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1)
신마의선-461화(461/500)
신마의선 (461)
조신이 재빨리 대답했다.
“여전히 의방에 틀어박힌 채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잔다는 말은 전했느냐?”
“그게…….”
난감한 듯 말끝을 흐리는 조신의 모습에 사종악이 눈살을 찌푸렸다.
더 듣지 않아도 충분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종악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챈 조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수하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천의를 그냥 둬도 괜찮겠습니까?”
“그냥 안 두면?”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사종악이 피식 웃었다.
그가 아는 그녀는 차라리 혀를 깨물었으면 깨물었지, 협박과 회유 따위로 흔들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이렇게 애를 먹지도 않았을 터.
“됐다. 내가 직접 만나 보지.”
태사의에서 일어난 사종악이 수하들을 물리고 향한 곳은 중상자들을 치료하는 별도의 공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장 먼저 그를 맞이한 것은 실내에 떠도는 진한 약 향이었다.
그리고 눈에 익은 여리여리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뭇 사람들에게 천의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침상에 누워 있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도 알은 척은커녕 이쪽으로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냉담한 태도에 사종악의 얼굴 위로 의미 모를 웃음이 떠올랐다.
“오랜만이야.”
나름 친근하게 그녀를 불렀지만 여인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
“어이, 나 왔다고.”
“…….”
일언반구조차 없이 환자의 치료에 전념하는 여인의 모습에 사종악의 눈썹이 꿈틀했다.
“정말 이러기야?”
사종악이 손을 뻗어 환자에게 침을 놓고 있던 여인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꺅!”
우악스런 손길에 붙들린 여인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게 무슨 짓이야!”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의 눈빛을 마주한 사종악이 슬쩍 입매를 말아 올렸다.
두꺼운 무명천으로 코와 입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한창 물오를 대로 오른 미모는 감출 수가 없었다.
까마귀 깃털처럼 윤기 나는 머리칼과 시원한 이마.
명필이 붓을 놀려 그린 난초처럼 수려하게 뻗은 아미 아래로는 영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 깊은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야 날 제대로 보는군. 나의 소상(小像).”
사종악 손에 붙들린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여인의 눈빛이 한순간 매서워졌다.
“누구 마음대로 당신의 소상이야? 소름 끼치니까 두 번 다시 그딴 식으로 부르지마.”
여인의 경우 이름 앞에 소(小) 자를 붙여 친근함을 더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러나 탁여상에게 이는 과거의 일일 뿐이었다.
더 이상 그에게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더 이상 어린애도 아니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어긋날 대로 어긋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종악은 그런 그녀의 시선과 말투조차 기껍기만 했다.
“이렇게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려워서야.”
“봤으니까 됐지? 그럼 이제 그만 꺼져 줄래?”
“흐흐. 우리 아리따운 아가씨가 뭐 때문에 이리 심사가 뒤틀리셨을까?”
“몰라서 물어?”
계속해 보라는 듯 턱을 까닥이는 사종악의 모습에 탁여상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사종악과 말을 섞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자체가 그녀에겐 더없이 고역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만 놓지?”
“싫다면?”
“당신…….”
탁여상의 입에서 저주 섞인 욕설이 튀어나오려던 그때.
사종악의 등 뒤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쯤 해 두시지요, 총채주. 천의께서 불편해하시지 않습니까.”
사종악이 피식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의방 입구 쪽에 서 있는 일단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잘 다져진 기파와 상당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눈빛에선 수적질이나 일삼던 하찮은 놈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게다가 당장 눈앞의 이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미 백 명이 넘는 무인들이 빼곡하게 의방 외부를 에워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사종악이 서늘한 웃음을 흘렸다.
“기껏 살려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개새끼들이로군.”
면전에서 대놓고 모욕을 퍼붓는 사종악의 안하무인 격인 태도에 앞서 입을 열었던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사종악은 오히려 그들을 도발하며 살기를 드러냈다.
“응? 어쩔 건데? 이 기회에 그 이빨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한번 확인해 볼까?”
힐끔 탁여상의 안색을 살핀 사내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와 동시에 의방을 에워싸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기파를 개방했다.
그 거대한 살기가 순식간에 해일처럼 일대를 집어 삼키며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사종악은 그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거 아나?”
“……?”
의아해하는 상대를 향해 사종악이 히죽 웃었다.
“사나운 개는 함부로 짖지 않아. 물지도 못하는 겁많은 개가 요란하게 짖는 법이지.”
“원한다면 확인시켜 드리지.”
사내를 필두로 점차 농밀해지는 살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서로가 팽팽하게 대치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날 선 음성이 실내를 흔들었다.
“그만!”
탁여상이었다.
그녀가 입구에 선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세요.”
“하지만…….”
“당장요!”
잠시 머뭇거리던 사내가 서슬 퍼런 그녀의 일갈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입구 밖으로 물러가자 탁여상이 고개를 돌려 사종악을 노려봤다.
“당신도 적당히 해.”
“흐흐, 암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난스럽게 대꾸한 사종악이 쥐고 있던 그녀의 손목을 놓으며 물러났다.
아미를 찡그린 채 욱신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던 탁여상이 사종악을 노려봤다.
“말했을 텐데. 꼴도 보기 싫으니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진정하라고, 소상. 오랜만이잖아. 그래도 나름 내 딴에는 노력한 거야. 네 의지를 존중해서 말이야.”
“노력? 존중?”
탁여상이 어이없는 눈빛을 흘렸다.
“미친놈이 입에 담을 만한 말이 아니지 않아?”
“크큭. 그래, 이래야지. 이제야 좀 나의 소상답군.”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부르면…….”
“그러면 뭐? 내 목을 따기라도 할 셈인가? 네가 살려 낸 그 손으로?”
“그 더러운 낯짝 저리 치워. 욕지기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으니까.”
아리따운 외모와 다르게 그녀의 입에서는 거친 욕설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사종악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얼굴에서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기를 잠시.
말없이 탁여상을 응시하던 사종악이 불쑥 입을 열었다.
“너도 책임을 져야지.”
“……?”
사종악이 히죽 웃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닥쳐!”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달은 탁여상이 작은 주먹을 움켜쥐고 바르르 떨었다.
“무슨 염치로 그딴 말을 지껄이지? 당신이 이런 괴물이 될 줄 알았다면…….”
“하나만 묻지.”
이어진 사종악의 질문에 탁여상이 멈칫했다.
“그 괴물을 만들어 낸 건 누구지?”
소름 끼치는 사종악의 웃음에 탁여상의 표정이 일순 얼어붙었다.
“그래, 소상. 바로 너라고.”
탁여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응시하는 사종악의 눈빛.
그 너머로 나락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끝없는 광기와 집착에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그런 그녀를 향해 사종악이 하얗게 웃었다.
“오월동주(吳越同舟)든 뭐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일단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 * *
한 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짙은 야음이 내려앉은 깊은 산속.
“헉헉.”
“쿨럭.”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가쁜 숨소리와 폐부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밭은 기침 소리가 산속의 적막을 깨트렸다.
위태로운 모습으로 간신히 서 있던 두 사람이 주위를 둘러봤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때문에 달빛 한 점 없었지만 그들도 나름 무림의 명망 있는 고수.
어둠을 꿰뚫는 안광에 의지해 두 사람은 곳곳에 쓰러져 절명해 있는 십여 구의 시신을 확인했다.
“끈질긴 놈들.”
흡사 나뭇가지처럼 비쩍 마른 체구를 지닌 장년인이 진저리를 쳤다.
그러자 맞은편에 서 있던 오척 단구의 통통한 장년인이 그 말을 받았다.
“누가 아니래. 누가 그 미친놈의 수하들 아니랄까 봐 지독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야.”
각각 왕염과 왕결이라는 이름을 지닌 두 사람.
서로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외형을 지녔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였다.
“후.”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은 왕결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 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일단 한동안은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겠군.”
왕결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른 건 그 직후였다.
형인 왕염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호흡이 여전히 불안정했다.
“형?”
“먼저 가라.”
이어진 왕염의 말에 왕결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난 여기까진 것 같다.”
놀란 왕결이 서둘러 왕염에게 다가섰다.
‘빌어먹을!’
왕염의 상태를 살피던 왕결이 내심 욕설을 삼켰다.
형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이다.
허벅지를 관통한 작살은 둘째 치고 두 손으로 누르고 있는 옆구리에서는 연신 더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더구나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벌어진 옆구리를 비집고 쏟아질 것 같은 장기를 간신히 틀어막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흥! 누구 좋으라고.”
“너?”
눈살을 찌푸리는 왕염을 향해 왕결이 투덜댔다.
“모든 오욕을 내게 떠넘기고 먼저 편해질 생각이라면 포기하슈. 어림도 없으니까.”
“우리 중 한 명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이러다 둘 다 죽는다.”
“어쩌겠수? 그게 팔자라면 따라야지. 아무리 우리가 삼몰쌍괴라도 한날에 태어나 한날에 죽는다는 맹세만큼은 지켜야 할 거 아니오?”
몰면목(沒面目), 몰염치(沒廉恥), 몰지각(沒知覺).
이 때문에 많은 무림인들의 지탄을 받아 왔던 그들이었지만 형제간의 우애만큼은 그 누구보다 각별했다.
“에라이, 머저리 같은 놈.”
“눈먼 칼에 당한 사람이 누구더러 머저리래?”
서로 마음에도 없는 말로 핀잔을 던지며 티격태격하던 그때.
왕결이 표정을 굳히며 어둠 속을 주시했다.
“그만 나오지?”
한 사람이 어둠을 헤치며 걸어 나온 건 그 직후였다.
새카만 야행의를 걸치고 얼굴에는 복면을 두르고 있어 두 눈만 드러나 있는 사내.
팔에는 비수가 빼곡한 완갑을 두르고 있었고, 허리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온갖 물건들이 빼곡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삼몰쌍괴의 얼굴에 암담함이 드리웠다.
“사종악, 그 빌어먹을 개잡종이 흑점의 살수까지 고용한 모양이군.”
“그러게. 아무래도 오늘 이 자리엔 길보다 흉이 많겠수.”
그 말에 흑점의 살수로 짐작되는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드디어 찾았군, 삼몰쌍괴.”
주위에 즐비한 시신들을 확인한 복면인의 눈 위로 감탄 어린 감정이 떠올랐다.
“악운이 강하다곤 들었지만 이렇게나 목숨이 질길 줄이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면인이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호각이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 호각은 특수한 훈련을 거친 자들만 인지할 수 있는 소리를 내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이곳을 향해 접근하는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를 깨달은 왕염과 왕결이 시선을 마주했다.
“빌어먹을. 임무는 완수하고 갔어야 하는데……. 은혜를 갚지 못하고 죽는 게 한이구나.”
“흐흐. 우리가 은혜 따위에 연연하는 것도 우습지 않소?”
“하긴. 우리는 신마삼존이 아니지.”
“천의, 그녀도 신마의선이 아니고 말이오.”
최후의 순간을 예감한 두 사람이 마지막 전의를 불태우며 복면인을 노려봤다.
그런데 그 순간.
복면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거산방으로 가시오.”
영문을 몰라 당황해하는 삼몰쌍괴를 향해 복면인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곳에 당신들을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