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39)
신마의선-439화(439/500)
신마의선 (439)
‘어디서 이런 괴물이…….’
구양진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유독 차가운 눈빛을 제외하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첫인상일 뿐.
말없이 서 있는 청년에게서 흘러나오는 존재감은 감히 자신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등줄기가 절로 서늘해졌다.
정확히 설명은 할 수 없었으나 무인의 본능이 불길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구양진은 자신이 일생일대의 강적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눈빛만으로 사위를 압도하는 그의 정체가 실로 궁금했다.
‘오늘 이 자리는 길보다 흉이 많겠군.’
그 여느 때보다 바짝 긴장한 구양진의 얼굴에서는 방금 전까지의 여유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때였다.
“곡주님?”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소적산을 바라봤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소적산의 눈이 점차 커졌다.
“곡주님 맞으시죠?”
소적산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재차 물었다.
무려 십 년이었다.
그사이 외모가 크게 변해 곧바로 알아보진 못했지만 단악선의 손에 쥐어진 묵룡만큼은 낯이 익었다.
게다가 유심히 살펴보니 눈매며 콧날, 그리고 귓불처럼 세세한 부분에 아직까지 어린 시절의 모습이 약간은 남아 있었다.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곡주님!”
단악선을 와락 끌어안으려던 소적산이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손을 뻗긴 했지만 더없이 낯선 단악선의 분위기에는 범접하기 힘든 무언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의 미소나 말투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스하고 온화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은 여전했다.
반면 눈빛과 전신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기도는 무척이나 상반되는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머뭇거리는 소적산을 단악선이 덥석 끌어안았다.
“고마워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안겨 있던 소적산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예? 뭐가 말입니까?”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다 들었어요.”
“……곡주님.”
소적산이 울컥했다.
그동안 내내 혼자 속 끓이며 어떻게든 상단을 꾸려 나가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쳤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무리 고생해도 이처럼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주는 것이다.
장내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곡주님이라면……, 단 의원님?”
“너무 훤칠해지셔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어!”
“신마의선! 단 의원님께서 돌아오셨다!”
군웅들의 얼굴 위로 기이한 열기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는 삽시간에 주변으로 번져 갔고, 이내 뜨거운 함성이 되어 일대를 쩌렁하게 뒤흔들었다.
적어도 이곳 무위에서만큼은 단악선은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었다.
무위를 지탱하는 상징.
어쩌면 신앙에 버금가는,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사무심을 바라봤다.
“총관 아저씨도 오랜만이에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악선을 올려다보던 사무심이 뒤늦게 비틀거리며 신형을 일으켰다.
“이제 몸은 괜찮으십니까?”
“지금 제 걱정할 처지가 아니신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사무심은 피 칠갑을 하고도 씨익 웃었다.
“천하의 신마의선께서 함께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일단 치료부터 할게요.”
단악선이 재빨리 사무심의 요혈에 침을 찔러 넣었다.
눈을 감고 운기 조식을 시작한 사무심을 뒤로한 채 단악선이 신형을 일으켰다.
단악선과 시선이 마주친 구양진의 안색이 한순간 흙빛으로 변했다.
“이곳 무위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고, 그것도 모자라 만류하는 사람을 해치셨다고요.”
단악선의 말에 구양진이 침음성을 흘렸다.
더없이 예의 바른 말투였지만 눈빛만큼은 거대한 빙하처럼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그 대조적인 모습.
그래서 더욱 두려움을 자아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공포라는 감정 앞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구양진이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수신호위(守身護衛)처럼 단악선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알려진 신마삼존.
특히 그 가운데 범계위는 그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그분들은 다른 곳에 계세요.”
“…….”
구양진의 눈 위로 안도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눈앞의 상대가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강호 경험이 미천한 새파란 애송이.
얼마든지 구워삶을 자신이 있었다.
“약간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단악선을 응시하며 운을 떼던 구양진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대뜸 단악선이 자신과 거리를 좁혀 왔기 때문이다.
“자, 잠깐!”
구양진이 서둘러 단악선을 만류하려 했지만 그보다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는 묵룡이 더욱 빨랐다.
섬전처럼 번쩍이는 묵빛 광채가 가슴을 노리며 작렬하는 순간.
구양진이 전력을 끌어 올려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꽝!
폭음과 함께 구양진이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다행히 그는 수하들처럼 꼴사납게 일격에 무너지진 않았다.
하나 피해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간신히 일격을 버텨 내긴 했지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핏물을 가까스로 삼켜야만 했다.
방금 전 격돌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비로소 구양진은 생각을 달리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야…….’
하지만 그 생각도 계속 이어 갈 수 없었다.
이미 상대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단악선이 또다시 움직였다.
“……!”
구양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평생 무공을 익혀 온 그였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가 없었다.
마치 한순간에 눈앞의 공간이 지워져 버린 것 같았다.
당혹감은 이내 혼란으로, 그리고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옆구리를 향해 날아드는 시커먼 그림자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구양진이 황급히 손을 휘둘러 묵룡을 쳐 내려 했다.
하나 이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마음이 흔들리자 대응 역시 성급했고, 이는 결국 실수로 이어졌다.
그답지 않게 허초가 분명한 꼬드김에 몸이 멋대로 반응해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변화하는 묵빛 궤적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실수를 눈감아 줄 만큼 단악선은 무르지 않았다.
빠각!
“……!”
구양진이 눈을 부릅떴다.
묵봉에 의해 반대로 꺾여져 나간 자신의 무릎이 눈에 들어왔다.
족히 몇 달은 요양해야 간신히 걸을 수 있을 만큼 위중한 부상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단악선의 손에 들린 묵룡이 기이하게 움직이더니, 그대로 구양진의 겨드랑이와 팔을 얽어 버린 것이다.
콰앙!
“꺽!”
거칠게 바닥에 패대기쳐진 구양진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풀썩이는 먼지를 한껏 들이켠 구양진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다.
실로 한순간에 이뤄진 짧은 공방.
하나 그 결과는 자명했다.
“으악!”
참담한 몰골로 버둥대던 구양진이 재차 경악성을 터트렸다.
미간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묵빛 섬광.
구양진이 황급히 의수를 뻗어 묵봉을 움켜쥐려 했다.
콰직.
빙당호로(冰糖葫蘆)처럼 산산이 깨져 부서지는 의수.
한철(寒鐵)과 곤오강(崑烏鋼)을 섞어 특수하게 제작된 의수는 그 어떤 예리한 검기도 간단히 잡아 찢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튼튼했다.
한데 눈앞에 짓쳐 드는 시커먼 묵봉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의수를 산산이 쪼개 버리고 나서도 묵봉은 멈추지 않았다.
빠악!
구양진의 머리가 정수리부터 이마까지 움푹 주저앉았다.
“뭐……, 이런 개 같은…….”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중얼거린 구양진.
그리고 그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생명의 빛이 사라져 꺼져 버린 그의 눈에는 불신과 공포만이 가득했다.
“……!”
소적산이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불과 눈 깜짝하는 사이에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절명해 버린 고목노괴 때문이 아니었다.
우두커니 서서 구양진을 내려다보는 단악선의 눈빛.
그 안에 담긴 지극히 차갑고 무심한 살기와 단호하기 짝이 없는 손속에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자신들이 기억하던 단악선과는 완전히 다른 더없이 냉혹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와아!”
쩌렁하게 일대를 뒤흔드는 함성에 퍼뜩 정신을 차린 소적산이 수하들에게 장내를 정리하도록 지시했다.
마침 사무심도 운기 행공을 마치고 눈을 떴다.
주변 상황을 파악한 사무심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십 년 동안 단악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곁에서 지켜본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순 없었다.
하지만 동빙가절(凍氷可折)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단악선의 성격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것만큼은 짐작할 수 있었다.
신마상단 본단의 꼭대기 층.
단주의 집무실로 단악선과 사무심을 안내한 소적산은 직접 차를 우려 내왔다.
‘전혀 다른 사람 같구나.’
각자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면서도 소적산은 연신 단악선의 옆모습을 힐끔거렸다.
차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의 순박하고 선한 단악선의 미소가 새삼 그리워졌다.
이처럼 말없이 앉아 있으니 마치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를 한데 섞어 놓은 것만 같았다.
범접하기 힘든 압도적인 분위기.
그래서 그런지 자신도 모르게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졌다.
반면 사무심은 여전히 단악선을 향해 부드러운 눈빛을 건넸다.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많은 걸 겪었거든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단악선을 향해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십 년은 매우 긴 세월이지요.”
그리고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는 완전히 끝난 것입니까?”
사무심의 물음에 단악선이 슬쩍 웃었다.
“너무 오래 걸렸죠?”
“긴 듯하지만, 또 돌이켜 보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세월이기도 하지요.”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렇게나 좋은 일이군요.”
자신과 다르게 변함없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단악선은 한없이 보기 좋았다.
이제는 제법 흰머리가 곳곳에 보이는 사무심이나, 상단주로서 믿음직한 풍모를 갖춘 능소밀의 모습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그때 사무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초 선배님과 한 선배님은 어째서 함께 오시지 않은 겁니까?”
한시도 단악선 곁을 떠나지 않던 두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신마삼존 모두가 단악선을 지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범계위는 신지를 떠나 해남도로 향했다.
아이가 태어날 시기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범계위는 이따금 신지를 방문해 단악선의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 해남도에 머물렀고, 덕분에 초악량과 한설화가 교대로 단악선을 지켜 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만큼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단악선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도 그때였다.
“두 분은 여행을 가셨어요.”
“여행이요?”
“네. 두 분만을 위한 여행이요.”
여전히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두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무위로 돌아오면 또 기회를 놓칠 것 같아서 제가 억지로 두 분 등을 떠밀었어요. 그리고 역시나 그러길 잘한 것 같아요. 만약 이 자리에 계셨다면 누구보다 분노하셨을 테니까요.”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소적산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 설마……? 두 분께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셨다는?”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 사이의 관계라 해서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죠.”
“무림 역사상 가장 두려운 한 쌍이 탄생했군요!”
소적산의 너스레에 단악선은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가장 늦게 맺어진 인연이기도 하고요.”
그런 두 사람에게는 하루가 아까울 터.
그래서 그들만의 오붓한 여행을 강권했다.
사무심이 심유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곡주님 혼자서 강호의 모진 풍파를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단악선이 모호한 미소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