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4)
신마의선-464화(464/500)
신마의선 (464)
“……!”
단악선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설마 여기서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불가해(不可解)라 불리던 강호의 전설적인 기인.
시서금화(詩書琴畵)를 비롯해 건축과 기문 둔갑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주가 하늘에 닿아 있다 전해지는 불세출의 천재가 바로 탁요신이었다.
그리고 단악선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와 오랜 세월을 건너뛰어 운명으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범계위 역시 마찬가지.
“귀수라면 함곡도에 몹쓸 함정을 만들어 놓은 미친놈이잖아.”
하마터면 그곳에서 벽화령이 죽을 뻔했기에 범계위에게 달가운 이름은 아니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마곡에 설치된 혼천미리진과 신지의 절진을 만든 것도 그 사람이었죠.”
단악선은 비로소 어렴풋이 머릿속에서 교차되는 여러 정황들을 통해 조금씩 숨겨져 있던 비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천의가 강호로 나섰던 이유인 사촌 오라버니의 부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종극진에 의해 입적(入寂)한 달뢰라마가 분명했다.
오래전 방문했던 포달랍궁에서 달뢰라마가 직접 자신의 내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부모님과의 인연을 설명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이 태어난 곳은 탁씨 성을 쓰는 집성촌이며, 탁요신의 후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노라고.
라마승들을 이끌던 그가 유창하게 한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를 달뢰라마로 추대하기 위해 반선라마가 예지를 쫓아 그 마을에 도착했을 당시 그는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고 했다.
모든 방면의 천재라 추앙받던 탁요신의 후예답게 그의 후손들 역시 다방면에 두루 능통했다.
의술 역시 마찬가지.
탁가에 전해지는 의술은 그 어느 곳의 행림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자신할 정도였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을 지닌 생신(生身)이었던 그의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본래 서번(西蕃) 사람은 유독 천연두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시던 부모님을 만나 그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어머니인 마의는 태중에 자신을 품고 있었고, 산달이 가까웠기에 부부는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은 탁요신의 역작인 혼천미리암진이 설치되어 있는 신마곡을 두 사람에게 내어 주는 것으로 은혜를 갚았다.
또한 무사히 차기 달뢰라마를 포달랍궁으로 모셔 갈 수 있게 된 반선라마 역시 단악선에게 벌모세수를 베푸는 것으로 감사를 대신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또다시 탁요신의 후예와 엮이게 되다니.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 가문에 북명신공의 구결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죠?”
“언젠가 천의님께 북명신공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왕결은 천의가 북명신공의 구결을 알게 된 내력을 설명했다.
“명태조와 함께 명을 건국했지만 그의 배신에 의해 중원에서 쫓겨난 마교는 한동안은 그 명맥을 보존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북쪽으로는 중원 수복을 꿈꾸는 북원의 무리와 그리고 남쪽으로는 자신들을 토벌하려 호시탐탐 벼르고 있는 중원의 무림과 명의 정규군 사이에 끼어 천천히 고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가엾이 여겨 도움의 손길을 내어 준 사람이 바로 탁요신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그들을 지킬 수 있는 진법을 설치해 주었고 덕분에 간신히 그 질긴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또한 신지를 건설해 그들의 미래를 안배했다.
“그 과정에서 탁요신은 천마로부터 북명신공을 회수했다고 했습니다. 인세에 존재해서는 안 될 무공이라 판단하셨다더군요.”
그래서 오랫동안 그의 후손들이 이를 봉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탁요신의 후예의 손에서 부활하다니.
참으로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종악이 천의를 억류하고 있는 것이군요.”
천의가 북명신공의 구결을 알고 있는 이상, 언제든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북명신공을 익힌 또 다른 강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천하 제패가 가능한 힘을 얻은 사종악으로서는 달가울 리 없을 터.
말없이 대화를 듣고 있던 범계위가 불쑥 끼어든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그놈은 왜 천의를 죽이지 않는 거야?”
천의만 사라진다면 더 이상 또 다른 북명신공의 출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
단악선도 내심 그 점이 의아했다.
“천의에 대한 그자의 집착은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왕염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아픈 기억.
이미 죽은 자신의 여동생을 천의에게 투영시키고 있다면 그 집착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게다가 간혹 자신에게 발생하는 부작용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의원이기도 하고요.”
이어진 왕결의 말에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부작용이요?”
“그가 북명신공을 익힌 것은 서른이 넘은 뒤였으니까요.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마기를 흡수하다 몇 차례 심각한 위기를 넘겼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한때는 저희도 그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 주신 분은 천의셨지만 실제로 직접 손을 써 우리를 살려 준 사람은 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는 그야말로 탐(貪)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결국 먹을 것이 없어지자 자기 자신마저 먹어 버려서 세상에 오직 무(無)만이 남게 된다는 탐욕을 상징하는 괴물.
“처음 이백여 명에 달했던 우리들도 현재는 고작 절반 정도인 백 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그마저도 계속 숫자가 줄고 있죠.”
삼몰쌍괴의 말에 단악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왕염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사종악의 소행 같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무단으로 이탈했다고 사종악은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종되는 인원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사종악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정황상 사종악이 그들을 해치고 내공을 갈취한 것이 분명한데도 당장은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천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독을 심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종악이 섣불리 그들의 내공을 흡정할 수 없도록요. 실제로도 최근에는 눈에 띄게 실종자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그에게 시간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군요.”
“실제로도 놈은 화산파의 장문인과 일전을 벌였던 삼 년 전에 비해 놀라우리만치 강해졌습니다. 천하오절 중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며 큰소리치는 이유기도 하고요.”
진명진인의 죽음을 떠올린 단악선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어쩌면 그렇게 서두르셨던 걸지도.’
도가 계열의 정종심법에 기반한 화산파의 무공은 상극의 성질을 지닌 마기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사종악이 지닌 가공할 마기.
그리고 그것이 북명신공으로 인한 것임을 깨달은 화산파는 그가 더 강해지기 전에 서둘러 그를 제거하려 했을 가능성이 컸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이로써 사종악과 천의가 서로 반목하게 된 이유도.
아울러 그녀가 제갈세가와 접촉을 시도한 이유도 모두 알 수 있었다.
단악선이 물었다.
“이 진법도 천의가 직접 고안한 건가요?”
“예. 그래도 일단은 의원인 데다 은인인 이상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무림의 큰 해악이 될 테니 이와 같은 수단을 강구하시게 된 것이지요.”
단악선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다.
평생 사람을 살리는 의원으로 살고자 했지만 세상이, 그리고 이 무림이 그리 놔두지 않았다.
이윽고 마음의 결정을 내린 단악선이 삼몰쌍괴를 바라봤다.
“제갈세가의 가주님과는 친분이 있으니 제가 직접 방문하도록 하죠.”
그 말에 삼몰쌍괴가 반색했다.
“만약 단 의원님과 제갈세가에서 이번 일을 주도해 주신다면 저희 또한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호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십 년 전.
마교와의 최종 결전 이후 제갈세가는 그 어떤 명문 문파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위상이 공고해진 상태였다.
마교를 없애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넣었던 당대의 가주.
제갈산의 의기와 희생은 그만큼 강호 동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뭇 강호인들의 존경을 받는 그들이 중심에 선다면 고수들을 규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터.
“그렇다면 서두르죠.”
해남검파의 정예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곳에 파견될 때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나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이상 망설일 틈이 없었다.
“조만간 개방의 방도들이 이곳을 찾아올 거예요. 그때 그들에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장강수로연맹에 대한 정보들을 모두 알려 주세요. 위치나 병력, 지형과 기후 모두요.”
“그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삼몰쌍괴를 향해 단악선이 한 가지 부탁을 덧붙였다.
“그리고 천의와 다시 접촉할 수단도 강구해 주시고요.”
이번에도 삼몰쌍괴는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호북성 한중.
과거 제갈량이 살았던 형주의 융중이 지금의 호북성이다.
그래서 그가 묻힌 무후묘(武侯墓) 역시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일찍부터 이곳에 터를 닦은 제갈세가는 자신들이 제갈량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가문이었다.
공자의 후손인 공가(孔家)와 더불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가문.
중인들이 그들을 신기제갈(神機諸葛)이라 칭송하는 이유는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무림에 많은 영향력을 끼쳐 왔기 때문이다.
가주의 집무실인 공명전(孔明殿).
그 뒤쪽으로 펼쳐진 내원에 자리 잡은 아담하고 소박한 모옥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아버님, 소자 문안 인사드리옵니다.”
덜컹.
그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옥 문이 열리며 반백의 초로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매일같이 찾아오지 않아도 된대도.”
초로인의 눈매며 콧날과 얼굴 윤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사내가 빙긋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는 예를 다해 섬기며 공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효의 도리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한다는 말씀도 하셨지. 그러니 그런 부모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부모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효가 아니겠느냐?”
그러고 나서 초로인은 이내 쓰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네 녀석이 언제 이 아비 말에 고분고분 따랐던 적이 있었더냐.”
“하하. 그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제 나름의 효를 계속할 테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아 주십시오.”
막내아들의 너스레에 제갈세가의 전대 가주, 제갈경이 슬쩍 미소를 말아 올렸다.
평소의 대부분은 이렇듯 농담이나 늘어놓으며 실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일이든 세 번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삼사일행(三思一行)의 보수적인 가풍에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가주 지위를 물려준 뒤 가문의 대소사에서 손을 떼고 자신만의 소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였다.
그만큼 제갈산은 믿을 만한 후계자였다.
천기신산(天氣神算)의 재능을 타고난 만큼 그가 새로운 가주로 결정된 뒤 제갈세가는 실제로도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부흥을 맞이하고 있었다.
“네 형은 요새도 계속 골방에 처박혀 두문불출하고 있느냐?”
제갈경의 물음에 제갈산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형님 성격 아시잖습니까. 끝을 보기 전까지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연구에 골몰하는 그 집요함은 저도 기가 질릴 정도입니다.”
“그런 성품이야말로 학자로서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재능이지.”
차기 가주 경쟁에서 막내동생에게 고배를 마셨음에도 맏이인 제갈진은 여전히 제갈세가를 위해 나름대로 헌신할 방법을 찾아냈다.
한때는 분명 흔들린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현실을 받아들인 그였다.
사석에서조차 가주인 동생에게 늘 예의를 갖췄고, 더없이 돈독한 우애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그런 두 아들이 제갈경은 매우 기꺼웠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제갈경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