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5)
신마의선-465화(465/500)
신마의선 (465)
하나뿐인 여식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딸.
가문을 위해 내쳤기에 그래서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이 바로 제갈연이었다.
그런 부친의 모습을 마주한 제갈산은 섣부른 위로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 역시 얼마 전에 아이를 얻었기에 아비 된 자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제갈경은 심란한 마음을 애써 달랬다.
“산책이나 하자꾸나.”
“소자가 앞장서겠습니다.”
“가주가 친히 나서 늙은 아비의 길동무를 자처하다니.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지 모르겠군.”
“벌써부터 기뻐하시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오늘은 제법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있거든요.”
의아해하던 제갈경은 이어진 제갈산의 말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지난밤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단 의원이 범 대협과 함께 거산방을 해남검파 지부로 선포했다 합니다.”
“허! 그야말로 쾌도난마로군. 충의채를 토벌해 형산파에게 넘겨준 게 불과 얼마 전 일 아니더냐?”
“단 의원과 범 대협, 그리고 거기에 해남검파가 가세한다면 그들을 주축으로 분명한 지각 변동이 예상됩니다. 그야말로 현 무림의 판세가 크게 흔들릴 테니까요.”
“범 대협이라……. 천하의 망산초자를 그리 부르는 사람은 네가 유일할 것이다.”
“마교를 무너트리는 데 크게 일조하신 분이니까요. 공과 과는 확실히 구분해야 하겠지요.”
마교를 언급해서였을까.
제갈산은 문득 자신의 손으로 향하는 부친의 시선을 느꼈다.
절반밖에 남지 않은 뭉툭한 손가락.
이를 눈에 담은 부친의 표정이 더없이 착잡해지는 것을 눈치챈 제갈산이 태연하게 웃으며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슬퍼할 일도, 안타까워할 일도 아닙니다. 제게는 영광의 상처니까요.”
“으음…….”
“덕분에 반마공을 완성해 내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두 번 다시 마교가 준동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갈경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신지에서 최후의 정마대전을 마무리 지은 뒤 세가로 돌아온 제갈산이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그간 연구해 온 반마공의 핵심 구결을 책자로 엮어 중원에 배포하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새외 어딘가에 분명 마교의 잔존 세력이 남아 있을 터.
그러나 마공의 천적인 반마공이 존재하는 이상 함부로 중원을 넘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또한 무상으로 반마공을 배포하는 비용 역시 신마상단의 재정적 지원 덕에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제갈경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너 때문에 내 수명이 절반은 줄었을 게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효를 실천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얀 녀석. 그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속에서 천불이 인다.”
“하하하.”
“웃기는. 보아하니 명이 그 녀석 관상도 고집은 제 아비 못지않겠더라. 너도 자식 키우면서 이 아비의 심정을 느껴 봐라.”
“우리 가문에 그런 사고뭉치는 저 하나로 족하지 않을까요?”
“그 핏줄이 어디 가겠느냐.”
“그 핏줄도 아버님께 물려받은 겁니다만…….”
“…….”
“…….”
이야기가 길어져 봐야 결국 누워 침 뱉기라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이 멋쩍은 표정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후원을 지나 내당 쪽으로 들어서자 문득 생각난 듯 제갈경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새아가는 좀 어떠하냐? 해산을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요즘 무리를 하는 것 같아 걱정이구나.”
“며느리로 들인 지 몇 년짼데 아직도 새아가입니까?”
애써 농으로 받아넘겼지만 제갈산의 얼굴에도 감출 수 없는 근심이 자리 잡았다.
앞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그녀였기에 아이를 돌보는 데에는 그만큼 많은 제약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물론 세가의 식솔들이 여러모로 그녀를 돕고는 있었지만 장애로 인한 한계는 뚜렷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왕소군은 여러모로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 아내가 몹시 안타깝고 안쓰러웠지만 제갈산은 그녀를 믿고 응원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 내자는 누구보다 강한 여인입니다.”
“알지. 그래서 더 걱정이다.”
“그렇다면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잠시 들렀다 가시죠? 그녀도 무척 기뻐할 겁니다.”
“그래도 되겠느냐?”
제갈경이 반색했다.
얼마 전에 태어난 손주가 가뜩이나 눈에 밟히는 그였다.
내심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괜히 며느리에게 폐가 될까 싶어 애써 그 마음을 억눌러 왔던 그였다.
그대로 발걸음을 돌린 두 사람은 이내 온갖 꽃이 만발한 화원에 들어섰다.
화원 중앙에 위치한 작은 정자.
그 안에는 한 여인이 강보에 쌓인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런 왕소군을 바라보는 제갈산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품속에 안겨 깊게 잠든 아이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더듬어 마음속에 새겨 넣는 아내의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녀 앞에는 작은 서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로는 몇 권의 책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우의 아내를 위해 제갈진이 연구한 새로운 문자였다.
책자 위에 새겨져 있는 오돌토돌한 요철(凹凸).
이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가면 음운 체계를 기반으로 한 성조 등을 확인해 책자 안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화려한 꽃잎을 말아 올리며 정자를 휘감았다.
왕소군의 얼굴에 더없이 행복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비록 꽃잎은 볼 수 없었지만 바람에 실려 있는 향기는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화원을 마련해 준 남편의 정성을 알기에 이 순간이 더없이 흡족한 그녀였다.
“엇? 가주님.”
“태상 가주님께서도…….”
왕소군을 보필하던 시비들이 뒤늦게 제갈산 부자를 발견하고 서둘러 왕소군에게 다가섰다.
그런 시비들을 제지하며 제갈산이 직접 전음을 날렸다.
―부인. 아버님께서 오셨소.
왕소군의 장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닌, 후천적인 이유였다.
따라서 전음을 듣는 것이 가능했다.
화들짝 놀란 왕소군이 아이를 안은 채 일어나 화원의 입구 쪽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에 제갈경이 조용히 웃으며 전음을 건넸다.
―홑몸이 아니니 그리 예의 차릴 것 없다. 모처럼의 휴식을 이 늙은이가 괜히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왕소군이 가까운 시비를 손짓해 불렀다.
시비에게 잠든 아이를 넘겨준 왕소군이 급히 손을 움직여 의사를 전달했다.
그녀의 수화에 제갈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구나. 소일 삼아 산책 중인데 잠시 이 늙은이의 말벗이 되어 주지 않으련?
왕소군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시비 중 한 명이 회초리처럼 얇고 길쭉한 막대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 막대로 바닥을 더듬으며 왕소군이 걸음을 옮겼다.
이미 제갈세가 내의 모든 곳에는 그녀가 막대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완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딱히 이동에 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명이는 이리 주게. 내가 안지.”
시비로부터 손주를 건네받은 제갈경이 품 안에 안은 작은 생명을 새삼 신기하게 바라봤다.
인자한 눈빛으로 손주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제갈산이 웃으며 물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좋다마다. 너희들 키울 때는 행여라도 엇나갈까 싶어 애정 표현도 다 못 하고 엄히 키웠지만 손주는 그게 아니지 않느냐. 마냥 사랑만 주면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어진 제갈경의 말에 제갈산이 헛웃음을 흘렸다.
“네가 이 아비를 힘들게 한 만큼, 이 녀석이 커 가며 네게 그대로 갚아 줄 테니 어찌 귀엽지 않을까.”
제갈산이 전음으로 그 내용을 전해 주자 왕소군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렇게 전음과 수화로 대화를 나누며 화원을 거닐던 그때.
“가주님.”
제갈산을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사십 대 중반의 단정한 용모를 지닌 그는 제갈세가 내에서 많은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는 총관인 감곡이라는 사내였다.
총관의 얼굴에 떠오른 다급함을 읽어 낸 제갈산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신마의선, 무위의 단 의원님께서 세가의 방문을 희망하시는 서한을 보내오셨습니다.”
“……!”
제갈산 부자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특히 제갈경은 예상치 못한 단악선의 방문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아들인 제갈산을 제외하면 진법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음(知音)은 단악선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제갈산이 전음으로 그 소식을 전하자 왕소군 역시 반색했다.
“그렇다니 성대하게 준비를 해야겠군요. 그래, 언제쯤 도착하신 답니까?”
“그, 그게…….”
“……?”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미 세가 인근의 객잔에 짐을 푸셨다 합니다. 편한 시간을 말해 주면 맞춰서 방문하겠다고 하십니다.”
깜짝 놀란 제갈산이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곳이 어딥니까? 내 직접 마중을 나가리다.”
준비는 둘째 치고 제갈세가의 은인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일.
제갈경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의 말대로 하시게. 그리고 총관은 귀한 손님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시게. 본 가의 은인을 모시는 데 소홀함이 있어서는 아니 될 걸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총관이 물러가자 제갈산도 어딘가로 서둘러 달려갔다.
그리고 반 시진 후.
제갈세가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제갈산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었다.
단악선과 범계위였다.
앞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제갈경이 환한 미소로 그들을 환대했다.
“어서 오시게. 자네의 방문을 오매불망 고대하고 있었다네.”
단악선이 마주 예의를 갖췄다.
“강녕하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어느새 훌쩍 커 자신을 넘어선 단악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갈경이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서의 시간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그 시련을 극복하고 크나큰 성취를 얻은 것이 분명하군그래.”
“가주님께 진법에 관한 묘리를 사사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늦었지만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허허,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 덕분에 산이가 집에 돌아올 수 있었고, 이렇게 혼인해 무사히 대를 이을 수 있었으니까. 나야말로 본 가의 진정한 은인께 무어라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
제갈산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자, 자. 일단 안으로 들게 하시죠. 중원을 구한 영웅을 언제까지 밖에 세워 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이것이 세월의 힘일까.
바짝 독이 올라 어딘가 날이 서 있던 과거와 달리 상당히 능청스러워진 제갈산의 모습에 단악선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지 마세요. 진짜 영웅은 가주님인 것을 세상 모두가 다 아는걸요.”
“하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마교 토벌의 주역인 신마의선께 그 말을 들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제갈산이 고개를 돌려 범계위를 바라봤다.
“범 대협께서도 어서 오십시오. 꼭 한 번 다시 뵙고 싶었습니다.”
극진한 예의를 갖춰 자신을 환대하는 제갈산의 모습에 범계위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지금껏 살아오며 대협이라는 호칭은 몇 번 들어 봤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두려워 입에 담는 아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부르는 대협이라는 호칭은 어딘가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흐흐. 제갈세가 사람들이 똑똑하다더니 확실히 사람 보는 눈이 있어.”
머쓱해하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았는지 범계위가 제갈세가를 추켜세웠다.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왕소군을 바라본 것도 그때였다.
제갈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전음을 사용해 의사를 전달하실 수 있습니다.”
“아!”
단악선이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녀에게 꼭 전하고 싶던 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