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69)
신마의선-469화(469/500)
신마의선 (469)
여전히 고심을 거듭하는 황제를 사례태감이 재차 설득했다.
“물실호기(勿失好機)라 하였습니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두 번 다시 이처럼 좋은 시기는 도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상황이 잘만 풀린다면 능소밀 그자를 폐하 곁에 묶어 둘 견고한 족쇄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상치 못한 말에 황제가 관심을 보이며 사례태감을 재촉했다.
“자세히 고하라.”
“칼을 휘둘러 피를 손에 묻힌 당사자인 만큼 누구보다 그 책임을 무겁게 느낄 테니까요. 적어도 향후 몇 년 동안은 이번 여파로 흔들린 조정의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할 것이옵니다. 무엇보다…….”
사례태감의 얼굴에 맺혀 있던 미소가 짙어졌다.
“높아진 권력만큼 그에 버금가는 명예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권력이 지닌 위대함을 깨닫고 이미 앞서 그 길을 걸어왔던 만큼 사례태감은 확신했다.
인간은 본디 욕망을 좇아 움직이는 존재.
그리고 그 욕망의 종착지에서 마주하는 것이 바로 권력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제는 더 올려 줄 직책도 없노라.”
황제의 말에 사례태감이 고개를 저었다.
“직책이 아닌 권력을 쥐여 주소서. 그가 감히 내려올 엄두가 나지 않도록 더 큰 권한과 책임을 얹어서 말입니다.”
“……!”
황제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 * *
다음 날 오전.
양심전(養心殿)에서 진행된 어전 회의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최근 들어 앞뒤 가리지 않고 들이받으며 험악한 분위기로 회의를 이끌었던 당사자가 입을 다문 채 자리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조용한 회의가 막바지에 이르러 갈 무렵.
황제가 어딘가를 향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조용히 미소를 베어 문 사례태감이 막 앞으로 나서려던 찰나.
갑자기 호부 상서가 입을 열어 주청했다.
“폐하, 신 호부 상서 양소이옵니다. 부디 소신의 간언을 허하여 주시옵소서.”
일단 입을 연 이가 조정의 재정과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호부의 책임자인 만큼 황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하라.”
황제의 윤허가 떨어지자 호부 상서가 가벼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소신은 도찰원의 장관인 능 좌도어사에 대한 특별 포상을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특별 포상?”
황제의 눈에 의아함이 자리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호부 상서인 그와 능소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기 때문이다.
품에 넣고 있던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던 능소밀 역시 마찬가지.
그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이번에야말로 사직을 고할 절호의 시기라 판단해 회의가 끝나기만을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건만…….
난데없이 저 호랑말코같이 눈치 없는 호부 상서가 눈앞에서 폭탄을 터트려 버렸다.
황제가 말없이 사례태감을 바라봤다.
이에 사례태감은 넌지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의중과 상관없다는 의미였다.
비단 호부뿐만 아니라 이미 능소밀은 육부 전체를 적으로 돌린 지 오래.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황제가 피식 웃었다.
‘필시 무언가 약점을 잡힌 게로군.’
도찰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으나 저 능구렁이 같은 호부 상서마저 구워삶을 줄이야.
“듣겠노라. 호부 상서는 계속하라.”
호부 상서의 목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능 좌도어사는 사람됨이 정직하고 강직하기로 이름이 높아, 직위가 낮을 때부터 명망 있는 권력자들에 대한 직언을 서슴없이 해 왔으며, 아첨하여 굽히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나이다. 그 명성으로 인해 근자에는 뭇 백성들이 그를 가리켜 도청천(都靑天)이라 그를 칭송한다 하옵니다. 이는 송대의 유명한 판관 포청천에 견준 것으로…….”
이후로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 낯간지러운 칭송에 능소밀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반면 황제는 황제대로 심기가 불편해졌다.
“청렴은 관리의 기본 덕목 아니더냐. 좌도어사는 도찰원의 수장으로서 소임을 다했을 뿐인데 포상을 운운하다니……. 이는 그만큼 조정이 썩어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서슬 퍼런 황제의 눈빛에 호부 상서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이 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자.
재빨리 품속에서 미처 올리지 못한 상신문을 꺼내 펼쳐 들었다.
“최근 호부에서 황실의 물자 매입에 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이 할 사 푼의 비용 절감이 이루어졌나이다. 더불어 품질은 오히려 올라갔으며, 무엇보다 상단들이 황궁에 대한 신뢰가 크게 증가하여, 국책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찰원의 감찰을 진두지휘하여 매입 체계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관리들의 기강을 확립한 좌도어사의 공이 크다 할 것입니다.”
“이 할 사 푼?”
놀랄 정도로 개선된 재정 지표 앞에서는 내심 시큰둥했던 황제조차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호부 상서가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좌도어사의 공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황실 재정의 여유가 생겨 이전에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빈민 구제에 온전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폐하의 성은을 칭송하는 백성들이 크게 늘어났사옵니다.”
“흠. 그 정도로 눈에 띄는 성과라면 호부 상서가 포상을 언급할 만도 하군.”
수긍하는 듯한 황제의 태도에 마음이 다급해진 능소밀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소신은 녹봉을 받는 만큼 일한 것일 뿐이옵니다.”
“받는 녹봉보다 훨씬 큰일을 해낸 것 같은데?”
“그건…….”
황제가 손을 들어 능소밀의 말을 제지했다.
상대는 조정 내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달변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놈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짐이 경들에게 의견을 구하노니, 큰 공을 세운 좌도어사에게 어떠한 포상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는가?”
호부 상서가 곧장 대답했다.
“좌도어사의 노력으로 확보한 재정의 일부 금액만큼 전답(田畓)을 하사하신다면…….”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도중에 누군가 그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사례태감이었다.
“그는 한때 신마상단을 이끌었던 상단주로서 막대한 금액을 다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금전적 포상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무엇보다 충정은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 오히려 청렴 강직한 좌도어사에게 모욕으로 느껴질 수도 있사옵니다.”
황제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문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포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보나?”
“재물이나 영예보다는 차라리 본인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실리적인 권한을 주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실리적 권한?”
“일정 기간 동안 기한을 두어 폐하를 제외한 모든 조정 대신과 기관의 감찰 권한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지금까지 도찰원이 해 왔던 역할을 더욱 수월하게 처리해 나갈 수 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능소밀이 화들짝 놀라 사례태감을 바라봤다.
계산 빠른 그로서도 당장은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어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문제는 황제였다.
꽤나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황제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 느껴졌다.
황제가 반문한 것도 그때였다.
“하나 그건 이미 가지고 있는 권한 아닌가?”
“실질적으로 몇몇 기관과 인물들에게는 그 권한이 미치지 못하고 있나이다.”
“동창과 금의위를 말하는 건가?”
“그렇사옵니다. 사실상 그들을 견제할 세력이 전무한 만큼 도찰원의 권한을 강화해 균형을 도모한다면 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더욱 탄탄한 기반 위로 올릴 수 있을 것이옵니다.”
“흐음…….”
“황명을 통해 좌도어사에게 힘을 실어 주신다면…….”
그때였다.
“아니 될 말이옵니다, 폐하.”
문무백관 가운데 한 사람이 사색이 되어 앞으로 나섰다.
이부(吏部)의 수장인 이부 상서였다.
“중서성을 혁파하여 현재의 상서 육부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호유용의 옥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옵니다. 도찰원의 수장을 정이품으로 한정 지은 것 역시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기 위함이옵니다. 감찰을 주 업무로 하는 도찰원의 특성상, 무소불위의 권한이 주어진다면 이는 과거에 사라진 승상제와 다를 바 없게 되나이다. 이미 과거에 망탁조의(莽卓操懿)의 선례가 있듯, 권신에게 주어진 지나친 권리는 망국을 앞당기는 결정임을 잊지 마소서.”
이부 상서의 말에 능소밀의 눈매가 꿈틀했다.
이부는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는 만큼 특정 인사나 기관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을 망탁조의에 비유한 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이나 넘은 것이었다.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
이들 모두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조정에 출사해 봉록을 받아먹던 국가를 무너뜨린 자들로, 왕망은 유일하게 찬탈(簒奪)을 성공해 황제에 등극했다.
동탁은 제위를 노렸으나 헌제의 선양이란 미끼에 걸려 죽음을 맞았고, 조조와 사마의는 생전에 황제가 되지 않았으나 그 자손들이 황제가 되면서 사후에 황제로 추존되었다.
따라서 망탁조의는 역적에 대한 기준이자 대명사인 셈.
관리에게 있어서는 사문난적(斯文亂賊)과 함께 가장 큰 모욕과도 다름없는 표현인 것이다.
‘어떤 역적이 사직서를 품고 다녀?’
당장이라도 그렇게 버럭 소리치고 싶었지만 능소밀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소신과 대척점에 있었으나 이번 사안만큼은 소신도 이부 상서와 의견을 같이하옵니다.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라는 말이 있듯, 각자 주어진 역량만큼의 권한을 지니고 있을 때 제 역할을 다 해낼 수 있다 믿사옵니다.”
그러나 사례태감은 순순히 능소밀을 놓아주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에 기한을 두자 한 것이옵니다. 무엇보다 황명을 통해 언제든지 권한을 회수할 수 있다는 단서가 따른다면 능 좌도어사 역시 주어진 권한을 신중하게 사용할 것이옵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말아 올리는 황제의 모습에 대신들은 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이대로 황제의 재가가 떨어지면 능소밀 앞에서는 권력의 역학 관계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묵묵히 어좌의 팔걸이 부분을 두드리던 황제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사례태감의 제안은 실로 인상 깊군. 하나 도찰원이 황명을 등에 업고 권한이 강화되면 그대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을 텐데?”
대외적으로 사례태감과 능소밀은 소문난 앙숙으로 알려져 있었다.
과거에도 이미 몇 차례나 크게 부딪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빈직은 스스로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도찰원의 감찰을 마다할 이유가 없사옵니다.”
문득 얼굴에 와 닿는 따가운 시선을 느낀 사례태감이 능소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눈빛으로 이렇게 묻고 있는 능소밀을 향해 사례태감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능소밀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함정?’
비로소 사례태감의 저의가 의심되기 시작했다.
근래에 서로가 호감을 지니고 있다곤 하나 그는 기본적으로 끝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괴물이었다.
또한 자신의 입지를 위협한다 싶으면 그게 누구라도 가차 없이 쳐 낼 수 있는 독심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오랜 세월 권력의 정점에서 군림할 수 없었을 터.
이때 황제가 능소밀을 향해 물었다.
“권한에는 당연히 책임도 따르는 법. 하물며 그것이 황명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권한을 사용함에 있어 사사로운 욕심이 개입되면 어찌 되는지 아는가?”
“당연히 목숨으로 책임을…….”
무심코 대답하던 능소밀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짐의 믿음은 그처럼 무거운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