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8)
신마의선-438화(438/500)
신마의선 (438)
그때였다.
“단주님.”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소적산이 고개를 돌렸다.
쭈뼛거리며 다가서는 상단원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소적산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앞섶과 손에 말라붙은 핏자국은 둘째 치고, 창백한 얼굴과 흔들리는 눈빛만으로도 무언가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곧바로 직감한 것이다.
“무슨 일이지?”
“그게…….”
머뭇거리며 대답을 망설이던 상단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조 야장(冶匠)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소적산이 깜짝 놀랐다.
“철완빙담(鐵腕氷膽), 그 친구 말인가?”
“최대한 서둘러 신마의가로 이송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
소적산이 말끝을 흐리며 구양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난데없는 변고와 갑작스럽게 등장한 그 사이에 연관성이 있으리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구양진이 뒤틀린 웃음을 말아 올렸다.
“그자가 철완빙담이었나?”
“설마 당신이 벌인 일이오?”
구양진이 피식 웃었다.
“감히 본 불에게 무위의 규칙 운운하기에 친히 가르침을 내렸지. 한데 고작 그 일 수조차 버티지 못했다니, 철완빙담이라는 명호가 아깝군.”
의례적인 미소로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고 있던 소적산.
그의 표정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철완빙담 조명은 무위가 금지로 선포된 직후, 이곳에 일신을 의탁한 사파 무림인이었다.
게다가 마교 토벌에도 참여했을 만큼 누구보다 무위에 진심인 사내였다.
마교 토벌 이후 많은 사파인들이 무위를 떠났다.
더 이상 무위는 금지가 아니었고, 마교 토벌 이후 정사의 구분이 모호해진 터라 더 이상 정파는 사파 무인들을 과거처럼 핍박하지 않았다.
자신의 고향을 향해, 혹은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제약이 사라진 사파인들은 저마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무위를 떠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은 끝까지 이곳 무위에 남았다.
조명이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특기인 야금(冶金) 기술을 십분 발휘해 이곳에 정착했다.
농기구를 만드는 철방을 개업한 것이다.
더구나 자신과 연배도 비슷했기에 오다가다 마주치면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곤 했었다.
‘피바람이 불겠군.’
심상치 않은 주변의 분위기를 깨달은 건 그 직후였다.
어느새 무위의 사파 고수들이 속속 신마상단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조명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은 비단 자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껏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그들이었던 만큼 서로에게 느끼는 동질감과 유대 의식은 그 어떤 문파와도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거기에 대부분이 신지에서의 마지막 싸움을 경험한 생존자였기에 그 결속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나 자신을 향한 저들의 눈빛을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양진은 여전히 태연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는 것이다.
반면 소적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과거 무위가 금지였던 당시와 비교하면 이곳에 남아 있는 고수들의 숫자는 현저히 적은 상태.
더구나 한동안 이곳에 머물던 주광도귀 강위룡마저 몇 년 전에 도원향의 제조 방법을 모두 전수한 뒤 훌쩍 떠나 버렸다.
무엇보다 구양진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노마두였다.
과거 범계위에게 손목 하나를 잃고 흑목애로 근거지를 옮겼지만, 중원에 남아 있었다면 여전히 십대악인에 이름을 올리고도 남았을 존재였다.
특히나 그의 성명절학인 고루신공(骷髏神功)과 풍뢰장(風雷掌)은 손꼽히는 절학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런 구양진과 그의 패거리를 단번에 압도할 만한 고수의 부재가 소적산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곳 무위의 전력을 갈아 넣는다면 어떻게든 물리칠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희생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복잡한 눈빛을 흘리던 소적산이 다시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분위기도 살필 겸, 일단은 시간을 끌며 이야기라도 들어 볼 심산이었다.
“빚을 받으러 오셨다니 묻지 않을 수가 없군요. 어떤 방식으로 빚을 청산하길 바라십니까?”
구양진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느물거리며 웃었다.
“그거야 갚을 놈이 알겠지?”
“…….”
“신마상단을 전부 내게 넘기는 건 어떻겠나?”
가당치도 않은 제안에 소적산이 어이없단 눈빛을 흘렸다.
“차라리 내게 칼을 물고 죽으라 하지 그러시오?”
구양진이 살기를 담아 소적산을 노려봤다.
그러나 소적산은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안색은 창백해졌지만 예상외로 꿋꿋하게 버틴 것이다.
그 강단 있는 모습에 구양진의 눈 위로 잠시 감탄 어린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럼 양보를 조금 해 주지. 산동과 강서의 사업권을 넘기는 정도로 마무리 지어 주마.”
“절대 불가하오.”
단호한 소적산의 거절에 구양진이 뒷짐 지고 있던 손을 풀며 자욱한 살기를 피워 올렸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의 의견 차를 좁힐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조용한 곳에서 타협점을 한번 모색해 보자꾸나.”
그러나 무위의 고수들이 먼저 구양진의 살기에 반응했다.
일제히 앞으로 나서 구양진과 그의 일행을 에워싼 것이다.
구양진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내 제자의 원한을 달래기 위한 합당한 복수다. 이와 무관한 자들은 꺼져라. 허락 없이 감히 끼어든 자, 본 불의 손속을 무정하다 원망치 못하리라.”
그러나 살기를 담은 협박을 마주하고도 무위의 사파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리를 바짝 좁혀 오는 그들의 모습에 구양진의 눈 위로 더없이 농밀하고 섬뜩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흐흐.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족속들이로고.”
구양진이 흉소와 함께 진기를 끌어 올리자 일대의 기파가 들썩였다.
그 순간.
“본래 이런 일은 은원의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것이 순리겠지.”
한 사람이 훌쩍 뛰어들며 입을 열었다.
“사 대협!”
고수라 불리기에 부족함 없는 아군의 등장에 소적산이 반색했다.
소적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사무심이 구양진을 향해 말했다.
“당신 조카를 죽인 건 나요. 그러니 그 혈채(血債)를 받아 내려거든 나를 상대해야 할 것이오.”
사무심을 응시하며 무공의 수준을 가늠하던 구양진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이 수전귀야인가?”
“그렇소. 내가 바로 사무심이요.”
“그렇지 않아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구양진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과연 그 오만함에 어울리는 실력인지 확인해 볼까?”
우르릉.
주변의 대기가 한 차례 출렁이나 싶더니, 뇌성을 동반한 강맹한 경력이 사무심의 가슴을 노리며 쇄도했다.
싸늘한 눈빛을 토하며 사무심이 움직인 것도 동시였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그만의 독문병기인 기다란 철자가 들려 있었다.
츠츠츳.
철척(鐵尺)에서 뿜어져 나온 서슬 퍼런 예기가 전면을 가득 메웠다.
“……!”
사무심의 눈에 당혹감이 떠오른 건 그 직후였다.
삼엄하기 짝이 없는 검기의 그물을 목도하고도 구양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안에 불쑥 손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달았다.
따앙!
병기와 맨손이 부딪쳤음에도 차가운 금속성이 울려 퍼진 것이다.
‘의수!’
뒤늦게 사무심은 구양진이 과거 범계위와의 일전을 통해 한 손을 잃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나 이를 깨달았을 때는 철척이 구양진의 의수에 단단히 붙들려 버린 뒤였다.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음유한 장력이 옆구리를 파고든 것도 그때였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심이 철척을 놓고 훌쩍 물러섰다.
그러나 이를 순순히 허용할 구양진이 아니었다.
한번 거머쥔 승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더욱 바짝 거리를 좁히며 맹렬하게 소매를 휘둘렀다.
콰콰콰!
연달아 중첩된 장력의 파도가 해일처럼 짓쳐들어오자 피할 곳이 사라진 사무심이 이를 악물며 쌍장을 내밀어 반격했다.
쩌엉!
공기를 뒤흔드는 충격음과 함께 사무심의 두 발이 흙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러곤 그대로 깊은 고랑을 바닥에 새기며 주르륵 밀려났다.
“…….”
사무심의 낯빛이 침중해졌다.
그의 무공 수준도 사실 그리 낮지 않았다.
한데 눈앞의 파계승에 비하면 반 수 정도 뒤처졌다.
말라붙은 나뭇가지 같은 몸에서 뿜어져 나온 위력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웅혼한 장력.
철척이 있었다면 그럭저럭 상대해 볼 만했을 것 같은데, 적수공권으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진짜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구양진이 손을 쓰기 무섭게 그를 따르던 다른 네 명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소 단주, 조심……!”
소적산을 향해 달려드는 구양진의 수하.
이를 발견한 사무심이 황급히 외치다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바짝 거리를 좁혀 온 구양진이 섬뜩한 웃음과 함께 특유의 음유한 장력을 뿌려 댔기 때문이다.
“큭!”
사무심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상대의 음유하기 짝이 없는 침투경(浸透勁).
차곡차곡 누적된 피해로 인해 내부가 진탕되고 기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
사무심의 눈빛이 흔들렸다.
결국 놈들에게 붙잡힌 소적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이 실수였다.
고수들 간의 겨룸에 있어 마음의 동요는 걷잡을 수 없는 패착으로 이어지기 마련.
비릿한 액체가 입 안에 고이나 싶더니, 어느새 입술을 비집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를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거대한 암경의 파도에 휩쓸려 균형을 잃은 다음이었다.
‘빌어먹을!’
내심 욕설을 삼키는 사무심이었으나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거리를 좁혀 오는 구양진.
단지 소매를 털어 내듯 가볍게 앞으로 내민 상대의 동작이었음에도 사무심은 안색이 해쓱해졌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장내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돌연 구양진이 화들짝 놀라더니 자신의 수하들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지른 것이다.
“뒤다!”
구양진의 외침에 소적산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던 사내가 황급히 돌아섰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누군가가 그의 배후를 완전히 선점해 버린 뒤였다.
콰직.
시커먼 무언가가 사정없이 그의 옆구리에 틀어박힌 것도 그때였다.
“크헉!”
입에서 폭포수 같은 선혈을 뿜어내며 사내가 훌훌 날아가 근처 담벼락에 처박혔다.
그 광경을 바로 코앞에서 목도한 구양진은 물론이고, 소적산과 사무심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사무심이 느낀 충격은 가히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수!’
그것도 신마삼존에 필적하는 수준의 고수였다.
그리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허공을 찢는 세 줄기 묵빛 호선.
그 뒤로 이어지는 소름 끼치는 골절음과 격타음이 중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처음 나가떨어진 구양진의 수하가 그러했듯, 나머지 다른 세 명 중에서도 눈앞에서 작렬하는 묵빛 섬광을 제대로 막아 내는 이가 전무했다.
“……!”
구양진의 눈빛에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수하들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길게 널브러진 그들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금강불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검기 따위로는 생채기조차 남길 수 없는 호신기공이 바로 고루신공이었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오랜 세월 고루신공을 연마했고, 자신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미 상당한 성취를 이뤄 낸 상태.
한데 단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항거 불능의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다.
주위에 차가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장내의 어느 누구도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구양진 그리고 사무심과 소적산도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늦게 장내에 난입한 자가 훤칠한 키를 지닌 청년이라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도무지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이십 대 중반이라는 점과 시커먼 묵봉을 무기로 쓴다는 것 정도였다.
‘저 나이대에 이 정도 수준의 무공을 지닌 자가 무림에 존재한다고?’
그런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전대의 고수가 반로환동(返老還童)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황당무계한 가정이었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그만큼 설명이 불가능한 신위였다.
청년이 눈을 들어 구양진을 바라본 것도 그때였다.
“……!”
구양진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짙은 흑발을 치렁하게 늘어트리고 있어 청년의 이목구비를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나 그 사이로 드러난 서늘한 눈빛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존재감으로 어느새 일대를 완벽하게 자신의 지배 아래 두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