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
신마의선-45화(45/500)
신마의선 (45)
부모를 잃은 아이는 고아.
남편을 잃은 아내는 미망인.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말은 따로 없다.
상상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표현할 단어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심이 그랬다.
젖먹이 아들을 그토록 허무하게 떠나보내던 날.
끝없는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무심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죄를 지으면 혹시라도 그 악업이 혹시 아이에게 전가될까 싶어 한없이 선량하게 살아온 그였다. 그런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하늘을 원망하며 묻고, 또 물었다.
왜 나에게 이런 것이냐고.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돈.
돈이 없어 의원을 부르지 못했고, 돈이 없어 약을 사지 못했다.
생명의 불꽃이 꺼진 아이를 품에 안고, 식어 가는 뺨을 비비는 동안 사무심의 마음도 빛을 잃었다.
그날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손가락질했다. 수전귀야라는 추잡한 명호가 따라붙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자식을 떠나보내던 그날, 도의니 인정이니 하는 것들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산이 두 번쯤 바뀌고 나니 거부(巨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돈을 쥐게 되었다.
그런데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신 여행자처럼 점점 더 큰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사 직전의 이름 모를 고아에게 음식을 건넸다. 죽어 가던 아이의 텅 빈 눈동자 안에서 살아나기 시작하는 생명의 불꽃을 보았다.
그토록 오랜 시간 괴롭혀 왔던 공허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사무심은 먼저 간 자식에게 속죄하는 기분으로 부모라는 울타리 밖에 던져진 아이들을 위해 모든 돈을 쾌척했다.
돈은 금방 바닥이 났고, 다시 끔찍한 허무함이 허기처럼 밀려들었다.
사무심은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귀처럼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다시 고아들을 위해 돈을 쓰는 삶을 반복했다.
불가에서 말하는 보시(布施).
어쩌면 이를 통해 먼저 보낸 아이를 위한 덕을 쌓을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담긴 행동이었다.
그러다 처음 주화입마의 전조가 찾아왔을 때 사무심은 곧바로 이유를 짐작했다.
육체와 정신의 괴리.
가뜩이나 불안전한 마공이 육체와 정신 사이의 어그러진 균형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무공은 점차 강해지는 반면, 그것을 지탱하는 정신은 늘 과거에 얽매여 있었다. 자식이 죽는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은 늘 그날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결과 또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번 생은 이것으로 족한 게지…….’
그렇게 한참이나 아득한 상념의 바다에서 떠돌던 사무심은 갑자기 피부를 쿡쿡 찌르는 강렬한 오한을 느꼈다.
이는 단순히 느낌만이 아닌, 물리적인 힘을 동반한 실질적인 위험이었다.
그야말로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
한차례 부르르 몸을 떤 사무심이 눈을 떴다.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세 쌍의 눈동자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
화들짝 놀란 사무심이 튕겨지듯 침상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이내 선 채로 온몸이 굳어졌다.
실내에 몰아치는 가공할 살기의 소용돌이가 결계처럼 온몸을 찍어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를 죽이실 겁니까?”
사무심의 말에 초악량과 범계위, 한설화가 뿜어내는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공청석유 먹인 놈을 죽이라고?”
“이거 우리 놀리는 거지?”
“…….”
세 사람의 반응에 사무심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공청석유요? 그거 전설상의 영약 아닙니까? 전 그런 거 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겠지. 이미 배 속에 들어 있으니까.”
초악량의 말에 범계위가 흉악한 눈빛으로 사무심을 향해 다가섰다.
“왜? 보고 싶어? 원한다면 보여 줄게.”
뚫어져라 자신의 배를 노려보는 범계위의 살벌한 눈빛에 사무심이 벽까지 물러섰다.
금방이라 자신의 배를 갈라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망산초자라 불리는 범계위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이때 방문이 열리며 단악선이 들어왔다. 사무심을 제외한 세 사람은 애써 살기를 누그러트렸다.
그래도 사무심을 향해 한마디씩 던지는 걸 잊지 않았다.
“앞으로 기대해라.”
“공청석유 가치만큼 굴려 주지.”
“…….”
뒤늦게 사무심이 무언가를 깨달았다.
“저, 정말입니까? 제가 공청석유를 먹었다고요?”
단악선이 웃으며 한설화와 범계위에게 말했다.
“자, 바로 시작해요.”
그 순간 사무심은 정신을 잃었다.
어느새 다가선 초악량이 수혈을 짚었기 때문이다.
사무심은 꿈을 꾸었다.
눈앞에서 자지러지게 울어 대는 젖먹이 아기.
그런데 아기의 몸을 육중한 사슬들이 칭칭 감아 억누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기가 감당할 수 있는 굵기가 아니었다.
‘어?’
그런데 아기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결아!’
사무심이 황급히 이름을 부르며 아기에게 다가섰다. 눈앞의 아기는 다름 아닌 먼저 보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슬을 움켜쥐고 걷어 내려 애썼지만 어찌 된 일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사무심도 사슬을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거슬러 사슬 끝에 도달한 사무심은 그만 망연자실해졌다. 지금껏 자신이 저지른 모든 악행들이 사슬의 뿌리가 되어 아이를 옭아매고 있었다.
아이의 한을 달래기 위해, 덕을 쌓는다고 한 행동들이 업보가 되어 아이를 도리어 괴롭히고 있었다.
‘아아!’
사무심은 오열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가! 내 아이야!’
내 이제 너를 그만 놓아주마.
네 얼굴, 네 몸짓을 어찌 잊으랴만 그래도 여기까지만 하마.
끝 모를 그리움은 어찌하지 못해도 너를 괴롭힌 이 아비의 한과 원념만큼은 여기에 내려놓으마.
그러니 편히 가렴.
먼 훗날 다시 만나자.
그곳이 어디라도 이 아비가 꼭 찾아가마.
‘반드시.’
툭.
사무심은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기를 옥죄고 있던 사슬들이 눈앞에서 하나하나 모두 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아기의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 * *
사무심은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킨 사무심은 뒤늦게 자신의 베갯잇이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가거라.’
다시 한 번 작별 인사를 고한 사무심이 침상을 내려섰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젯밤 더없이 심란한 꿈을 꾸었는데도 몸이 개운했던 것이다. 이토록 달게 잠을 잤던 게 얼마 만인가 싶었다.
생각해 보니 무공을 익힌 이후 처음이었다.
단기간에 무공을 익히기 위해 그는 마공을 선택했다.
문제는 연성 속도에 주안점이 있는 마공답게 그 부작용이 대단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불면과 피로, 그것 때문에 생긴 날카로운 성정.
자고 일어나도 잔 것 같지 않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런 일과가 수십 년 반복되니 성격 또한 괴팍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사람이 온전히 잠을 잔 것만으로 이렇게나 개운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큰 은혜를 입었구나.”
이 모든 것이 단악선을 비롯한 고절한 무림 선배님들 덕분이었다.
빚을 졌으면 의당 갚아야 하는 법.
이자까지 얹어 받은 것 이상 돌려주리라 마음먹은 사무심이 방을 나섰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청량하고 시원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공기가 달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만족감.
공기 속에 담겨 있는 좋은 기운들이 하나하나 온몸에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시원함이 점차 한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묘한 기분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무심은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세 사람의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은혜…… 맞겠지?’
어쩐지 자신의 앞날이 그려지는 것 같은 사무심이었다.
* * *
그날 오후.
단악선은 풍진성에게 신마곡으로 돌아가겠다고 알렸다. 풍진성은 좀처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좀 더 머물다 가시지 않고요.”
“당분간 세 분 치료에 집중하려고요.”
풍진성도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었다.
“그럼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네, 언제든지요.”
풍진성이 마차를 내어 주려 했지만 단악선은 사양했다.
“마차는 산길을 못 오르잖아요. 다른 분들도 걷고 싶다고 하시고요. 천천히 구경하면서 돌아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시…….”
작별 인사를 건네던 풍진성이 말끝을 흘렸다.
저 멀리서 거대한 짐 더미가 위태롭게 휘청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족히 일 장은 되어 보이는 짐들이었는데, 놀랍게도 한 사람이 지고 있었다.
풍진성의 표정에 단악선도 고개를 돌렸다.
“어?”
단악선 역시 놀란 표정으로 사무심을 보았다.
각종 약재와 의료 도구, 거기에 모포와 의복, 가재도구를 비롯한 식량까지. 그동안 마차에 실려 있던 모든 짐을 탑처럼 쌓아 짊어지고 있었다.
“설마 그걸 다 혼자서 옮기시려고요?”
염려 가득한 단악선의 표정에 사무심이 애써 웃었다.
“요 며칠 편하게 지냈더니 몸이 뻐근해서요. 운동 삼아 드는 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너무 무리하시는 건…….”
“괜찮아. 무려 공청석유씩이나 복용한 몸인데 이 정도는 우습지.”
어느새 나타난 범계위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따라오던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 저런 거로 힘들어하면 공청석유가 가짜인 거고.”
한설화마저 한마디를 보탰다.
“별호를 바꿔야겠어. 공청석유 사무심으로.”
그렇게 사무심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신마곡으로 들어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났건만, 사무심은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빨래를 하고, 뒷간을 치우고, 마당을 쓸었으며, 잡초 뽑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물론 식량과 물품들을 조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 주에 한 번은 전각과 모옥을 청소해야 했고, 초악량의 목재를 구해 오는 일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넘겨졌다.
나름 무림에서 이름이 높았던 그였지만, 이곳 신마곡에서는 잡부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사무심은 일말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매번 웃는 얼굴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식탁 가득 놓인 각양각색의 약초들.
반쯤 체념한 표정으로 식탁을 바라본 초악량이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단 의원, 오늘은 새로운 풀이 있는 것 같은데?”
“아저씨들 병이 호전되어서 약초를 좀 바꿔 봤어요. 어성초(魚腥草)라는 건데, 어혈을 풀어 주는 효험이 뛰어나요.”
혹시나 하는 기대에 초악량이 약초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새로운 끔찍한 맛에 내심 비명을 질렀다.
‘어째 이름부터가 불길하더라니!’
새로 늘어난 약초 덕에 안 그래도 맛없던 식사가 더욱 힘들어졌다.
도대체 왜 약초에서 비린내가 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힐끔 고개를 돌리니 범계위 역시 죽을상을 한 채 약초를 입안에 욱여넣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이 끔찍한 시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한설화의 모습은 평온 그 자체였다.
범계위가 그런 한설화를 힐끔거렸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가 이 순간만큼은 무척 부러웠던 것이다.
식사를 마친 초악량이 벌떡 일어섰다.
“잘 먹었다.”
그리곤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초악량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범계위가 자신의 바구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절반쯤 먹어 치웠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누구 짓인지는 뻔했다.
‘이 인간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자신의 몫을 덜어놓고 사라진 것이다.
과거에도 귀신 같은 금나수가 천하일절로 평가받던 초악량이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방심했을 때는 이렇게 눈 뜨고 당하기 일쑤였다.
“기껏 무공을 회복시켜 줬더니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범계위가 초악량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봤지만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힘드시면 제가 좀 더 먹을까요?”
예상치도 못한 도움의 손길에 범계위가 놀란 눈으로 사무심을 바라봤다.
“넌 이게 먹을 만해?”
“곡주님께서 베푼 호의 아닙니까. 괴롭지만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요.”
“공청석유의 부작용인가? 너 왜 이렇게 사람이 바뀐 거야?”
핀잔에도 불구하고 사무심은 빙그레 웃으며 약초를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