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5)
신마의선-445화(445/500)
신마의선 (445)
“천첩 또한 여러분과 다를 바가 없어요. 실제로 문주님을 뵌 지 십 년이 넘었으니까요.”
설난영과 대치하고 있던 채주들.
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애꾸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연락할 방도는 있을 것 아닌가?”
설난영이 상대를 향해 빙긋 웃었다.
아무래도 그가 이들 가운데 가장 발언권이 강한 듯싶었다.
‘단홍도(丹紅刀) 조귀.’
상대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서른여섯 개에 달하는 장강수로채.
그중에서도 독랄한 심성으로 하남 일대에서 오랜 시간 흉명을 쌓아 온 노룡채(怒龍砦)의 채주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점조직이란 것이 대개 그렇듯, 문주님께서 절 찾아오실 수는 있으나 제가 먼저 연락할 방법은 없어요.”
쾅!
조귀가 거칠게 탁자를 내려쳤다.
“지금 어디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금 그 말을 믿으란 것이냐?”
대번 말투가 바뀌었다.
동시에 그의 눈에서 험악한 살기가 넘실거렸다.
하나 설난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사실입니다. 천첩을 이리 다그친다 해서 없는 방법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지요.”
잠시 곤혹스러운 눈빛을 나누던 사내들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선 것도 그때였다.
앞서 조귀와 달리 그는 제법 진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사도련의 이름 아래 우리는 모두 한 몸이 될 사이요. 훗날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협조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설난영이 지그시 그를 응시했다.
최근 사종악의 휘하로 몰려드는 사파의 고수들.
그 가운데에서도 단연 두각을 드러내는 혈사마편(血蛇魔鞭) 우문양이라는 자였다.
‘간도 쓸개도 없는 놈이 말은…….’
그는 그야말로 편복(蝙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리 붙었다 저리 붙는 박쥐 같은 자였다.
그가 한때 마교에 투신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나 설난영은 그의 정체에 대해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그를 비웃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상대를 회유하는 전형적인 수법에 놀아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거칠고 막무가내인 자를 앞세워 상대를 압박한 뒤 화술에 능한 자로 대체해 달래 가며 심문하는 방식.
그 방법이 너무 눈에 빤히 보여 한심할 지경이었다.
“사도련 말인가요…….”
슬쩍 운을 뗀 설난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림맹의 끝이 어찌 되었는지 다들 아실 텐데요. 그들과 같은 길을 걷겠다는 것입니까?”
“뭐라?”
조귀가 발끈하며 버럭 했다.
“그렇다면 하오문은 영원히 뒷골목 쥐새끼로 만족하며 살겠다는 건가?”
“그럼 한 가지만 묻지요. 사도련 아래 사파가 결집하면 정파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이야 구파일방의 피해가 크고 서로 간의 알력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하나, 눈앞에 거대한 적이 나타난다면 다시 하나로 결집할 것입니다. 사도련의 창설은 그들에게 명분을 쥐여 주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하지만 저들에게는 우두머리가 없다. 반면 우리에게는 맹주님이 계시지.”
삼 년 전, 화산과의 일전으로 이미 수로 연맹을 완벽하게 장악한 사종악이었다.
설난영이 내심 쓴웃음을 머금었다.
‘번강룡.’
강물을 뒤집어엎는 용이라는 의미였다.
그 광오한 명호는 처음에는 수많은 호사가들의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이제는 강호의 그 어느 누구도 그럴 수가 없었다.
진명진인을 꺾어 자신의 신위를 드러낸 그는 이미 일대종사로서 명성을 확고히 다졌기 때문이다.
“그분이 계시는 한 우리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달리 말해 그분만 사라지면 사도련이 쉽게 와해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요.”
“감히 어디서 그딴 망발을! 천하오절이라 불리던 화산파의 늙은이도 그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당금 무림의 어느 누가 그분을 적대할 수 있을까. 다른 천하오절이 숨죽이고 있는 것만 봐도 모르겠나?”
‘하!’
설난영은 어이가 없어서 하마터면 그들의 면전에 대놓고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과연 이 중에 제대로 천하오절과 조우해 본 이가 몇이나 될까.
만약 그랬다면 저딴 망발을 감히 입에 담지도 못했을 터.
이때 흥분한 조귀를 제지하며 우문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하오문 역시 결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오. 사도련의 깃발이 서는 날, 그 자리에 없는 자들은 모두 우리의 적으로 간주될 테니까.”
노골적인 위협에 설난영이 아미를 찡그렸다.
“지금 협박하는 건가요?”
“아직까지는 충고요. 우리가 협박하려 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도 않았을 거요.”
조귀가 소름 끼치는 웃음을 말아 올렸다.
“왜? 제대로 협박해 줘?”
살의를 짙게 베어 문 그의 눈빛에 설난영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저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곳 지부가 피에 잠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문주님께 연락할 방도를 찾아보죠.”
조귀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닷새 주지.”
침음성을 흘리던 설난영이 돌아서는 사내들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문주님을 갑자기 왜 찾으시려는 거죠? 혹시 당신들이 원하는 목적이 따로 있나요?”
멈칫하는 그들의 모습에 설난영은 제대로 짚었음을 확신했다.
“혹시 또 아나요? 제가 의외로 그와 관련한 정보를 쥐고 있을지. 만약 그렇다면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네년이 뭔가 냄새를 맡은 모양이구나!”
으르렁거리며 다시금 살기를 뿜어내는 조귀를 우문양이 제지했다.
그러곤 설난영을 향해 나직이 경고했다.
“함부로 우리를 떠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뒤늦게 자신이 설난영의 수작에 놀아났음을 깨달은 조귀의 얼굴이 벌게졌다.
조금만 잘못했더라면 중요한 기밀을 흘릴 뻔한 것이다.
“명심해라. 닷새다.”
씩씩대며 설난영을 노려보던 조귀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한마디를 더 보탰다.
“과연 그때도 그렇게 시건방을 떨 수 있을까?”
의미심장한 그 말에서 설난영은 짙은 피 냄새를 느꼈다.
저들이 획책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조만간 무언가 큰 사달이 일어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하오문 지부를 나선 뒤로 연신 아쉬운 입맛을 다시는 조귀.
그의 두 눈에 드러난 감출 수 없는 음심을 읽어 낸 우문양이 슬쩍 웃으며 말을 건넸다.
“조 형은 여전히 혈기가 왕성하시구려.”
“하, 고것 참…….”
방금 전 대화를 나눴던 설난영을 떠올린 조귀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임무만 아니었다면 벌써 자빠트렸을 텐데.”
설난영의 고혹적인 미태와 눈웃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듣기로는 불혹에 가깝다 들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기껏해야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느껴졌다.
게다가 요음난희라는 명호에 걸맞게 그녀는 지금껏 그가 경험해 온 기루의 계집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껏 무르익어 발산하는 농염한 자태.
거기에 특유의 도발적인 분위기는 사내의 피를 끓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머지않아 기회가 올 것이외다. 하나 지금은…….”
“나도 알아.”
우문양의 조언에 조귀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당장은 섣불리 사고를 칠 수 없었다.
모종의 임무로 비밀리에 움직이는 이상, 함부로 신원을 드러내는 일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애써 미련을 떨친 조귀가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이 골목 끝자락에 다다랐을 무렵 막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한 사람이 있었다.
훤칠한 키와 멀끔한 행색.
거기에 제법 수려한 이목구비까지 갖추고 있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젊은 놈이었다.
더구나 등 뒤로는 천으로 감싼 기다란 무언가를 메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 하오문 지부에 용무가 있어 찾아온 자 같았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청년은 조용히 벽 쪽으로 비켜섰다.
그런 청년의 얼굴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조귀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했다.
‘저 정도 얼굴만 되어도 원 없이 아무 계집이나 후리고 다닐 텐데.’
대체 왜 계집들은 저런 얼굴에 환장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릇 사내란 기개와 야성이 전부이거늘.
“아무래도 그 계집의 기둥서방인가 보오.”
우문양이 건넨 농담에 조귀가 피식 웃었다.
그러곤 청년을 향해 불쑥 입을 열었다.
“야, 이 새끼야.”
낯선 자가 대뜸 시비를 걸어오자 청년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저 말인가요?”
“그래, 인마.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조귀가 건들거리며 어깨를 툭 부딪쳤다.
“젊은 놈이 힘써서 자수성가할 생각은 안 하고 말이야. 고작 계집 비위나 맞추며 푼돈이나 버는 거 안 쪽팔리냐?”
난데없는 시비에 휘말린 청년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인마. 어디 사내자식이 할 짓이 없어서. 쯧!”
“…….”
난데없이 봉변을 당했음에도 청년은 달리 화를 내거나 발끈하지 않았다.
그저 쓰게 웃으며 그들이 지나가길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 청년에게 한껏 못마땅한 눈빛을 던진 조귀를 필두로 다른 나머지 일행들 역시 일언반구조차 하지 못하는 청년에게 저마다 비웃음을 던지며 지나쳤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은 한순간 차갑게 번득였다 사라지는 청년의 눈빛을 놓치고 말았다.
그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지저분한 음담패설을 주고받으며 키득대던 그들이 이윽고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청년은 비로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끼익.
청년이 문을 열고 하오문의 섬서 지부 안으로 들어섰다.
복잡한 표정으로 상념에 잠겨 있는 설난영이 고개를 들어 청년을 바라봤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뭔가 곤란한 일이 있으신가 봐요.”
언제 그랬냐는 듯 설난영이 더없이 화사하고 사근사근한 미소로 응수했다.
“길을 잃으셨나요? 보아하니 이런 곳에 드나드실 분이 아닌 것 같은데.”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는 단악선의 눈빛에 설난영은 내심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눈빛에서 묻어나는 느낌이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설난영이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이곳이 어딘지 알고 계시나요?”
“하오문의 섬서 지부죠.”
곧바로 돌아오는 청년의 대답에 설난영이 살짝 아미를 찡그렸다.
“소개장을 가져오셨나요? 아니면…….”
청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 왔을 때는 그런 게 필요 없었는데요.”
설난영은 비로소 표정을 달리했다.
미리 일정을 잡지 않고 의뢰인을 만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하다못해 무림 명숙의 소개장 정도는 필요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오직 하나.
자신의 기억에도 손에 꼽는 몇 가지 경우뿐이었다.
“혹시 우리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조심스러운 설난영의 물음에 청년이 대답했다.
“오랜만이에요.”
“누구……?”
“몰라보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청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저 단악선이에요.”
그 한마디에 설난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한편 같은 시각.
하오문 지부로 이어지는 골목 밖의 저자는 여느 때처럼 많은 이들이 오가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따듯한 볕이 드는 담벼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던 중년의 거지.
거적을 뒤집어쓰고 있어 눈빛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골목을 주시하며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재수가 옴 붙었나? 아니면 자리가 안 좋은 건가? 오늘은 동냥이 영 시원치가 않네.”
주섬주섬 거적과 바가지를 챙겨 든 거지가 구부정한 자세로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 후 인적 드문 으슥한 외진 골목 끝자락에 들어선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저 안으로 들어간 놈 아는 사람?”
어느새 그의 뒤에는 비슷한 차림의 거지들이 모여 있었다.
“정말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
곤란한 듯 눈빛을 주고받던 거지들이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쓰읍. 평범한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중년의 거지가 곤란한 듯 뺨을 긁적였다.
그러기를 잠시.
“일단 애들 풀어서 앞서 나왔던 수적 놈들 뒤를 밟는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은밀하게. 여차하면 튀어. 괜히 미련하게 굴지 말고.”
중년 거지의 지시에 젊은 거지 몇 명이 골목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이곳 섬서 분타 내에서도 빠른 발만큼이나 눈치도 빠른 녀석들이니 알아서 잘 처신할 터.
“그런데 향주님.”
거지들 중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우리 개방이 하오문 지부를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