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4)
신마의선-454화(454/500)
신마의선 (454)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는 조맹방의 모습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정은 있는 법.
그럼에도 끝내 거짓말만큼은 입에 담지 않는 그가 이 순간 고마웠다.
“제가 조 아저씨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
“미안해요.”
조맹방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어째서 사과를 하시는 겁니까? 둘째가 죽은 것은 단 의원님 때문이 아닙니다.”
신마의가의 의원들이 원망스러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단악선에게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제가 사과를 드린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에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조맹방이 멈칫했다.
“만약 그 자리에 제가 있었다고 해도 저 역시 분명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요.”
단악선이 더없이 쓸쓸한 눈빛을 흘렸다.
생사의 간극을 오가며 인생 대부분을 함께했던 피붙이의 죽음.
그 상실감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신마의가의 의원들은 결코 사리사욕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환자의 출신이나 배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최대한 많은 이를 살리려 했을 뿐.
그리고 이는 단악선도 마찬가지였다.
조맹방이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어째서 맹산이 죽어야 했던 겁니까?”
조맹방의 고함 소리가 일대를 쩌렁하게 흔들었다.
“대체 왜!”
“…….”
“신마의가의 의원들은 형산파 장문인을 살리기 위해 우리 형제들을 버렸습니다. 그것이 무위를 위해 그토록 헌신했던 우리 형제들에 대한 대답입니까?”
물론 그들 형제 역시 어떤 보답을 바라고 애써 왔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 하지 않았던가.
서로 안면을 트고 오가다 마주치면 안부를 묻곤 하던 의원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에게 외면당하고 나니 그 배신감과 분노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가슴 속에 쌓였던 울분을 토해 낸 조맹방이 더없이 무거운 눈빛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에는 관여하지 말아 주십시오.”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어요. 조 아저씨는 원망할 대상을 잘못 선택하셨으니까요.”
“그게 무슨……?”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신 거라면 차라리 저를 원망하세요. 애초에 이 모든 불행은 저로 인해 비롯된 것이니까요.”
중원 무림의 뜻을 모아 신지를 치기로 한 것도, 무위의 사파인들에게 참여를 부탁한 것도 모두 자신의 뜻이었다.
결국 이 비극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악선 역시 책임이 없다곤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맹방의 생각은 달랐다.
“그것은 저희 형제들을 모욕하는 말씀입니다.”
단악선이 뭐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조맹방이 재차 입을 열었다.
“마교 토벌에 참여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형제들의 의지였고, 선택이었습니다. 그 신념까지 부정당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과는 두 번 다시 하지 마십시오.”
“마찬가지예요.”
“……?”
“신마의가의 의원들 역시 자신의 신념에 따라 환자를 선택한 거예요.”
조맹방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렸다.
할 말을 잃고 당황한 조맹방을 향해 단악선이 설득을 이어 갔다.
“그리고 신마의가의 의원들에게 그런 방침을 내린 사람도 바로 저죠.”
모든 원망의 화살을 끝내 자신이 받아 내려는 단악선의 모습에 조맹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더 이상 소중한 인연들을 잃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제 수하들을 죽이지 않으신 겁니까.”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아저씨에게는 소중한 인연일 테니까요.”
조맹방의 눈빛이 흔들렸다.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진심이 녹아 있는 눈빛이 더욱 큰 설득력을 지니는 법.
지금만 해도 그랬다.
단악선을 마주하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분노가 누그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를 악문 조맹방이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짧았지만 소중했던 무위에서의 기억들도 마찬가지.
이미 그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였다.
“차라리 절 죽이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모르셨겠지만, 전 원래 이렇게 살던 놈이었습니다.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아니요. 아직 기회는 있어요.”
그 말에 조맹방은 입매를 비틀어 올리며 자신의 칼을 거머쥐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맹방의 자조 섞인 눈빛을 마주한 단악선이 애써 웃었다.
차라리 웃느니 못한, 무척이나 서글픈 미소였다.
“전 여기서 물러나지 않을 거예요.”
“그럼 둘 중 하나가 죽어야겠군요.”
“아니요. 전 아저씨도 돕고, 맹진 아저씨도 치료할 생각이에요. 그렇게 될 때까지 아저씨 곁에 있겠어요.”
“그, 그게 무슨…….”
당황한 나머지 조맹방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무위에서도 그랬잖아요. 장소가 바뀌었다고 우리 인연까지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그 순간.
조맹방은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 정말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조맹방은 결국 들었던 칼을 힘없이 떨구었다.
“그리하시면 대체 저는 뭘 어떻게 하라고…….”
조맹방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천천히 눈을 들어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했다.
어딘가 한결 홀가분해진 눈빛과 표정이었다.
“진정 작금의 상황을 돌이킬 수 있다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에요.”
“그렇다면 제가 어찌하면…….”
조맹방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돌연 입에서 울컥 핏물을 게워 냈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여 가슴팍을 내려다본 그의 눈에 자신의 가슴을 뚫고 비죽이 솟구쳐 나온 피 묻은 날붙이가 들어왔다.
등 뒤에서 파고들어 그대로 관통한 칼날.
그것이 부방주인 악진의 독문병기인 쇄겸이라는 것을 알아본 조맹방이 이를 악물며 뒤를 돌아봤다.
“악진……. 감히 네가…….”
수하의 배신에 분노보다는 당혹감이 더욱 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차디찬 비웃음뿐이었다.
“형산파를 친다고 그토록 호언장담하더니 겨우 한 사람의 말에 넘어가 형제들의 의지를 꺾어 버리다니. 당신은 방주의 자격이 없어.”
촤악.
악진이 손에 들린 사슬을 잡아당기자 조맹방의 가슴이 쩍 갈라지며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아저씨!”
단악선이 황급히 조맹방을 부축했다.
하지만 이미 조맹방의 눈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었다.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피 칠갑한 얼굴로 조맹방이 애써 웃었다.
“막내를……. 맹진을 부탁합…….”
결국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조맹방이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말없이 조맹방을 내려다보던 단악선이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여우를 잡기 위한 함정에 대호(大虎)가 걸려든 셈인가?”
비웃음 가득한 흉수의 음성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형산파를 밀어 버리러 왔는데,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되었군. 신마의선이라니…….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무서울 정도야.”
단악선이 조맹방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천천히 신형을 일으켜 이죽거리는 악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단악선은 상대의 눈빛에 담겨 있는 탐욕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듣자니 그 무섭다는 신마삼존도 네놈 앞에서는 순한 양과 다름없다지?”
신마삼존이 단악선을 끔찍이 아낀다는 사실은 이미 전 무림에 소문이 파다한 지 오래였다.
그 말인즉, 단악선의 신병만 확보하면 신마삼존을 수족처럼 부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두 번 다시 없을 크나큰 업적이 될 터.
비로소 그가 조맹방을 배신한 이유를 깨달은 단악선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인간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악의(惡意).
이제는 정말이지 그 깊이를 재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표현하기 힘든 끔찍한 분노는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증오가 되어 가슴을 가득 메웠다.
결국 단악선은 묵룡을 들었다.
단악선을 에워싼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나 싶더니.
선명한 묵빛 궤적이 대기를 내리그었다.
악진을 비롯한 수적들의 얼굴 위로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은 건 그 직후였다.
“…….”
그들은 놀란 눈으로 자신의 발밑을 바라봤다.
요란한 폭음이나 눈부신 섬광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의 발치에는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기다란 균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단면은 대리석처럼 매끈했고 깊이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작 이를 만들어 낸 단악선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중인을 쓸어 봤다.
“이분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 그리고 분노하는 사람은 모두 그 선 밖으로 물러나세요.”
모든 이가 낯빛을 굳힌 채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나 대부분이 악진 쪽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묻죠. 당신들 중 정녕 이분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이 어느 누구도 없나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악진의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하는 모양새만으로는 천하제일고수가 따로 없군그래.”
명백한 비웃음을 흘리며 앞으로 나서는 이들.
악진 뒤로 도열한 서른 명의 사내들은 처음 단악선이 이곳에 들어섰을 때부터 느꼈던,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 자들이었다.
양쪽으로 갈라진 혈염방도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삼십여 명의 사내들이 단악선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저마다 극(戟)을 비롯한 장병기와 기다란 꼬챙이 형태의 분수자(分水刺)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통해 단악선은 저들이 고수를 상대하기 위한 엽수합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 중 선두에 서 있던 매부리코의 사내가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누굴 애도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단악선은 침묵으로 응수하며 상대를 노려봤다.
반면 혈염방의 부방주, 악진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웃음이 떠올랐다.
사종악이 직접 파견한 고수.
사도일통을 위한 첨병(尖兵)인 창랑대(滄浪隊)가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장강수로맹 내에서도 추리고 추려 낸 그들은 잔혹한 성정만큼이나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들의 손에 쓰러진 구파일방의 고수들만 해도 벌써 기백을 헤아리고 있었고, 그중에는 명숙이라 불리는 자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형산파를 치기 위해 사종악은 이처럼 휘하의 직할 공격대를 선뜻 내어 준 것이다.
“사지는 멀쩡할 필요 없소.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얼마든지 신마삼존과 협상이 가능할 터.”
악진의 말에 혈랑대를 이끌던 사내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랑대가 일제히 단악선을 목표로 쏜살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악진이 혈염방 소속의 수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우리도 시작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혈염방도들이 저마다 무기를 거머쥐고 단악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밧줄이 연결된 갈고리가 들려 있었다.
그 자체로 대단한 살상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제약하기에 이보다 훌륭한 무기는 없었다.
거미줄처럼 얽어 상대의 움직임만 봉쇄해도 이미 그 목적은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단악선의 신형이 용권풍처럼 휘돌았다.
꽈릉!
돌연 웅혼한 우렛소리가 일대를 뒤흔든 건 그 직후였다.
퍼헉.
“……?”
난데없이 지척에서 튀어 오른 뜨뜻한 액체를 뒤집어쓴 창랑대의 우두머리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동료의 피라는 것을 깨닫자 경악의 감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크륵.”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사내가 피를 뿜어내며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꽈릉!
뇌성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아 터져 나온 뇌성과 함께 곳곳에서 자욱한 피 보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