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6)
신마의선-446화(446/500)
신마의선 (446)
“나라고 별수 있겠냐.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그렇게 불만 가득한 대답을 툭 내뱉은 중년 거지가 갑자기 눈을 부라렸다.
“너 또 나중에 꼰질러라? 걸항개가 그랬다고.”
“분타주님도 참.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젊은 거지가 겸연쩍은 얼굴로 걸항개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언행은 다소 경망스러울지 모르나 그래도 그는 나름 육결 제자.
이곳 섬서 지역의 정보를 총괄하는 분타주였다.
아직 새끼줄의 매듭이 두 개에 불과한 자신은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정도의 상급자인 것이다.
피식 웃은 걸항개가 진지한 눈빛으로 설명을 이어 갔다.
“일단 하오문이 사도련에 귀속되어 버리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진다. 지금도 충분히 위험한 놈들이 정보력까지 갖추게 된다?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지.”
“하지만 하오문이 그리 호락호락할 것 같진 않은데요?”
“물론. 그랬다면 지금까지 존재하지도 못했겠지.”
확실히 하오문은 만만하게 볼 곳이 아니었다.
비록 지닌 무력은 미미하다곤 하나 그 어디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오랜 세월 수많은 풍상과 부침을 견뎌 냈다는 의미.
“적어도 이곳 지부장인 그 여자는 쉽게 놈들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듣자니 본 방의 청의빈객이신 혈수존자와 제법 친분이 있다더군요.”
걸항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 그녀를 구하라는 명령도 있었다. 그리되지는 않아 다행이야.”
걸항개는 내심 안도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개방의 전력을 투입한다 해도 상대는 수로맹 내에서 알아주는 고수들.
그 피해가 실로 적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걸항개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묻고 싶은 것이 역력한 젊은 거지의 모습에 걸항개가 미간을 찌푸렸다.
“뭔데? 할 말 있으면 해. 그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우물쭈물하지 말고.”
걸항개의 허락이 떨어지자 젊은 거지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혈수존자께서 본 방의 귀한 손님이 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오문과의 악연 때문이잖습니까.”
“그랬지.”
청산혈사 이후 초악량이 막 무명(武名)을 알리기 시작하며 십대악인의 말석을 차지했던 그 무렵.
누군가가 초악량에 관한 정보를 캐내어 정파 쪽에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그자가 하오문주라는 것을 알아낸 초악량은 범계위와 함께 그를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잠복을 위해 거지로 신분을 꾸미고 개방에 잠시 몸을 의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목적을 이루었다.
당시의 하오문주를 잡아 죽인 것이다.
당연히 하오문과 초악량은 구원(久怨)으로 엮인 적대 관계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혈수존자와 이곳 지부장인 설난영이 우호적인 관계라니?
하나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당시의 하오문주는 죽었고, 덕분에 지금의 하오문주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혈수존자 덕분에 기회를 얻은 셈이니 그에게 은인이나 마찬가지지.”
“아!”
“지금의 하오문주가 더욱 조심스럽게 숨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미 한 번의 전례가 있었으니 함부로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이때.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끼어드는 인영이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나게 나누시나들?”
깜짝 놀란 두 사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엇갈렸다.
젊은 거지는 환하게 웃었고, 걸항개는 와락 얼굴을 구긴 것이다.
이십 대 중반쯤 되었을까.
넝마와 다를 바 없이 닳고 해진 옷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얼굴도 몹시 꾀죄죄했다.
그래도 서글서글한 웃음만큼은 꽤나 보기 좋았다.
걸항개의 못마땅한 눈빛을 마주한 청년 거지가 씨익 웃었다.
“아이고, 우리 분타주 형님 또 이러신다. 왜 이렇게 저만 보면 오만상을 다 지으실까? 그렇지 않아도 못생긴 얼굴 더 볼품없어지게.”
웃으며 건넨 그의 농담에 걸항개가 버럭 했다.
“감찰당주가 갑자기 불쑥 들이닥쳤는데 어느 누가 좋다고 환영하겠습니까?”
청년의 허리에는 새끼줄을 꼬아 만든 일곱 개의 매듭이 묶여 있었다.
기본적으로 개방은 매듭의 개수로 조직 내의 지위를 나타낸다.
이제 막 입방하여 매듭이 아예 없는 수습 방도들은 백의개(白衣丐)라고 하며, 개방의 정식 제자가 되면 비로소 매듭이 허락된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개방 방도는 일신을 의탁한 세월에 따라 한 개에서 네 개의 매듭을 지닌다.
향주는 다섯 개.
그 위로 그 지역 일대를 총괄하는 분타주가 여섯 개의 매듭을, 분타주를 지휘하는 당주가 일곱, 장로가 여덟 개의 매듭을 지니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주의 매듭은 아홉 개였다.
이른바 용두방주(龍頭幇主)라 불리는, 구결(九結) 매듭은 방주인 홍적문이 유일했다.
따라서 청년은 엄연히 따지면 걸항개보다 상급자.
한눈에 봐도 연장자인 걸항개가 존대를 하는 이유였다.
삐딱한 걸항개의 태도에 청년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이렇게 나오기예요? 좋아. 그럼 오랜만에 제대로 꼰대 짓 좀 해 봐?”
청년이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더니 연달아 지적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야! 거기! 뭐 이리 다닥다닥 붙어 있어? 아예 여기에 개방의 감시가 붙었다고 대놓고 광고를 하지 그러냐? 그쪽은 또 왜 그렇게 인원 배치가 부자연스럽고? 야, 야! 그렇다고 또 그렇게 위치를 바꿔 버리면 시야가 제한적이잖아. 이거 이렇게 안 봤는데 여기 섬서 분타 애들 왜 이렇게 엉성하지? 어리바리한 거야 아니면 분타주의 역량 문제야?”
바짝 군기가 들어 우왕좌왕하는 젊은 거지들과 달리 걸항개는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청년을 지그시 노려봤다.
“작작 좀 하지? 아니면 인력 좀 충원해 주고 지적질을 하시든가요.”
“형님이야말로 반말을 하든가 존대를 하든가 하나만 하시죠?”
“아무리 그래도 칠결 제자인 감찰당주에게 감히 어떻게…….”
“우리 사인데 뭐 어때요?”
“어, 음……. 그래도 되나?”
청년이 선뜻 고개를 끄덕이자 걸항개가 비로소 입꼬리를 씰룩였다.
“흐흐. 그래, 좋다. 방소방 이 콩알만 한……. 아니, 콩알만 했던 녀석아. 이 형님이 지난번 네 언질 때문에 얼마나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다녔는지 아느냐?”
“아이고, 우리 형님 또 신나셨네. 그래, 이번에는 또 뭔데요?”
“너 잡아 족치려고 사종악이 사냥개를 풀었다더라.”
방소방이 피식 웃었다.
“난 또 뭐라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야. 놈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게 뭐, 한두 해 일인가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걸항개의 말을 자른 방소방이 근처의 젊은 거지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커다란 바구니였다.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든 젊은 거지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바구니 안에서 무척이나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왔기 때문이다.
“이게 뭡니까?”
“오다 주웠다. 가져가서 먹어.”
신이 나서 일행에게 달려가는 젊은 거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방소방이 웃음을 거두고 걸항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특이 사항은 없었어요?”
걸항개의 눈빛 역시 어느새 진지해졌다.
“방금 정체 모를 놈 하나가 지부 안으로 들어갔다.”
“예? 정체 모를 놈이요?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개방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죠.”
“그럼 네가 알아내 보든가. 내 거지 같은 안목으로는 도저히 모르겠으니 하는 소리다.”
“으음…….”
다른 건 몰라도 이곳 섬서 분타주인 그는 개방 내에서도 나름 충분한 관록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가 그리 말한다면 그만큼 신원을 알아내기 어려운 자일 터.
“별수 없군요.”
나직이 한숨을 흘린 방소방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곧 다시 모습을 드러낼 신원 미상의 방문객을 감시할 요량이었다.
당장은 정체를 알 수 없더라도 은밀하게 뒤를 밟다 보면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하오문 섬서 지부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향하던 그때.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는 개방도들을 지나치던 방소방이 슬쩍 웃었다.
그 많던 구운 오리가 순식간에 수북이 뼈만 남아 쌓여 있었다.
“이거 진짜 제대로 먹을 줄 아는 놈이 하나도 없네.”
방소방이 오리 뼈 하나를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콰직.
“이렇게 뼈를 바수어서 그 안의 골수를 쪽쪽 빨아 먹는 게 진정한 진미인 걸 왜 모르지? 뭐, 그래서 나야 좋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걸항개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일부러 다른 방도들이 눈치 보지 않고 실컷 먹도록 그리 말하는 방소방의 태도가 매우 기꺼웠던 것이다.
칠결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한 그의 모습은 많은 개방도에게 귀감이 되었다.
개방의 모두가 특별히 그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오리 뼈를 씹으며 기다리길 잠시.
방소방의 눈이 반짝였다.
드디어 걸항개가 언급했던 자가 골목 밖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방소방의 눈에 이채가 서린 것도 그때였다.
“누구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비슷한 인상착의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흥! 그것 봐라. 내가 어디 허튼소리를 했을까 봐?”
걸항개의 핀잔에도 방소방은 생각에 골몰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부장을 독대했다면 평범한 놈은 아닐 텐데……. 혹시 저놈이 하오문의 문주인가?”
“뭐?”
깜짝 놀라는 걸항개를 뒤로한 채 방소방이 씹던 뼈를 뱉어 냈다.
“그럴 가능성도 아주 없지만은 않다는 뜻이에요.”
그만큼 하오문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세월이 무척이나 오래되었다.
문주 자리를 후대에게 물려줬다는 풍문도 있었고, 사실은 지부장 중 한 명이 하오문주라는 소문도 있었다.
“어쨌든 저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이번만큼은 내가 직접 따라붙어야겠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소방의 신형이 거리의 인파들 사이로 녹아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뒤를 밟았을까.
‘어?’
훤칠한 키의 청년을 따라 움직이던 방소방이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청년이 가는 방향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그 목적지를 짐작한 방소방의 눈에 긴장감이 자리 잡았다.
놈이 향하는 곳은 이곳 섬서에 비밀리에 마련한 개방의 안가(安家)가 분명했다.
분타라면 모를까, 개방 내에서도 소수의 인원만 알고 있는 안가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윽고 청년이 뒷골목 천막촌의 판잣집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선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더 이상 몸을 숨기고 있을 수 없었다.
“칫.”
한 차례 혀를 찬 방소방이 재빨리 신형을 뽑아 올렸다.
한 줄기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일대에 울려 퍼진 것도 동시였다.
방소방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안가 곳곳에서 거지들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청년을 에워쌌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투박한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소림의 나한진과 더불어 합격술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개방의 절학.
타구진이었다.
“굳이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이 누추하신 곳까지 찾아오신 손님은 대체 뭐 하는 분이실까?”
방소방이 위협적인 눈빛을 드러내며 청년을 향해 다가섰다.
‘웃어?’
방소방이 미간을 찌푸렸다.
맹세코 난생처음 보는 놈이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친근한 미소를 건네 오다니.
무엇보다 저토록 근사한 얼굴은 절로 샘이 날 정도였다.
그러다 갑자기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만큼 상대의 태도에서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뒤를 밟고 있는 걸 알고 있었나?”
청년은 대답 대신 빙긋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내심 자존심이 상했지만 방소방은 상대의 정체를 캐내기 위해 머릿속의 온갖 정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
방소방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엄습해 오는 농밀한 살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이토록 개방에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곳은 하나뿐.
방소방이 눈앞의 청년을 향해 빠드득 이를 갈았다.
“너 이 자식! 수로맹 놈들과 한패였구나!”
한 무리의 장한들이 장내에 들이닥친 건 그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