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2)
신마의선-452화(452/500)
신마의선 (452)
“신마의선을 자처하는 손님께서 장문인을 만나 뵙길 청해 왔습니다.”
“누구라고?”
혹시라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진조운이 되묻던 그때.
“오랜만에 뵙네요.”
한 줄기 차분한 음성이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
진조운의 두 눈에 놀라움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입구 쪽에 선 채 자신에게 미소를 건네오는 청년은 마치 처음부터 이 안에 존재하고 있던 사람 같았다.
‘대체 언제?’
아무리 자신이 부상으로 인해 온전치 못하다곤 하나 기감마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날카롭게 감각을 벼려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니.
“허락 없이 들어선 건 사과드려요. 하지만 사안이 시급한 것 같아 이게 최선이라 생각했어요.”
“정말 무위의 그 단 위원 맞나?”
진조운의 물음에 단악선이 조용히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십 년 전에 비해 외모나 분위기가 달라졌으니 몰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단악선이 등에 메고 있던 묵룡을 풀어 진조운에게 내보였다.
묵룡 표면을 흐르듯 에워싸고 있는 무늬.
그것이 운철(隕鐵) 재질 특유의 특징임을 알아본 진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그는 사라진 형산파의 신물인 원공보검을 대신할 검을 만들기 위해 같은 재질의 운철을 확보했었다.
하나 단악선의 도움으로 형산파의 배신자를 색출했고, 원공보검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모아 두었던 운철을 단악선에게 건넸던 것이다.
중원 전체를 다 뒤져도 운철로 만들어진 봉은 단악선이 지닌 묵룡만이 유일했다.
“다시 보게 되어 무척 기쁘네.”
단악선에게 다가선 진조운이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해도 단악선에게 형산파가 진 빚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유심히 단악선의 눈빛을 들여다보던 진조운이 나직이 탄성을 흘린 것도 그때였다.
“그나저나…… 정말 많이 달라졌군.”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자 비로소 단악선이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고수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름 구대문파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형산파의 장문인인만큼 그 역시 상당한 고수.
한데 그런 자신조차 눈앞의 청년이 지닌 무공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진조운은 새삼 세월이 많이 지났음을 실감했다.
회의장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진짜 신마의선……?”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희망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단악선 곁에는 늘 신마삼존이 함께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초악량은 말할 것도 없었고, 거기에 한설화와 범계위가 가세한다면 현 상황에서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전력이었다.
만약 단악선이 자신들과 뜻을 함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지금의 불리한 상황을 뒤집고도 남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실망이 드러났다.
진조운과 단악선의 이어진 대화 때문이었다.
“신마삼존께서는 함께 오시지 않은 건가?”
“당분간은 저 혼자 움직일 계획이에요.”
“……그런가.”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건 진조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나직하게 한숨을 흘린 진조운이 씁쓸하게 웃으며 최근 형산파를 둘러싼 동향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삼 년 전, 진명진인이 이끄는 화산파와의 일전에서 승리한 사종악과 그의 수하들은 무서운 기세로 장강을 장악했다네.”
장강 이남 지역은 수로를 이용한 이동이 철저하게 통제되었고, 그로 인해 누적된 압박에 백기를 드는 이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본 파는 그나마 어찌어찌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최근에 심각한 문제가 불거졌지.”
이어진 진조운의 말에 단악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상당한 사업권을 잃었음에도 그나마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신마상단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네. 하나 지금은 그마저 장강에서 발이 묶여 전달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일세.”
신마상단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지원금을 전달해 주고 싶었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했다.
신마상단의 거점이 되는 우호 문파들이 대부분 근거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마상단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
“신마상단이 피해를 입었다고요?”
“설마 몰랐던 겐가?”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신마상단의 지원을 받았다.
신지에서 입은 피해를 수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자금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력을 확장한 수로연맹 놈들에 인해 자금과 물자의 지원이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 자금 대부분은 놈들의 수중에 떨어졌지.”
그리고 이는 되레 사종악과 그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상단 쪽 사람들도 적지 않다 들었네.”
그렇게 얻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사종악은 중원뿐만 아니라 정계 인사들에게도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장강은 중원 각지로 뻗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종악은 아슬아슬하게 조정의 눈 밖에 나는 일만큼은 피해 가고 있었다.
심지어 몇 년 전 민강 일대가 범람해 많은 유민이 발생했을 때는 직접 수하들을 대동하고 나서 피해를 수습하고 그 지역 일대를 복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역 관리들에게 흘러들어 간 뇌물의 규모는 그와 비교할 수준이 안 되었다.
이 모두가 신마상단에서 가로챈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조운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이게 다 우리가 부족해 제때 대응하지 못한 탓일세. 본의 아니게 신마상단에 큰 폐를 끼쳤어.”
단악선은 비로소 무위에서 재회했던 소적산의 표정이 그토록 어두웠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대략적인 상황은 들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니.
단악선의 기세가 한순간 달라졌다.
“신마상단이 정도 문파를 지원한 것은 마교의 발호를 막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이를 가로채다니.
사종악과 그의 수하들은 감히 그것에 손을 댈 자격이 없었다.
무엇보다 신마상단을 위해 헌신한 상단원들을 해친 것만으로도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형산 일대를 에워싼 자들도 사종악이 부리는 자들인가요?”
“그렇네. 혈염방(血染房)이라 부르는, 근래에 생겨난 흑도방파일세.”
단악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날개가 꺾였다 하나 매는 맹금(猛禽).
하늘을 날지 못할 뿐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은 여전한 법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형산파가 고작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흑도 방파에 고전을 하고 있다는 것 사실 자체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단악선의 눈빛을 읽은 진조운이 곤란한 눈빛을 흘리며 고소를 머금었다.
“혈염방의 방주가 바로 독릉산응(毒陵山鷹)이라 불리던 조맹방이라네.”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무위에서 함께 지내던 그분 말인가요?”
무위가 금지로 선포되면서 초기에 합류했던 사파 고수.
그중의 한 명이 바로 조맹방이었다.
게다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맹방은 무위에 정착한 이후 줄곧 목수 일을 하며 많은 이를 도왔다.
지금의 신마의가에 최초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얹고 서까래를 얹었던 사람도 바로 조맹방이었다.
심지어 그는 신지에서 벌어진 최후의 싸움에서 가장 선두에서 몸을 던져 싸운 사파인 중 한 명이었다.
비록 정파와 사파 사이에 뿌리 깊은 갈등이 존재한다곤 하나 그래도 한때 같은 진영에서 함께 싸웠던 그가 동지에게 칼을 겨눴다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진조운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 피를 나눈 형제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진조운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삼 형제 중 무공은 조맹방이 가장 뛰어났지만, 목수 일은 다른 두 형제가 훨씬 뛰어났다.
“신지에서의 싸움에서 그의 동생들도 크게 다쳤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는 진조운도 있었다.
진조운 역시 큰 부상을 당해 기식이 엄엄한 상태라 당시를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훗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설명을 통해 조맹방이 변절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의 동생들과 나는 모두 위중한 상태였네. 그리고 우리는 곧장 무위의 신마의가로 후송되었지.”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마교의 별동대에서 이탈한 사파의 고수들이 속속 무위에 합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환자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신마의가의 의원들은 결국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에게 우선순위를 두고 순차적으로 치료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나마 나는 치료를 받아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둘째 동생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네.”
단악선이 무거운 한숨을 흘렸다.
당시 신마의가에는 풍진성도 있었고, 주초운도 있었다.
일말의 생존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갈아 넣어서라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치료를 포기했다면 자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막냇동생의 상태가 점차 악화되자 조맹방은 결국 폭발했고, 의원을 협박하다 급기야 만류하던 의원 여럿을 다치게 만들었다더군. 결국 그 죄로 무위에서 쫓겨났지.”
단악선은 그제야 조맹방이 형산파를 향해 칼을 겨눈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진조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나 또한 그런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려 무던히 애를 썼네. 하지만 결국 그는 선을 넘더군.”
“일단 제가 그분을 만나 볼게요.”
진조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가 기억하던 예전의 그가 아닐세. 선선히 대화에 응하려 하지 않을 게야.”
“분명 무언가 해결 방안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진조운은 회의적이었다.
“그런다고 달라질까? 이미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은 피를 보았네.”
이미 형산 문하 중에도 사망자가 나온 이상 진조운은 조맹방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
단악선은 단단히 꼬여 버린 관계에 무척이나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그래도 한때 뜻을 함께했던 지인들이 서로를 죽이려 달려드는 모습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한 시진. 딱 한 시진만 제게 시간을 주세요.”
곤혹스러워하는 진조운을 향해 단악선이 설득을 이어 갔다.
“서로의 입장과 저마다 끌어안은 명분이 다른 만큼 이를 해결하는 건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몫이에요. 하지만 당장은 결과가 어찌 되었든 사종악의 이익으로 귀결돼요. 적어도 그것만큼은 막아야 하잖아요.”
고심을 거듭하길 잠시.
이윽고 진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진일세.”
결국 단악선의 말에 따르긴 했지만 진조운의 얼굴은 몹시 어두웠다.
그만큼 그로서도 당장은 뚜렷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조운과 대화를 마친 단악선은 곧장 형산파를 내려와 마을로 향했다.
처음부터 은신할 생각은 없었기에 단악선은 적당히 기파를 개방하며 당당하게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사방에서 날아드는 살기를 감지한 단악선이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당신들의 방주님을 만나러 왔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순식간에 단악선을 에워싼 자들의 숫자는 무려 오십여 명.
하나같이 섬뜩한 무기를 든 채 살기를 흘리던 사내들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형산파에 숨어 있던 쥐새끼가 우리 방주님을 찾지?”
단악선이 형산파로 향한 것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은 당연히 형산파 안에 웅크리고 있는 백도의 생존자라 여기는 듯싶었다.
“단악선이 돌아왔다 전해 주세요.”
“단악선?”
고개를 갸웃하던 사내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흠칫했다.
“한때 사람들은 저를 신마의선이라 불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