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
신마의선-44화(44/500)
신마의선 (44)
“그건 설마…….”
사무심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토록 찾던 목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무심이 자신도 모르게 단악선에게 성큼 다가섰다.
초악량과 범계위,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느라 주눅 들어 있던 그의 눈에 처음으로 강렬한 열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자, 여기요.”
단악선이 가지고 온 목함을 사무심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낚아채듯 목함을 가져간 사무심이 품속에서 꺼낸 열쇠를 상자 아랫부분에 넣어 힘껏 돌렸다.
철컥.
육중한 금속성과 함께 상자가 열렸다.
내심 그 안의 내용물을 궁금해했던 단악선이 사무심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무사하구나!”
목함 안을 살핀 사무심이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상자 안에 굉장한 물건이 들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데 목함 안에는 손때 묻은 종이들만 가득했다.
사무심은 그 종이들을 한 장 한 장 꺼내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종이에 적힌 내용을 모두 확인한 사무심이 품 안에서 화섭자를 꺼냈다.
그리고 종이에 불을 붙여 모조리 태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재가 되어 허공에 흩어지는 종이들. 사무심은 이를 먹먹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윽고 사무심이 초악량과 범계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베풀어 주신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초악량이 고개를 저었다.
“인사는 우리 말고 여기 있는 단 의원에게 해야지.”
“네?”
의아해하는 사무심의 모습에 범계위가 투덜거렸다.
“그것 때문에 포기한 치료비가 얼만 줄이나 알아?”
그런데 그 안의 내용물을 홀랑 태워 버리다니.
그럴 거면 뭐 하러 그렇게 목숨을 걸고 찾아다녔단 말인가.
범계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사무심이 단악선을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공손한 태도였다.
“마음을 좀 추스른 뒤 진성의가로 가겠습니다.”
무언가 숙연한 분위기에 일행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심을 뒤로한 채 진성의가로 향하는 도중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어떤 대단한 보물이길래 그렇게 애지중지하나 했더니만, 고작 편지였군.”
“그런데 그걸 왜 태워?”
범계위의 물음에 초악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아이들의 행적이 드러날까 우려해서가 아닐까?”
수전귀야로 살아온 세월만큼 사무심에게는 적이 많았다.
“죽기 전에 자신이 도왔던 아이들과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없애고 싶었던 게지. 그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야.”
그럴싸한 초악량의 추측에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놈이 아니라 멍청한 놈이었군.”
사무심은 약속대로 한 시진 뒤 진성의가를 찾아왔다.
단악선은 곧장 그를 불러 진맥부터 했다.
그리곤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물었다.
“이렇게 엉망인 몸으로 대체 어떻게 움직일 수 있죠?”
단악선이 사무심을 보며 말했다.
“남은 생명이 석 달이라 하셨는데, 제가 보기엔 길어야 한 달 정도예요. 전조가 없다뿐이지 당장 발작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고요.”
사무심은 처음엔 놀라는 듯했으나 이내 체념한 듯 담담히 받아들였다.
“전 괜찮습니다.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사무심이 희미하게 웃었다.
“원하던 것을 모두 이뤘으니 남은 한도 없고요.”
문득 사무심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한부 삶을 선고한 당사자인 단악선은 말할 것도 없었고, 초악량과 범계위 역시 반응이 심드렁했기 때문이다.
사무심은 갑자기 울컥했다.
‘그래도 안면을 튼 정이 있는데…….’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위로는 건네지 못할지언정 안타까워하거나 안쓰러운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같이 나처럼 나쁜 놈들인데 뭘 바라겠어?’
그래도 단악선은 의외이긴 했다.
‘하긴,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
혈수존자와 망산초자, 거기에 고수의 풍모를 지닌 무표정한 여자까지. 저런 괴물들 사이에서 아이가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싶었다.
그때 단악선이 웃으며 물었다.
“만약 더 살 수 있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사무심이 씁쓸하게 웃었다.
“당장 한 달 뒤에 죽을 놈이 바라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한 달 뒤라…….”
모호하게 말끝을 흐린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힘들 거예요.”
사무심의 가슴이 덜컥했다.
“설마 남은 시간이 그것도 안 되는 겁니까?”
대답은 초악량이 대신했다.
“한 달 뒤에도 죽는 일은 없을 거란 소리다.”
범계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단 의원에게 걸린 이상 어림없지.”
“예? 하지만 저 주화입마…….”
“주화입마가 아니라 주화입마 할아비라도 상관없어. 염라국에 쳐들어가서라도 환자를 끄집어내 올 사람이 우리 단 의원이거든.”
범계위의 칭찬에 단악선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저라도 죽은 사람은 못 살려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사무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화입마야 어떻게든 되겠지만.”
“치료……한다고요? 주화입마를?”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무심을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라면 힘들 수도 있지만 지금은 영약도 많고, 위화요법도 있으니까요.”
사무심은 방금 들은 미친 소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초악량과 범계위의 분위기를 살폈는데,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범계위가 사무심을 향해 물었다.
“야, 돈 귀신. 너 항상 하던 말 있지?”
“예?”
“빚지고는 못산다며?”
뒤늦게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랬었죠.”
그와 관련되어 무림에 떠도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염왕에게 빚을 지면 집을 팔아 갚고, 전귀에게 빚을 지면 무덤을 팔아 갚아야 한다는 말이다.
초악량이 옆에서 손가락을 한 개씩 꼽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 보자. 일단 내가 두 번 살려 줬고, 거기에 무림맹에서 한 번 더 구해 줬으니 세 번. 그리고 주화입마를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을 소개해 줬으니 이번이 네 번째 살려 주는 거군.”
범계위가 사무심을 향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전귀라는 놈이 참 여기저기 헤프게도 빚을 놓고 다니네. 넌 도대체 목숨 빚이 몇 개냐?”
“정확히는 세 개죠. 아직 제 주화입마가 치료된 건 아니잖습니까.”
사무심의 항변에 범계위가 고리눈을 부릅떴다.
“너 지금 우리 단 의원 무시하냐?”
“예?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단 의원이 살린다고 하면 살리는 거야.”
사무심이 숨죽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범계위의 눈에서 쏟아지는 살기가 그대로 유형의 칼날이 되어 피부를 서걱서걱 잘라 내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 빚이면 몇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나도 다 못 갚겠는걸?”
운을 뗀 초악량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사무심을 보았다.
“그래도 다음 생에 다시 보는 건 지겨우니까 채무는 이번 생에만 갚는 걸로 하자.”
사무심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무림인이라고 하셨죠?”
단악선이 물었다.
“네. 일단은요…….”
갑자기 심각해진 단악선의 표정에 사무심은 다시 한 번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단 의원,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은 구할 수 있지만, 후……. 이대로라면 단전이 너무 망가져 무공은 쓰지 못하실 거예요.”
“……!”
사무심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 수만 있다면야……. 거기서 무언가를 더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지요. 전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목숨이 우선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치료 후에 환자의 삶도 치료 못지않게 중요해요.”
“하지만…….”
“힘들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긴 하니까……, 어떻게든 단전을 회복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게요.”
대체 어디까지 믿고 의심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것 믿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도 없긴 하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 말에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넌 이미 뭐든지 다 해야 하거든?”
“아! 네……. 그렇게 됐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빚쟁이가 무려 혈수존자와 망산초자였다. 한 사람만으로도 끔찍한데 두 괴물의 빚 독촉에 시달리는 상상을 하니 그야말로 소름이 끼쳤다.
“치료를 미뤄선 안 되겠어요. 늦어질수록 회복도 더뎌지니까요. 오늘 밤에 당장 위화요법을 진행할게요.”
단악선이 품속에서 침이 담긴 목갑을 꺼냈다.
“사 아저씨도 체력을 끌어 올려야 하니 좀 주무세요.”
“전 전혀 졸리지 않은데요?”
단악선이 목갑에서 침을 꺼내 들며 빙그레 웃었다.
“곧 그렇게 될 거예요.”
* * *
두 시진 후.
“곡주님! 설마?”
비명에 가까운 풍진성의 외침에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가 모두 달려왔다.
처음엔 이상한 표정으로 풍진성을 봤지만 곧 풍진성이 창백한 얼굴로 단악선이 들고 있는 탕약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곤 뒤이어 단악선의 발밑을 굴러다니는 작은 자기 병을 발견했다.
“어? 저거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인데?”
고개를 갸웃하는 범계위와 달리 초악량은 뜨악한 얼굴로 단악선에게 물었다.
“설마 그 안에……, 아니지? 아닌 거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고 되묻는 초악량의 모습에 범계위는 비로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뭔데? 초 형 갑자기 왜 저래?”
한설화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탕약에……, 공청석유를 넣었나 봐.”
“뭐, 뭐엇!”
화들짝 놀란 범계위가 초악량과 같은 표정이 되었다.
“단 의원! 그거 누구 먹이려고?”
단악선이 잠들어 있는 사무심을 지목했다. 이에 범계위가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초 형, 나 기절 좀 시켜 줄래? 저게 돈 귀신 주둥이로 들어가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어!”
“말 걸지 마. 머리 아프니까.”
초악량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문질렀다.
기껏 힘들게 구한 공청석유를 고작 사무심 따위를 위해 사용하다니.
도저히 용인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어요.”
단악선이 멋쩍게 웃었다.
“이미 단전까지 고쳐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걸요.”
한순간 눈빛을 교환한 초악량과 범계위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거짓말 정도는 해야 사람이지.”
“그럼. 나도 하루에 몇 번은 꼭 거짓말을 해야 맘 편히 잘 수 있어.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이나 초 형한테 거짓말을 했는걸.”
“뭐? 너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초악량이 단악선을 만류했다.
“차라리 그냥 단 의원이 먹는다면 말리지 않으마. 아니, 오히려 환영하지. 그런데 저놈은 아니야.”
“맞아. 어차피 총관으로 쓸 놈이잖아. 그런 놈이 무공은 왜 필요해?”
보다 못해 한설화도 다른 사람들을 거들었다.
“무공이라고 해 봐야 잡기. 저자에게 공청석유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그들의 끈질긴 설득에도 단악선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어떤 환자든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은 이게 최선의 방법이고요.”
결국 단악선의 고집을 꺾지 못한 일행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숨을 터트렸다.
단악선이 잠든 사무심에게 다가가 그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공청석유가 든 탕약을 조금씩 그의 입안에 흘려 넣었다.
범계위는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해 뛰쳐나갔고, 초악량은 으스러져라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설화 역시 잘 움직이지도 않는 미간을 한껏 찡그린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사무심은 여전히 평화로운 표정으로 단잠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무얼 삼키는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