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5)
신마의선-455화(455/500)
신마의선 (455)
허공에 남겨진 자욱한 피 보라.
그 궤적을 목도하고 나서야 그들은 단악선이 암기를 던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쾅.
일행을 사정없이 할퀴고 간 암기가 나무 둥치에 처박힌 것도 그때였다.
“……!”
암기의 정체를 확인한 창랑대의 얼굴에 경악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어디에나 흔히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였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거리를 허용하면 자신들을 기다리는 건 오직 죽음뿐.
그 위력은 고사하고, 눈에 보이지도 암기를 피할 방법은 전무했다.
“밀어붙여!”
우두머리의 지시에 창랑대가 이를 악물며 단악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대로 돌진해 힘으로 짓이겨 버릴 셈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두 명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래도 그들은 결국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비록 희생은 있었지만 단악선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쾌애액.
허공을 가른 극(戟) 한 자루가 그대로 단악선을 꿰뚫었다.
그러나 정작 창을 휘두른 사내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마땅히 손을 통해 전해져야 하는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잔영을 베었음을 직감했지만 그때는 이미 시야에서 상대가 사라져 버린 뒤였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낀 그가 황급히 물러섰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모골이 송연해진 것도 그때였다.
황급히 주위를 살피던 그의 신형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더없이 차가운 눈빛을 지척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거리를 벌리기 위해 창을 휘둘렀지만 이미 그때는 묵룡이 그의 턱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빠악.
그리 크지 않은 소리.
하지만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턱을 박살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얼굴을 절반 이상 날려 버린 것이다.
경악과 공포.
그가 살아서 느낀 마지막 감정이었다.
“…….”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악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믿고 있던 창랑대가 눈앞에서 죽어 나자빠지는 광경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상대가 암기를 던지고, 묵봉을 휘둘러 목숨을 거둔 것은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참혹한 죽음을 만들어 낸 당사자에게는 일말의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차가운 눈빛을 빛내며 다음 목표를 물색할 뿐.
악진은 비로소 자신이 일생에 한 번 보기 힘든 고수와 조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대한 파도가 단악선을 덮친 것도 그때였다.
어느새 단악선을 에워싼 이십여 명의 창랑대가 일거에 공격을 쏟아부은 것이다.
가히 군세(軍勢)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가공할 압박감은 단악선조차 경시할 수 없는 위협을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오연한 눈빛을 뿌리고 있을 뿐이었다.
쉬익!
일곱 자루의 창이 단악선의 등과 허리를 노리며 날아든 것도 동시였다.
그 순간 단악선의 어깨가 그림자처럼 흔들렸다.
카카카칵!
바닥을 두드린 창날에 의해 사방으로 흙더미와 돌 조각이 비산했다.
후속으로 따라붙은 창랑대 소속의 무인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그들은 일제히 분수자를 위주로 한 짧은 병기를 벼락같이 휘둘러 빈틈을 메웠다.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그야말로 물 샐 틈 없는 합공이었다.
이처럼 전방위를 아우르는 완벽한 합공에는 그 어떤 고수도 버틸 수 없을 터.
적어도 그들은 그리 믿었다.
난무하는 검기와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묵빛 섬광이 번뜩인 것도 그때였다.
콰쾅!
단악선의 앞을 가로막은 서너 명의 신형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 먼지를 뚫고 튀어 올랐다.
그러곤 그대로 실 끊어진 연처럼 핏물을 뿌리며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그들의 모습은 도저히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었다.
단악선의 배후를 노리며 처음 공격을 가했던 자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 대부분은 가슴이나 허리가 으스러진 채 날아가 쓰러져 있었고, 어떤 이는 머리가 움푹 짓이겨져 본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조차 형체마저 남기지 못하고 으스러진 자들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자 장내에 짙은 피비린내가 화악 끼쳤다.
“……!”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의 기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온통 경악과 공포에 질린 눈으로 단악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창랑대 대부분은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지닌 자들.
그래서 장강 일대에는 공포의 이름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앞의 적이 대체 무슨 방법으로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 갔는지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멀리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악진조차 무언가 번뜩이는 묵빛 궤적을 목도했을 뿐이었다.
그때 단악선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얼어붙은 공기보다 더욱 차가운 한 줄기 음성이 일대에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그 지옥 같던 시간을 견뎌 온 건 고작 이딴 강호를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아직도 절반에 가까운 창랑대의 무인들이 단악선을 에워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거나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숫자의 우위를 점하고도 오히려 한 사람의 존재감에 압도당한 것이다.
단악선의 싸늘한 눈빛이 주위를 훑었다.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냉혹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 너머의 끔찍한 무언가를 마주한 창랑대가 흠칫하며 일제히 물러섰다.
그 순간.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던 묵룡 위로 선연한 강기가 불쑥 솟구쳤다.
퍼엉!
난데없이 터져 나온 폭음.
묵룡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주변의 대기가 일그러지며 뇌광(雷光) 같은 불꽃이 번쩍이고 있었다.
압축된 대기가 단번에 찢겨 나가며 빚어지는 현상이었다.
이를 정면에서 마주한 창랑대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찢어질 듯이 두 눈을 부릅떴다.
콰앙!
“크악!”
비명과 함께 짙은 피 보라가 허공에 뿌려졌다.
단악선을 중심으로 반경 십 장 안의 공간은 이미 완벽한 지배 아래 놓인 상태.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대로는 굳이 이 초도 필요 없었다.
묵룡이 그려 낸 묵빛 호선이 창랑대의 무인들 사이를 헤집을 때마다 참혹한 죽음이 뒤따랐다.
가공할 일격일살(一擊一殺)의 신위.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악진의 눈가에 미미하게 경련이 일어났다.
그가 아는 창랑대는 집단전에 능숙했다.
그런 그들이 불귀의 객이 되는 데 걸린 시각은 고작 몇 호흡 남짓.
단 한 명에게 장강수로맹의 정예가 무력하게 무너지는 광경은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창백하게 질린 그의 얼굴에서 자신만만했던 표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영혼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눈빛.
이를 마주한 악진의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과 거리를 좁혀 오는 단악선을 마주한 악진이 대경실색하며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채 몇 발자국 움직이기도 전에 흙바닥에 고꾸라졌다.
우두둑.
“으아악!”
무릎 아래로 산산이 부서진 다리를 움켜쥐며 악진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 살려 주십시오!”
어느새 지척에 서 있는 단악선을 뒤늦게 발견한 악진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그러나 그를 내려다보는 단악선의 눈빛은 지극히 차갑기만 했다.
“그러죠.”
뜻밖의 말에 악진의 얼굴에는 한순간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금세 얼굴이 흙빛이 되어 버렸다.
“당신에게는 죽음도 과분하니까요.”
이 강호에는 때론 죽음보다 끔찍한 것도 존재하고 있었다.
퍼퍼퍼퍽.
단악선이 날린 지풍이 악진의 요혈 곳곳에 틀어박혔다.
“끄어!”
악진의 입에서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신음이 새어 나온 건 그 직후였다.
전신의 혈도를 타고 더없이 음유하고 끈끈한 기운이 파고드나 싶더니 순식간에 온몸의 진기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황급히 진기를 끌어 올려 대항했으나 한번 침투를 허용한 미증유의 기운은 도무지 떨쳐 낼 방법이 없었다.
오히려 맞서면 맞설수록 기혈이 뒤틀리며 진기가 역류했다.
앞서 지금껏 주화입마를 몇 번이나 치료해 온 단악선이었다.
오랫동안 연구하며 씨름해 왔기에 그 원리에 대한 이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그 지식과 경험을 이용해 이렇게 멀쩡한 상대에게 주화입마를 심는 것도 가능했다.
“속죄할 시간은 충분히 주어질 거예요. 살아서 겪는 지옥. 그 안에서 자신의 한 짓을 뉘우치세요.”
부들부들 떨던 악진이 갑자기 허리를 젖히더니 끔찍한 비명을 쏟아 냈다.
“끄아아아악!”
유부의 나락.
그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원귀의 절규처럼 악진의 비명은 처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이마와 목에는 어느새 거미줄처럼 선명한 퍼런 핏줄이 가득 찼고, 두 눈은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처럼 붉게 충혈되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다른 수적들도 덩달아 사색이 되었다.
악진의 명령을 따라 단악선에게 달려들었지만 창랑대의 전멸을 목도하고는 도저히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단악선의 칼날 같은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당신들 모두 선을 넘었군요.”
“……!”
그들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단악선이 그어 놨던 깊은 균열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잿빛 절망이 드리웠다.
* * *
동정호는 그 넓이가 방대해서 예부터 ‘팔백 리 동정(八百里洞庭)’이라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만큼 동정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섬이 존재했다.
특히 군산(君山)은 그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섬이었다.
악양루의 선착장에서 배를 띄워 두 시진 남짓한 거리에 존재하는 군산은 동정호의 명주(明珠)라 칭해질 정도로 유서 깊은 명소였다.
순(舜)임금의 왕비 묘와 진시황의 봉산인(封山印), 한무제의 주향정(酒香亭) 등을 비롯한 고대 전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고, 은침차(銀針茶)를 재배하는 차 밭 역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었지만 근래 들어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바로 이곳에 동정호의 수채 중 한 곳인 충의채(忠義砦)가 자리하고 나서부터였다.
호수 자체가 거대한 해자와 다를 바 없었기에 오직 선박으로만 접근이 가능한 데다, 곳곳에 쌓아 올린 높은 목책과 방벽은 외부의 침입을 쉽게 허락지 않았다.
게다가 조정의 관리들을 매수해 빼돌린 화포로 무장한 충의채는 그야말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와도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충의채가 함락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이 각 남짓.
수상비를 통해 빠르게 접근해 온 단 한 명의 적에 의해 화포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뒤이어 속속 도착한 선박에서 쏟아져 나온 형산파의 무인들이 파죽지세로 연이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충의채의 주요 전력 대부분은 뭍으로 나가 있었고, 이마저도 단악선에 의해 전멸해 버린 상태.
충의채의 수적들은 제대로 된 반항 한번 못 해 보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덕분에 조맹방이 부탁했던 그의 막냇동생을 찾는 과정도 생각보다 수월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악진.
그를 통해 이곳 충의채의 구조와 전각들의 용도를 낱낱이 파악해 두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뭍으로 옮겨 주세요.”
의식이 없는 조맹진을 들것에 실어 옮기던 형산파의 무인들이 단악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단악선의 뒤로 진조운이 다가섰다.
“이곳을 모조리 태워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
형산을 지나 흐르는 상수(湘水)가 장사 지역을 지나 동정호로 흘러들고, 동정호는 다시 악양을 지나 장강과 합류한다.
그만큼 이곳 동정호에 위치한 충의채는 장강수로연맹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핵심 요지 중 한 곳이었다.
놈들이 이곳을 순순히 포기할 리 없었다.
아마도 끈질기고 집요하게 이곳을 되찾으려 들 터.
그러나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목책과 방벽이 온전해야만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의 적을 막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곳이 적의 수중에 떨어진 이상, 사종악은 이곳이 입 안의 가시처럼 느껴질 거예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지라 진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당장은 이곳에 전력을 쏟아부을 만큼 여유가 없을 테고요.”
잠시 의아해하던 진조운은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제가 그리 만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