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
신마의선-46화(46/500)
신마의선 (46)
주어진 일과를 모두 마무리한 사무심은 계곡 한편에 마련한 새장 앞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을에 갈 때마다 한두 마리씩 구해 온 비둘기들을 직접 먹이고 돌보며 전서구로 훈련시키는 중이었다.
“앞으로 잘해 보자꾸나.”
그사이 제법 정이 들었던지 비둘기들이 모이통을 채우는 사무심의 손에 친근하게 부리를 비벼 댔다.
그때 어디선가 범계위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야! 똑바로 해!”
목소리를 좇아 사무심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단악선의 전각 근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범계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늘 그렇듯 초악량과 한설화도 함께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즉시 대답하는 사무심의 모습에 오히려 범계위가 뻘쭘해졌다.
초악량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범계위를 물었다.
“그런데 뭘 똑바로 하라고 한 거냐?”
“응? 그냥 뭐든…….”
마침 전각을 나서던 단악선이 범계위를 향해 미소를 건넸다.
“사 총관님이 잘 적응하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반면 범계위는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죽었다 살아나서 그런가? 왜 저렇게 사람이 달라졌지?”
초악량과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주화입마를 치료한 시점을 기준으로 사무심의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세상 달관한 것 같은 여유로운 태도와 미소에서는 수전귀야로 불리던 과거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범 아저씨 덕분인 것 같아요.”
“응?”
예상치 못한 말에 범계위가 당황하는 사이 단악선이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지금처럼 매번 먼저 말을 걸어 주시잖아요. 그런 상냥함이 범 아저씨의 장점이니까요.”
“내가?”
“그럼요. 옆에서 계속 지켜본 제가 보장해요.”
어색하게 웃는 범계위와 달리 초악량과 한설화는 황당함에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아무리 단 의원을 믿고 의지하지만, 그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는걸.”
초악량의 말에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반면 단악선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범계위는 어깨를 으쓱하며 초악량과 한설화를 향해 씨익 웃었다.
괜히 기분이 나빠진 두 사람이 발끈하려는 순간.
단악선이 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초 아저씨 집중 치료를 시작하려고 해요.”
“집중 치료?”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화요법으로 세맥을 제대로 바로 잡아 보려고요.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으니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초악량을 힐끗 본 범계위가 이내 마뜩잖은 표정을 드러냈다.
“음……. 단 의원. 우리 치료를 며칠만 미루면 안 될까?”
“네? 왜요?”
“좀 피곤해서.”
“어? 그러시면 안 되는데?”
놀란 단악선이 서둘러 맥을 잡으려 하자 범계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 육체적인 문제 말고. 뭐랄까……. 정신적으로 조금 지쳤다고 할까?”
가만히 듣고 있던 한설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범계위의 입에서 정신이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그 순간 초악량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설마 내가 회복하는 게 싫어서 그러냐?”
초악량의 추궁에 범계위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날 뭘로 보고. 뭐, 초 형이 무공을 회복하면서 평소보다 잔소리도 심해지고, 면박도 늘고, 노려보는 횟수도 늘어나긴 했지만…….”
초악량의 눈빛이 험해졌지만 이에 밀릴 범계위가 아니었다.
“요즘 들어 예전보다 날 무시하는 건 사실이잖수!”
발끈한 초악량이 뭐라 하려는 순간 범계위가 먼저 따지고 들었다.
“언젠 고맙다며? 이게 어디 고마운 사람의 눈빛이우?”
초악량이 물끄러미 범계위를 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생각했다니 미안하다.”
사과를 건넨 초악량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너와 한 누이에게 고맙다. 이건 진심이다.”
“지금까지는 진심이 아니었단 소리로 들리는데?”
“야, 이 자식아! 내가 고맙다고 몇 번을 말해? 내 입에서 고맙다는 말을 받은 사람이 어디 흔한 줄 알아? 작고하신 우리 사부님과 단 의원 말곤 너희 둘이 유일해!”
“말로는 뭔들 못할까.”
“뭐, 인마?”
초악량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원하는 게 뭐냐?”
“인정하슈.”
“……?”
“내가 십대악인 수좌라고 인정하란 말이오.”
“뭐?”
황당해하는 초악량을 힐끗 쳐다본 범계위가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것만 딱 인정하면 당장이라도 몸이 가뿐해질 것 같은데.”
“다 죽고 네 명, 아니지. 칠절마군 그 자식은 변절했으니 빼야지.”
초악량이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범계위에게 물었다.
“이제 겨우 세 명 남았는데 그게 중요하냐?”
“거 참, 말 많네. 할 거요? 말 거요?”
“그래, 한다! 해!”
초악량이 범계위를 향해 외쳤다.
“네가 십대악인 중 최고다!”
“아, 좀.”
“왜 또?”
“이왕 하는 거 진심 좀 팍팍 담아서 해 주면 안 되겠수?”
초악량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이번에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했다.
“나 초악량은 망산초자 범계위를 강호 십대악인의 수좌로 인정한다! 이제 됐냐?”
“흐흐. 진작 그렇게 해 주지.”
흡족한 웃음을 흘리는 범계위의 모습에 초악량은 어이없고 한편으론 기가 막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 연이어 초악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한설화가 불쑥 끼어든 것이다.
“너는 또 왜?”
“똑같이 치료해 줬는데 저 바보만 이득을 보게 할 순 없잖아.”
“하아……. 너까지 왜 이러냐.”
초악량이 한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그래서 뭘 원하는데?”
“…….”
한설화가 입을 다물었다.
“원하는 게 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설화는 여전히 묵묵부답.
초악량이 미심쩍은 눈으로 한설화에게 물었다.
“생각해 놓은 것도 없이 그냥 일단 지르고 본 거야?”
“아니, 있어.”
잠시 머뭇거리던 한설화가 말했다.
“목상을 만들어 줘.”
“목상?”
“지금 내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설화가 그와 같은 대가를 요구한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세월이 비켜 갔지만 치료가 진행될수록 그녀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나이가 들고 늙어 갈 터.
가장 아름다운 현재의 모습을 남겨 두고 싶은 것이리라.
“그래. 목상이 아니라 아예 석상으로 만들어 주마. 오랫동안 그 모습이 보전될 수 있도록.”
한설화의 입가로 보일 듯 말 듯 한 희미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단악선이 세 사람과 함께 모옥으로 향했다.
그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던 사무심은 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극히 평화롭고 훈훈한 모습이 더없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누가 저들을 흉명 자자한 혈수존자와 망산초자라 할 수 있을까.
새삼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금은 그 역시 저들과 일행이 되었기 때문이다.
죽을 날을 받아 두었던 그에게 단악선과의 인연은 기연 그 자체였다.
주화입마를 벗어난 건 물론이고, 심각했던 내상도 완치된 상태.
하나 더욱 큰 은혜는 따로 있었다.
어그러졌던 삶이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 계기를 만들어 준 초악량과 범계위의 은혜도 잊을 수 없었다.
얼마든지 자신의 위기를 못 본 척 넘어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찌 보답해야 할까?’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갚기 어려운 은혜였다.
‘우선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사무심이 걸음을 옮겨 신마곡 한편에 마련된 창고로 향했다.
창고 문을 열자 여기저기 가득 쌓인 목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한 달 동안 초악량이 깎은 목상들이었다.
처음에는 만드는 족족 마을에 있는 목공예점에 가져다주었지만 사무심이 반대했다.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수입과 지출에 관련된 신마곡 재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일임받은 상태.
그렇게 목상의 수량과 상태를 확인한 사무심이 이번에는 다른 창고로 이동했다.
새롭게 마련한 약재 보관 창고였다.
문을 열기 무섭게 그윽한 향기가 전신을 감쌌다.
상자에 덮여 있던 천을 걷어 내자 그 아래 밀랍으로 감싼 환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사무심이 흐뭇하게 웃었다.
총관 일을 맡자마자 사무심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단악선에게 단약 제조를 부탁한 것이다.
기존의 값비싼 약재를 대신해 일반적인 약재로 제조해 가격 부담을 낮춘 보양환(保養丸).
하나 그 약효는 의가를 통해 거래되는 기존 단약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무엇보다 부작용이 없었다.
‘이만한 상비약이 없지.’
해열과 진통 효과는 물론이고, 미량만으로도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능도 있었다.
그대로 으깨어 상처에 바르면 지혈 작용도 뛰어났다.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것이다.
하나 단약의 진짜 가치는 따로 있었다.
‘무림인들이 알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어.’
험난한 도산검림을 누벼 오며 사무심 역시 크고 작은 부상을 경험했다.
당연히 의원들에게 치료를 받은 경험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완벽한 약은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내상 약으로도, 외상 약으로도 모두 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효과도 기존의 약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생명이 위중하지 않은 내상은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우리만치 상태가 호전되었다.
외상 역시 마찬가지.
소독과 진통 작용을 지닌 감총전(甘蔥煎)과 지혈제인 도화산(桃花散), 새살이 돋게 하는 생기산(生肌散)의 효과를 하나로 집약시켜 놓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경험한 그 어떤 금창약(金瘡藥)도 이와 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유명한 화산파의 금창약인 매화고(梅花膏)조차 한 수 아래로 접어줄 정도.
“이제 내가 잘하는 일을 할 차례군.”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은 일찌감치 세워 두었고 준비도 마쳤다.
사무심의 눈 위로 뜨거운 열기가 일렁였다.
* * *
그날 밤.
단악선은 한참 서책에 글자를 채워 넣다가 붓을 멈추고 고민에 잠겼다.
단악선은 근래 들어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
제대로 된 의가를 세워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은 이 신마곡에 한정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은 무림에 몸담은 강호인들이다.
지금은 치료를 위해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 떠날 사람들인 것이다.
자신의 꿈이 저들에게 족쇄가 되어선 안 된다.
“곡주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들려온 사무심의 목소리에 단악선이 상념을 벗어났다.
“네, 들어오세요.”
사무심이 들어서자 단악선이 책상 위의 서책을 한 곳으로 밀어 두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이제 목상과 단약을 판매할까 합니다.”
단악선의 표정이 밝아졌다.
“잘됐네요. 그러잖아도 공예점 아저씨가 언제부터 목상을 넘겨받을 수 있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셨거든요.”
“그분과는 제가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약간 판매 방식을 달리해야 할 것 같아서요.”
단악선은 문득 한 가지 걱정이 앞섰다.
과거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저질렀던 악행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사무심을 믿기로 했다.
“이미 모든 권한을 총관님께 맡겼으니 뜻대로 하세요.”
전적인 신뢰가 담긴 단악선의 미소에 사무심이 조용히 웃었다.
단악선의 그릇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하긴.’
사무심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초악량이나 범계위, 한설화 정도 되는 사람들이 단악선을 아끼고 따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단악선이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더 하실 말씀이 있나요?”
사무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데요?”
“조 대야라고, 무위에서 가장 큰 상단을 운영하는 상단주입니다. 사업적인 수완도 수완이지만 덕과 인망이 높아 이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앞으로 진행할 사업을 통한 꾸준한 가치 창출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기도 했다.
단악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시고 오세요.”
사무심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