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70)
신마의선-470화(470/500)
신마의선 (470)
‘나를 쳐 내려 하는 것인가?’
능소밀은 마음이 심란해졌다.
그가 원한 것은 조용히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하는 것이었지 권력의 칼날 위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는 황제와 사례태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심은 더욱 확신으로 굳어졌다.
‘사전에 이미 이야기가 오갔구나!’
어쩌면 황제는 자신의 쓸모가 다 했다고 판단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이에게 보내지도 않겠다는 못된 심보일 지도…….’
그 억하심정(抑何心情)을 어찌 다 파악하겠느냐만 상황이 이리된 이상 방법이 없었다.
상대가 적의를 드러낸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싼 이자를 얹어 받아쳐 주는 것이 그의 방식.
마음을 굳힌 능소밀의 두 눈이 전의로 활활 불타올랐다.
“하해와 같은 폐하의 성은을 각골난망(刻骨難忘)하여 조금의 실수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황제의 눈 위로 의외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능소밀의 성격상 한참은 실랑이를 벌이며 설득하는 과정을 예상했던 것이다.
한데 너무 수월하게 수긍하고 받아들이니 오히려 수상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철회할 수도 없는 일.
황제가 슬쩍 사례태감을 바라봤다.
이에 사례태감은 뜻 모를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친히 칙서(勅書)를 작성할 것이다.”
환관들이 서둘러 지필묵을 준비하는 동안, 어마어마한 권한을 거머쥐게 된 능소밀이 대전에 시립해 있는 문무백관을 스윽 둘러보며 히죽 웃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대신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제대로 반대할 틈도 없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능소밀은 손쓸 수 없는 권력자로 부상해 버린 뒤였다.
대신들이 애써 능소밀의 시선을 회피했다.
저 소름 끼치는 눈빛을 감히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오직 황제와 사례태감만이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전 회의가 파한 뒤.
서둘러 대전을 빠져나가는 문무백관들을 응시하던 능소밀을 불러 세우는 음성이 있었다.
“나 좀 보세.”
들은 척도 않고 성큼 걸음을 옮겨 양심전을 나서는 능소밀의 모습에 사례태감이 피식 웃고는 재빨리 그의 소매를 낚아챘다.
“아, 왜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능소밀의 눈빛에 사례태감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언제는 스승이라더니? 그게 스승을 대하는 태도더냐?”
능소밀이 피식 웃었다.
“제정신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한때나마 스승이라 믿었던 작자가 방금 전 턱 끝에 칼을 들이밀었거든요. 그러니 할 말 있으시면 간단히 합시다. 노형(老兄).”
“노형?”
“먼저 선전 포고한 게 누군데요? 사실 노형도 아깝지. 아니면 정적(政敵)을 달리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까? 그럼 알려 주시지요. 그리 부르겠습니다.”
권력자의 쟁투는 중간이라는 게 없었다.
결과는 오직 하나뿐.
제거당하거나, 혹은 제거하거나.
사례태감은 능소밀이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쯧쯧. 이런 반푼이를 믿고 어찌 조정을 맡긴단 말인가.”
사례태감의 말에 능소밀이 발끈했다.
“아니,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는 왜 뒤늦게 이리 질척대는 겁니까? 그래, 결과는 일단 뒤로 미뤄 두고 이유나 먼저 압시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요?”
“그 반대다.”
“……?”
“너무 뛰어난 네 능력이 이 모든 사단이 된 것이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한바탕 험한 말을 쏟아 내려는 능소밀을 제지하며 사례태감이 불쑥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폐하께 사직을 청했다.”
“예?”
능소밀이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그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사람이 왜 그런 짓을? 제가 휘두르는 칼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진 않을 텐데요.”
“상관없다.”
“……!”
“나는 이미 천수를 누렸고,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다면 오동나무 관 한 칸이면 족하다.”
“그럼 그 포상안은 저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능소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비로소 사례태감의 저의를 깨달은 것이다.
환관의 우두머리인 그가 자신의 후계자로 휘하의 환관이 아닌, 자신을 낙점했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웠다.
사례태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 자네의 말을 듣고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 봤다. 흉중에 불미스러운 뜻을 품은 몇몇 이들을 중심으로 황궁 내에서 은밀히 본인들만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더군. 그중에는 예전의 마교 수보와 결탁했다고 의심받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절 이용해 마지막 칼춤을 추려는 겁니까?”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사례태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가는 길이 꼭 비단길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리고 이건 자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동창 쪽에서 무림의 정보를 집중적으로 모으고, 개입하려는 정황이 있더구나.”
“설마…….”
현 무림의 동향은 능소밀 역시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장강수로연맹을 선택할 것이다.”
“그편이 훨씬 목줄을 쥐기 쉬우니까요.”
능소밀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물물은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 하지 않았던가요?”
정수불범하수(井水不犯河水).
오랜 세월 전통으로 굳어진 관무상호불가침(官武相互不可侵)을 의미했다.
“솔직히 무림은 황궁 입장에서는 늘 예상하기 어려운 변수였지. 지금껏 골치 아픈 상대니 불가침을 선언했을 뿐, 그들을 권력 아래 둘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잠시 침음하던 능소밀이 황제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하지만 폐하 역시 이 이상으로 동창이 비대해지는 건 원치 않으실 텐데요?”
가뜩이나 최근 들어 동창에 소속된 환관과 제기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별도의 무림 세력까지 포섭해 휘하로 거느린다?
역사적 사실들이 증명하듯 지나친 힘의 집중이 역모의 불씨가 될 소지가 다분했고, 이를 간과할 황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저를 지목하신 겁니까?”
“우리가 지닌 칼 중 가장 날카롭고, 또 영리하니까.”
“하…….”
모든 배경과 이유를 알게 된 능소밀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한발 늦었군요.”
품속의 사직서를 꺼내 눈앞에서 박박 찢는 능소밀을 보며 사례태감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원래 인생은 기회가 왔을 때 거머쥐어야 하는 법이지. 망설이고 고민하다 적기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는 것이고. 바로 지금의 자네처럼.”
푹푹 한숨을 내쉬던 능소밀이 이어진 사례태감의 말에 더없이 복잡한 눈빛을 흘렸다.
“명심하도록. 그것이 스승으로서 내리는 마지막 가르침이니까.”
* * *
“담목채와 위하채가 놈들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회의를 주재하던 도중 황급히 뛰어든 수하의 보고에 사종악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동정호의 충의채를 잃은 것도 모자라 전략적 요충지인 두 곳마저 적에게 넘어간 것은 그야말로 뼈아픈 실책이었다.
수로연맹 입장에서는 허리가 끊어진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쪽의 다섯 개 수채가 긴급 지원 요청을 보내왔습니다.”
“남부 무림 문파들이 해남파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수채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놈들의 전력이 예상외로 강력해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
이어지는 소식들 역시 하나같이 마찬가지.
낭보라 할 수 있는 소식이 전무했다.
“구파일방 수뇌부의 회합 날짜가 확정되었다 합니다. 보름 후 화산에서 모이기로 했답니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견디지 못한 사종악이 자신도 모르게 빠드득 이를 갈았다.
“결국 내가 나서야 하는가?”
짜증 섞인 눈으로 수하들을 노려보길 잠시.
“창랑대(滄浪隊) 전원을 소집해라. 놈들이 결집하기 전에 먼저 쳐서 손발을 자른다.”
그렇게 수하들을 물린 사종악이 눈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신마의선이라는 놈이 나타나며 모든 일이 어그러졌어.”
사종악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집무실 바깥쪽을 노려봤다.
“쓸 만한 놈이 하나도 없어.”
그때였다.
술잔을 움켜쥐고 있던 사종악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술잔이 일직선을 그리며 어디론가 날아간 것은 그 직후였다.
쨍강.
벽에 부딪혀 깨져 나간 건 술잔의 파편.
그 사이로 한 사람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오십 대 초반 정도 되었을까.
새하얀 귀밑머리와 유난히 대비되는 홍안을 지닌, 호리호리한 체구의 사내였다.
“넌 뭐냐?”
사종악의 물음에 사내가 빙글거리며 포권을 취했다.
“미천한 소인 좌자(左子)가 감히 당금 강호를 떨어 울리는 사도의 대종사, 번강룡 사 대협을 배알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종악이 스스로를 좌자라 밝힌 사내를 지그시 노려봤다.
사종악은 입맛이 몹시 썼다.
상대가 자신의 신분을 파악하고 있다는 건 둘째 치고, 지금 머물고 있는 이곳의 위치가 드러났다는 것이 더 심기가 불편했다.
혹시 모를 정파 고수들의 급습을 우려해 비정기적으로 수채를 옮겨 가며 지내 온 그였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소재를 파악해 냈다는 건 저자의 정보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
“살수더냐?”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무수한 원한을 쌓아 온 그였다.
그런 만큼 누가 살수를 고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는 유들유들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조아렸다.
“형가(荊軻)가 살아서 돌아온다 한들 어찌 감히 사도 일통을 이루어 내신 사 대협께 칼을 들이댈 수 있겠습니까?”
“그럼 넌 누구냐?”
“향후 무림의 진정한 주인이 되실 분께 미리 선물을 바치러 온 일개 책사(策士)일 뿐이옵니다.”
“책사?”
사종악의 반문에 좌자가 빙그레 웃었다.
“방금 전 쓸 만한 자가 없다 한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비록 무공은 사 대협께 견줄 수는 없으나 지략만큼은 저기 제갈가의 신산효재(神算曉才)에게 버금간다 자부합니다.”
사종악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신산효재는 제갈세가의 현 가주, 제갈산을 상징하는 수식어였기 때문이다.
“천하오절 가운데 한 명인 진명진인을 꺾은 만큼 지닌바 무력은 증명했으나, 천하를 도모하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그 곁을 지킬 장자방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종악이 피식 웃었다.
당연히 입바른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조조는 자신의 책사인 순욱을 가리켜 ‘한고조가 장자방을 얻은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한나라를 개국한 유방의 책사인 장량(張良).
이른바 장막 안에서 계책을 마련해 천 리 밖의 승리를 취한다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그는 충무후 제갈량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책사 중 한 명으로 손꼽혀 왔다.
하지만 사종악이 웃은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스스로 장자방을 자처했으니 자신은 자연스럽게 한고조가 되는 셈이다.
그때였다.
코끝을 간질이는 알싸한 향기에 사종악의 눈 위로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이국적인 나무 향과 유사한…….
꽃향기 같기도 하면서 어딘가 사향과도 유사했지만 독특한 바다 향을 머금고 있는 향기.
‘용연향(龍涎香)?’
장강 일대를 장악하며 엄청난 물자들을 노획해 온 수로연맹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무척 값비싸고 진귀한 헌상품도 적지 않았다.
용연향이 대표적이었다.
어느새 실내를 가득 메운 향기를 통해 사종악은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해 낼 수 있었다.
여인이라면 모를까 향낭을 지니고 다니는 사내들은 그 부류가 한정적이었다.
피부 질환으로 인해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감추기 위한 환자나 연로해 생겨나는 가령취(加齡臭)를 감추기 위한 노인들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병자도 아니었고, 노인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부류는 하나.
바로 환관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요실금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
거세의 부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지린내를 감추기 위해 향낭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너…… 동창의 내시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