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0)
신마의선-450화(450/500)
신마의선 (450)
설난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장강 이남 지역의 황진포라는 어촌 마을이었어요.”
지도를 가져와 탁자 위에 펼친 설난영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짚었다.
“바로 이곳이에요.”
지도를 유심히 살피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멀지는 않군요.”
지금의 자신이 제대로 경공을 펼친다면 사흘 안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설난영이 한 줄기 걱정을 담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지역 일대는 이미 사종악 패거리가 장악한 지 오래라는 점이에요. 물길을 이용해 이동하는 이상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그들의 이목을 피할 수는 없어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방소방이 씨익 웃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튼튼한 성채라도 개구멍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요.”
다행히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지형 몇 군데를 이미 파악해 놓은 방소방이었다.
그러나 설난영은 여전히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그 지역에 위치한 문파들로부터 협조를 기대하는 것도 어려울 테고요.”
구대문파에 속해 있는 점창파나 형산파만 해도 당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급급한 형국이었다.
명문정파인 그들이 그러할진대, 중소방파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여유로웠다.
“모든 문파가 그런 상황에 처한 건 아니에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방소방이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탄성을 터트렸다.
“아! 맞다! 해남파가 있었지?”
남해의 절해고도(絶海孤島).
일찍이 그 일대의 해상을 장악한 해남파는 중원과 달리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존재를 상기한 설난영의 얼굴이 일순 환해졌다.
단악선과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세력들 가운데 단연 손꼽히는 곳이 바로 해남검파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마침 그곳을 방문하려고 했거든요.”
단악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난영이 조심스러운 눈빛을 흘렸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네?”
“해남파에는 그분이…….”
고개를 갸웃하던 단악선은 뒤늦게 설난영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깨닫고 조용히 웃었다.
“범 아저씨라면 괜찮을 거예요.”
“…….”
설난영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단악선은 그간 범계위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알았다면 저리 태평할 수 없는 것이다.
당장 개방의 감찰당주인 방소방만 해도 망산초자가 언급되자 저렇게 사색이 되지 않는가.
설난영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방소방을 바라봤다.
제대로 설명하라며 눈빛으로 다그친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방소방은 헛기침을 토하며 그녀의 눈빛을 외면했다.
설난영이 아미를 찌푸렸다.
물론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초악량과 더불어 범계위 역시 특별한 형태로 개방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범계위가 친 사고들을 수습하는 것도 오롯이 개방의 몫이었다.
‘그저 믿는 수밖에 없나.’
설난영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를 다 뒤져도 망산초자를 다룰 수 있는 인물은 그나마 단악선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 * *
타오르는 듯한 석양이 일대를 장엄하게 물들일 무렵.
단악선과 방소방은 거대한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야. 내가 말한 개구멍.”
방소방이 저 멀리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꿈틀대는 격류를 가리켰다.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암초들이 용의 이빨과 닮았다고 해서 용구탄(龍口灘)이라 불리는 곳이야.”
저 암초에 짓이겨져 물고기 밥이 된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었다.
거센 물살에 한번 휩쓸리면 아무리 노련한 사공이라도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근 지역의 뱃사람은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곳만큼은 아직까지 장강수로연맹의 눈이 닿지 않았다.
이를 이용해 방소방은 적들의 이목을 피해 장강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대략 발목 깊이 정도로 잠기는 높이의 암초들을 밟고 이동하는 거야. 시범을 보여 줄 테니 위치를 잘 기억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방소방이 신형을 날렸다.
누런 황토물 때문에 시야가 제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소방은 용케도 물속에 잠겨 있는 암초를 정확히 밟고 이동했다.
중간에 한 번 위태롭게 신형을 휘청이긴 했지만 무사히 강물 맞은편에 착지했다.
“잘 기억했지? 내가 디뎠던 곳만 정확히 밟으면…….”
단악선을 향해 외치던 방소방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훌쩍 신형을 날리는 단악선의 모습 때문이었다.
“……!”
새하얀 물보라를 뒤로한 채 한 줄기 빛살처럼 일직선으로 강물을 가로지르는 단악선의 모습에 방소방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소위 수상비(水上飛)라 일컫는, 놀라운 등평도수(登萍渡水)의 신위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뱃사공들 다 굶어 죽겠네.”
내심 기가 막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때.
단악선이 방소방 맞은편에 내려섰다.
민망함에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것도 잠시.
방소방이 이내 진지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네가 놀라운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알겠어. 그래도 행여 물 위에서 사종악을 상대할 생각은 하지 마.”
앞서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진명진인의 경우처럼, 그런 불행한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단악선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걱정도 좋지만 너도 조심해. 놈들이 너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더라.”
“흥! 왜 이래? 나 방소방이야, 방소방. 개방의 풍운쾌걸이 바로 나라고. 성긴 그물 따위로는 바람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운 구름을 묶지 못한다고.”
변함없는 방소방의 넉살에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럼 또 보자.”
단악선이 건넨 인사에 방소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 분타들과 신마상단 사이에 연락망이 구축되어 있으니 언제든 말만 해. 바로 달려갈게.”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단악선이 방소방을 끌어안았다.
방소방이 정색하며 단악선을 노려봤다.
“왜 이래? 남사스럽게. 언제는 새 옷이라 싫다며?”
그러나 돌아온 단악선의 대답에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옷은 새로 사면 그만이지만 친구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하, 짜식. 병 주고 약 주는 건 정말이지 여전하구나.”
미소를 주고받던 것도 잠시.
단악선이 신형을 돌려 어슴푸레한 어둠 너머로 사라지자 방소방 역시 어딘가를 향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잠시 후.
어디선가 속속 나타나 도열하는 개방의 방도들을 확인한 방소방이 히죽 웃었다.
“그럼 이제 우리도 반격을 해 볼까? 거지를 건드렸으니 깽값은 확실히 받아 내야지.”
장난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방소방이 어느새 개방의 감찰당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장강수로맹에 새로 합류한 놈들부터 털어 보자.”
방소방이 삼엄한 눈빛을 뿜어냈다.
“천하개방(天下丐幇)!”
“숭상협의(崇尙俠義)!”
방소방의 선창에 호응하는 개방 방도들.
그들의 투지 가득한 쩌렁한 함성이 일대를 흔들었다.
* * *
방소방과 헤어진 단악선은 곧장 경공을 전개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사위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짙은 야음조차 지금의 단악선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달빛에 의지해 상당한 거리를 주파한 단악선의 시야에 멀리 화려한 야경이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목적했던 호남에 들어선 것이다.
넓은 수면 위를 가득 채운 수많은 선박과 물 위에 드리운 선박들의 휘황찬란한 불빛.
중원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담수호인 동정호였다.
일반적으로 하(河)가 황하를 말하고 강(江)이 장강을 가리킨다면, 호(湖)는 바로 이곳 동정호를 일컫는다.
호북성과 호남성을 나누는 경계이자 수많은 문인들이 술과 달을 벗 삼아 무수한 글귀를 남겼던 명소.
그만큼 중원의 역사와 오랜 세월 함께한 유서 깊은 곳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에 무섭게 세를 확장한 장강수로연맹 소속의 수적들이 일대를 장악해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기파를 갈무리한 뒤 마을로 들어선 단악선은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마을 풍경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자 보통의 마을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우선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유독 사나운 기세를 흘리는 무인들이 너무 자주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병장기를 지닌 그들은 시장의 상인들을 겁박하기도 하며 보호세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기도 했다.
대놓고 아녀자를 희롱하는 자들도 있었다.
십 년 전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이 마을은 본래 백도 문파 중 한 곳인 청수문(淸水門)이 오랜 세월 동안 기반을 닦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단악선은 연판장을 완성하기 위해 중원을 여행하던 중 이곳에 들렀던 적이 있었고, 청수문의 문주인 탁일영의 환대를 받아 잠시 머물렀던 적도 있었다.
청수문은 과거 정마대전 당시 적극적으로 참여한 전력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기련산에서 벌어진 최후의 일전에서 당시의 문주가 사망했지만 덕분에 구파일방의 인정을 받아 이곳에 온전히 터를 닦을 수 있었다.
심지어 십 년 전의 마교토벌 때에도 구파일방을 지원하기 위해 문주가 몸소 청수문의 고수들을 데리고 신지로 달려오기도 했었다.
예전에 이곳을 방문했던 기억에 의지해 단악선은 곧장 청수문이 자리 잡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는 파락호들의 온갖 패악질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청수문의 사람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는 것이 먼저였다.
시장을 가로질러 마을 외곽에 위치해 있는 장원에 도착한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장원의 외관은 어린 시절 기억하던 모습과 일치했다.
한데 지금은 현판이 사라져 있었다.
‘신마상단에서 계속 지원을 해 줬다고 했는데?’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만큼 한번 그 지역에 뿌리내린 문파가 근거지를 옮기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내심 의아해하던 그때.
벌컥.
청수문의 대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확 풍겨 오는 술 냄새 사이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지저분한 음담패설이 오갔다.
그들은 저마다 기녀들을 끼고 있었는데, 그녀들은 어딘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단악선은 그들이 최근 인근 일대를 장악했다는 사종악 휘하의 수적들임을 직감했다.
저들의 흉흉한 눈빛.
그리고 무엇보다 태도와 언행 하나하나에서 술 냄새로도 감추어지지 않는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중 선두의 인물이 단악선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하지만 이내 눈을 비비며 다시 그곳을 응시했다.
분명 눈앞에 서 있던 사람이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취해서 헛것을 본 것이라 생각했던지 장한이 다시 일행을 이끌고 골목길 너머로 사라졌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 단악선이 활짝 열린 청수문의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
온통 폐허로 변한 장원 내부를 확인한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눈에 봐도 이곳은 오래전에 버려진 것이 분명했다.
다시금 밖으로 나선 단악선은 수적들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단악선이 도착한 곳은 저자에 위치한 화려한 객잔이었다.
쫘라락.
주렴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서자 대뜸 어디선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씨X! 오늘 손님 받지 말라니까! 내 말이 우습냐?”
퍽.
“아악!”
쨍그랑.
뾰족한 비명과 함께 수적들의 수발을 들던 기녀 한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수적 중 한 명이 술병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내려친 것이다.
혼절한 기녀의 머리카락을 흠뻑 적신 핏물이 이내 바닥에 번져 나갔다.
그 뒤로 창백한 얼굴로 벌벌 떠는 점소이의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