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48)
신마의선-448화(448/500)
신마의선 (448)
‘저 미친놈이!’
우문양의 눈 위로 일렁이는 광기를 목도한 방소방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지금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눈앞의 청년이 언급했던 마교의 별동대.
아마도 자신이 그곳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은 게 분명했다.
이미 앞서 수많은 사파인들이 마교에 일신을 의탁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같은 대접을 받는 건 아니었다.
반쪽짜리 마공서를 이용한 마교의 농간에 놀아났던 자들은 그나마 동정의 여지라도 있었지만, 아예 마교와 결탁해 중원 침공에 앞장섰던 자들은 상황이 달랐다.
한번 찍힌 배신자의 낙인은 평생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우문양 역시 마찬가지.
중원의 손꼽히는 정보 단체인 개방 앞에서 그 사실이 까발려진 이상 그가 설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군을 포함해 이 자리의 모두를 없애 살인멸구(殺人滅口) 할 심산이 분명했다.
“전부 내 뒤쪽에 서!”
개방의 식솔들을 향해 벼락같은 일성을 내지른 방소방이 온몸을 크게 펼쳤다.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했다.
방소방이 질끈 눈을 감았다.
구름처럼 눈앞으로 밀려드는 우모침을 차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엇!”
“저, 저것!”
등 뒤에서 경악성이 들려온 건 그 직후였다.
“……?”
방소방이 슬쩍 눈을 떴다.
입을 떡 벌린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개방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
그들과 마찬가지로 방소방도 입이 떡 벌어졌다.
오랜 시간 무공에 정진해 온 그로서도 처음 마주하는, 좀처럼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전면을 가득 메운 반투명한 장막.
무려 오 장에 달하는 선명한 묵빛 벽이 가공할 신위를 드러내고 있었다.
반쯤 넋이 나가 이를 응시하던 방소방은 그것이 뒤늦게 청년의 손에 들린 시커먼 봉이 만들어 낸 것임을 깨달았다.
빗방울조차 뚫지 못한다는 성락밀밀(星落密密)의 수법.
검막(劍幕)…….
아니, 봉으로 펼쳐 냈으니 봉막(棒幕)이라 해야 할까.
그게 뭐가 되었건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치던 암기의 구름은 눈앞에 일렁이는 강기 벽에 가로막혀 허공에 붙들려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방소방의 뇌리를 스치는 무공 하나가 있었다.
언젠가 이와 비슷한 무공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천강마벽(天罡魔壁)?’
일시적으로 강기의 벽을 생성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공방일체의 절학.
‘하지만 그건 천마의 무공인데?’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눈앞의 청년이 재차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천천히 앞으로 내민 묵봉을 따라 한차례 대기가 출렁이나 싶더니.
그그극.
거대한 강기 벽이 모든 것을 짓이기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를 마주한 우문양의 얼굴은 이미 흙빛이 되어 있었다.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의 눈에 짙은 절망이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되는 끔찍한 압력!
필사적으로 버티곤 있었으나 그의 두 다리는 이미 무릎까지 흙바닥을 파고들어 간 지 오래였다.
허리는 반 이상이나 뒤로 젖혀져 있었고, 코와 입에서는 연신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어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멀찌감치 천마를 본 적이 있던 그였다.
한데 그 천마조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곳곳에서 칼날처럼 튀어 오르는 경기의 파편.
이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차갑게 얼어붙은 청년의 시선과 눈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우문양이 아연실색하던 그 순간.
꽈릉!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것이 우문양이 살아서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그는 시신조차 온전히 남길 수 없었다.
그대로 갈가리 찢겨 피 안개로 화해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르르릉.
잠시 후 은은한 우렛소리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일순 진공 상대가 되었던 대기가 급격히 제자리를 찾아가며 빚어진 현상이었다.
한차례 몰아친 후폭풍이 거칠게 휩쓸고 지나간 자리.
그곳엔 어느새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펄럭.
채 흩어지지 않은 한 줄기 바람이 청년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하지만 이내 청년의 서슬 퍼런 눈빛에 놀라 옷자락을 놓고 달아나 버렸다.
바람이 사라진 장내에는 무거운 적막과 짙은 죽음의 냄새만이 남았다.
“으아악!”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간신히 벗어난 사종악의 수하들이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말없이 응시하던 청년의 눈 위로 쓸쓸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렇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로 청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너…… 혹시 악선이냐?”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음성에 청년이 멈칫했다.
“너 악선이 맞지?”
재차 들려온 방소방의 음성에 단악선은 잠시 고민했다.
이윽고 단악선이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오랜만이야, 소방아.”
방소방과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소방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소방 뒤에 서 있던 개방 방도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칠결 제자로서, 나아가 감찰당주로서.
나이에 비해 늘 어른스러운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 방소방이 애처럼 눈물을 펑펑 쏟는 모습을 마주한 개방도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런 방소방을 향해 단악선이 애써 지은 미소를 건넸다.
“그동안 잘 지냈어?”
“잘 지냈겠냐!”
방소방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곤 울먹이며 단악선을 노려봤다.
“너 이씨……, 어떻게 그동안 연락 한번 안 할 수 있냐? 이런 걸 내가 친구라고…….”
끅끅대며 말을 잇지 못하는 방소방의 모습에 단악선은 얼어 있던 마음 한쪽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모습이어도 아직까지 반겨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만큼 방소방의 뜨거운 눈물 안에는 언어만으로는 전부 담아내지 못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순간 단악선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단악선의 미소를 마주한 방소방은 가슴이 미어졌다.
자그마치 무려 십 년이었다.
그동안 단악선이 신지 안에서 철저히 외부와 단절되어 고립된 상태로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여 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괴로움과 고통을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가슴 깊은 곳에는 언젠간 단악선이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예전과 다름없는 온화한 눈빛으로, 격의 없이 다가와 미소를 건네는 단악선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지라 간혹 이따금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날은 가슴 졸이며 밤잠을 설쳐야 했다.
결국 자신의 바람대로 이렇게 단악선과 마주하게 되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다.
그토록 보기 좋았던 순진한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담한 눈빛 너머로 느껴지는 지독한 외로움의 흔적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그래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 방소방을 지켜보던 단악선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유독 송아지처럼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친구였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 펑펑 눈물을 쏟고 있으니 그 모습이 더욱더 처량하고 구슬퍼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방소방이 평소 씻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얼굴이 꾀죄죄했기 때문에 눈물이 지나간 부분만 땟국물이 벗겨졌다.
그리고 먼지와 오수를 잔뜩 머금고 시커멓게 변한 눈물은 턱에 맺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대비되는 눈물 자국.
단악선이 피식 웃었다.
“바로 알아보지도 못했으면서.”
“그, 그야!”
단악선이 농담 삼아 던진 말에 방소방이 일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하지만 무리도 아니었다.
달라진 외모는 둘째 치고, 이처럼 추호의 사정도 남겨 두지 않는 단호한 손속이라니.
십 년 전의 단악선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변모였다.
“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계속 싸웠지.”
“누구와?”
“나 자신과.”
복잡한 눈빛을 흘리던 단악선이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보니 알겠더라. 어설프게 베푼 인정이 날카로운 비수로 돌아와 내 사람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하던 방소방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단악선은 단악선.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악선아!”
반가운 마음에 단악선을 끌어안으려던 방소방의 얼굴에 당혹감이 자리 잡았다.
두 팔이 허무하게 허공을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이미 저만치 멀어진 단악선을 본 방소방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 번만 안아 보자, 친구야.”
“…….”
“꿈인가 생신가 헷갈려서 그래.”
“꿈 아니야.”
슬금슬금 다가서는 방소방과 거리를 두며 단악선이 말했다.
“그리고 이거 새 옷이야.”
“너 설마 나 더럽다고 괄시하는 거 아니지? 십 년 넘게 오매불망 기다려 준 친구인데?”
“나도 보고 싶었어, 소방아.”
말과는 달리 단악선은 자신을 쫓아 신형을 날리는 방소방에게 좀처럼 거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다 결국 힘이 다한 방소방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치사한 놈.”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방소방이 물었다.
“그런데 내가 뒤를 밟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뛰어난 고수라도 개방의 비전인 추적술은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에 방소방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어디선가 오리구이 냄새가 계속 따라오더라고.”
방소방의 얼굴은 구겨졌고, 안가를 지키던 개방 방도들은 저마다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 * *
“쩝. 이래도 되나 몰라.”
단악선을 따라 하오문 섬서 지부 안으로 들어서던 방소방이 주위를 둘러보며 쓴 입맛을 다셨다.
본래는 자신이 이곳을 감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곳 지부장인 설난영과 마주한 단악선이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탁하신 대로 개방 분타는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어요.”
설난영이 복잡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물론 개방에는 큰 피해가 없었겠죠.”
그런데 그 어감이 미묘했다.
이미 조귀와 우문양을 비롯한 사종악 휘하의 고수들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이때 방소방이 설난영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방소방은 그녀가 개방의 섬서 분타를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는 사실을 단악선을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설마 사파의 오랜 정보 단체인 하오문이 본 방을 도와줄 줄은 예상 못 했습니다.”
“받은 게 있으니 돌려주는 것뿐이에요.”
“네?”
“그동안 계속 저희들을 지켜 주셨으니까요. 물론…….”
묘하게 말끝을 흐린 설난영이 빙긋 미소 지었다.
“그게 감시인지 보호인지는 살짝 헷갈리지만요.”
그녀의 화사한 미소에 방소방은 순간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늘 지저분한 뒷골목과 험악한 장소만 헤매던 방소방이었다.
그런 만큼 이런 미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나저나 개방 분타는 확실하게 옮기셔야 할 거예요. 특히 저들은 방 소협이라면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요.”
설난영의 충고에 방소방이 씨익 웃었다.
당가의 암기까지 동원해 자신을 제거하려 한 것만 봐도 저들의 원한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는지 알 수 있었다.
이때 단악선이 설난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오문은 사종악이 창설하는 사도련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인가요?”
설난영이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오문 전체의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저만큼은 저들과 함께할 생각이 없어요.”
눈앞에 놓인 다기에 손수 차를 따르며 설난영이 말을 이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오문이 사도련의 손을 잡는다면…… 그때는 저도 방법이 없죠. 저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오문을 떠나는 수밖에요.”
뜻밖의 대답에 놀라는 단악선을 향해 설난영이 빙긋 미소 지었다.
“단 의원님 덕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