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3)
신마의선-463화(463/500)
신마의선 (463)
단악선의 만류에 범계위가 마지못해 살기를 거두었다.
“좋아. 죽이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는 삼몰쌍괴의 모습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완전히 주눅이 들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범계위를 잠시 따로 떼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범 아저씨는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주시겠어요?”
“습격?”
“네. 만에 하나 두 분이 흔적을 남겼다면 사종악 휘하의 추적대가 이곳을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요.”
“흐흐. 기대되는데?”
범계위의 목소리가 살짝 들떴다.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좋아. 단 의원은 치료에 전념해. 습격해 오는 놈들은 전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범계위가 곧장 신형을 날려 전각 밖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안도하는 삼몰쌍괴를 향해 단악선이 미소를 건넸다.
“잠시 후에 탕약을 지어 드릴 테니 마시고 한숨 주무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 계속하죠.”
단악선의 배려에 삼몰쌍괴 형제는 진심으로 감읍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삼몰쌍괴는 개운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포근한 침상에 누워 단잠을 잔 게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로 고된 일상이었다.
놈들의 추적을 피하느라 매일같이 밤이슬을 맞아야 했고, 은신해 있는 동안에는 위치를 들킬까 우려해 모닥불도 피울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밤이슬을 그을 지붕과 따듯한 이불의 소중함을 그 여느 때보다 여실히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행복도 잠시.
“헉!”
갑자기 어딘가를 보고 헛바람을 들이켜는 왕염의 모습에 왕결이 의아하단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침상의 발치 부근.
그곳에 범계위가 말없이 서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어딘가 매우 심기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런 범계위의 눈치를 살피던 왕염이 용기를 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습격이 없었어.”
“예?”
“밤새 기다렸는데, 한 놈도 안 왔다고.”
“그럼 좋은 것 아닙니까?”
“뭐?”
험악해지는 범계위의 눈빛에 두 사람이 흠칫했다.
그들에게 있어 범계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흉신악살 이상의 존재였다.
기껏 단잠을 누렸는데 눈앞에 범계위가 서 있다니.
차라리 풍찬노숙(風餐露宿)하던 그때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마침 방 안으로 들어서던 단악선이 웃으며 범계위를 진정시켰다.
“그렇게 조바심 내지 않으셔도 돼요. 머지않아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저 두 분과의 대화를 통해 저간의 상황을 파악해야겠죠?”
“쳇.”
마지못해 물러선 범계위가 팔짱을 낀 채 벽에 등을 기댔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한 단악선이 그제야 삼몰쌍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사종악의 수하들에게 쫓기고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왕염이 대답했다.
“저희들은 천의님께 임무를 받아 제갈세가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제갈세가요?”
“네. 그런데 장강을 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오히려 추격대에 발목을 잡혀 계속 북쪽으로 넘어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제갈세가와는 왜 접촉하려 한 건가요?”
“그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왕결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천의님께서 고안한 진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이를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당대 진법의 대가인 제갈세가의 가주님에게 검토를 부탁하고자 한 것입니다.”
“진법이요?”
단악선의 눈에 은은한 놀라움이 자리 잡았다.
설마 자신 말고도 진법에 조예를 지닌 의원이 있을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그 진법을 제가 확인해 봐도 될까요?”
왕염과 왕결이 잠시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단악선은 마교의 진법을 직접 해체할 정도로 고절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까닭이다.
그들은 각각 품속에서 반으로 나누어 보관하고 있던 진법의 설계도를 꺼내 단악선에게 건넸다.
이를 받아 탁자 위에 올린 단악선이 설계도의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건 누군가를 유폐시키기 위해 고안한 진법이군요?”
삼몰쌍괴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단 의원님이라면 바로 알아보실 줄 알았습니다.”
반면 단악선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예상보다 진법에 관한 천의의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누구를 이 안에 가두려 했던 것일까?’
그 의문을 해소해 준 사람은 왕염이었다.
“사종악을 위해 준비한 진법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아니었나요?”
“한때는 그랬었지요. 하나 지금은 아닙니다.”
나직이 한숨을 흘린 왕결이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현재는 천의님이 사종악에게 강제로 억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어찌 된 연유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왕결이 사종악과 천의 사이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건 천의님께서 가문 어르신의 부탁으로 중원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갑자기 전해진 사촌 오라버니의 부고.
나이 차이가 꽤 나서 어릴 때부터 그녀가 삼촌처럼 따랐던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오래전에 큰 뜻을 품고 가문을 떠났다.
그녀의 집안은 오랜 세월 세상과의 발길을 끊고 은둔의 삶을 살아왔기에 외부의 소식에 밝지 못했다.
그래서 그 부고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러다 수적에게 붙들려 고초를 치르게 되었죠.”
난폭하기 짝이 없는 수적들은 그녀를 겁탈하려 했다.
그때 나이는 불과 열다섯.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지리라 마음먹었던 그때 그녀를 위해 나선 사람이 있었다.
“그게 바로 사종악이었습니다.”
당시의 부채주였던 사종악은 천의를 범하려던 채주를 찔러 죽이고 자신을 따르던 수하 몇 명과 함께 수채를 장악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아 그 역시 생명이 위독한 부상을 입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던 와중에도 사종악은 왜 자신을 도왔냐는 천의의 물음에 그저 후회하지 않노라 대답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사종악은 천의에게서 죽은 동생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오래전 다른 수채와의 세력 싸움에 휩쓸려 애꿎게 저버린 그의 유일했던 보물.
당시의 상실감을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았기에 목숨까지 던져 가며 천의를 구한 것이다.
“다행히 그분의 뛰어난 의술 덕에 사종악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친남매와 다름없이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어째서 지금은 반목하게 된 것인가요?”
단악선의 물음에 두 사람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기를 잠시.
왕염이 무거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그분의 소문을 듣고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철담응조(鐵膽鷹爪) 심곡이라는 자로, 삼몰쌍괴와도 안면이 있던 자였다.
한때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마교에 귀의했던 사파인이었기 때문이다.
마교의 별동대에 속해 있던 그는 삼몰쌍괴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그곳을 이탈했고, 다른 사파인들과 함께 무위로 향했다.
하지만 그토록 바랬던 마공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
언제가 될지 모를 기약 없는 기다림을 뒤로한 채 그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고, 당시 대단한 의술을 지녔다는 의원의 소문을 쫓아 그녀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 노력은 결국 결실을 얻어 냈다.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 마기와 독기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 것이다.
그는 곧바로 무위의 신마의가로 향했다.
그래도 한때 생사를 함께했던 다른 사파인들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천의가 있는 수채로 사파인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천의는 그들 모두를 아무런 대가 없이 치료해 주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들은 천의의 곁에 남았고, 그들이 지닌 무력을 활용해 사종악은 인근 수채들을 점령하며 크게 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단악선이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떻게 그 많은 인원을 그토록 단시간에 마기로부터 벗어나게 했는지요.”
“그건…….”
잠시 주저하던 왕염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온 건 그 직후였다.
“바로 북명신공(北冥神功)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어딘가 귀에 익은 무공이라 고개를 갸웃하던 단악선이 이내 해연히 놀라 되물었다.
“설마 제가 아는 그 북명신공을 말하는 건가요?”
상대의 원정(元精)을 갈취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마교의 저주받을 무공.
하지만 오래전에 실전되어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십 년 전.
천마인 종극진 역시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수수흡룡력(收受吸龍力).’
천축의 소뢰음사에도 북명신공과 비슷한 무공이 존재했다.
북명신공과 유사한 흡정공(吸精功)의 일종.
어머니인 마의에 의해 전대 천마였던 종여의의 생사가 불확실해지자 육마존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마교는 하나의 세력이기 전에 종교.
그 상징적인 존재인 천마의 부재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수수흡룡력이 있었고, 이를 종극진이 익혀 조부인 종여의로부터 상당한 내공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종극진이 나이에 비해 그토록 고강한 무공을 지닐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북명신공에 비해 수수흡룡력은 불완전한 무공이었다.
실제로 종극진은 조부였던 전대 천마에게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메우기 위해 육마존으로부터 내공을 나누어 받았고, 더 나아가 마도천하를 위해 신지의 진법을 활용해 절대자로 거듭나려 했다.
잃어버린 북명신공을 유일하게 대신할 수 있는 마교의 비전이 바로 신지에 설치된 진법이었기 때문이다.
왕결이 설명을 이어 갔다.
“정확히는 천의께서 직접 익히신 것이 아니라 구결만 외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사종악에게 전수해 익히게 하셨죠.”
거기에 왕염이 덧붙였다.
“그리고 북명신공을 익힌 사종악이 우리들의 몸에서 마기를 모두 흡수해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
단악선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비로소 많은 의문들이 해소되었다.
“그래서 가능했던 거였어.”
자신처럼 일일이 한 사람씩 치료했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북명신공을 활용해 마기를 뽑아내는 방식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사종악이 갑자기 강해진 것도 모두 설명이 되었다.
“하지만 독기는요?”
마기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몸에 깊이 침식해 있던 독 기운도 함께 받아들였을 터.
그것도 이백여 명에 달하는 이들의 독기를 흡수했다면 지금까지 멀쩡히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왕염의 대답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천의님께서 늘 그자의 곁에 함께하셨지요.”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 있었다.
정작 원래의 주인이었던 마교에서조차 명맥이 끊어진 무공을 어떻게 천의가 복원해 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왕염이 금세 그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천의님의 이름은 탁여상입니다.”
“탁여상? 설마…….”
아무리 중원이 넓다 하나 탁씨 성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왕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불능요라 불리었던 귀수 탁요신. 천의님은 그분의 피를 이은 후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