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7)
신마의선-47화(47/500)
신마의선 (47)
마을 외곽에 위치한 아담한 장원은 오랫동안 상단을 운영해 온 조 대야가 은퇴 후 여생을 편히 쉬기 위해 마련한 장소였다.
조 대야는 중원 전체에서도 손꼽힐 만큼 상당한 규모의 상단을 이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가뭄으로 인한 기근에 사재를 털어 이재민을 돕고, 마을의 대소사에도 항시 함께하며 재물을 아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문난 거부로 알려진 그 또한 세월을 피하진 못했다.
언젠가부터 체력이 심하게 약해졌다 싶더니, 요즘은 지병까지 도져 하루 대부분을 침상에서 보내야 했다.
그 어떤 보약도 한번 쇠약해진 기력을 되돌릴 수 없었다.
의원들도 달리 손을 쓰지 못했다. 뚜렷한 병인이 있는 것이 아닌, 노환에서 비롯된 병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침상에 누워 있던 조 대야가 무거운 한숨을 터트렸다.
이처럼 종일 누운 채로 오늘내일하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더없이 비참하고 힘겨웠기 때문이다.
침상 옆을 지키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향해 조 대야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정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조 대야의 곁을 지키던 그의 아들.
상단의 후계자인 조효심 또한 효자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조효심이 부친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잔병에 굴하실 아버님이 아닙니다. 곧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아니다. 내 생명이 다했다는 게 느껴지는구나.”
조 대야가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신은 혼미하고 기력도 쇠하였으니…….”
주름 가득한 조 대야의 얼굴 위로 감출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벌써 날은 저무는구나.”
조 대야가 아들을 향해 말했다.
“너도 이만 돌아가 쉬도록 해라. 지금은 혼자 있고 싶구나.”
그렇게 아들을 물리고 혼자 남은 조 대야는 그대로 선잠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 대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활짝 열린 창문과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인영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말로만 듣던 저승사자인가 싶어 조 대야는 가슴이 덜컥했다.
그 순간 상대가 말을 건네 왔다.
“늦은 밤에 허락 없이 방문한 점 우선 사과드립니다. 평난대부(平難大父) 조화심 대인 맞으신지요?”
호의가 담긴 상대의 목소리에 조 대야의 경계심이 약간 누그러졌다.
“누구……?”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사무심이라는 자로, 평소 대인을 흠모해 왔던 일개 야인이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사무심이 조 대야를 향해 다가섰다.
“무례를 미리 사과드립니다. 하나 이 모든 것이 대인을 위한 것이니 부디 해량하시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무심이 조 대야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 그를 안아 들었다.
“이, 이게 무슨 짓……!”
당혹감에 놀라 소리치던 조 대야가 그대로 까무룩 의식을 잃었다.
사무심이 그의 목 뒤에 위치한 수혈을 눌렀기 때문이다.
조 대야를 안은 사무심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도 동시였다.
* * *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조 대야는 다시 자신의 장원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것도 본인 스스로 두 발로 걸어서.
끼익.
장원의 대문을 열고 그가 들어서자 하인들이 화들짝 놀랐다.
“어, 어르신!”
와병 이후 한 번도 침상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조 대야였던지라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달려온 조 대야의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님?”
조효심은 기쁜 와중에도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병환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봐 온 그였기 때문이다.
많은 돈을 들여 초빙했던 무수한 의원들도 노환 앞에는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지 않았던가.
한데 눈앞에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정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게 대체…….”
격동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조효심이 말을 잇지 못했다.
하물며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 온 당사자인 조 대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그토록 무겁던 몸이 지금은 더없이 상쾌하고 가뿐했다.
마치 십 년은 젊어진 것만 같았다.
조 대야가 아들에게 말했다.
“황 의원을 불러다오.”
잠시 후.
장원으로 불려 온 의원은 조 대야의 상태를 확인하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랜 세월 그의 건강을 전담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병이 나았습니다!”
조 대야를 비롯한 장원의 식솔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조 대야가 하인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다.
“식사를 준비해 다오. 모처럼 오래 걸었더니 몹시 허기지구나.”
평소 미음만 몇 수저 뜨고 말았던 조 대야는 오랜만에 제대로 식사를 했다.
조 대야는 비로소 어젯밤 자신이 겪은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온몸을 가득 채운 활기만큼 음식 또한 하나같이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만에 흡족한 식사를 마친 조 대야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동안 애썼다. 이 아비가 네게 큰 짐을 지웠구나.”
조 대야의 말에 조효심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렇게 건강을 회복하신 것만으로도 소자는 충분합니다.”
다행히 그간의 기도와 염원이 하늘에 닿았던 모양이다.
인근 사찰에서 불사(佛事)가 있을 때마다 불전에 바친 공양이 아깝지가 않았다.
“큰 시련을 극복하셨으니 이제는 천수를 누리실 일만 남았군요. 아버님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쇠처럼 강인한 분이시니까요.”
조효심의 말에 조 대야의 얼굴 위로 안쓰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자신을 위해 그 어떤 고생도 마다치 않던 아들의 노고를 익히 아는 까닭이다.
그런 아들에게 차마 진실을 밝힐 수가 없었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있죠.
어젯밤 만났던 어린 의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자신을 사무심이라 소개한 인물이 데려간 곳은 어느 이름 모를 계곡 안에 자리 잡은 전각이었다.
그곳에서 그 어린 의원을 만났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이 인상적인 소년.
천상의 소동(小童)이 길을 잃고 속세에서 헤매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어딘가 신비로운 느낌을 지닌 아이였다.
자신을 진맥한 소년은 쓰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진전성마비(震颤性麻痹)네요.”
조 대야는 의아했다.
다른 의원들은 하나같이 노환이라 했을 뿐 그런 병명은 언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지와 몸이 떨리고 경직되는, 일종의 퇴행병이에요. 초기에는 특징적인 증상들이 나타나지 않거나, 증상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노환과 구분이 어렵죠.”
조 대야는 그 말에 희망을 보았다.
“혹시 치료가 가능합니까?”
그 물음에 어린 의원이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
“진전성마비가 노환과 구분이 어려운 이유는 결과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에요. 느리고 빠르고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임종을 마주해야 하죠.”
한마디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미 몇 번이고 들어 왔던 말이기에 조 대야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들었다.
“다만 증상을 호전시켜 드릴 수는 있어요. 적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로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을 늘릴 수는 있지만 완치는 불가능해요. 병은 속일 수는 있어도 죽음은 속일 수 없거든요.”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는 데에는 더없이 값진 시간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굳이 이를 내색지 않았다.
당장 이렇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한 채 아들과 마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과 관련된 장부와 문서들을 가져다 다오.”
* * *
며칠 후, 조 대야는 약재상들이 늘어서 있는 저자의 골목을 찾았다.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골목 끝에 위치한 약재상 안에 들어서자 사무심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 대야가 환한 얼굴로 사무심에게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두 손으로 사무심의 손을 붙잡고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그날은 경황이 없어 미처 인사를 하지 못했소이다. 고맙소, 정말 고마워.”
“안색이 좋아 보시는군요. 다행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소? 전에는 그 가치를 몰랐던 일상의 하루하루가 더없이 값지게 느껴진다오. 이 모두가 사 대인과 의원님 덕분이오.”
“대인이라니……. 감당할 수가 없군요.”
사무심이 웃으며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곡주님께서 직접 만드신 단약입니다. 사흘에 하나씩 드시면 큰 도움이 될 거라 하시더군요.”
“곡주? 그 어린 의원을 말씀하시는 거요?”
사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미력하나마 총관으로서 그분을 보필하고 있습니다.”
“총관……. 총관이라.”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조 대야가 심유한 눈을 들어 사무심을 보았다.
“필시 노부에게 바라는 바가 있을 테지요?”
말없이 웃고만 있는 사무심의 모습에 조 대야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평생을 상인으로 살아온 그였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윽고 사무심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예상 밖이었다.
“제가 서방 무역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단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조 대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해상 무역은 관부와 연계한 상단들이 독점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희 상단의 규모가 적은 것은 아니나 이미 저들은 공고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오.”
“아, 오해를 하셨군요.”
사무심이 웃으며 설명을 이어 갔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해상 무역이 아닙니다. 저는 육로를 이용해 물건을 들여오려 합니다.”
“육로? 설마 비단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조 대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한나라 때 처음 개척된 비단길은 내륙을 가로질러 횡단하는 동서 무역로였다.
조카 건문제를 몰아내고 즉위한 영락제는 기존의 수도였던 금릉을 남경이라 이름을 바꾸고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는 천도를 단행했다.
그리고 새로운 수도를 기반 삼아 여러 번 북벌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구 황조의 잔재 세력인 북원을 장성 너머로 완전히 몰아냈다.
이후 명 조정은 철저히 장성을 봉쇄했다.
덕분에 오래전부터 문물과 문화가 유입되던 비단길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쫓겨난 이민족, 달단(韃靼) 무리의 원한이 극에 달해 있었다.
“당장 관에서부터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겁니다.”
장성을 넘기 위해서는 산해관이나 옥문관처럼 중간중간에 위치한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명 조정이 이를 허락해 줄 리 만무했다.
“제게 해결책이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굳이 장성을 넘을 필요 없이 옥문관 너머로 크게 우회해서 돌아가면 됩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문제 아니오? 사나운 달단족의 영역을 바로 마주하게 될 터인데?”
“그 역시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여전히 우려를 감추지 못하던 조 대야를 향해 사무심이 여유로운 미소를 건넸다.
“교역이 성공한다면 대야의 상단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을 들여오려 하는지 물어도 되겠소?”
“파사국(波斯國)에서 생산되는 장홍화(張紅花)입니다.”
“……!”
조 대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름 그대로 붉은 꽃인 장홍화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향신료였다.
“해상 무역을 통해 들여오는 장홍화 역시 그 양이 적지 않지만 습윤한 바다의 공기 때문에 품질을 유지하기가 어렵지요. 하나 비단길 대부분은 건조한 사막과 고원 지대입니다. 바닷길에 비해 양은 적더라도 훨씬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사무심이 쐐기를 박았다.
“믿을 만한 서방의 상단은 이미 수소문해 두었으니 질 좋은 비단과 도자기를 구할 수 있도록 주선을 부탁드립니다. 판매와 관련된 사항은 장홍화를 무사히 들여온 이후 진행하도록 하지요.”
물끄러미 사무심을 바라보던 조 대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받은 것에 비해 어려운 조건도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중원 최고의 물품들을 선별해 공급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