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73)
신마의선-473화(473/500)
신마의선 (473)
강소성에 위치한 한적한 바닷가.
저 멀리 언덕 아래 내려다보이는 어촌 마을과 그 너머로 펼쳐진 끝없는 바다를 눈에 담은 방소방이 탄성을 터트렸다.
“우와! 이게 바다구나!”
“바다가 처음이야?”
그 옆에서 나란히 탄성을 흘리던 단악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전 중원을 떠돌았다며?”
“아직 바다는 본 적 없지. 너도 알다시피 개방의 감찰당주 자리는 그리 한가하지 않거든. 그러는 넌?”
“응?”
“넌 해남도에도 자주 다녀 봤으니 바다는 익숙할 거 아냐? 그런데 왜 새삼스레 감탄하냐고.”
“이곳은 내가 알던 바다와는 너무나 달라서.”
확실히 이 지역은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곳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해안은 바위나 절벽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섬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굴곡 없는 해안은 온통 갯벌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반대쪽을 바라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평야가 자리 잡고 있었다.
“회하(淮河) 때문이야.”
뜬금없는 방소방의 말에 단악선이 의아해하는 사이.
“그래도 명색이 개방에 몸담고 있잖냐. 주워들은 건 제법 되지.”
그렇게 운을 뗀 방소방이 쉬지 않고 말을 쏟아 냈다.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면적 자체는 아주 작은 편에 속해. 하지만 회하가 성의 중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면서 젖줄 역할을 하고 있어서 토지 자체가 아주 비옥하지.”
황하와 장강의 상징성에 밀려 존재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회하는 아주 많고 자잘한 지류를 형성해 이 지역에는 호수와 늪이 발달해 있었다.
“딱 봐도 산이라 부를 만한 것이 거의 없지? 이런 비옥한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이 또 얼마나 많겠어? 이 지역의 인구 밀도가 어마어마한 이유도 그래서야. 이 곡창 지대를 기반으로 남송 시대에는 이미 화북의 경제력을 추월했지. 어디 그뿐이야? 과거 수양제가 축조한 대운하 덕에 수운 교통도 발달했지.”
묻지도 않았건만 저 혼자 설명에 열을 올리는 방소방의 모습에 단악선이 피식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그 사부에 그 제자였다.
비록 이립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와 똑 닮은 제자는 제대로 남겨 놓은 셈이다.
“명나라의 주원장이 처음 나라를 세울 때 금릉을 수도로 삼은 것도 그래서야. 물론 지금은 북경으로 수도를 옮겨서 남경이라고 불리지만.”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북경을 수도로 삼고 있음에도 다른 성들과 달리 이곳 일대에 남직예(南直隸)라는 이름의 직할지를 둔 것도 그만큼 이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거 알아? 과거 제도가 시행된 이후 나라는 바뀌어도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장원 급제자가 나왔다는 거? 당장 조정의 내각을 차지하고 있는 학사들 중 이곳 출신이 칠 할이 넘어.”
“확실히 세상은 넓구나.”
방소방이 씨익 웃으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男兒到處是故鄕), 몇 사람이나 오랜 나그네로 있었던가(幾人長在客愁中)!”
바닥에 굴러다니는 막대기를 집어 멋들어지게 시구를 적어 나가던 방소방이 어느 순간 멈칫했다.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 어느 정도는 흉내를 낼 수 있었지만 막상 생각을 시구로 풀어내려 하니 배움이 살짝 모자랐던 것이다.
방소방이 슬그머니 막대기를 내려놓더니 발로 슥슥 바닥의 글자를 지웠다.
그러곤 이내 구성진 가락으로 노래를 이어 갔다.
“닥쳐오는 만 겹 파도! 천하를 벗 삼아 오늘도 떠도는 대장부는 오직 의기로 마주 대하리!”
단악선의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이렇게 방소방이 시간을 끄나 궁금했는데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거지라서 뻔뻔한 건가? 아니면 뻔뻔해서 거지를 하는 거냐? 그 몰골로 대장부는 무슨.”
어디선가 날아든 음성에 방소방이 버럭 했다.
“모처럼 이 어르신께서 풍류를 만끽하고 계시는데 어디서 근본도 없는 잡놈이 튀어나와 초를 치느냐!”
“이제 보니 염치도 없군. 그 꼬락서니를 하고선 누구더러 잡놈이래?”
그 말에 단악선이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채 멍이 가시지 않아 퉁퉁 부은 방소방의 얼굴은 대장부의 풍모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다.
“너…….”
방소방이 배신감 가득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작금의 사태를 야기한 진정한 원흉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둘도 없는 지음과 나 사이를 이간질하려 들다니! 그 엄중한 죄 목숨으로 갚아라!”
기세등등하게 누군가를 향해 달려들던 방소방이 황급히 물러선 것도 그때였다.
“어? 야! 적수공권인 상대로 검을 잡는 건 반칙이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친구야.”
“흥! 지 불리할 때만 친구냐? 지난번 너도 타구봉으로 두들겨 팼잖아.”
자신을 노려보는 운중산을 피해 방소방이 재빨리 단악선 뒤로 몸을 숨겼다.
“악선아, 저 꽉 막힌 도사 놈 좀 말려 주라.”
그제야 단악선이 운중산을 향해 미소를 건넸다.
“어서 와, 중산아.”
무려 십 년 만의 재회였다.
그만큼 서로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지만 단악선은 단번에 운중산을 알아볼 수 있었다.
특유의 분위기도 여전했고, 자세히 뜯어보니 어린 시절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단악선은 며칠 전 방소방이 어딘가를 향해 전서구를 날렸던 것을 떠올렸다.
아마로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그리 분주했던 모양이다.
“오랜만이다.”
다소 딱딱한 운중산의 대답에 방소방이 핀잔을 던졌다.
“악선이 네가 이해해라. 쟤 원래 감정이 좀 메마른 놈이잖아. 오죽하면 별명이 석불(石佛) 도장이겠어? 도사 주제에 돌부처가 웬 말이냔 말이지.”
그러나 단악선은 생각이 달랐다.
그런 것치곤 운중산의 눈가와 코끝이 발갛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격동한 심정을 애써 억누르는 게 역력한 얼굴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민망해진 방소방이 괜히 단악선을 걸고넘어졌다.
“아, 참. 그리고 악선아.”
“……?”
“우리끼리만 있어서 하는 말인데, 너 말투 좀 바꿔야 할 것 같아.”
“말투?”
단악선의 반문에 방소방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뭐랄까……. 분위기나 존재감은 일대종사인데 입을 열면 좀 깬달까?”
단악선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괴리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 시간은 십 년 전에서 멈춰 있으니까.’
외부와 단절되어 있던 기간 동안 대화 상대라곤 신마삼존이 유일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하루에 서너 마디 나누는 게 고작이었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달으니 괜히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느끼는 민망함은 한순간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운중산이 방소방을 노려본 것도 그때였다.
“네가 남 말 할 처지냐?”
“뭐?”
“괜찮아, 악선아. 누구처럼 나잇값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그 누구가 설마 나는 아니겠지?”
“본인도 자각을 하고 있는 것 보니 그래도 양심은 있나 보군.”
“야, 이 자식아! 내가 어떻게 널 업어 키웠는데 이제 와 친구 등 뒤에 비수를 꽂아?”
“언제는 친구가 아니라 원수라며?”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단악선이 애써 웃었다.
자신의 민망함을 덜어 주기 위해 두 사람이 일부러 아웅다웅하고 있다는 걸 모를 만큼 눈치가 없진 않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만류한 단악선이 운중산을 바라봤다.
“이제 제법 무당파 사람 같다.”
운중산이 조용히 웃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아, 내 도명(道名)은 무결(無結)이다.”
“무결?”
“맺음이 없으니 끝이 없고, 끝이 없으니 돌고 돌아 태극이라. 그런 의미를 담아 사부님께서 하사해 주신 것이다.”
“좋은 뜻이네. 잘 어울린다.”
두 사람의 사이 좋은 모습에 샘이 났던지 방소방이 나서 초를 쳤다.
“그런데 넌 전서구를 날린 게 언젠데 이제야 코빼기를 비치는 거냐? 무당의 기명제자(記名弟子) 수준이 이것밖에 안 돼? 그렇게 자랑하던 제운종은 언제 쓰려고?”
“사정이 있었다.”
운중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문의 어른 한 분의 행방이 묘연해져 이를 조사차 강호로 나선 것이다. 그래서 섣불리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방소방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사숙이라면 정 자 배잖아? 누구? 정현자 어르신? 아니면 정도자 어르신? 그것도 아니면…….”
“정진 사숙이시다.”
“으응? 그분이라면 무당파 내에서 약왕전(藥王殿)을 책임지시는 분이잖아?”
무당파에도 소림사와 마찬가지로 약왕전이 존재했다.
부상자의 치료를 주 업무로 하며 그 외에도 태청신단과 같은 영단과 치상단을 제조하는 곳이었다.
“뭔가 단서는 얻었어?”
방소방의 물음에 운중산이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비롯한 무당의 제자들이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흔적을 찾았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개방도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 볼게.”
“고맙다.”
“고맙긴, 뭘. 이럴 때 쓰라고 친구가 있는 거잖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방소방이 품속에서 거적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작은 숯 조각으로 그 위에 무언가를 적더니 어디론가 신형을 날렸다.
“잠깐만 기다려.”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던 방소방이 다시 돌아온 것은 일각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전서구를 날렸으니 조만간 우리 개방도들이 움직일 거야.”
그렇게 말한 방소방이 씨익 웃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그분을 만나러 가 보자.”
“그분?”
“아참, 중산이 넌 아직 모르지? 우리 주광도귀 어르신 만나러 온 거야.”
“주광도귀라면…… 천하오절?”
천하오절 중 한 명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일까.
앞서 걷기 시작한 방소방을 운중산이 잰걸음으로 따라잡았다.
그러기를 잠시.
“아차! 내 정신 좀 봐!”
갑자기 걸음을 멈춘 방소방이 허리춤에서 소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근처의 굵직한 나뭇가지 하나를 베어 내더니 끝을 날카롭게 깎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냐?”
운중산의 물음에 방소방이 히죽 웃었다.
“그래도 명색이 주광도귀 어르신을 뵙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
“누가 거지에게 선물을 기대해?”
“어허. 모르는 소리. 이래서 산속에만 처박혀 있던 놈은 안 된다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바닷가를 향해 곧장 내달린 방소방이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잠시 후.
흠뻑 젖은 채 뭍으로 오른 방소방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에는 펄떡거리는 커다란 물고기가 꿰어져 있었다.
득의양양하게 일행 곁으로 다가온 방소방이 어깨를 으쓱했다.
“수적 놈들 상대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맥질이 늘더라고. 덕분에 앞으로 굶어 죽을 걱정은 없겠어.”
당장 돌아가면 개방 방도들에게 자맥질부터 가르치리라 다짐하는 방소방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자급자족을 하면 더 이상 동냥할 필요가 없잖아? 동냥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거지가 아니게 되는 거 아닌가?”
“어?”
운중산이 피식 웃었다.
“누구 덕에 개방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게 될 수도 있겠군.”
지그시 단악선과 운중산을 노려보던 방소방이 착 목소리를 깔았다.
“맹세해. 오늘 일은 무덤까지 가져간다고.”
“하는 거 봐서.”
“너 이 자식? 도사라는 놈이 그렇게 속이 좁아도 되는 거냐? 악선이 넌? 비밀로 해 줄 거지?”
단악선이 빙긋 웃었다.
“나도 하는 거 봐서.”
“캬악! 이 배신자들! 이 형님의 큰 그림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큰 그림?”
“그래. 두고 봐라. 잠시 후면 너희 둘 다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고개를 조아리게 될 테니까.”
투덜대던 방소방이 커다란 물고기를 어깨에 이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바닷가 마을 뒤쪽에 우거진 수풀.
그 깊숙한 안쪽에 호젓하게 자리 잡은 모옥을 발견한 방소방이 주변을 기웃거렸다.
나뭇가지를 얽어 만든 울타리 안쪽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때였다.
열 살쯤 되었을까.
영민한 눈빛이 인상적인 사내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