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2)
신마의선-462화(462/500)
신마의선 (462)
각오를 다지던 삼몰쌍괴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예상과 다르게 흑점 소속의 복면인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분이라는 사람이 누구지?”
왕염의 물음에 복면인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신마의선, 단 의원님이시오.”
삼몰쌍괴가 놀라 되물었다.
“단 의원님이?”
“정말 그분이 보내신 것인가?”
근래 단악선의 귀환 소식이 강호 전역으로 들불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종악의 추적에 쫓기고 있는 처지였던 그들은 이제야 그 소식을 접한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복면인이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대로 저쪽 비탈을 따라 이동하시오. 현재로선 그곳이 유일한 생로요.”
복면인의 조언에 두 사람이 미심쩍은 눈빛을 던졌다.
“그런데 이놈 믿을 수 있을까?”
“맞아. 흑점은 예전에 단 의원님을 배신했잖아.”
앞서 흑점의 우두머리가 마교의 하수인이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며 강호가 한차례 뒤집혔던 적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전적으로 복면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복면인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서둘러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의심암귀에 사로잡혀 있다니.
“놈들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당신들과 비슷한 체형과 인상착의를 지닌 자들을 여럿 포섭해 두었소. 지금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얼마 동안은 추적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도 속았다는 것을 깨달을 테니 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을 거요.”
서로 시선을 마주한 삼몰쌍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머물면 그들을 기다리는 건 확실한 죽음뿐.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마지못해 움직이는 두 사람을 향해 복면인이 몇 마디를 보탰다.
“아, 그리고 그곳에는 단 의원님뿐만 아니라 망산초자께서도 기다리고 계시오. 그곳에 도착만 한다면 더 이상 신변의 위험은 없을 테니 걱정 마시오.”
그 딴에는 바짝 긴장해 있는 삼몰쌍괴를 안심시키기 위해 건넨 말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뭣?”
“누구?”
갑자기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삼몰쌍괴가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그 괴물……. 아니, 그분이 대체 왜?”
“내가 어찌 알겠수.”
“하아…….”
“젠장.”
한숨을 푹푹 내쉬던 것도 잠시.
왕염이 복면인을 향해 물었다.
“대체 왜 그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거냐?”
예상치 못한 반응에 복면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야 귀하들이 안심하고 자신을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단 의원님께서 말씀하셨소만…….”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이 울상을 지었다.
“차라리 여기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 것이 나을까?”
“그나마 그게 더러운 꼴을 덜 겪을지도…….”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도 범계위와의 악연을 떠올리니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 * *
먼동이 터 오는 새벽 무렵.
거산방의 담벼락을 뛰어넘는 그림자가 있었다.
밤을 지새워 이곳으로 달려온 삼몰쌍괴였다.
그래도 혹시 만에 하나 함정일 수도 있으니 일단은 몰래 잠입해 상황부터 살필 요량이었다.
그런데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두 사람의 신형이 허공에 덜컥 멈춰 섰다.
“헉!”
“설마?”
두 사람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자신들을 옭아맨 가공할 격공섭물(隔空攝物)의 공력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들이 아는 한 이 정도 경지에 올라선 고수는 전 무림을 뒤져도 손에 꼽을 정도.
아니나 다를까.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소름 끼치는 음성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 도둑놈들 참 간도 크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담을 넘어?”
왕염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저, 저희는 도둑이 아니라…….”
그러나 범계위는 애초에 그들의 말은 들을 생각도 없었다.
“굳이 두 놈 전부 남겨 놓을 필요 없겠지?”
자백을 받아 내는 건 한 놈만 있어도 충분할 터.
화르륵.
범계위의 손을 휘감은 짙은 화염을 목도한 삼몰쌍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지, 진정하십시오. 선배님! 저희 삼몰쌍괴입니다!”
“단 의원님께서 저희들을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범계위가 순간 멈칫했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범계위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입은 하나면 돼. 둘이면 시끄럽기만 하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범계위의 눈빛에 삼몰쌍괴는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랬을 거면 대체 고민은 왜 했단 말인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찾아온 곳이 하필이면 북망산의 입구였던 셈이다.
두 사람이 공포에 사로잡혀 바들바들 떨고 있던 그때.
“역시 범 아저씨를 만나러 오셨군요.”
범계위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다 죽어 가던 삼몰쌍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단 의원님?”
“살려 주십시오!”
애원하는 두 사람에게 다가선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나 봐요.”
그 순간 삼몰쌍괴와 범계위의 시선이 마주쳤다.
―잘해라. 응?
난데없이 날아든 범계위의 전음에 두 사람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두 사람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단악선이 손을 들어 전각 쪽을 가리켰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치료부터 해야겠어요.”
그 말에 삼몰쌍괴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심각한 부상이라도 환자의 숨만 붙어 있다면 반드시 살려 낸다는 단악선의 고명한 의술은 그들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바다.
무엇보다 단악선 앞에서는 천하의 범계위도 함부로 살수를 쓰지 않는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아는 까닭이다.
자리를 옮긴 단악선은 두 사람을 침상에 눕게 한 뒤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일단은 외상이 심각한 왕염이 먼저였다.
“다행히 장기는 다치지 않았지만 정말 큰일 날 뻔했군요.”
“…….”
왕염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한 터라 마취할 여유도 없었다.
크게 벌어진 자상을 봉합하기 위해 단악선은 거침없이 손을 움직였고, 단악선의 손에 들려 있는 바늘이 생살을 꿰뚫을 때마다 왕염은 이를 악물어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치료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왕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법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의원이라 할지라도 족히 두 시진 이상은 쏟아부어야 할 만큼 위중한 부상이었다.
그런데 단악선은 이 각 남짓한 시간 안에 벌써 치료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역시!’
괜히 달리 의선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십 년 가까이 천의 곁에 머물며 그녀의 의술을 지켜봐 온 그였지만 실력만 놓고 보면 단악선과는 감히 견줄 수가 없었다.
이윽고 봉합을 마친 단악선은 품에서 밀랍에 쌓여 있는 단약을 꺼내 반으로 쪼갰다.
“드세요.”
비록 절반에 불과했지만 왕염은 환약을 삼키는 순간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청량한 향기에 눈을 번쩍 떴다.
“설마 이건 보양환(保養丸)입니까?”
“맞아요.”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염이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저 같은 놈을 위해 이 귀한 것을…….”
감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왕염의 모습에 단악선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온갖 영약을 재료로 한 아버지의 비전인 신마단이라면 모를까, 제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일반 약재를 사용한 보양환은 신마의가 내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왕염의 설명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사종악으로 인해 장강 이남 쪽으로는 신마상단의 물자가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보양환은 부르는 게 값이 되어 버린 지 오래죠.”
가격 부담을 낮췄다곤 하나 보양환은 단악선의 역작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명약이었다.
해열과 진통 효과는 물론이고, 미량만으로도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능도 있었다.
그대로 으깨어 상처에 바르면 지혈 작용도 뛰어났다.
소독과 진통 작용을 지닌 감총전(甘蔥煎)과 지혈제인 도화산(桃花散), 새살을 돋게 하는 생기산(生肌散)의 효과를 하나로 집약시켜 놓았기에 그 어떤 금창약(金瘡藥)도 이와 견줄 수 없는 것이다.
“그랬군요.”
나직이 한숨을 흘린 단악선이 나머지 절반의 보양환을 짓이겨 왕염의 상처 위를 덮었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밀려들었기 때문일까.
방금 전까지의 고통도 잊고 왕염이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가…….”
무심코 중얼거리던 그때.
“과연 그럴까?”
더없이 불길하기 짝이 없는 음성이 지척에서 날아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 왕염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섬뜩하게 웃고 있는 범계위.
그와 시선이 마주친 왕염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옆 침상에 나란히 누워 있던 왕결 역시 마찬가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범계위가 불쑥 물었다.
“정말 너희들이 살았다고 생각해?”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삼몰쌍괴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듣자니 천의라는 놈을 따른다며? 그럼 거기 딱 붙어 있지 뭐 하러 기어 나와서 우리 단 의원을 귀찮게 해? 무위도 버리고 달아난 놈들이 말이야.”
“그, 그건…….”
두 사람이 단악선을 향해 애처로운 눈빛을 던졌다.
그들이 아는 한 천하의 망산초자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단악선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단악선은 정작 깊은 생각에 골몰해 있느라 두 사람의 간절한 눈빛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왕결의 맥문에 손가락을 올려 둔 채 위화신공으로 그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던 단악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그도 그를 것이, 왕결의 기맥 어디에서도 마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존의 내공도 훨씬 정순해졌어.’
천의, 그녀가 대체 어떤 방법을 썼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십 년 동안 신지에서 마기와 싸워 왔기에 마공의 지독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단악선이었다.
괜히 마공을 마공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무의식 깊숙한 곳에 한번 뿌리를 내린 마공과 그로 인한 마기를 완전히 떨쳐 내는 건 불가능했다.
삼몰쌍괴 역시 마찬가지.
단악선이 그들을 치료했을 당시 두 사람의 상태는 그야말로 주화입마에 가까웠다.
더구나 그로 인한 고통을 독으로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다행히 단악선은 과거 주화입마를 치료했던 경험이 있었고, 연구를 통해 마교가 사용하는 독에 대해서도 정통했기에 두 사람을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단악선조차 이처럼 아예 마기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기존의 내공심법에 기반한 진기의 흐름에 맞추어 기맥을 바로잡고, 더 이상 마기가 쌓이는 걸 차단하기 위해 일부 기혈을 봉쇄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능소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 단악선의 눈빛이 더없이 신중해졌다.
치료를 포기하고 신마의가를 이탈했던 이백여 명의 사파인들.
그들 대부분이 천의를 만나 마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무공 또한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사종악의 전력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했었지.’
능소밀의 성격상 몇 번이나 정보를 교차 검증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조차도 그 많은 인원을 그토록 단시간에 완치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단 한 명의 의원이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내다니.
하나 이렇게 직접 확인한 이상 지금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
갑자기 거칠게 날뛰기 시작하는 왕결의 진기를 느낀 단악선이 상념을 떨쳐 냈다.
퍼렇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삼몰쌍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뒤늦게 두 사람을 노려보는 범계위를 발견한 단악선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아무리 삼몰쌍괴가 상당한 고수라 하나 범계위는 그들과 차원이 다른 존재.
더구나 내상까지 입고 있는 상황에서 범계위가 대놓고 쏘아 낸 살기를 지척에서 뒤집어쓰고도 멀쩡할 리 없었다.
“진정하세요, 범 아저씨. 저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