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3)
신마의선-453화(453/500)
신마의선 (453)
“……!”
단악선이 언급한 명호에 일대가 크게 술렁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신마의선이라는 명호가 지닌 상징성은 여전히 강호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 처음 입을 열었던 사내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단악선을 주시했다.
처음에는 형산파와 관련한 쓸 만한 정보라도 가지고 있나 싶었다.
정보를 대가로 목숨을 구걸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했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가 코웃음을 쳤다.
“네가 신마의선이라면 나는 혈수존자다.”
중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방금 입을 열었던 주먹코 사내가 한껏 으스대며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 공교롭게 딱 이 자리에 십 년 동안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던 신마의선이 나타난다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의 곁에 항상 따라다닌다는 신마삼존도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어디에도 그 노괴들은 안 보이는걸?”
나름 일리 있는 의견이었기에 수적들의 눈에는 짙은 의심이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눈앞의 청년은 소문으로 떠돌던 신마의선의 용모와도 판이하게 달랐다.
처음 단악선을 향해 입을 열었던 사내가 살기를 흘리는 상태로 단악선을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형산파 이 비열한 놈들은 하다 하다 이따위 더러운 기만질까지 서슴지 않는군.”
귀신 형상이 새겨진 귀두도(鬼頭刀)를 거머쥔 그가 손을 들어 단악선을 가리켰다.
“저놈을 잡아 내 앞에 무릎 꿇려라. 얼마나 간이 부었길래 저딴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놈의 배를 갈라 확인할 것이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십에 달하는 무리가 일제히 단악선을 향해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더 이상 대화를 끌어 나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말이 통할 상대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모든 수단을 뛰어넘어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하게 의지를 전달하는 방식.
바로 폭력이었다.
‘어디서나 통용되는 불변의 진리라 하셨던가?’
언젠가 범계위가 진지한 표정으로 언급했던 말이었다.
어차피 먼저 대화를 거부한 것도 저들이었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엇?”
가장 먼저 단악선을 향해 곡도를 휘둘렀던 사내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분명 칼을 휘둘렀건만 단악선이 멀쩡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의 칼이 단악선에 손에 들려 있다는 걸 깨달은 그가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눈 뜨고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왜 자신의 무기가 상대의 손에 들려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반면 단악선은 여전히 태연함을 잃지 않았다.
귀신같은 손속으로 금나수에 관해서만큼은 천하일절로 평가받던 초악량이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해도 방비할 수 없는 절학.
그런 초악량조차 단악선의 금나수는 청출어람이라 표현할 만큼 독보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신투라 자부하던 가두달의 투도술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사내는 뒤늦게 불에 덴 듯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이를 허락할 단악선이 아니었다.
어느새 거리를 좁힌 단악선이 손을 뻗어 사내의 손목을 낚아챘다.
우두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신형이 그대로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등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꽈앙.
거칠게 패대기쳐진 사내가 그대로 길게 뻗어 버렸다.
“헉!”
그 모습에 단악선을 향해 달려들던 사내들이 멈칫했다.
단악선의 신형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도 동시였다.
어느 순간 자신들 진형 사이를 파고든 단악선을 발견한 사내들이 경악하며 무기를 휘둘렀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단악선이 눈살을 찌푸리며 보법을 밟았다.
동시에 양손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퍼퍼퍼퍽.
우두둑.
빠악.
연이어 터져 나오는 격타음과 골절음을 뒤로하고 사내들이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졌다.
처음 달려들던 기세와 다르게 그들이 모두 쓰러지는 데에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한순간.
“우와악!”
뒤늦게 합류하던 사내들이 다급한 경호성과 함께 분분히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단악선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빛살처럼 쇄도해 단 한 수로 한명씩 제압하더니 그대로 인정사정없이 바닥에 메다꽂았다.
“끄으…….”
여기저기 널브러져 신음을 흘리는 수하들과 그 사이에 홀로 오롯이 선 채 오연한 눈빛을 흘리는 상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에 처음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던 사내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귀두도가 부들부들 떨렸다.
청년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파공음과 예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동작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현묘함과 위력.
그 자체로 천외천의 경지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잡아채서 꺾고, 누르며, 두드리고, 당기던 동작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하나같이 기초적인 수법의 금나수였다.
한데 이 모든 것을 일거에 쏟아 내니 그야말로 신공절학이 따로 없었다.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손을, 아니 안다 해도 막을 수 없는 저 공격을 대체 무슨 수로 상대한단 말인가.
저벅.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단악선의 발소리에 사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데 그 순간.
단악선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가만히 한 곳을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퍽.
“아악!”
단악선의 발길질에 쓰러져 있던 사내 한 명이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사내의 턱을 걷어차 올린 단악선이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분들을 모욕한 대가예요.”
신마삼존을 노괴라 표현하며 비아냥대던 주먹코 사내였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얼굴 주변에는 부러진 이가 한 움큼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단악선이 다시 눈을 들어 귀두도를 든 사내를 응시했다.
“자, 잠깐!”
사내가 황급히 귀두도를 거두며 단악선을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단악선은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빠악!
“컥!”
뒤로 크게 젖혀진 사내의 입에서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대체 무슨 수에 당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별이 번쩍하나 싶더니 시야가 어두워졌다.
털썩.
초악량이 즐겨 쓰는 수법인 지풍으로 상대를 제압한 단악선이 한 차례 주위를 둘러봤다.
이들이 조맹방의 수하임을 알기에 일부러 목숨은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살초를 사용하지 않았다 뿐, 그렇다고 해서 위력이 약해진 건 아니었다.
이를 증명하듯 곳곳에서 새어 나온 신음성과 울음소리가 일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직까지 의식이 남아 있는 몇 명을 향해 단악선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마혈은 저절로 풀릴 거예요.”
부러뜨린 뼈 역시 마찬가지.
일부러 아물기 쉬운 부위만을 골라 깔끔하게 골절시켰기에 부목을 대고 한동안 요양하면 충분했다.
“……?”
단악선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상대방의 머릿수 하나가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어렵지 않게 이유를 깨달았다.
어디에나 눈치 빠른 자는 존재하는 법.
상황이 심상치 않다 판단하자 곧바로 달아난 것이 분명했다.
단악선은 다시 걸음을 옮겨 곧장 마을 중앙에 위치한 객잔으로 향했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이미 객잔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진세가 구축되어 있었다.
오백에 달하는 머릿수는 둘째 치고 저들은 처음 자신을 막아섰던 자들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제대로 정련된 살기가 느껴졌다.
특히 그중에 몇 명은 무림 어느 곳에 가도 웬만큼 고수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때 선두 중앙의 서 있던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희끗한 반백의 머리에 게슴츠레한 눈매 사이로 섬뜩한 안광을 줄기줄기 흘리는 사십 대 중반의 장한이었다.
그의 양손에는 사용하기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기병인 쇄겸(鎖鎌)이 들려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낫과 거기에 연결된 사슬을 위협적으로 돌리며 다가선 그가 단악선과 십 장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이미 상대가 무서운 고수라는 사실을 들었기에 최대한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것이다.
“우리 방주님을 보자고 했다지?”
단악선이 장한과 시선을 마주했다.
“당신은 누구죠?”
“악진. 방주님을 보필하는 혈염방의 부방주가 바로 나다. 강호에서는 나를 가리켜 분광혈겸(分光血鎌)이라 부르지.”
단악선은 처음 들어 보는 명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제대로 강호를 횡행할 무렵에 단악선은 신지의 절진 안에서 홀로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자신을 혈염방의 부방주라 밝힌 악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이 신마의선이라 지껄였다지? 한데 그 말을 어떻게 믿지?”
“그건 당신네 방주님께서 오면 자연히 알게 될 거예요.”
“우리 방주님과 무슨 이야기를 할 셈이냐?”
“그것 또한 혈염방의 방주님이 오면 알게 될 거고요.”
악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자가 진짜 신마의선이라면 결코 방주와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상대는 혈혈단신.
그 어디에도 신마삼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악진이 비릿한 웃음을 말아 올렸다.
‘건방진 애송이.’
아무리 상대의 무공이 뛰어나더라도 천하오절 정도의 고수가 아니고서는 이 자리에서 살아 나갈 수 없었다.
한때 호사가들 사이에서 신마의선의 무공이 천하오절에 필적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던 적도 있었다.
마교의 사마존 중 한 명인 음마를 단신으로 격살했다는 것이다.
하나 그 소문의 진원지가 가두달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일개 도둑놈이 흘린 헛소문에 흔들릴 만큼 강호는 녹록한 곳이 아니었다.
물론 천마를 쓰러트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놈이 진법의 대가였기에 가능한 일.
십 년 전 당시라면 고작 앳된 티를 막 벗기 시작한 열일곱 소년에 불과했을 터.
그런 어린애가 천마를 쓰러트렸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믿을 만큼 자신은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천운이 따랐던 게지. 하지만 그 운도 여기까지다.’
제아무리 고수라 할지언정 결국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
기회를 주지 않고 몰아치면 그뿐이었다.
인해 전술을 앞세운 파상 공세 앞에서 언젠가 힘이 다할 것은 자명한 것이다.
그가 막 입을 열어 공격을 명령하려던 그 순간.
“모두 물러나도록.”
한 사람의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양쪽으로 갈라지는 수하들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사내를 발견한 악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방주님…….”
“내 말을 듣지 못했나?”
“…….”
차가운 조맹방의 음성에 악진이 허탈한 표정으로 쇄겸을 늘어트렸다.
그런 악진을 지나쳐 단악선을 향해 걸어간 조맹방이 잠시 침묵했다.
눈앞의 청년이 단악선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때 단악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맹산 아저씨의 일은 유감이에요.”
“……!”
조맹방의 눈 위로 기이한 빛이 일렁였다.
“우리 형제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약속했으니까요. 신마의가의 문턱을 넘을 때마다 여러분의 모습을 떠올리겠다 말씀드렸잖아요.”
조맹방은 눈앞의 청년이 단악선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 대화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들과 당사자인 단악선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없이 착잡한 눈빛을 흘리는 조맹방의 모습에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맹진 아저씨는 무사하신가요?”
순간 멈칫했던 조맹방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찌어찌 목숨은 붙어 있습니다.”
그 순간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천의……. 그 사람이 손을 썼나 보군요?”
조맹방은 단악선의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단악선은 비로소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였군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조맹방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들이 맹진 아저씨를 볼모로 삼은 건가요?”
그것 말고는 달리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악선이 기억하는 조맹방은 사파일지언정 명예를 알고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함께 싸웠던 동료를 향해 칼을 겨눌 만큼 몰염치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처럼 모든 비난을 감수하며 오욕을 감내하는 이유가 있다면 오직 하나.
바로 유일하게 남은 아우의 목숨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