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6)
신마의선-466화(466/500)
신마의선 (466)
―부인과 부군의 노력 덕분에 중원이 평화를 찾을 수 있었어요. 두 분의 숭고한 의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단악선의 전음에 왕소군이 환한 미소와 함께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녀는 단악선과의 조우에 그 여느 때보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자신의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교 안에서 어떤 식으로 제갈산을 도왔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사자인 자신과 제갈산, 그리고 그녀를 돕던 노파와 이화궁의 궁주인 연옥상.
마지막으로 단악선이 전부였다.
그러나 노파는 얼마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화궁주는 다시금 칩거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 부부와 단악선만이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처음 제갈세가로 돌아온 이후 제갈산은 그녀의 과거를 철저히 함구했다.
그녀를 배필로 맞이하겠다 했을 당시, 부친인 제갈경을 비롯한 가문의 어른들은 탐탁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제갈산은 이미 차기 가주로 내정된 상태.
명문가가 대개 그러하듯 가주의 배우자 역시 그 역할이 지대했다.
맹인에 귀머거리인 그녀가 가모(家母)로 인정받는 과정은 참으로 험난했다.
그러나 결국 제갈산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생명의 은인인 그녀를 가문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기꺼이 세가를 떠나겠다 선언한 것이다.
지금은 그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하나 아직까지도 내조자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하는 왕소군을 두고 일부에서는 여전히 말이 많았다.
가문의 어른 중 일부는 이따금 후처를 들이길 종용하기도 했다.
왕소군은 영민한 여인.
아무리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해서 그런 세가의 분위기까지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 자신의 입지를 잘 알기에 그래서 더욱 단악선의 말이 고맙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
단악선의 전음에 왕소군이 흠칫하더니 그대로 굳어졌다.
그리고 이내 황급히 두 손을 움직여 수화로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제갈산이 당황했다.
이처럼 크게 동요하는 그녀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 아내가 사실이냐고 묻고 있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제갈산의 물음에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부인의 헌신에 대해 제대로 된 감사를 드리지 못했어요. 그래서 늦게라도 그때의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보답이라시면?”
“보이지 않는 눈과 들리지 않는 귀를 대체할 방법이 있어요.”
“……!”
“육신의 제약만 극복한다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거예요.”
“그것이 정말 가능하단 말입니까?”
제갈세가를 괜히 신기제갈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가문의 역사만큼이나 그들은 방대한 지식과 자료, 그리고 각 분야의 경험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시서금화(詩書琴畵)를 비롯해 건축과 기문 둔갑, 의술 등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혜.
그들을 무천종식(貿遷種植), 혹은 지자(智者)의 총본(總本)이라 표현하며 당금 강호의 그 누구도 제갈세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특히 제갈세가에 뿌리를 두고 뻗어 나온 의술은 중원 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 만큼 제갈산도 아내의 장애를 극복할 방법을 누구보다 열심히 찾았었다.
하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미미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에요.”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제갈산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화타가 오금희(五禽戱)를 만든 것처럼 의술과 무공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같은 뿌리를 두고 있어요.”
강호에 다양한 내공심법이 존재하는 만큼 수련 방법도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명확했다.
기존의 제약을 넘어 초인적인 정신과 육체로 거듭나 초월의 경지로 도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주도해 온 것은 도가에 뿌리를 둔 종파들이었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수련을 했다.
불사의 비약 제조를 목적으로 한 연단파(練丹派).
음양화합이나 방중술을 이용해 장생불사를 꿈꾸는 장생파(長生派).
단전 호흡과 도인술을 수련하는 연기파(練氣派).
“현존하는 도교 문파의 대부분이 연기파에 속하죠. 그들이 제조하는 영약은 연단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요.”
“무공을 통해 장애를 보완하는 것이라면…….”
제갈산의 얼굴에 실망감이 자리 잡았다.
소위 고수는 기감이라는 것을 다룰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오감을 뛰어넘는 초감각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무공에 입문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그래서 그는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단악선은 고개를 저었다.
“무공이 아니에요.”
“그럼?”
“기존의 감각을 확장하면 주변 정보와 감응(感應)을 통해 충분히 눈과 귀를 대신할 수 있거든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제갈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 부록파(附錄派)에 존재했던 그들의 비전(祕傳)을 응용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에요.”
“부록파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고대 원시 도교에는 앞선 세 개의 종파 말고도 한 곳이 더 존재했다.
바로 귀신이나 산천의 신령들을 모시고 주술과 부적으로 사악한 기운을 다스리는 종파였다.
“그들은 인간이 지닌 오감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연구를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시켰어요. 그래야만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제갈산은 문득 오래된 문헌에서 읽었던 자료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결과 그들 대부분이 광인이 되거나 자결을 했다 들었습니다만…….”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을 치고 부적을 통해 귀신을 쫓아내는 일부의 형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지금은 부록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유였다.
“인간의 감각 기관과 신경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니까요. 한계를 넘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방대한 정보가 밀려든다면 그 과부하를 버티지 못해 정신부터 무너지죠.”
단악선의 설명에 제갈산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더욱 그런 위험한 방법을 시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설명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리고 말았다.
“걱정 마세요. 확장되는 감각은 기감뿐이니까요.”
시각과 청각의 부재.
그만큼 정보 수용의 한계점에는 여유가 있었다.
한 가지 감각이 극대화된다 해서 감각 정보의 과부하로 인한 위험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왕소군이 제갈산을 향해 열심히 손을 움직여 수화를 건넨 것도 그때였다.
“다만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있어요. 이게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에요.”
“말씀하십시오.”
“꾸준히 영약을 복용해야 해요. 확장된 감각이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요. 무공을 익히지 않으셔서 손실되는 양이 많으니, 하루도 빼먹지 않아야 하고요.”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네. 제갈세가라면 가능할 거예요. 그럼 처방전을 따로 써 드릴 테니, 반드시 그대로 복용해 주세요.”
단악선은 지필묵을 받기 전에 왕소군을 보았다.
영약에 대해서 듣지 못한 왕소군의 의지는 확고했다.
오랜 시간 암흑과 적막을 끌어안고 살아온 그녀였기에 단악선의 제안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를 확인한 제갈산이 단악선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는 단악선의 손에는 어느새 침이 담긴 목갑이 들려 있었다.
단악선은 왕소군의 혈도 곳곳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침을 놓기 앞서 그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이후 위화신공을 끌어 올려 맥문을 통해 흘려 넣었다.
낯선 진기가 스며들자 왕소군이 멈칫했다.
하지만 곧바로 날아든 단악선의 전음에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긴장하지 마시고, 확장되는 감각에 의식을 집중하도록 노력해 보세요.
몇 번의 심호흡으로 왕소군이 차분함을 되찾자 단악선은 본격적으로 진기를 도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기맥을 따라 움직이던 기운이 어느새 기경팔맥을 거쳐 발바닥 부근의 용천혈에 머물더니, 그대로 사지백해로 퍼져 나갔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그녀의 상단전이 자리 잡은 미심혈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 순간.
“……!”
왕소군의 표정이 달라졌다.
필설로는 형언할 수 없는 낯선 감각이 그녀의 의식 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아!”
왕소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전에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미증유의 감각.
온몸의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진동과 미세한 공기의 흐름까지.
이를 통해 얻는 방대한 정보는 주변의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격동한 심정을 억누르지 못한 그녀의 뺨을 타고 연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꼭 움켜쥔 두 손 역시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갈산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부인! 괜찮으시오?”
얼마나 당황했는지 전음으로 말을 건네는 것마저 잊은 그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왕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손을 들어 수화를 건넸다.
제갈산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방금 내 목소리를 들었다 하셨소?”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신과 아버님, 그리고 우리 명이는 이런 모습이었군요.
이어진 그녀의 수화에 제갈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를 향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느끼는 것이 맞겠죠. 비록 색을 구분할 수는 없지만 대기의 진동과 흐름을 통해 사물의 윤곽과 형태를 파악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왕소군의 신형이 휘청였다.
재빨리 그녀를 부축한 제갈산이 놀란 표정으로 단악선을 바라봤다.
창백해진 아내의 얼굴과 비 오듯 쏟아지는 식은땀 때문이었다.
“이 사람 왜 이러는 겁니까?”
“피로 때문이에요. 밀려드는 정보의 양이 급증했으니까요. 아직은 낯선 감각이니만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때까지는 견디는 수밖에 없어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왕소군은 단악선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지극히 극진한 예를 갖춰 크게 절을 올리려는 왕소군을 단악선이 만류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전 보답을 한 것뿐이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왕소군이 손자를 안고 있는 제갈경을 향해 다가섰다.
그녀의 수화에 빙그레 웃은 제갈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무나.”
제갈경이 손주를 며느리의 품에 넘겨주었다.
지금 이 순간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제갈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눈으로 보듯 어색함 없이 아이를 받아 드는 자연스러운 며느리의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것이다.
품 안의 아이를 가만히 응시하길 잠시.
왕소군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비로소 자신의 아이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되자 새삼 감격이 북받친 것이다.
그런 아내의 어깨를 제갈산이 끌어안았다.
“이 은혜에 대체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갈산과 시선을 마주한 단악선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직이에요.”
“네?”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던 제갈산은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드님을 제가 좀 살펴봐도 될까요?”
“……!”
명실상부 천하제일로 손꼽히는 의술을 지닌 단악선이다.
그런 단악선이 살펴봐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제갈산도 아비 된 마음으로 내심 부탁하고 싶었지만 차마 염치가 없어 그러지 못했다.
그런데 단악선이 먼저 나서 제안해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단악선의 의중을 깨달은 왕소군이 재빨리 소매로 눈물을 훔친 뒤 조심스럽게 아이를 건넸다.
받아 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악선이 다시금 조용히 미소 지었다.
“네가 명이구나.”
그사이 잠이 깬 듯 강보 안에서 뒤척이던 아이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낯선 이의 시선에도 이내 방긋 웃으며 옹알이를 해 댔다.
단악선의 주변으로 상서로운 서기가 넘실대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더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운이었다.
잠시 후.
단악선의 전신을 에워싸고 있던 서기가 아이를 감싸더니 어느 순간 하나의 선명한 형상을 만들어 냈다.
이를 본 제갈산은 너무 놀라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