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2)
신마의선-442화(442/500)
신마의선 (442)
너무 어이가 없으면 오히려 화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순간 새삼 깨닫는 사례태감이었다.
“오냐! 그 말 후회하지 말도록!”
대전 안을 오가는 날 선 눈빛과 험악한 분위기.
서로가 멱살을 잡지 않는 게 용할 정도였다.
“그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보다 못해 황제가 직접 나선 것이다.
고개를 숙이며 물러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황제가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짐이 너희의 충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례태감과 능소밀.
두 사람 모두 그가 가장 아끼는 신하들이었다.
그런데 능소밀이 문제였다.
필요하다 싶어 황궁으로 데리고 왔더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들이받으며 평지풍파를 일으켜 대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내칠 수도 없었다.
모든 일을 원리, 원칙대로 처리하는 데다 국정 쇄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당장만 해도 그랬다.
딱히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리 노회한 대신이라도 수틀린다 싶으면 일단 들이받고 보는 저 막무가내식의 태도는 정말이지 그조차 질릴 정도였다.
“금일 회의는 여기까지만 하지.”
“하오나 폐하, 아직 소신은…….”
“…….”
지그시 자신을 노려보는 황제의 서슬 퍼런 눈빛에 능소밀이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황제가 낮게 한숨을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다들 자리를 무르라. 사례태감과 부도어사만 남도록.”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전을 가득 메우고 있던 대소 신료들이 서둘러 대전을 빠져나갔다.
능소밀을 지그시 쏘아보던 황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짐은 분명히 네게 약조했느니라. 단 의원이 돌아오면 무위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짐과 함께 국정을 논함에 있어 최선을 다한다고 했던 그대의 약조 역시 기억하겠지?”
이어진 황제의 말에 능소밀이 움찔했다.
“이렇게 깽판을 친다고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는 의미다.”
“……!”
“짐의 약조는 무겁다. 그러니 이제 적당히 하도록.”
능소밀이 내심 혀를 찼다.
‘이래서 눈치 빠른 인간들은…….’
슬쩍 곁눈질로 맞은편의 사례태감을 살피니 황제의 말이 사실인지 눈빛으로 캐묻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굴한다면 능소밀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은 능소밀이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하신 말씀이옵니다, 폐하. 깽판이라니요? 어찌 감히 소신이 폐하의 어전에서 그런 불측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나이까?”
“…….”
“하나 폐하께서 그리 느끼셨다면 그런 것일 테지요. 그래도 이것만큼은 알아주십시오. 소신이 간혹 무례한 언사로 대신들과 언쟁을 벌이는 것 또한 오직 폐하를 향한 충심에서 발로한 것이옵니다.”
“어디까지나 짐의 오해다?”
황제의 음성이 어딘가 심상치 않았지만 능소밀은 태연했다.
이왕 진흙탕에 발을 담갔으니, 발목까지 빠지나 무릎까지 빠지나 매한가지.
“제가 폐하 곁에 머무는 동안 도찰원의 역할을 다하라 폐하께서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나이까? 소신은 그저 폐하의 성지(聖旨)를 받들기 위해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자세를 견지해, 스스로를 더욱 담금질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옵니다.”
황제가 피식 웃었다.
“강호에서 너를 가리켜 능요능설(能妖能舌)이라 한다지?”
“……!”
“왜 그리 불리는지 짐 또한 알겠노라.”
이 좁은 황궁에서 십 년이나 함께 지지고 볶았으니 이제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짐은 너를 높게 평가한다. 도찰원이 본래의 위상과 역할을 되찾고, 그로 인해 황실 내의 비리 역시 크게 줄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인 업적.”
실제로 황실과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기에 능소밀만큼 요긴한 칼이 없었다.
게다가 약점을 쥐고 은밀하게 흔들어 대는 동창과 달리, 차라리 후환은 없어 의외로 능소밀에 대한 대신들의 평은 나쁘지 않았다.
대놓고 면전에서 날리는 면박이 난감하긴 했으나 이 역시 그때만 견디면 되는 것이다.
“하나 짐의 총애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설치는 것은 더 이상 짐도 간과하지 않겠노라.”
“…….”
“행여 삭탈관직(削奪官職)이나 유배를 기대하고 있다면 그 역시 포기하라. 짐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
“이만 물러가도록. 누구 때문에 머리가 아프구나.”
입술이 한 자만큼 나와 물러서는 능소밀의 모습에 황제는 골치 아픈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인지 이따금 스스로에게 반문하곤 했다.
큰 목적을 위해서는 필요한 인재였지만 그 때문에 어전 회의는 하루도 순탄하게 흘러간 적이 없었다.
이쯤 되니 대체 내일은 또 무슨 꼬투리를 잡아 난장을 피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황제를 고심하게 만드는 문제는 따로 있었다.
‘대체 저자를 어찌해야 진정한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겉으로는 자신을 위해 충성하고 있으나, 실제로 능소밀이 진실로 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황제 역시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능소밀이 욕심이 났다.
관우를 자신의 사람으로 삼기 위해 그토록 노력을 기울였던 조조의 심정을 알 것 같은 이유도 그래서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폐하. 동창장인태감(東廠掌印太監) 조승이 폐하의 알현을 청하고 있나이다.”
자신을 보필하는 근시 환관의 보고에 황제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제독동창이?”
황제의 눈 위로 의아함이 자리 잡았다.
황실의 눈과 귀인 동창의 수장이 이처럼 따로 조용히 찾아왔다면 그 사안 역시 가볍지는 않을 터.
아니나 다를까.
“들라 이르라.”
조심스럽게 대전 안으로 들어선 노환관이 가져온 소식은 황제에게 또 다른 고민을 안겨 주었다.
“신마의선……. 그 단가 악선이 돌아왔다고?”
찡그린 황제의 미간 사이로 감출 수 없는 갈등이 묻어났다.
약조는 했지만 이대로 막상 능소밀을 보내려니 아쉬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 * *
“자네, 나 좀 보세.”
대전을 나서기 무섭게 자신을 불러 세우는 사례태감을 향해 능소밀은 방긋 웃었다.
“아무렴요. 공공께서 보자시면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 만들어야지요. 헤헤.”
방금 전과 다르게 사근사근한 능소밀의 태도에 노환관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어전에서 죽자 살자 달려들어 물어뜯던 미친놈이 갑자기 이처럼 친근하게 구니 황당하기만 한 것이다.
물끄러미 능소밀을 응시하던 그가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오늘 자네가 선을 넘었다는 사실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겠지?”
“제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습니까?”
능소밀이 땅이 꺼저라 한숨을 내쉬었다.
“공공께서 누구보다 청렴결백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저를 포함한 조정의 문무백관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사례태감의 자리라는 것이 마냥 사람만 좋아서도 안 된다는 것을 공공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말은 내가 무르다는 뜻이렷다?”
“에헤이. 그게 아니라 더없이 인자하신 것이지요. 문제는 공공의 호의에 기대어 아랫것들이 주제 모르고 날뛰고 있다는 점이고요.”
사례태감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달리하는 능소밀의 모습에 짧게 코웃음을 쳤다.
누가 먼지가 더 많이 나오는지 서로 털어 보자며 쌍심지를 켜던 놈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닌것이다.
“나는 다른 대신들과 다르네. 결코 자네의 요설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야.”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전 내일도 공공을 대놓고 공격할 테니까요.”
사례태감의 눈매가 꿈틀했다.
“지금 내게 선전 포고를 하는 겐가?”
“그래야 효과가 있으니까요.”
“……?”
“제가 미친놈처럼 설쳐 대야, 공공께서 운신할 폭이 조금이라도 넓어지지 않겠습니까?”
사례태감이 깜짝 놀랐다.
그 역시 이 정치판에서 온갖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능소밀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능소밀이 끊임없이 자신을 공격하면, 이를 빌미로 대립각을 세워 새로운 정치 세력 구도를 정립할 수 있었다.
“어차피 제가 더 많이 욕을 먹을 테니, 어전 회의에서의 무례는 눈감아 주시지요.”
태연자약한 능소밀의 말에 침음성을 흘리길 잠시.
사례태감도 호락호락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내 오늘까지는 참았으나, 다음부터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장강 인근 마을들을 중심으로 위소의 병력이 지나치게 많이 편중되었다는 이야기가 슬슬 흘러나오기 시작했어.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걸 자네도 모를 리 없을 테고.”
그 말에 능소밀이 정색했다.
“스승님! 그건 이미 서로 암묵적으로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하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왜 자네 스승인가!”
“아차! 저 홀로 품고 있었던 진심을 그만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군요.”
버럭 하는 사례태감을 향해 능소밀이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이곳 황궁에서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이라고는 공공만이 유일하지 않으십니까.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공공께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있고요.”
“…….”
“제가 공공을 좋아하는 건 알고 계시지요?”
“일없네!”
능소밀이 웃음기를 싹 거둔 얼굴로 사례태감을 응시했다.
“솔직히 공공께서도 이 기회에 정리를 좀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이어진 능소밀의 말에 사례태감이 멈칫했다.
“저더러 선을 넘는다 하셨지만 최근 들어 진짜 선을 넘는 건 제독동창 휘하의 동창 위사들입니다. 공공의 오른팔인 제독동창이 요즘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아십니까?”
사례태감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라 해서 모르고 있어 나서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예의 주시하고 있을 뿐.
“단단히 주의를 주십시오. 아니면 독하게 내치시든가요. 확실한 건 공공께서 그자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능소밀이 힘을 주어 말했다.
”전 공공은 믿지만, 공공 휘하의 사람들을 믿지는 않습니다.“
“자네는 정말…….”
말끝을 얼버무린 사례태감이 한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능소밀을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한 번 더 속아 주지.”
그 말과 함께 돌아서는 사례태감을 지켜보는 능소밀의 속도 좋지만은 않았다.
한 걸음만 헛디뎌도 천 길 낭떠러지뿐인 황실 정치.
그 백척간두 끝에 서 있는 그가 얼마나 외로운지 이제는 십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례태감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서야 능소밀도 자금성을 나섰다.
그런데 처소에 도착하니 뜻밖의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적산이 인편을 통해 서신을 보내온 것이다.
서신을 움켜쥔 능소밀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마침내!’
능소밀이 서신을 가져온 신마상단의 행수를 향해 황급히 물었다.
“그분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
행수가 곧장 대답했다.
“제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북경으로 향하셨다 들었습니다.”
“여기로 오신다고?”
한껏 반색하던 능소밀이었지만 이어진 행수의 말에 표정이 흐려졌다.
“예. 아무래도 능 대협이 수월하게 정계를 떠나시려면 황제를 배알하는 것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무거운 한숨과 함께 능소밀이 고개를 저었다.
“뜨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당장은 그럴 수가 없다.”
오랜 시간 능소밀을 보아 온 행수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만큼 그동안 누구보다 애타게 단악선을 기다려 왔던 능소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소밀의 푸념을 듣자 이내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이대로 관직을 내려놓고 야인으로 돌아간다면 장강 일대에 배치한 위소의 병력들이 어찌 될 것 같으냐?”
그렇지 않아도 자신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동창과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서 철수와 병력 재배치를 주창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되면 근래에 무섭게 창궐한 수적 놈들을 견제할 몇 안 되는 수단을 잃게 된다.
피곤한 삶을 자초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단악선이 지켜 낸 민초들의 삶이 다른 강호 세력에 의해 피폐해지는 꼴만큼은 절대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