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1)
신마의선-451화(451/500)
신마의선 (451)
나직이 한숨을 흘린 단악선이 기녀를 향해 다가섰다.
“어이, 애송이.”
술병을 휘둘렀던 사내가 단악선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리 와 봐라.”
단악선의 차가운 시선이 사내와 그 뒤에 도열한 무리들을 훑고 지나갔다.
이에 뒤질세라 수적들 역시 험악한 기세를 담아 단악선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단악선이 바닥에 쓰러진 기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두피의 찢어진 상처가 조금 깊었지만 다행히 중상은 아니었다.
“하? 이것 봐라?”
덜컹.
사내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단악선을 향해 섬뜩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감히 이 송강 어르신의 명령을 무시해?”
자신을 송강이라 밝힌 사내.
그의 손에는 어느새 비죽비죽 가시가 돋아나 있는 낭아곤(狼牙棍)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여전히 그에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치료를 이어 갔다.
“이 자식이?”
한 차례 눈썹을 꿈틀한 사내가 낭아곤을 치켜들었다.
한 줄기 차가운 음성이 객잔 안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당신들이 청수문에서 나오는 것을 봤어요.”
단악선이었다.
“청수문을 찾아온 놈이었더냐?”
송강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그놈들이라면 진즉에 물고기 밥이 된 지 오래지.”
청수문을 피로 쓸어 낸 그날.
그 혈사를 주도했던 그는 이따금 술에 취해 흥이 오르면 당시의 기분을 떠올리기 위해 오늘처럼 그 장소를 다시 찾곤 했다.
“막상 제대로 붙어 보니 별것도 아닌 것들이 마교 토벌에 성공했다며 얼마나 거들먹대던지.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
“당신들이 청수문을 공격했나요?”
“죽을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죠?”
송강이 씨익 웃었다.
“주제 파악을 못 했지.”
단악선이 서늘한 눈빛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때 목숨을 걸고 함께 싸웠던 만큼 그들은 단악선에게 있어 전우와도 다름없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다른 건 몰라도, 중원을 위해 헌신한 그들의 희생과 숭고한 의지가 이런 식으로 폄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죠.”
“뭐?”
의아해하는 송강을 향해 단악선이 기파를 개방했다.
“당신도 방금 같은 죄를 지었으니까요.”
“……!”
뒤늦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송강의 안색은 이미 흙빛이 되어 있었다.
송강은 지금까지 자신이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데없이 맞닥뜨린 삼엄한 기세.
단지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뿐인데도 온몸이 그대로 서걱서걱 베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큭!”
신음을 삼킨 송강이 냅다 낭아곤을 휘둘렀다.
본능적인 위기감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낭아곤을 에워싼 채 일렁이는 서기.
이는 그가 이기생형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상당한 수준의 고수라는 방증이었다.
쾌애액!
허공을 찢으며 쇄도한 낭아곤이 단악선의 눈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악선은 피하지도, 심지어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낭아곤을 툭 건드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쿠웅!
낭아곤을 휘둘렀던 송강의 신형이 그대로 허공에서 뒤집히더니 요란하게 바닥에 처박힌 것이다.
“……!”
영문도 모른 채 내동댕이쳐진 송강의 눈 위로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사량발천근(四兩拔千斤)?’
혹은 이화접목(梨花接木)이라고도 불리는 무학의 정수.
힘의 방향과 흐름을 틀어 상대의 힘으로 적을 제압하는 절정의 수법이었다.
그러나 그 기본적인 무리와는 별개로 실전에서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전 무림을 통틀어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고수!’
송강은 비로소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그 또한 나름 도산검림을 누벼 왔던 자.
눈앞의 괴물을 몰라볼 만큼 아주 눈먼 장님은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차디찬 눈빛.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가공할 존재감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등에 메고 있던 봉을 손에 드는 상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단지 그것뿐이었음에도 필설로는 도저히 담아내지 못할 거대한 무형의 압력이 전신을 찍어 눌러 왔다.
그 시커먼 봉이 자신을 가리키자 송강은 안색이 해쓱해졌다.
갑자기 온몸의 기혈이 끓어오르고 기맥이 뒤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가공할 무형의 기운은 그가 아는 모든 무리의 한계를 월등히 넘어서고 있었다.
자신 따위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느껴졌다.
일대종사.
아니, 그 이상의 존재감이었다.
오직 정상에 오른 자만이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법.
이제 막 가파른 능선에 발을 올린 자신은 그 정상의 높이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한데 눈앞의 새파란 애송이는 이미 그곳에 이르러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와 같은 존재감은 설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형!”
단 한 수에 송강이 나가떨어지자 수적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묵직한 그물이 들려 있었다.
얇은 철사를 얽어 만든 쇠 그물이었다.
그리고 몇몇은 쇠뇌를 들고 있었다.
지금껏 수많은 고수가 이 무기들 앞에 제대로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했다.
그물코마다 예리한 낚싯바늘 모양의 갈고리가 달려 있어 한번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역으로 돋은 가시가 살을 찢으며 더욱 깊숙이 파고들기 때문에 벗어나려 몸부림치면 칠수록 끔찍한 고통만 배가된다.
그리고 피투성이로 절규하는 적은 결국 쇠뇌에 의해 숨통이 끊어지는 것이다.
“자, 잠깐!”
송강이 다급하게 외쳤다.
단악선의 눈에서 일렁이는 짙은 살기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악선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단호하게 묵룡을 휘둘렀다.
송강이 급히 낭아곤을 들어 방비했지만 단악선의 손속은 여느 고수들과는 다른 것.
우두둑.
가슴뼈가 산산이 으깨진 송강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했다.
“감히!”
송강을 따르던 수적들이 아연한 표정으로 경악성을 터트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참혹한 죽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죽음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행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죽엇!”
사내들의 손에 들려 있던 쇠 그물이 허공을 뒤덮은 것도 동시였다.
“꺄악!”
단악선 뒤쪽에 몰려 있던 기녀들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수법 아래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는지 무수히 목도해 왔기 때문이다.
그 순간.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묵룡이 한 차례 꿈틀하나 싶더니 눈부신 섬광 몇 줄기가 전면을 향해 격사(擊射) 되어 나갔다.
따다다당!
가닥가닥 부서져 흩어진 철사들이 모래처럼 허공에 흩뿌려진 건 그 직후였다.
제아무리 튼튼한 쇠 그물이라 해도 응축된 강기(罡氣) 앞에서는 애초부터 무용지물인 것이다.
그러고도 위력이 전혀 줄지 않은 묵빛 섬광은 그대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수적들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선 채로 바르르 경련하던 것도 잠시.
그들은 이내 썩은 짚단처럼 바닥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지고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전무했다.
하나같이 모두 즉사를 면치 못한 것이다.
그들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순식간에 커다란 피웅덩이를 만들어 냈다.
뒤늦게 장내의 상황을 인지한 기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사색이 된 점소이도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단악선과 유일한 생존자인 수적 한 명뿐.
퍼렇게 질려 오들오들 떨던 수적이 쇠뇌를 집어 던지며 엎드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물끄러미 그를 응시하길 잠시.
단악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청수문의 생존자는 없나요?”
“있습니다! 놈들……. 아니, 그들은 형산파로 달아났습니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단악선이 천천히 묵룡을 거두었다.
“가서 전하세요.”
바닥에 깊게 고개를 처박은 채 벌벌 떠는 수적을 향해 단악선이 말했다.
“머지않아 내가 찾아갈 거라고.”
그게 누구라도 당금의 사태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자신이, 그리고 모두가 목숨을 바쳐 일궈 낸 중원의 평화.
이를 멋대로 훼손한 자에게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리라 다짐하는 단악선이었다.
* * *
형산을 끼고 있는 형산현(衡山縣)은 예로부터 수로와 육로에 인접해 교통이 발달한 곳이었다.
주변 지역의 물자가 모여드는 집산지인 탓에 사계절 내내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하나 지금은 그 어디에도 단악선이 기억하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을 전체를 에워싼 불온한 분위기 때문인지 저자의 가게들은 모두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고, 일반 백성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반면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자들은 한눈에 봐도 무림인이 분명했다.
한데 저들의 눈빛과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마을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건가?’
저들의 목표가 형산파라는 것을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규모 역시 상당했다.
얼핏 눈에 들어온 인원들만 헤아려도 수백 명은 가뿐히 넘겼던 것이다.
최대한 조용히 기척을 감춘 채 단악선이 어둠 속에 몸을 묻었다.
당장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마을 곳곳에 수많은 무림인들이 득실댔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단악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천하제일 도둑을 자부하던 가두달.
그의 은신술과 경신 공부가 제대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 *
남악묘(南岳廟) 안에 위치한 대전.
그 안에서는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형산파의 장문인으로서 회의를 주재하던 진조운은 연이어 들려온 소식들에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을 흘렸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형산파는 곳곳에서 피신해 온 정파인들로 인해 포화 상태가 된 지 오래였다.
구대문파로서.
나아가 협의를 중시하는 정도문파로서 도움을 청하는 그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문제는 최근 들어 각종 물자가 크게 부족해졌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비축해 두었던 식량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장강의 물줄기가 틀어 막힌 여파는 그만큼 심각했다.
“더 이상 버티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진조운이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십 년 전, 신지에서의 최후의 결전 당시 그는 위중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꾸준한 치료를 통해 상당히 호전되긴 했으나 과거의 신위를 온전히 회복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진조운의 말에 회의장 곳곳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기를 잠시.
“다른 문파에 요청했던 지원은 어찌 되었습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진조운이 고소를 머금었다.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비단 형산파뿐만이 아니었다.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이대로 고사(枯死)하느니 그나마 전력이 온전한 지금이 유일한 적기였다.
“제가 선두에서 모두를 이끌겠습니다.”
진조운의 말에 회의장을 메우고 있던 인사들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진조운이 아직 부상을 완전히 극복해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솔선수범해 선두에 서겠다는 그의 의지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이는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누군가가 건넨 사과에 진조운이 조용히 웃었다.
지금까지 명문정파로서 존중을 받아 왔으니 그에 걸맞은 책임이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자, 장문인!”
대전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황급히 뛰어들었다.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는 지객당의 책임자, 이대 제자인 조철산이었다.
심상치 않은 그의 모습에 진조운은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했다.
“무슨 일이냐?”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진조운이 미간은 찌푸렸다.
손님이라면 이미 넘치는 상황.
대체 누가 방문했기에 평소 차분하던 그가 이처럼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진 보고에 진조운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