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0)
신마의선-440화(440/500)
신마의선 (440)
신마의가 내부에 위치한 후원.
그 뒤편으로는 외부와 별도로 격리된 공간이 존재했다.
집중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위중한 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장소였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지내는 환자 대부분은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희비가 교차하는 곳.
그곳에서 누군가의 당혹성이 울려 퍼졌다.
“이런!”
준수한 외모의 젊은 의원이었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던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큰 의원님을 모셔 와 주세요! 당장이요!”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황급히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젊은 의원은 재빨리 침을 꺼내 환자의 혈도 곳곳에 꽂아 넣었다.
그러곤 초조한 표정으로 환자의 몸 곳곳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왁!”
가부좌를 틀고 있던 환자가 울컥 핏물을 토해 내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백한 얼굴과 파리한 입술과 눈 아래 드리운 짙은 그늘.
야윌 대로 야위어 움푹 파인 양 볼은 병색이 완연했다.
그런데도 그는 눈앞의 젊은 의원을 향해 씨익 웃었다.
“그렇게 애쓰실 것 없소, 주 의원.”
“…….”
주 의원이라 불린 젊은 의원.
주장명의 눈 위로 안타까움이 번져 갔다.
십 년의 세월 동안 실력을 갈고닦아 이제는 이곳 신마의가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지니게 된 그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손을 쓸 수 없는 환자 앞에서는 매번 그렇듯 아득한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치료의 효과는 미미했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상세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침을 이용해 역류하는 내기를 간신히 다스렸지만 이조차도 어디까지나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금만 버티세요. 곧 큰 의원님께서 도착하실 겁니다.”
주장명의 말에 장곡이 입가의 피를 훔치며 힘겹게 웃었다.
“그리 애쓸 필요 없대도. 내 병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네.”
무려 십 년이었다.
신지에서의 마지막 혈전.
그곳에서 얻은 내상이 발작으로 이어진 건 무위로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더구나 한번 깊게 내린 지병은 좀처럼 뿌리를 뽑을 수 없었다.
“지긋지긋하던 병마가 이제는 가끔 친구처럼 느껴지곤 해. 아마도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는 의미겠지.”
의연한 장곡의 눈빛에 주장명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무언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암담하고 괴로웠다.
그러나 주장명은 애써 웃어 보였다.
“그래도 그날이 오늘은 아닐 겁니다.”
이 순간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
그래도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 놨으니 그사이에 풍진성이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느새 굵은 땀을 흘리면서도 주장명은 손을 쉬지 않았다.
위화신공을 운용해 장곡의 경혈 곳곳에 진기를 흘려 넣는 한편, 내기의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 주장명을 응시하는 장곡의 눈 위로 희미한 온기가 자리 잡았다.
새삼스럽지만 이 순간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는 그였다.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비 등에 업혀 이곳을 찾아온 어린 소년이 지금은 풍진성과 주초운이라는 거물 의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지금쯤이면 단 의원님도 많이 달라지셨겠지?’
불현듯 단악선이 그리워지는 장곡이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언제부턴가 부쩍 단악선이 생각나곤 했다.
‘가기 전에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건만…….’
쓸쓸하게 웃은 장곡이 가만히 손을 들어 주장명의 어깨에 올렸다.
“되었으니 그만하게. 그러다 쓰러지면 자네에게 의지하는 환자들은 어찌하려고?”
“하지만…….”
“난 이제 되었네. 마교 놈들을 이 땅에서 쓸어 낸 것으로 내 할 일은 다 한 셈이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네. 그러니 이제 그만하시게. 자네는 할 만큼 충분히 했어.”
그런 장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장명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의원은 환자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 배웠고, 앞으로도 그리 살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걱정된다면 운기에 더욱 집중하십시오.”
장곡이 쓰게 웃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간혹 느끼는 것이지만 고집에 있어서만큼은 웬만한 무림인도 의원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때였다.
벌컥.
방문이 열리며 서둘러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큰 의원님!”
반색하는 주장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풍진성이 서둘러 장곡을 진맥하고는 침을 꺼내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하여…….”
말끝을 흐리며 자책하는 주장명의 모습에 풍진성이 미소를 건넸다.
“아니다. 애썼다. 그나마 네가 있었기에 다행이지, 만약 제때 손을 쓰지 못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뻔했느니라.”
이때 장곡이 물끄러미 풍진성을 응시했다.
얼마나 서둘러 달려왔는지 초췌한 얼굴 위가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풍 의원님.”
가만히 자신을 부르는 장곡과 시선을 마주한 풍진성은 이어진 그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제게 헛되이 쏟는 시간과 노력을 다른 환자들에게 돌리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저는 거짓말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잠시 의아해하던 장곡은 이어진 풍진성의 말에 표정을 달리했다.
“제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곡주님을 다시 만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견뎌 보겠다고.”
“…….”
“게다가 소하는 어쩌고요?”
장곡의 눈매가 꿈틀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기에는 아직 어린 딸이 마음에 걸렸다.
꺼져 가던 생의 의지가 다시 한 번 타올랐다.
장곡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래. 우리 소하가 시집가는 모습은 보고 가야지.”
그런 장곡과 시선을 마주한 풍진성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오매불망 장 대협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조금만 더 버텨 보십시오. 반드시 제가 치료할 방법을 찾겠습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말을 건넨 풍진성이 고개를 돌려 주장명에게 눈짓을 했다.
이에 주장명이 품속에서 작은 자기병을 꺼냈다.
그리고 작은 찻잔 위로 자기병 안에 담겨 있던 미량의 가루약을 뿌린 뒤, 장곡의 입으로 가져갔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기맥을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니, 한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곡이 쓴맛이 감도는 차를 들이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고 축 늘어진 장곡을 조심스럽게 침상에 눕힌 풍진성이 잠시 안타까운 눈빛을 흘렸다.
순식간에 얕은 잠에 빠져 잠꼬대를 중얼거리는 장곡.
사실 지금까지 버텨 온 것 자체가 기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상태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말 그대로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정말 남은 시간이 얼마 없구나.”
초기 적시에 잡지 못한 부작용이 주화입마로 이어졌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진행이 빨라지고 있었다.
“일단 좀 쉬시지요. 장 대협의 상태는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자신을 염려하는 주장명의 말에 풍진성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다. 언제 상태가 급변할지 모르는 만큼 섣불리 자리를 비울 수가 없구나.”
“의원이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건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너야말로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처지가 아닌 듯싶은데?”
서로의 초췌한 모습을 마주하며 두 사람이 쓰게 웃던 그 순간.
“의원님, 아두입니다.”
밖에서 들려온 아두의 음성에 풍진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금일 예정되어 있는 일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살짝 격앙되어 있는 아두의 음성에 풍진성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서자마자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두 뒤에 서 있는 훤칠한 키의 청년.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청년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풍진성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곡주님?”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풍진성을 향해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역시 아저씨는 곧바로 절 알아보시네요.”
자신의 외양이 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는 걸 단악선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왜인지 풍진성만큼은 알아보리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찌 몰라보겠습니까.”
단악선을 응시하는 풍진성의 눈빛에 격동한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신의와 마의.
눈앞에 서 있는 단악선의 얼굴에는 두 분 스승님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풍진성이 서둘러 단악선을 향해 다가섰다.
그러다 실수로 발을 헛디뎌 크게 휘청했다.
비틀거리는 풍진성을 단악선이 재빨리 부축했다.
자신을 지탱하는 억센 팔.
그리고 이제는 올려다봐야 할 만큼 키가 커진 단악선의 모습에 풍진성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새삼 느끼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은 차치하고, 당장은 눈앞에 단악선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를 잠시.
“돌아오실 거라 믿었습니다.”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풍진성.
물기 어린 음성에는 그간의 오랜 염려와 그리움이 녹아 있었다.
“미안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단악선의 사과에 풍진성이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십 년 동안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몸소 실감했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그 순간 풍진성은 자신의 맥문을 통해 따듯한 기운이 흘러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저는 괜찮습니다.”
풍진성이 사양했지만 단악선은 안쓰러운 눈빛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기가 많이 허해지셨어요. 잠시면 되니 편하게 몸을 맡기세요.”
풍진성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건 그 직후였다.
온몸을 휘도는 청량한 진기를 따라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가시며 새로운 활력이 그 자리를 채워 가고 있었다.
풍진성이 감탄 어린 눈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이미 진맥을 마치고, 더 나아가 무공을 활용해 빠르게 심신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단악선의 의술.
과거에도 그랬듯 독보적인 의술을 지닌 단악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큰 진전을 이루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린 풍진성이 다급히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곡주님!”
“네?”
“저보다 앞서 살펴봐 주셨으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갑자기 자신을 안으로 잡아끄는 풍진성의 모습에 단악선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장곡을 마주한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반면 주장명은 놀란 눈으로 단악선과 풍진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신마의가 내에서도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장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진성이 직접 데리고 들어온 만큼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
주장명의 눈 위로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러곤 이내 낯선 외부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눈에 담았다.
진맥을 시작으로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모습에서 전문가만이 지닐 수 있는, 몸에 밴 노련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최근 들어 용태가 급격히 악화되었군요.”
그리고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주장명이 깜짝 놀랐다.
“이런 몸으로 십 년이나 버티다니…….”
“그걸 어떻게?”
뒤늦게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는 침을 발견한 주장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나 달라진 모습에 당장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는 선앙침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눈앞의 청년이 진기를 끌어 올리자 전신에서 흘러내리는 기운이 더없이 익숙했다.
그 역시 위화신공을 익혔기 때문에 몰라볼 수가 없었다.
“설마……?”
단악선이 빙그레 웃으며 주장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오랜만이야, 장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