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1)
신마의선-441화(441/500)
신마의선 (441)
“형!”
주장명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둘도 없는 은인.
자신의 불치병을 치료해 줌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구해 준 더없이 고마운 존재가 바로 단악선이었다.
무엇보다 신마곡에서 함께 수련하며 지내 온 세월이 있었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친형제 이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반색하며 다가서는 주장명을 제지하며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일단 다리 쪽의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을 맡아 줄래? 풍 아저씨께서는 아랫배 부근의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을 맡아 주시길 부탁드려요. 두 사람 모두 제가 신호하면 충혈의 방법으로 교회혈을 자극해 주세요.”
잠시 인체 경락의 기본이 되는 십이경맥(十二經脈).
진맥을 통해 그 흐름을 확인한 단악선이 어느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풍진성과 주장명이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단악선 역시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에 해당하는 혈도 세 곳에 선앙침을 찔러 넣었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장곡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것도 그때였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경련하는 장곡.
그런 그의 몸을 누르며 단악선이 빠르게 외쳤다.
“용천(湧泉)에 닷 푼 깊이로! 노궁(勞宮)은 침 끝이 반응하는 깊이까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장명이 장곡의 발바닥의 움푹 파인 부분에 침을 찔러 넣었고, 풍진성 역시 짧은 침으로 손바닥 부근에 침을 놓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장곡의 경련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신에서 땀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취(屍臭)에 가까운 지독한 악취가 방 안 전체를 가득 메웠다.
그런데도 풍진성과 주장명의 얼굴은 더없이 환해졌다.
얼음장처럼 차갑던 장곡의 몸이 점차 뜨거워지며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곡이 힘겹게 눈을 뜬 것도 그때였다.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까?”
힘없이 중얼거리는 장곡을 향해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지금까지 견뎌 주셔서 고마워요.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이며 단악선을 올려다보던 장곡이 누운 채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단악선이 가만히 장곡의 손을 잡았다.
“죄송해요.”
각자의 의지로 결정한 일이라곤 하나 마교 토벌을 주도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비록 마교는 물리쳤지만 그로 인한 희생이 너무 컸다.
장곡이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마교를 쓰러트린 건 제 자부심입니다. 자랑스러운 일을 했는데 사과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고마워요.”
단악선이 장곡의 맥문혈을 통해 진기를 흘려 넣었다.
“한숨 더 주무세요. 반드시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드릴게요.”
“단 의원님을 이렇게 다시 뵌 것만으로도 이미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장곡은 금세 다시금 잠에 빠져 들었다.
장곡의 호흡과 기혈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단악선이 처방에 필요한 약재들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이에요. 조금만 늦었다면 천추의 한이 될 뻔했어요.”
단악선의 말에 풍진성이 자책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장 대협은 운이 좋았습니다. 늦기 전에 곡주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제야 단악선이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우리 측 피해가…… 많이 컸나요?”
풍진성과 주장명 모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풍진성이 무거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신지에서 생환한 무위의 사람들은 이 할 남짓이었습니다. 그나마도 부상과 후유증 때문에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단악선이 침음성을 흘렸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예상을 훨씬 웃도는 피해 앞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구파일방 내에서도 추리고 추린 정예 고수들.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 왔던 만큼 집단전에서도 그들은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반면 무위의 사파인들은 개개인의 역량은 뛰어날지라도 조직적인 전투에는 취약했다.
그런데도 가장 선두에서 싸웠다.
“정파 쪽 피해는 어느 정도였죠?”
“이천의 정예 중 무사히 돌아온 인원은 오백 명 정도라 들었습니다.”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종극진과 싸움 이후 온전한 상태가 아니어서 제때 피해를 수습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게다가 신마삼존은 이와 관련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단악선은 육신과 정신이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혹시라도 상태가 악화될까 싶어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 소지가 있는 내용은 일부러 입에 담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양패구상(兩敗俱傷)에 가깝군요.”
단악선의 탄식에 풍진성이 씁쓸한 눈빛을 흘렸다.
“전쟁이란 본디 그런 것이지요.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서로가 감내할 피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마교 토벌 이후 발생한 문제들을 미리 염두에 두었어야 했는데.”
“곡주님 탓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정도 피해로 그친 게 다행이죠. 곡주님의 빠른 결단이 아니었다면 자칫 중원 전역으로 사태가 확전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되었다면 그 피해는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신지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덕분에 마교와의 싸움에서 무고한 일반 백성이 휩쓸리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씁쓸한 표정을 짓던 단악선이 이윽고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일단은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하죠.”
단악선이 혼절한 장곡을 비스듬하게 눕힌 다음 아랫배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은 등 쪽의 풍문혈에 갖다 댔다.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풍진성을 향해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장 대협의 상세를 호전시킬 수 없어요.”
“설마…….”
풍진성이 말끝을 흐리며 단악선을 응시했다.
천천히 내공을 끌어 올리는 단악선의 모습에서 그 방법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진기를 이용해 직접 망가진 기맥을 복구하실 생각이십니까?”
“네.”
풍진성이 우려를 담아 단악선을 바라봤다.
그라 해서 그 방법을 몰라 시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장곡의 망가진 기맥과 기혈을 온전히 복구하기 위해서는 벌모세수(伐毛洗髓)에 버금가는 개정대법이 필요했다.
하나 이를 시도하지 못한 이유는 개정대법 자체에 막대한 내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불문 무학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소림조차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개정대법을 펼치다 생명의 근간이 되는 본원진기마저 쏟아붓고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한 것이다.
눈부신 서기가 단악선의 전신을 타고 흘러내린 건 그 직후였다.
“……!”
이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주장명이었다.
단악선의 전신을 에워싼 채 끈임없이 일렁이는 유형화된 진기.
그것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위화신공의 신위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저 가까이에 서 있을 뿐인데도 온몸이 저릿할 만큼 정순하고 막대한 진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주장명이 탄성을 터트렸다.
“결국 완성하셨군요.”
그토록 추구했던 무의 끝자락.
이를 거머쥔 단악선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치료를 시작할게요.”
* * *
한편 그 시각.
자금성 내에 마련된 모처에서는 어전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황제가 직접 참여하는 회의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 사람이 읽고 있던 서류를 와락 구기더니 누군가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러 댔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할 거면 대체 회의는 왜 하고, 재가는 왜 얻습니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식의 예산 집행은 애초부터 논외의 사항이라고요!”
대뜸 버럭하는 능소밀의 모습에 황제는 어이없다는 눈빛을 흘렸다.
반면 능소밀의 험악한 눈빛을 받아 내던 상대는 당혹감에 새하얀 눈썹을 꿈틀했다.
“이보시게, 부도어사(副都御史)! 폐하께서 지켜보고 계시네. 언행에 신중을 기하게!”
사례태감의 질책에 능소밀이 되려 목소리를 높였다.
“아,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런답니까? 저도 다른 대신들처럼 근엄하고 점잖게 회의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저를 몹쓸 놈으로 만드십니까?”
“이 사람이?”
“언행에 신중을 기하면? 이미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세금이 다시 돌아온답니까? 아니면 무너진 제방이 알아서 복구된답니까? 무엇 하나라도 그리된다면 기꺼이 그리하지요. 한데 아니잖습니까? 이렇게 제가 미친놈처럼 설치지 않으면 또 유야무야 적당히 넘어갈 것 아닙니까?”
“허…….”
“좋습니다. 다 좋단 말입니다. 그래도 이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구멍 난 혈세는 누구 돈으로 메웁니까? 아닌 말로 공공께서 가산을 정리해 세수에 보태시겠다면 저도 입 다물겠습니다.”
“끄응.”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드는 능소밀의 모습에 사례태감은 골치가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며 관자놀이 부근을 문질렀다.
고작 정삼품의 관리가 승상의 지위에 버금가는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며 따지는 상황 자체가 당혹스럽기만 했다.
‘괜히 도찰원(都察院)으로 보냈어.’
이제 와 뒤늦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그였지만 황제의 직인이 찍힌 임명장이 내려간 이상 번복할 수도 없었다.
황제는 중원을 헤아릴 눈과 귀가 필요했고, 능소밀만 한 적임자는 찾기가 어려웠다.
본래 지방의 성(省)과 관리들의 임무 수행 능력을 감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도찰원은 동창과 금의위의 정보력에 밀려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된 상태였다.
한데 능소밀이 도찰원 소속의 부도어사로 내정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능소밀이 맡은 직책인 부도어사는 본래 도찰원의 장관인 좌우(左右) 도어사(都御司)를 보필하는 자리였다.
한데 지금은 되레 그의 상관인 도어사가 능소밀의 눈치를 살피는 형국이었다.
그만큼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능소밀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원 각지에서 능소밀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백여 명의 감찰어사들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활동이 활발해졌다.
본래 그들의 역할은 감찰 결과를 직접 황제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하나 실제로는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 온갖 유관 기관의 알력과 간섭.
거기에 황제에게 올리는 상소나 황제가 발표하는 칙령 등을 총괄하는 중앙 부서인 통정사(通政司)를 일찌감치 장악해 버린 사례감으로 인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능소밀이 귀신같은 솜씨로 도찰원을 장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세금이 줄줄 샙니다. 작정하고 떼먹으려 해도 이렇게는 못 할 겁니다. 그 정도는 관례라고 하면서 또 넘어가실 겁니까? 공부에서 직접 인부를 고용하고, 예산의 사용처 역시 유관 부서인 호부에서 직접 나서야 한다고 이미 몇 번이나 말씀드렸을 텐데요.”
자신들에게 갑자기 불똥이 튀자 호부상서와 공부상서가 움찔했다.
“이보시게! 말조심하게! 떼먹다니! 모든 사업에 조사는 필수인데 사람을 쓰려면 당연히 돈이 들어가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그걸 어찌 세금을 떼어먹는다 표현하나?”
사례태감의 언성이 높아지자 능소밀이 들고 있던 서류를 흔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매년 똑같은 제방 조사는 도대체 왜 하는 겁니까! 그리고 설사 한다 한들! 두세 명의 전문가만 보내면 될 것을! 이거 보십시오! 일 차 조사에 서른두 명! 이 차 조사에 오십 명! 거기에 식사비로 은자 백 냥? 분명 먹은 음식은 소면이라 기재되어 있는데 그 국물은 은으로 우려낸답니까?”
“그 말은 내가 비리라도 저질렀다는 말인가! 그래 봐야 모두 따져도 예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네. 그 정도는 원활한 공사를 위해서 넘어갈 수 있는 부분 아닌가!”
“허! 그런 식으로 낭비되는 예산이 비단 그곳 하나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러니 백성들 사이에서 나랏돈 빼먹지 못하면 멍청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이거 직무 태만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비리로 엮여도 할 말 없는 문제란 말입니다!”
그 말에 사례태감이 발끈했다.
나름 청렴함을 추구하며, 이에 자부심을 지닌 몇 안 되는 청백리(淸白吏)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감히 나를 탐관오리 취급을 해?”
“녹봉은 녹봉대로 챙겨 놓고 아랫사람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하면 그게 비리랑 뭐가 다릅니까?”
결국 먼저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사람은 사례태감이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지껄이고도 무사할 줄 아는가?”
“왜요? 그토록 자랑하시는 동창을 동원해 제 뒤라도 터시게요?”
“뭐라?”
“예. 좋습니다. 까짓 거 한번 해 봅시다. 이참에 서로 한번 제대로 붙어 보지요. 오늘부로 우리는 동창 감찰에 들어갈테니 동창은 우리 감찰원 캐십시오. 아주 서로 발가벗고 어디가 더 먼지가 많이 나오는지 털어 보잔 말입니다!”
‘미친놈인가?’
사례태감은 황망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