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6)
신마의선-456화(456/500)
신마의선 (456)
동정호를 거점으로 암약하던 충의채.
그들을 일망타진한 이후에도 단악선은 좀처럼 쉴 수가 없었다.
개방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신마상단과 연락해 이 지역에 구호물자와 자금을 댈 수 있도록 안전한 이동 경로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 조맹진의 치료를 이어 가야 했다.
다행히 조맹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회복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조맹진의 상태는 예상보다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부상 자체는 이미 오래전에 호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나 꽤나 상당한 의술을 지닌 의원이 치료를 한 것이 분명했다.
다만 몽혼약(曚昏藥)에 취해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을 뿐이다.
치료를 빌미로 그의 신병을 구속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그의 체력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놈들의 저열한 수작에 새삼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들에게 분노할 여유가 없었다.
의식을 회복한 조맹진의 상태가 더욱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맏형의 죽음을 전해 들은 그는 사흘 밤낮을 내리 울었고, 가뜩이나 성치 않은 몸으로 곡기까지 끊어 가며 연일 통곡을 해 대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엎드려 곡하다 혼절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단악선은 그의 곁을 지키며 슬픔을 함께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는 어느 정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저씨, 저 단악선이에요.”
탕약을 들고 조맹진의 방 안으로 들어선 단악선은 텅 빈 침상을 마주하곤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단악선이 탕약을 한쪽에 내려놓은 뒤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동정호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그 위에 마련된 봉분 앞에 술병을 기울이고 있는 조맹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들 모두 가시고 이제는 혈혈단신, 이 못난 아우만 남았구려. 부디 그곳에서는 이 세상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편히 지내시오.”
넋두리를 이어 가던 조맹진이 소매를 들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형님들께 빚진 이 목숨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겠소. 내 이야깃거리 많이 만들어 갈 테니, 다시 만나는 그날……, 원 없이 회포를 풉시다.”
단악선은 묵묵히 그런 조맹진을 지켜볼 뿐이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던 조맹진이 단악선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같은 마음이거든요.”
빙긋 웃은 단악선이 술병을 받아 조맹방의 무덤에 부었다.
“복수하실 건가요?”
단악선의 말에 조맹진이 움찔했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우물쭈물하는 사이.
“저도 만류할 생각은 없어요.”
“예?”
의외의 말에 조맹진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 전에 회복이 먼저예요.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제대로 된 복수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조맹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네? 뭐가 말인가요?”
“저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 말입니다. 제가 멀쩡했다면 형님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셨을 텐데…….”
“아저씨께서 사과할 일은 아니에요. 정작 잘못을 저지른 자들은 따로 있으니까요.”
그때였다.
저 멀리서 이쪽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기파 하나가 단악선의 기감에 포착되었다.
안정된 기도를 지닌 인물.
단악선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 단악선이 조맹진을 향해 다가섰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침을 놓아 드릴게요.”
조맹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단악선은 품속에서 침을 꺼내 그의 몸 곳곳에 시침을 했다.
그러다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특이하게 몇몇 혈도만 유독 다른 곳에 비해서 강한 회복을 보이고 있네요.”
상당히 독특한 방식이었다.
이와 유사한 치료법이 있었다는 걸 구전을 통해 듣긴 했으나 오래전에 실전되어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는 건 전무했기 때문이다.
“혹시 처음에 누가 치료를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조맹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차라 정확히 떠오르진 않습니다만 대략적인 특징은 기억합니다.”
이어진 조맹진의 말에 단악선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처음 저를 치료했던 의원은 묘령의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이요?”
“네. 대략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았던 것 같은데, 그때부터 눈에 띄게 부상이 호전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불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가 꽤 젊어 보였습니다.”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나요?”
“글쎄요.”
난감한 표정을 짓던 조맹진이 무언가를 떠올리곤 반색했다.
“천의! 누군가 그녀에게 천의라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
단악선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소문의 그 천의가 여인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 역시 마찬가지.
이래서 선입견이 무서운가 보다.
사종악과 한 패거리라 들었기에 당연히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의원을 떠올렸었다.
‘하긴.’
어머니인 마의만 해도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 중원에 유명세를 떨쳤었다.
“혹시 다른 특징이나 신분을 특정할 만한 다른 특징들은 없나요?”
곰곰이 기억을 더듬던 조맹진이 이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저도 워낙 경황이 없어서……. 워낙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요.”
“어쩔 수 없죠. 아저씨 탓이 아닌걸요.”
조맹진의 몸에서 침을 뽑은 단악선이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럼 부디 보중하세요.”
“단 의원님께서도 무탈하시길.”
조맹진을 보낸 단악선이 천천히 기파를 개방했다.
마을의 객잔 쪽으로 향하던 인기척이 재빨리 이쪽으로 선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야밤에 무슨 청승이야?”
서둘러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면서도 방소방은 입을 쉬지 않았다.
“하긴 동정호에서 올려다보는 달이 일품이긴 하지. 두보나 이태백 같은 시성들이 괜히 이곳을 찾았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나도…….”
이대로 두었다간 밤새 떠들 기세라 단악선이 적당히 말허리를 잘랐다.
“갔던 일은 잘됐어?”
방소방이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히죽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럼. 내가 누구냐? 풍운쾌걸 방 모 대협께서 직접 나섰는데 일이 안 풀리면 이상한 거지.”
한껏 으스대는 방소방의 모습에 단악선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친구와 대화를 나누니 요 근래 울적했던 기분이 그나마 나아졌던 것이다.
며칠 뒤.
형산파의 장문인인 진조운은 제자들과 함께 산문까지 직접 나와 단악선을 배웅했다.
“매번 이리 자네에게 도움만 받으니 참으로 염치가 없군.”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에요.”
“덕분에 시간을 벌었으니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네.”
이미 충의채에는 속가 제자들을 비롯해 본산의 고수들을 파견해 단단히 방비를 마친 상태였다.
수로연맹 놈들의 수중에 두 번 다시 동정호 일대를 넘겨주지 않을 터.
사종악이 직접 온다면 모를까, 당장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진조운의 내심을 읽었던 것일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장강수로연맹은 이곳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예요.”
사종악의 세력이 근래에 크게 확장하며 중원 전체에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지만 그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몸집이 커진 만큼 공격할 곳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당장은 사종악이 어느 곳에 머물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피해가 누적되다 보면 결국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지 많은 나무가 얼마나 바람 잘 날 없는지 몸소 깨닫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바로 삼몰쌍귀였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상 수로연맹 측은 이를 수습하느라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자연히 삼몰쌍귀를 추적하는 전력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신이 강호로 나선 것과 이후의 행보는 이미 발 빠른 개방의 정보망을 통해 강호 전역에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삼몰쌍괴는 그나마 우호적인 관계인 자신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겠나?”
반면 진조운은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단악선이 뛰어난 고수라 하나 사종악이 모든 것을 걸고 전력을 집중한다면 그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여유롭게 웃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게도 든든한 아군이 있으니까요.”
“아군?”
뒤늦게 단악선의 목적지를 떠올린 진조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무림을 활보할 때마다 끊임없이 무수한 소문을 만들어 내는 한 사람.
단악선도 모자라 그 괴물까지 상대해야 할 사종악과 그의 잔당들이 내심 불쌍해질 정도였다.
진조운이 단악선의 손을 맞잡았다.
“그럼 해남도까지 조심해서 가시게.”
“다시 뵐 때까지 장문인께서도 옥체 강녕하시길.”
인사를 나눈 단악선이 곧장 남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범 아저씨는 잘 계시려나?’
실로 오랜만에 찾는 해남도였다.
단악선의 얼굴에는 어느새 엷은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 * *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시각.
먼동이 터 오는 이른 새벽임에도 해남도의 연무장은 변함없이 사람들로 빼곡했다.
오와 열을 맞춰 수련에 여념이 없는 해남검파의 무인들.
진지한 눈빛과 절도 있는 동작 속에 배어 있는 열의에는 중원의 그 어떤 문파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삼엄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
그런 그들의 선두에는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열 살 정도 되었을까.
아담한 키에 손에 든 검이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앙증맞은 소녀였다.
하지만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눈빛만큼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 상반된 모습이 더욱 깜찍해 보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그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소녀가 짜랑한 음성으로 외치자 연무장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쩌렁한 기합성으로 제대로 호응하며 수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
“장풍파랑(長風波浪)!”
“하앗!”
백 자루가 넘는 검이 일사불란하게 허공을 찢자 마치 은빛 물고기가 튀어 오르듯 눈부신 검광이 연무장 위를 가득 메웠다.
“창해도도(滄海滔滔)!”
“핫!”
정교하게 맞물리듯 이어지는 초식의 변화를 따라 장엄한 검기가 끝없는 파도처럼 연무장 위로 넘실거렸다.
그런데 그때.
무엇을 발견했는지 연무장 위의 무인들 일부가 멈칫했다.
그 바람에 흐름이 살짝 뒤엉켰고, 몇몇 무인들의 입에서는 당혹성이 새어 나왔다.
“갑자기 왜 이래?”
동료를 향해 불만을 터트리던 무인 한 명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저 멀리서 코를 후비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철탑 같은 체구를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소녀가 뒤를 돌아봤다.
하나같이 바짝 긴장한 눈으로 어딘가를 주시하는 무인들.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소녀가 포옥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빠!”
소녀의 뾰족한 옥음(玉音)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범계위는 어느새 소녀 앞에 이르러 있었다.
“어, 그래. 우리 딸. 아빠 불렀어?”
심드렁한 눈빛을 흘리던 범계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소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빵빵하게 양 볼을 부풀린 채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제가 수련 방해하지 말라고 했었죠?”
“응? 했었지?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잖니.”
“아니, 그냥 제발 집에 계시라고욧! 아빠만 오면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 버리잖아요!”
“뭐라?”
범계위가 돌연 정색하더니 연무장 위의 무인들을 노려봤다.
“똑바로 안 해? 내가 한심한 너네들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딸한테 이런 심한 말까지 들어야겠냐고!”
험악하기 짝이 없는 범계위의 눈빛에 무인들이 흠칫했다.
“아빠.”
“응? 왜 우리 딸. 억!”
웃으며 소녀를 돌아보던 범계위가 비명과 함께 질끈 눈을 감았다.
“딸아, 이게 무슨 짓이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면서요?”
“그렇다고 아비 눈에 손가락을 쑤셔 넣으면 돼요? 안 돼요?”
“아, 몰라요! 엄마한테 전부 다 이를 거야!”
“으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던 범계위의 모습에 연무장의 무인들이 어이없단 눈빛을 흘렸다.
아무리 하나뿐인 딸이라지만 세상에 팔불출도 이런 팔불출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