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7)
신마의선-447화(447/500)
신마의선 (447)
스무 명에 달하는 인원을 이끌고 있는 선두의 사내.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방소방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놈과의 질긴 악연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방소방을 향해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방소방. 드디어 네놈을 찾았구나. 그동안 쥐새끼처럼 빠져나갔다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방소방은 짐짓 딴청을 피웠다.
“저 아세요?”
“뭐?”
조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네놈이 어떻게 감히 나를…….”
“어? 혹시?”
으르렁대는 조귀의 말허리를 자른 방소방이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탄성을 터트렸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일 년 전쯤에 나한테 뒈지기 직전까지 얻어터진 노룡채의 채주 아니신지?”
“……!”
“그때 두고 보자더니 그날이 오늘이었어? 하하하. 미안하오. 시퍼렇게 멍 들고 부어 있던 당시의 얼굴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 달라 알아보지 못했지 뭐야.”
“닥쳐라!”
“그래도 그사이 얼굴 좀 핀 걸 보니 꽤나 살 만하셨나 봐?”
이죽거리는 모습과 달리 방소방의 눈빛만큼은 차분하게 주변을 훑고 있었다.
빠르게 상대방의 전력을 대략적으로 가늠한 방소방이 이내 여유를 되찾았다.
비록 조귀가 수로맹 내에서는 고수에 속한다 하나 자신을 상대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더구나 이곳은 물 위도 아니었다.
수적들이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물에서 싸우는 수공(水功)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조귀 옆에서 빙글거리며 웃고 있는 사내였다.
허리춤에 감고 있는 핏빛 채찍.
최근 사종악 휘하로 투신한 사파 고수들 중 단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우문양이라는 자였다.
‘혈사마편.’
적어도 그는 함부로 경시할 수 없었다.
그 외에 다른 채주 셋과 나머지 무리들은 고만고만한 수준.
방소방이 히죽 웃으며 조귀를 자극했다.
“그런데 남색 취향이셨어?”
“뭐라?”
황당해하는 조귀를 향해 방소방이 질색하는 눈빛을 던졌다.
“그게 아니면 날 보는 그 뜨거운 눈빛은 뭔데?”
“이놈!”
그때였다.
흥분해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것 같은 조귀를 한 사람이 제지했다.
우문양이었다.
“놈의 도발에 흔들리지 마시오. 흔하디흔한 격장지계(激將之計)일 뿐이외다.”
하지만 격장지계도 격장지계 나름.
다른 건 몰라도 상대를 약 올리고 속을 뒤집는 데 있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방소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진 방소방의 한마디에 우문양도 울컥했다.
“혹시 둘이 사귀나?”
“……!”
“역시 애인은 따로 있었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남사스럽게 밀어를 주고받다니. 여기 아직 어린 애들도 있는데 좀 그렇네.”
“네놈만큼은 결코 편히 죽이지 않을 것이다.”
살기등등한 우문양을 향해 방소방이 피식 웃었다.
“우리를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냐?”
방소방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야, 우리 개방이야.”
순식간에 방소방의 인상이 달라졌다.
“너희들이 뭐라고 우릴 죽이네 살리네 멋대로 지껄이는 거야?”
방금 전까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던 경박한 거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구파일방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개방.
그 안에서도 새롭게 떠오르는 신진고수이자, 유일한 직전제자인 풍운쾌걸(風雲快乞) 방소방이 바로 그인 것이다.
“그날 분명히 말했을 텐데. 한 번 더 내 눈에 띄면 그때가 제삿날이 될 거라고.”
한순간 달라진 기세에 상대가 주춤하는 사이.
그 여세를 몰아 방소방이 기파를 개방했다.
“주제도 모르고 물 밖으로 기어 나와 설치는 자라 새끼들아. 명년 오늘이 네놈들 기일이다.”
“과연 그럴까?”
의미심장한 웃음을 말아 올린 조귀가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얼핏 보기에는 대나무 한 마디를 잘라 낸 죽통처럼 보였다.
하나 이를 확인한 방소방의 낯빛은 순식간에 해쓱해졌다.
“폭우천심사(暴雨穿心射)……?”
당가가 몰락하며 당씨 성을 쓰는 자들은 더 이상 성도에 머물 수 없었다.
그들의 악행에 치를 떤 백성들이 철저히 그들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당가의 생존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 와중에 당가의 비전 암기들이 강호 곳곳으로 유출되었다.
폭우천심사도 그중 하나였다.
팔대암기 중 하나로 손꼽히던 마물(魔物).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우모침(牛毛針)을 하나의 통 안에 욱여넣은 형태로, 폭약을 이용해 일거에 쏟아 내는 방식이었다.
한번 작동시키면 수만 개에 달하는 우모침이 일대를 초토화해 버리는 것이다.
살상력이 미치는 범위는 무려 이십 장 이상.
비록 일회성에 불과했지만 그 위력은 그야말로 당가의 절학인 만천화우(滿天花雨)에 버금간다 알려져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우모침 하나하나에 치명적인 극독이 발라져 있다는 점이었다.
“신종 자살 방식인가?”
의아해하는 조귀를 향해 방소방이 재차 물었다.
“그 위험한 물건을 왜 거꾸로 들고 있어?”
움찔하는 조귀의 손목을 우문양이 붙들었다.
“같잖은 수작에 속지 마시오.”
‘제길!’
방소방이 침음성을 삼켰다.
또다시 방소방에게 속을 뻔했다는 것을 깨달은 조귀가 붉으락푸르락하며 이를 갈았다.
“네놈과 그 거지들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 저자에 널어놓으리라!”
“사파 놈들은 참으로 지독하기 짝이 없군. 설마 동료까지 희생시킬 셈인가?”
방소방의 말에 조귀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냐?”
“어?”
이번엔 방소방이 당황해 고개를 돌렸다.
처음 자신이 뒤를 밟았던 청년은 상황의 심각성도 깨닫지 못했는지 여전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패가 아니었어?’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달은 방소방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적으로 우리 사이의 은원과 무관한 자는 보내 주자.”
조귀가 코웃음을 쳤다.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새끼 거지 한 놈이라도 놓친다면 그 순간 개방의 집요한 추적이 시작될 터.
적어도 자신들이 섬서를 빠져나간 뒤에 혈사가 알려져야 했다.
그러기 위해 생존자를 남겨 둘 순 없는 일.
살의로 가득한 조귀의 눈빛에 방소방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아무리 폭우천심사가 대단하다 한들 자신은 피해 낼 자신이 있었다.
살상각(殺傷角)을 허용하지 않으면 그만일 뿐.
암기 입구가 향하는 방향만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가 암기가 발사되어 확산되기 직전에 거리를 좁혀 피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 다른 개방도들은 자신과 달랐다.
‘어쩔 수 없나.’
상황이 이리된 이상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몸으로 받아 내는 수밖에.’
발사 직전에 달려들어 자신이 온몸으로 받아 내는 게 그나마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었다.
그때였다.
한 줄기 차가운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아까 그랬었죠.”
장내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에 중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폭우천심사의 격발 장치를 누르려던 조귀 역시 마찬가지.
“너는?”
조귀는 방금 입을 연 청년의 얼굴이 어딘가 낯익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계집의 기둥서방?”
청년이 담담한 시선으로 조귀를 응시했다.
“그 질문 그대로 돌려드리죠.”
“뭐?”
“그렇게 사는 거 창피하지 않나요?”
“…….”
순간 조귀는 기이한 기분에 휩싸였다.
청년은 처음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년과 시선을 마주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문양의 얼굴에서도 여유가 사라졌다.
‘고수!’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지?’
갑자기 불길함이 엄습했다.
자신에게 고정된 채 날카롭게 번뜩이는 청년의 시선.
그 안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긴장이나 투지 같은, 생사결을 앞두고 있는 무인 특유의 기척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신의 얼굴을 기억해요.”
이어진 청년의 말에 우문양의 눈빛이 흔들렸다.
“십 년 전, 삼마존이 이끌었던 마교의 별동대. 분명 당신도 그 안에 있었죠.”
“……!”
우문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로서는 감추고 싶은 과거였다.
“닥쳐라!”
우문양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되었다.
동시에 청년의 눈에서도 서늘한 한광이 번뜩였다.
순간 우문양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청년이 대놓고 개방한 살기.
이는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워 보자는 그런 유형의 살기가 아니었다.
그저 언제든지 눌러 죽일 수 있는 벌레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상대를 더없이 하찮게 여기는 그런 유형의 살기였다.
그로서는 어처구니없다 못해 아연해질 수밖에.
청년이 다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당신들은 자격이 없어요.”
“……?”
영문 모를 말에 의아해하던 것도 잠시.
우문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 순간 조귀의 지척에 서 있는 청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치 단번에 시간이 멈추고, 자신들과 청년 사이에 존재했던 공간이 그대로 지워져 버린 것만 같았다.
“헉!”
놀란 조귀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지만 이미 그 순간 청년의 손은 그의 손목을 으스러트리고 있었다.
우두둑.
조귀의 손목이 기이하게 꺾이며 들고 있던 암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크악!”
뒤늦게 조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조귀를 무력화한 청년은 어느새 그의 옆구리에 팔꿈치를 박아 넣고 있었다.
콰직.
“……!”
하얗게 눈을 까뒤집은 조귀가 그대로 앞으로 널브러졌다.
폭포수 같은 피를 입에서 뿜어내며 간헐적인 경련을 일으키길 잠시.
길게 혀를 빼문 채 이내 힘없이 늘어졌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즉사였다.
“조 형!”
뒤늦게 우문양이 경악성을 터트렸지만 이미 그의 외침은 조귀에게 닿을 수 없었다.
단 일 수에 북망산을 떠도는 원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우문양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청년이 등에 메고 있던 무기를 손에 거머쥔 다음이었다.
청년의 손에 들린 시커먼 묵봉에서 폭죽과도 같은 섬광이 피어오른 것도 그때였다.
희끗한 그림자가 눈앞에서 번뜩이나 싶더니, 어느 순간 큼직한 호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 호선 끝에 세 개의 목이 걸렸다.
우두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조귀와 함께했던 채주 셋의 목이 그대로 부러져 나갔다.
“……!”
다섯 명 중 유일하게 홀로 남게 된 우문양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밀랍처럼 변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파리를 쫓듯 그저 가볍게 휘두르는 그런 동작이었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한 수에 수로맹 내에서도 인정받는 고수들이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황천행 배에 몸을 실어 버렸다.
“어?”
방소방의 입에서 당혹성이 흘러나온 것도 그때였다.
믿기 힘든 청년의 신위에 대경실색하던 것도 잠시.
청년의 손에 들린 묵봉이 눈에 익었다.
‘설마?’
그사이 청년은 재차 다른 수로맹의 무리를 향해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빠바바박!
“아악!”
“끄어어!”
우박이 쏟아지는 듯한 타격음과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
어느 누구 하나 단 일 초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광경에 방소방은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 순간.
“죽엇!”
장내에 울려 퍼지는 처절한 외침에 청년이 고개를 돌렸다.
조귀가 떨어트렸던 암기 통.
어느새 이를 다시 집어 들어 자신을 향해 겨눈 우문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번쩍.
폭연과 함께 푸른빛이 감도는 새하얀 은빛 운무가 일대를 집어삼킨 것도 그때였다.
바닥을 나뒹굴던 사종악의 수하들은 뒤늦게 그 운무의 정체를 깨닫고 사색이 되었다.
안개처럼 희끗한 잔영.
그 하나하나가 극독이 발린 우모침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