선 (436)
“이 처죽일 늙은이가!”
사종악의 입에서 저속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제까지 보여 준 고수의 신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다.
그만큼 눈앞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몰아치는 섬뜩한 예기 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한 송이 매화.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검화(劍華)는 몇 번인가 보았던 저들의 절초, 매인설한(梅忍雪寒)이 분명했다.
겨우내 얼어 있던 가지가 오랜 인내 끝에 마침내 꽃을 피운다면 그 향은 그야말로 만 리를 갈 터.
이를 순순히 허락할 사종악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사종악이 새카만 낚싯대를 맹렬하게 휘둘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소름 끼치는 검기의 그물이 진명진인을 빼곡하게, 그리고 겹겹이 에워쌌다.
서로 간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자리 잡았다.
짜자자작!
노을빛 서기와 은빛 사검이 뒤얽히며 새파란 불꽃이 피어오르길 잠시.
숨죽여 이를 지켜보던 화산 문하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물 위에서 휘몰아치는 서릿발 같은 검기.
그 태풍 속에서도 결국 한 송이 홍매화를 피워 올린 것이다.
진명진인과 사종악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 것도 그때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꽈앙!
무기와 무기가 부딪쳤음에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이 딛고 있던 선박이 송두리째 박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동시에 솟구쳐 오른 물기둥이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배의 잔해를 집어삼켰다.
비안개처럼 일대에 휘몰아치는 자욱한 물보라.
그 너머로 날카로운 소성과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이내 긴 침묵이 이어졌다.
“…….”
화산 문하도, 수로연맹의 수적들도 숨죽인 채 결과를 기다렸다.
가공할 위력으로 서로를 몰아친 생사결.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그 결과의 향방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만큼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대결이었다.
잠시 후.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던 뿌연 물보라가 가라앉자 두 사람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
양 진영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수로연맹 수적들의 얼굴에는 짙은 절망이.
반대로 화산 문하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내걸린 것이다.
침몰하는 선박의 선수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종악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휘청이며 연신 검은 핏물을 게워 내고 있었다.
반면 진명진인은 사종악에게 검을 겨눈 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일대를 뒤흔드는 노을빛 서기는 그윽한 매화 향기를 품고 있었다.
“암향부동(暗香浮動)…….”
화산 문하 중 누군가가 탄성을 터트렸다.
그것이 매화검법의 마지막 초식,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이 만들어 낸 신기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경천동지의 대결은 결국 진명진인의 승리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때였다.
“쉬X, 하마터면 그대로 뒈지는 줄 알았네.”
걸걸한 욕설이 사종악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앞섶을 온통 검붉은 핏물로 적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종악은 히죽 웃고 있었다.
“어때? 죽음을 코앞에 둔 소감은?”
“…….”
“어이, 내가 지금 묻잖아. 천하오절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냐고.”
뜻 모를 사종악의 말과 이에 침묵하는 진명진인.
화산 문하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허공에 드리운 채 점차 뚜렷해지는 붉은 실선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그것이 사검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화산 문하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진명진인의 어깨에 깊숙이 박혀 있는 낚싯바늘.
그 끝에 이어진 가느다란 사검이 검을 쥐고 있는 진명진인의 손을 휘감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화산 문하들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화산의 모든 절학을 쏟아 내고도 결국 패배한 사람은 진명진인이었던 것이다.
“장문인을 구해!”
화산 문하들이 신형을 뽑아 올리자, 기다렸단 듯이 수로연맹의 수적들이 쇠뇌로 대응했다.
피피피핑!
“큭!”
“아악!”
허공에서 고꾸라지는 제자들을 목도한 진명진인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만큼 살아온 자신도 아직까지 속단하기 어려운 곳이 강호라는 괴물이었다.
강가의 모래알처럼 기인이사가 널리고,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고수들이 이처럼 즐비한 것이다.
투두둑.
사검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의 양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문 진명진인이 남은 진기를 끌어 올려 모조리 검에 쏟아부었다.
우우웅.
웅혼한 검명을 토한 그의 검 끝에서 자색 강기가 불쑥 솟구쳤다.
“어림없지.”
사종악의 손에 들려 있던 오죽간이 허공을 잡아채 찢었다.
써컥!
사검이 긋고 지나간 공간 위로 잘려 나간 손가락이 어지럽게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
화산 문하들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장문인!”
하나 비명과도 같은 그 처절한 부르짖음은 진명진인에게 닿지 않았다.
살기를 짙게 베어 문 낚싯줄이 그대로 목을 긋고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허공에 떠오른 진명진인의 목.
이를 목도한 화산 문하들은 순간 반격할 생각마저 잊고 아연실색했다.
목을 잃은 진명진인의 시신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떨어져 차가운 강물에 삼켜졌다.
첨벙.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화산 문하들이 뒤늦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에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하오절의 일인이자, 당대 천하제일검인 진명진인이 고작 수적 두목 따위에게 패배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어느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반면 사종악은 여전히 목을 타고 올라오는 달큼한 핏물을 애써 삼키며 나직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늙은이…….”
한 수만 삐끗했어도 저 강물에 삼켜질 사람은 상대가 아닌 자신이었을 터.
그만큼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상대였고, 흉험하기 짝이 없는 싸움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는 사종악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 무엇도 우리의 복수를 막을 수 없다.”
그렇게 운을 뗀 사종악이 섬뜩한 웃음을 흘렸다.
“저들을 하백(河伯)께 제물로 바쳐 우리의 의지를 천명하노니!”
가공할 살기가 망량탄 일대를 뒤덮었다.
마주한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과 기파였다.
“나와 뜻을 함께하는 자! 적의 피로 이 자리에서 맹세하라!”
사종악의 외침에 화답하듯 쩌렁한 수적들의 환호가 사위를 가득 채웠다.
기세가 오른 수적들이 화산 문하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진명진인의 죽음에 망연자실해 있던 화산 문하들은 저들의 끝없는 파상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시신들.
적벽을 상징하는 매화처럼 붉디붉은 선혈이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 * *
신강의 모처에 위치한 분지.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일대는 새카만 어둠과 적막에 휩싸였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과 그 아래 오롯이 불을 밝힌 작은 화톳불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며 밀려드는 어둠을 조용히 걷어 낼 뿐이었다.
나뭇가지를 꺾어 모닥불 안에 던져 넣던 한 사람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연못가 봄풀의 꿈이 채 깨기도 전에 계단 앞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최근 들어 유독 서늘해진 밤공기를 피부로 느끼며 유독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는 초악량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읊조린 오래된 시구에서도 그간의 소회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한편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설화는 말없이 눈을 들어 밤하늘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더없이 고즈넉한 가을밤의 풍광에 녹아들어 있던 그때.
“……!”
한설화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황량한 분지 중앙에 자리 잡은 전각.
십 년이 넘는 풍상에 시달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외관을 지닌 그 안에서 걸어 나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초악량과 한설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천마를 쓰러트리고, 자신들이 이곳 신지에서 마인들을 쓸어 낸 이후 더 이상 마교도 예전 같지 않았다.
두 번 다시 발호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무려 강산이 한 번 바뀔 시간 동안 이곳을 지켜 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단악선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기다렸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그리고 단악선은 그런 자신들의 기대에 확실하게 부응했다.
눈빛 너머 일렁이는 패도적인 기운마저 깊이 갈무리한 안정적인 기파.
이를 확인한 초악량과 한설화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심 우려했던 바가 단순한 기우로 끝나 다행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동안 이곳을 지킨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에 안도할 수 있었다.
“초 아저씨. 한 아주머니.”
천천히 다가온 단악선이 초악량과 한설화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이러다 조만간 범가 녀석도 따라잡겠구나.”
한동안 보지 못하는 사이 키가 더 자란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웃음을 건넸다.
이미 단악선은 몇 해 전에 초악량의 키를 넘어서 있었다.
큰 키 때문에 다소 말라 보인다는 점이 유일한 흠이었지만, 그래도 단악선만이 지닌 특유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렸다.
십 년이라는 세월은 단악선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처럼 가지런한 얼굴을 찡그리며 보기 좋게 웃던 앳된 소년의 모습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햇살을 떠올리게 하던 그 온화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그 대신 날카로운 시선과 압도적인 존재감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는 사람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고, 눈빛과 표정에는 필설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위엄이 자리 잡았다.
“고생했다.”
초악량의 말에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덕분이에요.”
뒤늦게 생각난 듯 단악선이 주위를 둘러봤다.
“범 아저씨는 해남도에 가셨나요?”
초악량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쯤 애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없을 게다.”
“이름이 려화라고 했던가요? 그러고 보니 올해로 딱 열 살이 되었겠네요.”
“해남도에서 제일가는 말썽꾸러기가 되었지.”
한설화가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 핏줄이 어디 가겠어.”
엄마는 벽화령이었고, 아빠는 심지어 범계위였다.
가볍게 웃은 단악선이 심유한 눈빛을 들어 밤하늘을 응시했다.
“무척 길게만 느껴졌던 십 년이었는데, 이제 와 돌이켜 보니 한순간의 꿈만 같네요.”
초악량과 한설화가 복잡한 눈빛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간 단악선이 어떤 싸움을 해 왔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다시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이제야 비로소 무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초악량과 한설화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지금까지의 변화를 늘 가까이서 봐 온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선 단악선은 어딘가 확실히 달라 보였다.
‘하긴.’
초악량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열일곱 살 소년이 스물일곱 살 청년이 되었는데,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라면 그 자체가 이상한 일인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만큼 단악선의 눈빛이 유독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 * *
직례주로 선포된 이후 무위는 발전을 거듭했다.
십 년이 지난 지금은 만추가경(晩秋佳景)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크게 성장해 인근 도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이미 강호 전역에 거점을 둔 신마상단과 전 중원을 통틀어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의원들로 채워진 신마의가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역과 중원의 교역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무위로 집중된 재화로 인해 유흥 산업 역시 크게 성장했다.
과거에는 ‘하늘에는 천당, 땅에는 소항’이라 했다지만 지금은 무위가 소주와 항주를 대신해 부귀와 풍류를 상징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였다.
그런 만큼 인구의 유입 역시 크게 늘었고, 중원 각지에서 몰려드는 외지인들로 인해 늘 시끌벅적했다.
그래서 지금도 무위로 들어서는 다섯 명의 무림인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소문대로군.”
일행의 선두에 서 있던 노인.
승려처럼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온통 흑색 일색인 가사를 두른 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데 이마에는 계인이 없었다.
두 눈은 움푹 꺼져 있었고,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과 손가락 역시 목내이(木乃伊)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그러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형형한 안광은 마주한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위험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본불(本佛)이 지배하며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겠어.”
소름 끼치는 눈빛과 대조적으로 무척이나 흐뭇한 웃음을 말아 올리는 노인.
그의 이름은 구양진.
흑목애 일대에서 오랫동안 공포로 군림해 온 고목신승(古木神僧)이 바로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