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72)
신마의선-472화(472/500)
신마의선 (472)
“네?”
당황한 방소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 가르침이라는 것이 비무일 줄은 짐작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지도 대련이라도 그 상대가 범계위라면 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간에서 범계위에 대한 평가는 다른 신마삼존인 초악량과 한설화에 비하면 다소 손색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방소방은 범계위가 천하오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실력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천하오절 모두가 앞서 인정한 바였다.
실제로 그가 마교를 상대로 신지에서 보인 가공할 신위는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명숙들에게 깊이 각인된 상태였다.
하나 이미 한번 말을 뱉은 이상 이제 와 철회할 수도 없는 노릇.
각오를 다진 방소방이 이를 악물었다.
“그럼…… 갑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소방의 신형이 그대로 범계위를 향해 쇄도했다.
퍽.
“커흑!”
그러나 달려들던 기세가 무색하게 방소방이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옆구리를 파고든 무지막지한 손속!
이렇다 할 현묘한 초식도, 눈이 뒤집힐 만큼 화려한 수법도 아니었다.
그저 장난처럼 뻗은 주먹 한 방에 숨통이 턱 막혀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
거리를 좁히며 자신의 턱을 걷어 올리는 무지막지한 주먹을 발견한 방소방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황급히 고개를 젖혀 피하려 했지만 범계위의 주먹은 여느 고수들과는 다른 것.
쾅!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방소방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가슴을 가득 채웠던 용기와 호승심은 사라진 지 오래.
대신 충격과 경악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무공 수준의 격차가 존재하는 만큼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정을 보아줄 줄 알았건만, 이게 웬걸.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지만 눈앞에서 세상이 빙빙 돌았다.
그때였다.
“싸움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냐?”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범계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어…….”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린 방소방이 배웠던 대로 대답했다.
“거리와 호흡, 그리고 기세입니다.”
“그리고 또?”
“네?”
방소방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그러곤 의외로 순순히 쉽게 답을 알려 줬다.
“그건 바로 배짱이다.”
이어진 범계위의 말에 방소방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무공 실력이 출중해도 간이 작으면 제 실력을 내지 못하거든. 방금의 너처럼 말이야.”
“아!”
범계위에게 달려들었던 그 순간.
돌연 들이닥친 폭풍 같은 살기에 노출되자 일순 위축되었던 사실을 떠올린 방소방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 그때.
범계위가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기를 잠시.
인상까지 써 가며 끙끙대던 범계위가 단악선을 바라봤다.
“단 의원! 그거 뭐였지? 초 형이 맨날 말하던 거.”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했던지 뜨거운 콧김까지 뿜으며 고심하는 범계위였다.
“왜 그 비슷한 말 있잖아. 절벽에서 고민하는 놈 있으면 작대기로 후려쳐 떨어트려 버리라는…….”
“아!”
범계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단악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말씀이시죠?”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그 위에 이르러 또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는 의미였다.
“맞아! 그거였어!”
범계위가 씨익 웃으며 방소방을 향해 물었다.
“무슨 뜻인지 알지?”
방소방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범계위가 설명하는 개념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담(膽).
공포란 결국 자기 마음이 일으키는 것이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계속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쳐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도록 몸에 새겨 넣는 것이다.
“좋아. 그럼 계속할까?”
섬뜩한 범계위의 웃음을 마주하는 순간 방소방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의 고생문이 열렸다는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범계위가 발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진각을 굴렀다.
피하지 못하면 그대로 머리를 짓이겨 버릴 기세였다.
콰앙.
가까스로 범계위의 발을 피해 낸 방소방의 등줄기는 어느새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호흡을 가다듬을 여유도 허락지 않고 곧바로 짓쳐 드는 범계위의 모습에 방소방은 절로 곡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취팔선보를 펼쳐 거리를 벌리는 한편, 항룡십팔장의 현룡재전(見龍在田) 초식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성공이다!’
장력에 발이 묶인 범계위가 자신을 쫓는 것을 멈추자 비로소 방소방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범계위의 입매에 걸려 있는 웃음이 더욱 짙어지는 이유를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봤어야 했다.
쩡!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충격음과 함께 손목을 타고 올라온 육중한 반탄력이 어깨를 마비시키고 나서야 방소방은 범계위가 자신의 장력을 받아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휘청이며 물러서는 방소방의 어깨를 범계위가 낚아챈 것도 동시였다.
그리고 그대로 방소방을 바닥에 패대기쳐 버렸다.
콰앙.
“커헉!”
청성판을 부수며 움푹 파인 바닥.
그 안에 대자로 뻗어 널브러진 방소방은 그야말로 아연실색했다.
인정사정없는 혹독한 손속에 그만 기가 질려 버린 것이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범계위의 무심한 눈빛을 마주하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 순간.
범계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살려 달라 빌거나 포기하겠다며 애원할 줄 알았던 방소방이 오히려 용미퇴의 수법으로 반격을 해 왔기 때문이다.
방소방은 처음으로 범계위가 흡족한 눈빛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퍽.
눈앞에서 무언가가 번쩍이나 싶더니 방소방이 또다시 볼썽사납게 나가떨어졌다.
“으아악!”
그러나 이번에도 방소방은 처절한 고함 소리를 내지르며 범계위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그런 방소방의 모습에 해남 문도들이 하나같이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역시 범계위와 비무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기에 지금 방소방이 겪고 있는 고통을 누구보다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현 개방 방주인 홍적문.
그 뒤를 이을 차기 방주로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방소방이 그토록 자주 언급되는 데에는 과연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천하의 범계위를 상대로 이 정도 투지와 집요함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전 중원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을 터.
단악선이 나직이 중얼거린 것도 그때였다.
“보보진전(步步進前), 천하무적(天下無敵).”
걸음걸음마다 앞으로 나아가니 천하에 적이 없도다.
언젠가 형산파의 신물인 원공보검에 새겨져 있던 글귀였다.
물론 그사이에도 방소방은 쉬지 않고 얻어터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계속 미친놈처럼 범계위에게 달려들었다.
가뜩이나 남루했던 방소방의 누더기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걸레짝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꾀죄죄했지만 용모만큼은 제법 준수했던 얼굴 역시 마찬가지.
온통 피멍이 가득한 얼굴은 물에 퉁퉁 불어 터진 만두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지로 일렁이는 눈빛만큼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턱.
자신의 명치를 향해 날아든 방소방의 손목을 낚아챈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아니지. ‘탁탁탁’ 하는 식으로 끊어 치는 게 아니라 ‘타다닥!’ 하면서 한 번에 이어 쳐야지.”
그 말에 방소방의 보법이 한순간 달라졌다.
일정한 초식의 흐름을 벗어나 경로가 더욱 변화무쌍해진 것이다.
범계위의 충고가 이어졌다.
“상대의 호흡을 읽고 파고들 때도 마찬가지다. ‘스스슥’ 비집고 들어가서 ‘빠앙!’ 하고 힘을 욱여넣으라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소방의 초식 연계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건 그 직후였다.
훨씬 간결해진 공수 전환과 더불어 놀랍게도 두 사람 사이에서 은은한 폭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던 폭음은 종국에는 웅혼한 우렛소리가 되어 일대를 집어삼켰다.
“저게 가능해?”
넋 나간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해남 문도 중 누군가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말을 받았다.
“가르치는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배우는 우리가 문제였던 것인가?”
퍼엉!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방소방의 신형이 주르륵 뒤로 밀려난 것도 그때였다.
“여기까지!”
재차 달려들려던 방소방이 쩌렁한 범계위의 음성에 멈칫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방소방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다.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저릿한 온몸 곳곳에 남아 있는 전율만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흘러내리는 코피를 쓱 훔쳐 낸 방소방이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선배님의 가르침은 가히 천하제일이십니다.”
“흥. 당연하지. 단 의원을 키운 게 누군데?”
초악량이나 한설화가 들었다면 펄쩍 뛰었을 소리였지만 범계위는 아무렇지 않게 단악선의 스승을 자처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누가 뭐라 한들 상관없기도 했다.
“너도 나름 배우는 재주가 있더구나. 저놈들은 영 눈치가 없어 알아먹질 못하던데.”
범계위의 시선을 받은 해남 문도들이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야말로 유구무언.
실제로 이런 방식의 가르침이 매우 유효하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난 이상 민망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단 의원 확실히 챙겨라.”
범계위의 허락이 떨어지자 방소방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 걸고 지키겠습니다!”
“지켜? 누가 누굴?”
“예?”
“챙기는 거나 잘하라고. 단 의원 불편하지 않게.”
“아, 알겠습니다.”
단악선과 헤어지는 것이 여전히 못마땅한 듯 범계위는 한동안 근처를 서성였다.
잠시 후.
채비를 마친 단악선과 방소방은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해남검파의 중원 지부를 떠났다.
“강 대협께서 어디에 계신지는 파악했어?”
단악선의 물음에 방소방이 씨익 웃었다.
“물론이지.”
단악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개방의 정보력이 뛰어나다 해도 상대는 강위룡.
천하오절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고수가 마음먹고 행방을 감췄는데, 그 종적을 찾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히 그분이 주광도귀가 아니시더라.”
모처럼의 기회를 거머쥔 방소방이 한껏 으스댔다.
“도박은 둘째 치고 술은 어딘가에서 계속 빚고 계실 거라 예상했거든? 그런데 그걸 제대로 짚었어.”
“어떻게?”
“그분이 만드는 도원향은 일단 농향형에 가까운 겸향형 술이야.”
당연히 발효 과정에는 고태법(固態法)이 쓰인다.
고체 형태의 누룩으로 원료가 되는 곡식의 당화(糖化)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원료를 발효시키는 흙구덩이가 필요하지.”
여러 가지 원료가 있지만 대부분 고량을 사용하는 만큼, 전통 방식의 혼증혼소속(混烝混燒續) 발효 기법에는 오래된 발효지의 토양이 필요했다.
방소방이 소매 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몇 년 전에 도원향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양조장을 새로 증축했더라? 그런데 폐쇄된 기존의 발효지 흙이 통째로 어딘가로 옮겨 갔더라고.”
“아! 그렇다면?”
단악선의 반문에 방소방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흙들이 실려 도착한 곳에 아마도 그분이 계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