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58)
신마의선-458화(458/500)
신마의선 (458)
“아!”
단악선이 놀란 눈으로 범계위를 올려다보았다.
“설마 이 아이가?”
“어. 내 딸이야. 예쁘지?”
누가 소문난 팔불출 아니랄까 봐 대뜸 딸 자랑부터 하는 범계위였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범려화와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어딜 가도 단연 눈에 띌 만큼 귀여운 이목구비.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태도에서는 올곧은 성정이 느껴졌다.
게다가 스스럼없이 거리를 좁혀 오는 타고난 친화력은 절로 호감을 자아냈다.
“다행이에요.”
“응? 뭐가?”
범계위의 반문에 단악선이 급히 말을 돌렸다.
하마터면 엄마를 닮아 다행이라는 말을 무심코 내뱉을 뻔했던 것이다.
“행복해 보이셔서요.”
범계위의 표정이 일순 복잡해졌다.
“어, 으음…….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지.”
“네?”
영문 모를 말에 단악선이 의아해하는 사이, 범려화가 범계위를 향해 새초롬히 눈을 흘겼다.
“아빠?”
“으하핫. 아무렴. 아주 행복하지. 그러니까 단 의원도 얼른 혼인해. 나만 행복하니까 너무 억울……. 아니, 미안해서 말이야.”
깜짝 놀란 범계위가 뒤늦게 대답을 얼버무리던 그때.
“가가께서 그렇게 행복하시다니 다행이에요. 그것도 모르고 저는 그만 가가를 오해했지 뭐예요?”
어느새 나타난 벽화령을 발견한 범계위의 눈에 긴장감이 자리 잡았다.
“오해? 어떤?”
“이곳 생활에 질려 호시탐탐 중원으로 뛰쳐나가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 줄 알았거든요.”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내 여자. 설마 그럴 리가.”
애써 시선을 회피하는 범계위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지던 벽화령이 단악선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단 의원님.”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요.”
미소 짓던 벽화령이 단악선의 소매를 붙들고 있는 범려화를 발견하곤 한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 딸, 제대로 인사 드려야지?”
한 차례 움찔한 범려화가 쥐고 있던 단악선의 소매를 놓고 재빨리 물러났다.
그리곤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해남의 범가 려화가 본 파의 은인이신 신마의선을 뵙습니다.”
방금 전의 그 천진난만한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예법이었다.
단악선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범려화를 바라봤다.
“반가워, 려화야.”
더없이 보기 좋은 단악선의 미소에 나름 진지했던 범려화의 표정이 그대로 무장 해제되었다.
“히힛. 저도 반가워요. 그런데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되죠?”
“물론.”
비록 나이 차이는 숙부뻘이었지만 자신이 범계위를 아저씨라 부르는 이상, 항렬상으로 틀린 호칭은 아니었다.
그것 보란 듯이 벽화령을 향해 으스대던 범려화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꿈만 같아요. 저는 외동이라 형제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거든요. 그토록 바라 왔던 동생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멋진 오라버니가 생겼으니 엄청 기뻐요.”
“나도 그래. 내게도 이렇게 예쁜 동생이 생길 줄은 몰랐거든.”
“헤헷.”
손가락을 꼬아 가며 뺨을 붉히는 딸의 모습에 범계위는 일순 착잡한 기분을 느꼈다.
제 엄마의 맹수 같은 성격을 빼다 박아 또래들 사이에서 패왕처럼 군림하던 녀석에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이야.
단악선이 눈을 들어 범계위를 보았다.
“우선 문주님을 뵙고 인사부터 드려야겠어요.”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저 멀리 해남검파의 문주인 벽대경이 장로들과 함께 직접 선착장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단악선은 해남검파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창해각(滄海閣)으로 자리를 옮겼다.
“음, 그러니까 사종악을 피해 숨어 있는 삼몰쌍괴를 꾀어내기 위해 장강 이남의 사파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게지?”
벽대경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사종악과 손을 잡은 자들에 한해서요.”
삼몰쌍괴의 신변만 확보한다면 천의와 관련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벽대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자네는 번강룡 그자의 배후에 천의라는 의원이 있다 짐작하는 것인가?”
“아직은 확신할 순 없어요. 다만 어느 정도 깊은 관계인 것은 확실해요. 그런데 최근 사종악과 천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정보가 있어요. 어쩌면 천의를 통해 사종악과 그의 세력을 무너트릴 확실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벽대경을 위시한 해남파의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범계위에게 향했다.
그때 범계위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섬뜩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걸리적거리는 놈들을 닥치는 대로 처죽이면 된다는 거지?”
그 말에 벽대경을 비롯한 장로들이 움찔했다.
서슬 퍼런 안광에서 자욱하게 흘러내리는 살기로 보아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당금 강호에서 범계위가 해남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다 자칫 해남검파에서 중원에 재앙을 풀어 놓았다는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었다.
벽대경이 단악선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던졌다.
어떻게든 저 대책 없는 괴물 사위를 말려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소란은 클수록 좋아요. 중원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요.”
단악선의 말에 벽대경은 질끈 눈을 감았다.
‘대체 십 년 동안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야말로 대살육을 일으킬지도 모를 괴물을 만류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다니!
반면 범계위는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흐흐. 나쁜 놈들이 많아져서 참 좋아.”
벽대경과 장로들은 내심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그중에 네가 제일 나쁜 놈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차마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를 잠시.
벽대경이 단악선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자네 역시 일신상의 무공만으로 따진다면 우리 사위와 버금가는 것 같은데, 굳이 함께 중원에 갈 필요가 있는 것인가?”
그래도 문주인 이상 누구보다 해남검파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일단은 한번 이렇게라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삐끗해 일이 잘못되면 그 덤터기를 뒤집어쓰는 건 해남검파였고, 뒷수습은 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웃으며 범계위를 바라봤다.
“아직까지 강호에서의 위상은 범 아저씨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아저씨가 곁에 없으니 무시당하기 일쑤더라고요.”
범계위가 고리눈을 부릅떴다.
“감히 어떤 놈이 우리 단 의원을 무시해?”
대놓고 드러낸 범계위의 기파에 해남검파의 장로들이 사색이 되었다.
단악선이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숨어 있는 삼몰쌍괴 두 분도 저보다는 범 아저씨와 알고 지낸 시간이 길어요. 제 곁에 범 아저씨께서 함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우리를 찾아올 거예요.”
적일 때는 염왕보다 두렵지만, 반대로 아군일 때는 그렇게 든든할 수 없는 고수가 바로 범계위였다.
벽대경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본 파도 한 손 거들어야겠지?”
장강수로연맹에 속해 있는 삼십육 개의 수채는 그야말로 전 중원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호전(水滸傳)에서 언급되었던 양산박(梁山泊).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는 그들은 사해지내(四海之內) 개형제야(皆兄弟也), 체천행도(替天行道) 충의쌍전(忠義雙全)의 이념에서 주요 수채 여덟 곳의 이름을 따와 붙였다.
단악선이 토벌했던 동정호의 충의채도 그 여덟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도 아직 서른다섯에 달하는 수채가 존재하고 있었다.
단악선과 범계위, 두 사람만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숫자인 것이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벽대경과 시선을 마주했다.
“해남검파는 오래전부터 중원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들었어요.”
“그랬지.”
벽대경이 선선히 인정했다.
오랜 세월 거친 파도를 벗 삼아 가장 최일선에서 왜구를 비롯한 해적들로부터 중원을 지켜 온 해남검파였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인정받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중원의 내로라하는 문파들로부터 견제는 말할 것도 없었고, 때로는 은근한 수모와 모욕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실전적인 해남검파의 무공과 바다에 적응한 거친 성정.
중원 무림 입장에서 보면 얼핏 사마외도의 무리들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노력과 업적을 인정받아 관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해남검파의 숙원 중 하나였던 중원으로의 진출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했다.
심지어 단악선 덕분에 해남검파의 위상이 올라간 현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과거 크게 신세를 졌던 점창파 정도가 해남검파의 중원 진출을 반길 뿐, 다른 정도 문파들의 태도는 그리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만큼 오랜 세월 쌓인 선입견과 편견은 여전했던 것이다.
그러니 중원의 정도 무림을 위해 선뜻 해남파의 전력을 내어 주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다른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
당연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그들은 표정을 달리해야만 했다.
“해남파가 중원에 진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이 뭐라 생각하세요?”
“말하게. 경청하지.”
“바로 명분이에요.”
“명분?”
벽대경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파일방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곤륜파는 재건을 위해 아직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더구나 다른 구파일방 역시 신지에서의 마지막 일전에서 핵심이 되는 정예 고수 상당수를 잃었고요.”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예전처럼 구파일방이 온전한 힘을 갖추고 있었다면 사종악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수로연맹은 여전히 숨죽인 채 그들의 눈치만 살피기에 급급했을 것이 분명했다.
“어려울 때 손을 뻗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구파일방은 해남검파의 도움을 기억할 거예요. 제가 겪어 본 그들은 누구보다 은원을 확실하게 구분하니까요.”
“하지만 그 오만한…… 아니, 자존심 높은 그들이 우리의 협력을 달가워할까 싶네만.”
“당장에는 달리 뚜렷한 대안이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해남검파는 물에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정도 무림이 장강수로연맹에 애를 먹는 이유는 대부분의 싸움이 수적들에게 유리한 물줄기를 끼고 치러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해남검파가 나선다면 수적들은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복병과 맞닥뜨리게 되는 셈이죠.”
장로들 중 몇 명이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바다의 사나운 파도에 비하면 장강의 물결은 평지나 다름없지.”
“듣고 보니 그렇군. 물질 하는 걸로만 따지면 중원의 어느 누구도 감히 우리와 견줄 수 없을걸?”
그 자체만으로도 수적들은 가장 큰 이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해남검파의 무공은 근래 들어 매우 큰 진전을 이뤄 냈다.
동일한 조건이 주어진 이상 수적들에게 있어 해남검파는 그야말로 천적과도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단악선이 말을 이어 갔다.
“중원에는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해요. 물론 쉽지 않은 여정이 되겠지만 그 싸움 끝에 해남검파가 얻을 명예는 중원 진출의 입지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