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7)
신마의선-437화(437/500)
신마의선 (437)
움푹 파인 노인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관병?”
마을 곳곳에 오가는 병력들을 확인한 구양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열 명이 조를 이루고 있는 눈앞의 병력은 한눈에 봐도 관아 소속의 병사들이 아니었다.
차림새나 무장 수준, 거기에 제법 삼엄한 군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인근 위소의 정규 병력이 분명했다.
“뭐, 상관없나.”
노인이 히죽 웃으며 자신을 따르는 일행을 향해 의미심장한 눈빛을 건넸다.
치안을 군에 의지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곳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무림 세력이 전무하다는 방증.
한마디로 무주공산이나 다를 바 없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군관들은 무림인보다 다루기 쉬웠다.
적당한 뇌물과 중앙 정계에 닿아 있는 인맥을 이용하면 언제든지 수월하게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신마상단의 단주를 만나 볼까.”
구양진이 앞장서 걷기 시작하자 뒤쪽에 시립해 있던 네 명의 장한들도 삼엄한 눈빛을 흘리며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걸음 채 옮기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했다.
마침 중추절(中秋節)을 앞두고 있어 무척이나 많은 인파로 저자가 붐비고 있었다.
가족과 친척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인 만큼 타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잔뜩 귀성한 상태였다.
거기에 함께 월병을 나누어 먹으며 달구경을 하는 풍습 때문에 월병을 파는 상인들이 저자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래서 여느 때보다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런데도 구양진은 굳이 무수한 인파 중앙을 가로질러 걸었다.
번잡한 만큼 사람에게 치이는 건 당연지사.
턱.
월병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던 중년인과 구양진이 부딪힌 건 그 직후였다.
장사할 자리를 찾기 위해 이동하며 일어난 작은 실수였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상인이 곧바로 고개를 조아려 사과를 했지만 구양진의 눈빛은 더없이 싸늘하기만 했다.
“웃어?”
민망함과 미안함에 어색한 미소를 건네던 상인은 뒤늦게 구양진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어 냈다.
“보시다시피 사람이 워낙 많아서……. 죄송합니다.”
진심이 묻어나는 사과와 함께 상인이 수레에 실려 있던 월병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구양진에게 건넸다.
그러나 구양진은 차가운 코웃음과 함께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우지끈.
상인이 끌던 수레가 그 자리에 움푹 주저앉았다.
“……!”
상인의 두 눈 위로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명절 대목을 맞아 최근에 큰맘 먹고 구입한 수레였다.
그런데 정작 장사를 개시해 보기도 전에 수레가 박살 나 버렸으니, 그만 눈앞이 아득해진 것이다.
“아이고! 대체 왜 이러십니까?”
뒤늦게 상인의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흥.”
그러나 구양진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차가운 코웃음을 흘리더니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채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구양진을 제지하는 음성이 있었다.
“멈추시오.”
“……?”
“보아하니 무림인 같소만.”
구양진은 내심 기가 막혔다.
아무리 상당 기간 은거 아닌 은거를 하고 있었다지만 어떻게 자신을 몰라볼 수 있단 말인가?
황당함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커다란 거푸집을 짊어진 날카로운 눈빛의 장한이 나직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무림인은 결코 일반인을 건드려서는 안 되오.”
“왜 그래야 하지?”
“그게 이곳 무위의 규칙이니까.”
물끄러미 장한을 응시하던 구양진이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상대 역시 제법 관록이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산전수전을 제법 겪은 무림인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무림인인 너는 건드려도 된다는 말이군.”
그 말과 함께 구양진이 벼락같이 손을 뻗었다.
“……!”
장한이 놀라 황급히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구양진의 손을 떠난 장력이 그의 가슴에 닿은 뒤였다.
와직.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왁!”
한바탕 크게 피를 토한 장한이 비틀거리며 물러서다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당신은……?”
뒤늦게 구양진이 사용한 장공을 알아본 장한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채 말을 맺지 못한 장한이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런 그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던 구양진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미뤄 두었던 빚을 받아 내러 왔느니라.”
* * *
신마상단 본단의 꼭대기 층.
상단의 책임자인 단주의 집무실에서 답답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니, 단주님! 대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아, 또 왜? 이번에는 뭐가 문제야?”
산처럼 높이 쌓인 서류 더미에 파묻혀 정신없이 수결란을 채우던 소적산이 수하의 볼멘 음성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서류 더미에 더욱 깊이 얼굴을 묻었다.
상단의 재정 부문을 담당하던 수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달부터 마교 토벌에 참여했던 구파일방과 무림인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듣자니 이번에도 그냥 집행하라 하셨다고요?”
소적산이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아직은 이른 것 같아서. 여섯 달만 더 연장하자.”
“그런 식으로 벌써 십 년을 끌어온 것 아닙니까?”
소적산은 수하의 잔소리를 뒤로한 채 밀린 업무를 쳐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뒷골목 파락호였던 이의당 시절부터 소적산을 보필해 온 진립.
그가 답답함에 재차 한숨을 터트렸다.
“하아……. 단주님. 아니, 대형! 진짜 이렇게 막무가내로 퍼 주다가는 우리 살림 다 거덜 난다니까요?”
“엄살은…….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잖아.”
“엄살이라뇨? 지난 십 년간 그쪽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요? 마음만 먹었다면 일국을 세우는 것도 가능한 액수입니다.”
“…….”
자신의 고언을 외면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소적산을 향해 진립이 한껏 울상을 지었다.
“최근에 장강 이남으로 가는 수로가 막힌 건 알고 계시지요? 게다가 최근 장성 너머 이민족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덩달아 서역 상인들과의 거래량도 크게 줄었고요. 막대한 지원금을 줄이지 않으면 당장 몇 달 후에 돌아오는 어음 처리도 어려운 실정이란 말입니다.”
비로소 소적산이 고개를 들어 진립과 시선을 마주했다.
“명색이 상단의 책임자인 내가 그걸 모를까.”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철회를…….”
“그 전에 하나만 묻자.”
“……?”
“나중에 곡주님께서 돌아오시면 뭐라고 할 건데?”
진립이 잠시 움찔했다.
그러기를 잠시.
이내 나직이 한숨을 흘리며 복잡한 눈빛을 드러냈다.
“솔직히 말해도 됩니까?”
“언젠 안 그랬냐.”
한 차례 숨을 들이마신 진립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언제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터놓고 말해, 곡주님께서 언제 돌아 오실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주화입마 때문에 두 번 다시는…….”
“야.”
갑자기 차갑게 돌변한 소적산의 음성에 진립이 멈칫했다.
물끄러미 진립을 응시하던 소적산이 그답지 않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우리끼리라도 해도 될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 알면 책정한 예산 그대로 집행시켜.”
입술을 달싹이며 몇 번이나 안색을 바꾸던 진립은 결국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집무실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는 소적산 역시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라 해서 왜 모를까.
하나 당면한 신마상단의 위기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반면 마교 토벌에 참여한 중원 무림의 지원은 단악선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였다.
기껏 힘들게 쌓아 온 신뢰를 눈앞의 이익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애초부터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렇게 소적산이 한숨을 흘리던 그때.
“단주님!”
누군가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며 다급한 목소리로 소적산을 불렀다.
예사롭지 않은 수하의 표정을 마주한 소적산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뭐야? 이번에는 또 무슨 큰일인데?”
“단주님을 뵙고자 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누군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그게…….”
“……?”
이어진 수하의 보고에 소적산의 눈빛이 흔들렸다.
“고목신승입니다!”
소적산이 화들짝 놀랐다.
“그 노괴가 아직까지 살아 있어?”
“아무래도 위험하니 피하시는 게…….”
소적산이 침음성을 흘렸다.
벌써 몇 년 전 일인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히 오래된 사건이 뇌리를 스쳤다.
보호비를 걷고 가게들을 보호하는 순의방(巡衣幇) 시절.
신효방을 거꾸러트리고 악명 높은 흑룡회와 무위의 밤거리를 양분하던 당시의 일이었다.
당시 흑룡회주 가휘섭은 범계위에 의해 재가 되어 사라졌고, 무위의 밤거리는 고스란히 이의당이 차지하게 되었다.
회주였던 가휘섭이 사라진 데다,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는 이의당에 밀려 흑룡회는 점차 입지가 좁아졌다.
이에 위기를 느낀 놈들은 먼 곳에 있는 가휘섭의 아우에게 연락해 무위로 불러들였다.
가휘건이라는 놈이었다.
문제는 놈의 내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었다.
흑목애 일대에서 공포로 군림하고 있는 고목신승.
그 늙은 괴물에게 무공을 사사한 유일한 제자였던 것이다.
놈이 새로운 흑룡회주로 추대된 이후 이의당이 애써 근절시켰던 매음굴과 염왕채가 다시 생겨났고,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결국 신마곡의 총관인 사무심이 나섰고, 가휘건이 사무심에게 제거되자 흑룡회는 와해되었다.
그때를 떠올린 소적산은 오기가 생겼다.
“일단 만나 보지.”
수하의 만류를 뿌리친 소적산이 집무실을 벗어나 곧장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소적산은 일 층 정문 앞에서 구양진과 조우할 수 있었다.
좌우로 썰물처럼 갈라진 인파를 헤치며 곧장 이쪽으로 걸어오는 구양진과 수행하듯 그를 따르는 네 명의 사내를 확인한 소적산의 눈빛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반면 나른한 눈빛을 흘리던 고양진은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네가 신마상단의 책임자인가?”
까마귀가 울부짖듯 카랑카랑한 음성.
거기에 상복을 연상시키는 흑빛 가사와 음산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마주하고 있자니 소적산은 절로 기분이 나빠졌다.
“저를 보자 하셨다지요?”
소적산의 말에 구양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청한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묘하게 말끝을 흐리던 구양진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빚을 받으러 온 것뿐일세. 지금껏 미뤄 두었던 이자도 함께.”
“……?”
“듣자니 신마상단은 흑룡회를 흡수해 일으켰다 하더군. 그리고 흑룡회는 내 불민한 제자 놈이 이끌고 있었고. 그런 만큼 본 불에게도 의당 신마상단의 지분을 주장할 자격이 있지 않겠나?”
그 말에 신마상단 소속의 무림인들이 발끈했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단주님, 들을 가치도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소적산은 손을 들어 수하들을 제지했다.
“나서지 마라!”
눈앞의 고목신승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의 뒤에 시립해 있는 네 명도 상당한 고수로 짐작되었다.
‘그사이 새로 들인 제자들인가?’
그러고 보니 고목신승의 외양도 듣던 것과는 달랐다.
‘의수인가 보군.’
언젠가 범계위가 그의 손목 하나를 날려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데 지금은 양손이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양손에 검은 장갑을 끼고 있는 이유도 의수를 감추기 위한 것일 터.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당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의 제자였던 가휘건이 죽은 건 이미 십몇 년이 훌쩍 지난 일.
이제 와 은원을 따지는 모양새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고수인 그에게 품을 마음은 아니었지만 놈의 행동 자체도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한때 스스로 신승을 자처하던 그가 이제는 아예 한술 더 떠 살아 있는 부처로 금칠을 해 대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신마삼존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이 자리에 있었다면 숨도 제대로 못 쉬었을 늙은이가 고수랍시고 거들먹대는 꼬락서니가 눈꼴시었다.
‘하다못해 곡 대협만 계셨어도…….’
이미 앞서 비슷한 일을 여러 번 겪었지만, 그때마다 추비무랑 곡운경이 새삼 그리워지는 소적산이었다.
불온한 뜻을 품고 무위를 찾아온 자들 대부분은 웬만해서는 곡운경 선에서 알아서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곳에 없었다.
마교와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신지.
앞서간 수많은 무위 사파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