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74)
신마의선-474화(474/500)
신마의선 (474)
“무슨 일로 방문하셨나요?”
조심스러운 소년의 물음에 단악선이 일행을 대표해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강위룡 대협을 만나러 왔단다. 혹시 이곳에 그분이 머물고 계시니?”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곧장 돌아온 소년의 대답에 단악선의 얼굴이 밝아졌다.
다행히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단악선이 뵙길 청한다고 전해 줄래?”
“어?”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신마의선이라 불리는 무위의 그 단 의원님?”
“나를 알고 있니?”
단악선의 반문에 소년이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사부님께 말씀 많이 들었거든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년이 모옥 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사부니임! 나와 보세요! 손님이 오셨어요! 무위의 단 의원님이래요!”
덜컹.
모옥의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유달리 큰 키를 지닌 사내가 걸어 나온 것도 그때였다.
강위룡이었다.
외모 자체는 십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분위기만큼은 과거와 사뭇 달랐다.
언행은 가벼워도 주광도귀라는 명호에 걸맞게 자유분방하고 호쾌한 맛이 있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매우 차분하고 어딘가 무거운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단악선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말없이 단악선을 찬찬히 뜯어보던 강위룡은 미간을 찡그렸다.
“엉망진창이구나.”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말에 단악선 곁을 지키고 있던 방소방과 운중산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반면 단악선은 씁쓸하게 웃었다.
다른 이들 모두는 속일 수 있을지언정 천하오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고수의 눈썰미를 피해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인간들이 순순히 외유를 허락했을 리 없을 텐데?”
이어진 강위룡의 물음에 단악선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만큼 절 믿으시니까요.”
“흐음…….”
묘한 눈빛으로 단악선을 뚫어져라 응시하길 잠시.
영문 모를 표정으로 서 있는 방소방과 운중산을 향해 강위룡이 시선을 던졌다.
“일행이냐?”
“제 친구들입니다.”
단악선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방소방이 앞으로 나서 고개를 숙였다.
“개방의 후배 방소방이 강위룡 대협을 뵙습니다.”
강위룡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 역시 최근 두각을 드러낸 개방의 신진고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당의 무결입니다.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천하오절을 뵙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강위룡이 슬쩍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들 와라.”
이때 방소방이 들고 온 커다란 물고기를 들어 올렸다.
“약소하지만 제 성의입니다.”
“그 사부에 그 제자로군.”
“예?”
“홍두타 그자가 늘그막에 거둔 제자가 있다 들었다. 쥐새끼처럼 밤말을 죄다 주워듣는다 해서 소서개(小鼠丐)라 불린다지?”
방소방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졌다.
설마 강위룡 정도나 되는 고수가 자신의 어린 시절 별명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의아함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그리 잘 알고 계십니까?”
“내 몇 안 되는 지음(知音)이었으니까.”
“지음이요?”
“술과 관련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그만이 유일했다. 단지 술맛을 좇아 아부하던 족속들과 달리 내가 추구했던 주도(酒道)를 진정으로 헤아려 이해하던 친구였지.”
방소방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평소 이립이 술을 좋아하긴 했으나 주광도귀와 이처럼 돈독한 친분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 가서는 안 되는 녀석이었는데……. 녀석은 너무 일찍 갔어.”
진심이 묻어나는 강위룡의 음성에 방소방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비록 세상을 등졌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사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다.
강위룡이 소년 쪽을 향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가져가 요리를 해 오려무나.”
“네, 사부님.”
소년이 방소방의 손에서 물고기를 받아 주방으로 사라졌다.
“거지에게 선물을 받은 이상 나 또한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들어와라. 술 한 잔 정도는 내어 주마.”
강위룡이 먼저 모옥 안으로 사라지자 그사이 눈물을 훔친 방소방이 씨익 웃었다.
“봤냐? 이 형님의 큰 그림을.”
방소방이 한껏 으스댔다.
“사부님께서 그러셨거든. 무림인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도원향을 맛봐야 한다고.”
“아, 그래서?”
운중산의 반문에 방소방이 한껏 기대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세 사람이 모옥 안으로 들어서자 강위룡은 이미 한 동이의 술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오! 저게 바로 그 도원향?”
기름 먹인 종이로 몇 겹이나 항아리를 봉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벌써부터 실내에 그윽한 향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강위룡이 손으로 봉인지를 뜯자 그 향기는 폭발적으로 짙어졌다.
꼴꼴.
강위룡이 항아리를 기울이자 반투명한 담홍색 술이 술잔을 채웠다.
“언젠가 너와 마시기로 약조했던 술이다.”
오래전 강위룡과 내기를 했던 당시를 떠올린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 마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한 모금의 도원향을 입 안에 머금고 잠시 음미하던 단악선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맛이었군요.”
이때 무언가에 홀린 듯 방소방이 탁자를 향해 다가섰다.
하지만 그런 방소방의 어깨를 붙들어 제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운중산이었다.
“아, 왜?”
다급함이 묻어나는 방소방의 눈빛을 뒤로한 채 운중산이 강위룡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방금 하셨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악선이와 처음 나누셨던 대화 말입니다. 뭐가 엉망진창이고, 어째서 악선이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강위룡은 대답 대신 단악선 쪽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친구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모르고 있느냔 질책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에 단악선이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셨네요.”
그 의도를 뻔히 짐작했기에 강위룡이 피식 웃었다.
“마지막으로 너를 본 것이 십 년 전이다. 강산이 한 번 바뀔 세월인데 사람이라 해서 늘 한결같으란 법은 없지.”
“무언가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셨나요?”
“별것 없다. 그저 집착했던 것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을 뿐.”
“무엇을 내려놓으셨는데요?”
“허명(虛名).”
이어진 강위룡의 말에 단악선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 신지에는 천하오절 모두가 함께 있었다. 한데 정작 천마를 끌어안고 동귀어진(同歸於盡)을 감행한 사람은 따로 있었지.”
“…….”
“우리 중 누군가는 마땅히 그 역할을 했어야 옳다. 천하오절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은 만큼 그 이름값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그런데 고작 채 약관도 되지 않은 소년에게 그 모든 짐을 지운 것이다. 어찌 부끄럽지 않겠느냐?”
“그건…….”
“비슷한 회의감을 느낀 사람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
강위룡이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천천히 한 잔의 술을 비워 낸 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회의감이 들었던 나는 더 이상 천하오절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자 했지.”
그 길로 강위룡은 은거를 위한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강호를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과거 자신이 한동안 머물렀던 마을에 들렀고, 그곳에서 지금의 제자인 소년을 만났다.
“녀석의 이름은 진능하. 당시 핏덩이였던 녀석을 거두어 이곳에 안착한 것이 팔 년 전이다. 녀석이 젖을 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지.”
자신의 제자를 언급하는 강위룡의 눈빛.
그 안에 자리 잡은 애틋함을 느낀 순간 단악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혹시……?”
무심코 질문을 던지려던 단악선이 말끝을 흐렸다.
자칫 큰 실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강위룡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챈 모양이군.”
사실 처음 소년을 본 순간부터 단악선은 내심 호기심이 생기긴 했었다.
그만큼 강위룡의 제자는 눈매며 콧날이 사부인 강위룡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때 정을 나누었던 여인이 있었다.”
강위룡이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그녀는 나와 혼인을 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었지만 그녀의 배 속에는 이미 두 사람 사이의 생명이 태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홀로 출산을 했고, 그 사실을 안 그녀의 가문은 그녀를 내쫓았다.”
명문가의 금지옥엽으로 자란 그녀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세상 한가운데 던져진 것이다.
하나뿐인 어린 자식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곳은 기루였다.
어린 시절부터 소양으로 닦아 온 시서금화(詩書琴畵) 실력이 출중했기에 예기(藝妓)로서 살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한 고관이 그녀를 첩으로 들이길 원했고, 그녀는 기꺼이 응했다.
적어도 자식에게만큼은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던 모성애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고관은 인품이 괜찮았던지라 그녀의 아이도 자신의 호적에 이름을 올려 주었지.”
그녀의 바람대로 그 아이는 무사히 장성해 혼인해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과거에 응시해 급제했고, 부친과 마찬가지로 관직에 나섰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그 마을에서 처음 저 녀석의 아비를 보았다. 포승줄에 묶여 형장으로 끌려가던 자리였지.”
우연히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던 그 순간을 강위룡은 잊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더구나.”
피의 끌림이라는 것이 이다지도 강한 것인지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진능하의 아비.
그의 아들 역시 마찬가지.
끝까지 자신을 응시하며 쓸쓸하게 웃던 그 모습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그날 밤 뇌옥으로 향했다.
―저는 마지막까지 진가의 자랑스러운 후손으로 죽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를 벗어나게 해 주겠다는 강위룡의 제안에 아들이 남긴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아!”
단악선이 안타까운 탄식을 터트렸다.
그러다 문득 멈칫하며 되물었다.
“그때가 팔 년 전이라고 하셨죠? 혹시 그분의 직책을 알고 계시나요?”
공교롭게도 능소밀이 막 도찰원에 배속되어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시점이었다.
당시 도찰원을 장악해 영향력을 넓혀 가는 능소밀을 견제하기 위해 그 휘하의 수하들이 동창의 음모에 휘말려 제거되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능소밀이 동창이라면 이를 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나.
“도찰원 소속 종육품의 경력(經歷)이었다.”
돌아온 강위룡의 대답에 단악선은 다시 한 번 무거운 한숨을 터트렸다.
경력은 도찰원 내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관리.
능소밀이 유독 아끼던 자들이었다.
“걱정 마라. 그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으니.”
그렇게 운을 뗀 강위룡이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어쨌든 그 길로 나는 그 아이의 어미를 찾아갔다.”
한번 얽어맨 이상 다른 가족도 순순히 놓아둘 동창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그녀는 자신의 손자를 강위룡에게 맡겼다.
그리고 며칠 뒤 며느리와 함께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했다.
“그날로 저 녀석을 제자로 삼았다. 비록 내 피를 이었다 하나 녀석에게는 진씨 성을 쓰는 아비와 조부가 있었으니까.”
그것이 자신을 친할아버지라 밝히지 못하는 이유였다.
세상 어디에도 사연 없는 집 없다더니 강위룡 역시 그 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단악선은 비로소 그가 예전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강위룡이 제자로 삼은 그의 손자가 들어섰다.
손으로 커다란 접시를 받친 채였다.
강위룡이 슬쩍 웃었다.
“내 제자 녀석의 요리 실력이 제법 야무져 먹을 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