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7)
신마의선-467화(467/500)
신마의선 (467)
육안으로 구분될 정도로 눈 부신 빛을 뿌리던 유형화된 서기!
그렇게 한동안 아이의 정수리 근처를 노니나 싶던 위화신공의 정수가 어느 순간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빠른 속도로 아이의 전신 모공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아이가 스르륵 눈을 감더니 다시금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이를 엄마에게 돌려준 단악선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 냈다.
“단 의원, 괜찮아?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범계위가 염려 가득한 눈빛을 건넸다.
아무리 단악선이라 해도 개정대법(開頂大法)을 펼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악선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제갈산을 바라봤다.
“이 아이가 바르게 자라 언젠가 제갈세가의 희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제갈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가주라는 체면도 잊고 이 순간만큼은 격동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였다.
단악선이 자신의 아들에게 베푼 벌모세수(伐毛洗髓)는 그야말로 두 번 다시 없을 천고의 기연.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이에 단악선은 빙긋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나저나 이곳은 참 대단하네요.”
장애로 인해 범인과 다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아내를 위해 제갈산이 직접 고안하고 설계한 이곳엔 그가 지닌 기관토목과 진법의 정수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진법에 조예가 깊은 단악선은 곧바로 이를 파악해 낸 것이다.
크고 작은 정원석과 우거진 수목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바람길을 조성한 것이다.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꽃향기.
이를 따라 움직이면 안전한 경로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을 위한 배려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더없이 실용적인 진법이자 그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끌어올린 진법이었다.
그렇게 운을 뗀 단악선이 본격적으로 제갈세가를 방문한 이유를 언급했다.
“이걸 좀 봐 주시겠어요?”
단악선이 품속에서 두 장의 종이를 꺼내 제갈산에게 건넸다.
이를 받아 확인하던 제갈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 진법은?”
“맞아요. 누군가를 완벽하게 가두어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단절시키기 위한 용도예요.”
“단 의원님께서 고안하신 겁니까?”
단악선이 고개를 젓자 제갈산이 탄성을 흘렸다.
“누군지 모르나 대단한 실력자군요. 이 정도로 정교하고 위력적인 진법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외에도 또 있었다니…….”
그 말에 단악선이 의미 모를 웃음을 머금었다.
이곳 화원에 설치된 진법과 사종악을 가두기 위해 준비 중인 진법.
한 사람만을 위한 진법이라는 것은 같지만, 그 목적은 판이했기 때문이다.
진법이라는 말에 좀이 쑤셨던지 제갈경이 다가와 설계도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이 진법의 배치 형태는 분명 귀수의 방식인데?”
제갈경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단악선에게 물었다.
“이걸 설계한 자가 누구인가?”
“천의라 불리는 의원이에요.”
“천의? 천의라면…….”
“아마 생각하시는 그 사람이 맞을 거예요.”
제갈경과 제갈산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단악선이 지금까지 얻었던 정보들을 공개했다.
삼몰쌍괴를 통해 알게 된 사종악과 천의의 관계를 비롯해 현 장강수로연맹의 상황.
거기에 사종악이 갑자기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까지.
“북명신공이라니…….”
제갈경의 침음성에 제갈산 역시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 저주받은 무공이 다시 나타날 줄이야!”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진명진인이 사종악에게 패배한 사건은 무림에 큰 충격을 던져 줬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예상치 못한 뜻밖의 결과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제갈경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사종악이 북명신공을 익혔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이후 세 사람 사이에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그자를 처리해야겠군요.”
제갈산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속도예요.”
사종악과의 싸움은 신중해야 했다.
과거 마교와의 일전은 새외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중원에 미치는 여파가 크지 않았다.
물론 곤륜의 피해가 막심했고, 정예 고수들을 상당수 잃은 구파일방의 희생 또한 컸지만 중원 무림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피해가 전무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사종악은 장강수로연맹을 비롯한 사파의 고수들을 대거 포섭해 거느리고 있는 상태.
자칫 싸움이 길어지면 중원 전역으로 확대되어 대규모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백성들의 몫이 될 것이 자명했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단번에 몰아쳐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끝내야 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정확하게 사종악의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정파무림의 힘을 다시 하나로 모아야 해요.”
단번에 사종악을 솎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저는 가주님께서 전면에 나서 주셨으면 해요.”
단악선의 말에 제갈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를 비롯한 제갈세가는 전적으로 단 의원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단 의원님께서 계시는데 굳이 제가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니에요. 저보다는 가주님께서 맡아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유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무림에는 항상 존재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니까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서 제갈산은 단악선의 복잡한 마음 일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전 이번 일을 마무리 지은 뒤 향후 거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해요. 더 이상 무림인이 아닌, 초야에 묻혀 의원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제갈산이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나직한 한숨을 흘리며 제갈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갈세가는 전적으로 단 의원님의 뜻을 따르겠다고요.”
단악선을 바라보는 제갈산의 눈빛에 진한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많이 지친 게지.’
누구나 그렇듯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버거운 법.
그가 겪어 본 단악선은 힘과 세력을 앞세워 패도를 추구하는 유형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타고난 성격 역시 마찬가지.
처음 자신이 추구했던 삶과 상반된 지금의 모습이 적지 않은 마음의 부담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피로 점철된 최근의 행보에 당사자인 자신이 누구보다 환멸과 염증을 느끼고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제갈산이 부탁을 수락하자 단악선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럼 명숙들을 찾아뵙고 힘을 결집하는 역할은 제가 하죠.”
“직접 말입니까?”
“앞서 연판장을 만들었던 경험을 통해 안면도 있으니 다른 사람보다 제가 나서는 게 여러 면에서 수월할 거예요. 어차피 마교 토벌과 관련한 감사도 드려야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저희 세가의 이름으로 소식부터 돌리겠습니다. 사태의 흐름을 관망하며 직접 나서길 주저하던 사람들도 단 의원님의 의지를 알게 되면 반드시 동참할 것입니다.”
두 사람의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제갈경이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여식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한때 봉문까지 자처해야만 했던 제갈세가였다.
그런데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세가가 다시 일어서고, 이렇게 무림의 주역이 되어 전면으로 다시 나서게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면 조만간 있을 회합도 부족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겠구나.”
넌지시 건네는 부친의 조언에 제갈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준비는 저희가 하되, 장소는 달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따로 생각해 둔 곳이 있더냐?”
“아무래도 화산파에서 개최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제갈산이 흡족한 눈빛으로 아들이 제시한 의견에 동의했다.
“이 아비의 생각에도 그곳이 좋을 것 같구나.”
삼 년 전.
당시 장문인이었던 진명진인과 매화검수 상당수를 잃은 화산파는 산문을 굳게 걸어 닫은 채 절치부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장문인에 추대된 사람은 천하오절이었던 사형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천재 검객.
청심홍매(靑心紅梅) 진현진인이었다.
하나 그 역시 적벽화산(赤壁華山)의 진전을 이은 대단한 고수.
그런 거인이 화산을 지탱하고 있기에 큰 위기 앞에서도 쉬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소문에 따르면 스물네 명의 매화검수 역시 대부분 빈자리를 채워 간다 들었다.
매화검수를 이끄는 매화총검(梅花總劍) 역시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이다.
한때 후기지수 중 단연 발군이었던 명검.
세월과 경험을 통해 더욱 벼려지고 발전한 그의 검은 더 이상 화산이 품고 있던 와룡(臥龍)에 그치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무인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서악일기(西岳一器)라는 명호에 부족함이 없었다.
삼 년 동안 숨죽이며 준비를 해 온 그들이기에 명분만 주어진다면 크게 떨치고 일어설 것이 분명했다.
단악선 역시 그 의견에 찬성했다.
“그럼 저는 해남검파의 준비를 도우면서 소식이 끊어진 고수분들을 수소문해 볼게요.”
초악량과 한설화는 논외로 해도 아직 중원에는 천하오절이 세 명이나 남아 있었다.
소림의 계율원주인 법료를 비롯해 이화궁주 연옥상과 주광도귀 강위룡.
연락만 닿는다면 그들 역시 기꺼이 자신 편에 서 줄 것이라 단악선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단악선이 제갈세가를 방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하나의 풍문이 무림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그 소문의 중심은 단연 한 사람.
바로 신마의선이었다.
십 년 전, 마교의 발호로부터 중원을 구한 젊은 영웅이 오랜 칩거를 깨고 귀환했다는 소식에 수많은 무림인이 열광했다.
과거 단악선과 인연이 있었던 고수들은 물론이고, 그사이 새롭게 두각을 드러낸 신진고수들 또한 향후 무림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또한 제갈세가를 중심으로 정도의 명숙들이 속속 모여 뜻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더해지며 사종악을 추종하는 세력들도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딘가 정체되어 있던 무림의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곳은 장사 인근에 자리 잡고 있던 흑도방파였다.
한때 사종악의 손발을 자처했던 거산방은 범계위에 의해 공중분해 된 지 오래였고, 그들을 대신해 새롭게 그곳을 차지한 곳이 있었다.
바로 해남검파였다.
거산방의 현판이 내려지고 해남검파를 상징하는 ‘장풍파랑(長風破浪)’ 네 글자가 새겨진 현판이 새롭게 내걸린 이때.
헌액식(獻額式)을 맞아 해남검파의 중원 진출을 축하하는 사절들의 방문이 줄지어 이어졌다.
장강을 손아귀에 넣은 사종악의 위세에 눌려 있던 남부 지역의 무림인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과거 마교와의 대전에 참여했던 명숙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며칠 전에 해남검파의 정예를 대거 이끌고 도착해 있던 해남검파의 문주 벽대경이 친히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모처럼의 큰 행사이니 의당 축하를 건네야지요. 그나저나 저희들이 괜한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찾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처음에는 내심 걱정이 앞섰던 벽대경이었다.
거산방은 일대에서도 손꼽히던 규모를 자랑하는 방파였던 만큼 방대한 부지와 많은 전각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데 행여라도 손님이 적으면 그만큼 상대적으로 휑해 보일 터.
지금까지 중원 무림과 큰 왕래가 없었던 그로서는 방문객의 숫자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다행히 그런 우려와 달리 밀려드는 축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해남검파의 지부 선포식은 대성황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한 사람 때문이라는 사실을 벽대경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벽대경과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
그곳에는 정신없이 손님을 맞는 단악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