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3)
신마의선-443화(443/500)
신마의선 (443)
“수적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아직은 놈들도 황실의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놈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지.”
서신을 가져온 행수가 존경 어린 눈빛으로 능소밀을 바라봤다.
조정에 이런 관리들만 있다면 진즉에 세상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그나저나 편찮으신 덴 없다 하더냐?”
“예?”
“단 의원님 말이다.”
“아! 네. 얼마 전 뵈었을 때는 무탈해 보이셨습니다.”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야.”
능소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역시 단악선이 십 년 넘게 신지에 웅크리고 있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마음을 졸여 온 그였다.
몇 번이고 떠올렸던 최악의 상황.
그 우려가 비껴가 천만다행이었다.
“음?”
그러다 문득 능소밀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지그시 자신을 응시하는 능소밀의 모습에 행수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런 그를 향해 능소밀이 못마땅한 눈빛을 던졌다.
“요새 신마상단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미 근처까지 오시지 않았느냐?”
“네? 설마…….”
“그래. 그 설마다.”
능소밀이 벌떡 일어섰다.
단악선을 마중하기 위해서였다.
능소밀 역시 단악선과 마찬가지로 위화신공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단악선과는 다르게 치료에 직접 사용할 수도, 무공으로서의 위력도 떨어졌다.
다만 다른 형태로 발전한 그만의 위화신공은 나름의 독특한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대략 십 리 안이라면 어디서라도 단악선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동물과 교감할 수도 있었고,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파악하는 능력도 생겨났다.
노회한 대신들을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감정의 기복을 통해 거짓 유무를 판단할 수 있었으니 쉽게 대화의 주도권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언젠가 자신을 진맥한 단악선이 말하길, 다른 이들에 비해 유독 상단전이 발전했다고 했다.
오랜 세월 정보 단체를 이끌었던지라 살아왔던 삶에 영향을 받아 발현된 특성인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자신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는 고수들에 한해서는 소용이 없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신마삼존이 그랬다.
“어쩔 수가 없지 않습니까? 수로 연맹이 물길을 막아 버려 이동 수단이 육로로 한정된 저희와 다르게 단 의원님은 무공을 익히셔서 제약을 받지 않고…….”
오해를 풀기 위해 황급히 입을 열었던 행수가 이내 말끝을 흐렸다.
이미 능소밀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 * *
“이것도 좀 드셔 보십시오.”
자연스럽게 음식을 집어 자신의 그릇 위에 올려 주는 능소밀의 모습에 단악선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만나자마자 왜 이리 야위었냐며 호들갑을 떨더니, 대뜸 자신을 객잔으로 끌고 온 능소밀이었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마치 아이 다루듯 생선을 직접 발라 건네고 있었다.
그런데 난감한 점은 이미 단악선의 키가 능소밀을 넘어섰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능소밀은 서둘러 달려온 탓에 관복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
객잔 안을 오가는 많은 이들의 이목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쏠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눈에 봐도 조정의 높은 관리가 분명한 사람이 이토록 극진하게 대접하는 광경이 매우 호기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아저씨도 드세요.”
“하하. 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릅니다.”
호탕하게 웃은 능소밀이 뒤늦게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손을 들어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오리구이도 하나 내오게.”
“여기에서 더 시키시려고요?”
단악선이 놀라 반문했다.
이미 식탁 위에는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한 상태였다.
“오리구이 좋아하셨잖습니까? 특히 이곳까지 오셨으니 북경고압(北京烤鸭)은 꼭 맛보셔야지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단악선은 그런 세세한 것까지 기억해 주는 능소밀이 고마워 차마 사양할 수가 없었다.
음식들을 하나씩 음미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도는 수도였다.
사람과 문화가 모여드는 중원의 중심지인 만큼 음식의 종류도 다양했고 맛도 각별했다.
그렇게 식사를 이어 가던 도중.
단악선은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자신을 응시하는 능소밀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만?”
“세월이 지났다는 게 실감이 돼서요.”
항상 기억했던 예전의 단악선과 지금의 장성한 청년이 동일 인물이라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의 모습이 과거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특히 분위기가 그랬다.
봄날의 아지랑이 같던 온화하고 여린 성정.
그래서 유독 눈물이 많아 안타까웠던 그때의 소년은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어 버리셨습니까.”
아쉬움 반, 기쁨 반으로 능소밀이 너스레를 이어 갔다.
“조만간 적당한 혼처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군요. 사실 스물일곱이면 진즉에 가정을 꾸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니까요. 하긴 굳이 이쪽에서 나설 필요도 없으려나요?”
명성이 높아지고 중원에 신마의선이라는 명호가 알려지면서부터 혼담 제의가 끊이지 않았던 단악선이었다.
명예와 재력, 거기다 중원 무림에 지닌 영향력.
그런데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외모까지 더해진 이상, 혼기가 찬 여식을 둔 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조만간 여기저기서 매파가…….”
무심코 입을 열었던 능소밀이 뒤늦게 아차 싶었다.
‘이런 멍청한!’
반가운 마음이 앞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만 것이다.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능소밀이 점소이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궁보계정(宮保雞丁)과 우육편사(牛肉編絲)도 가져다주게!”
새로운 음식을 주문한 능소밀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 두 가지 음식만큼은 꼭 맛보셔야 합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이곳만의 각별한 맛이 있거든요.”
“괜찮아요.”
“예?”
“그렇게 애쓰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단악선이 조용히 웃으며 능소밀과 시선을 마주했다.
“영순 공주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그, 그게…….”
난감한 눈빛을 흘리던 능소밀이 이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진즉에 하가(下嫁)하셨지요.”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괜히 미안해진 능소밀이 눈앞의 음식을 뒤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삼 년 정도를 기다리셨습니다.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명색이 황실의 장공주(長公主). 황실의 예법 때문에라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군요.”
단악선이 씁쓸하게 웃었다.
정작 크게 아쉽다거나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애초에 서로 간의 애틋한 마음을 품을 만큼 관계의 진전을 이룬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호감을 지녔던 것도 사실.
게다가 삼 년이나 자신을 기다렸다는 말을 듣고 나니 미안하고 안쓰러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능 아저씨의 결정에 탄복했어요.”
단악선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애잔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능소밀 때문이라도 화제를 전환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장강 일대에 군사를 배치하셨다고요? 그토록 싫어하는 황궁에 남아 계시는 이유도 그 때문일 테고요.”
“역시 알아주시는군요!”
능소밀이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강수로연맹의 총채주. 번강룡인가 뭔가 하는 그놈만 정리되면 미련 없이 훌훌 털고 나올 겁니다. 이제 곡주님도 오랜 칩거를 깨고 돌아오셨으니, 저 또한 무위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와 관련해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놈을 절대 얕봐서는 아니 됩니다. 특히 물 위에서는 절대 싸우시면 안 됩니다. 화산파의 장문인조차 놈의 손에 쓰러진 이상 천하오절에 준하는 고수라 보셔야 합니다.”
“그런데 왜 범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신 건가요?”
늘 자신 곁을 지키던 초악량과 한설화와 달리 범계위는 대부분 해남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성격상 능소밀이 도움을 청했다면 툴툴대더라도 마지못해 달려왔을 터.
“어……. 음, 그건…….”
능소밀이 단악선의 시선을 회피했다.
“범 선배님께서는 무엇보다 가정을 지키셔야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당장은 강물이 용왕묘를 침범하진 못할 테고요.”
“단순히 그 이유 때문인가요?”
“사실은…….”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던 능소밀이 결국 한숨을 내쉬며 실토했다.
“사실 제가 황궁으로 오기 전에, 범 선배님께서 자주 무위에 오셨습니다. 그때마다 매번 얼마나 사고를 쳐 대시는지…….”
당시만 떠올려도 골치가 아픈 듯 능소밀이 엄지로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행여나 괜히 말이 새어 나갈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린 능소밀이 단악선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작게 속삭였다.
“제어하지 못하는 망산초자는 천마보다 무섭다.”
유일하게 범계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단악선의 부재.
거기에 제동을 걸어 줄 초악량과 한설화도 없으니 범계위는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강호를 활개 치고 다녔다.
물론 과거처럼 피를 보면 이성을 잃는 일은 없었다.
한데 오히려 그게 문제가 되었다.
원래 범계위는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급적 사람을 피하며 살아왔다.
한데 이를 극복한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하지만 그 성격이 어디 갈까.
그래도 범계위는 범계위였다.
괜히 망산초자라는 불길한 명호를 달고 다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분 자체가 워낙 인세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재앙이 잇따랐다.
게다가 그로 인한 사고의 뒷수습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사실 제가 황궁에 들어온 것도 반쯤은 그분을 피해 도망쳐 온 것이기도 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능소밀이 겪었을 고초를 떠올린 단악선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이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범계위는 결코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능소밀의 표정이 진지해진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사실 범 선배님께 사종악의 처리를 맡기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능소밀이 무거운 눈빛으로 한숨을 흘렸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미 천하오절 중 한 분인 화산파의 장문인께서 놈에게 당한 사례가 있으니까요.”
범계위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학을 떼는 능소밀이었지만, 사실은 내심 범계위에 대한 정이 각별한 것도 사실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범계위가 잘못된다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능소밀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때 단악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도 처음에 그 소식을 듣고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앞서 진명진인의 무공을 몇 번이나 가까이 지켜본 적이 있던 단악선이었다.
이를 통해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천하오절의 자리는 결코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랬던 그가 이토록 허무하게 목숨을 잃다니.
능소밀이 표정이 더없이 심각해졌다.
“지금은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어진 능소밀의 설명에 단악선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번강룡 사종악. 놈이 진명진인과의 생사결에서 승리한 지도 삼 년이 지났습니다. 놈은 그 승리를 기점으로 사파 세력을 규합해 지금은 장강수로연맹을 중심으로 한 사도련(邪道聯)의 창설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 마교 토벌에 참여하지 않은 사파의 인물은 물론이고, 이제껏 중립을 표방하고 있던 중소 문파까지 앞다투어 사종악 휘하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중립 문파들이요? 어째서죠?”
“그게…… 여러 가지로 시끄러웠거든요.”
신지에서 벌인 마교와의 마지막 싸움은 구파일방에게도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오랜 세월 구파일방의 위세에 숨죽이고 있던 중소 문파에게 있어 이는 두 번 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였다.
그들은 이제껏 구파일방에 눌려 쌓아 두었던 불만을 일거에 쏟아 냈다.
“온갖 사업 이권을 둘러싼 각축전이 중원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