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75)
신마의선-475화(475/500)
신마의선 (475)
단악선과 친구들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뜨거운 김을 피워 올리며 접시 위에 올려진 생선 요리는 눈앞의 어린 소년이 만들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솜씨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늘을 벗겨 끓는 기름을 부어 반쯤 익힌 뒤 양념을 끼얹어 다시 쪄 낸 요리로, 재료 본연의 맛을 한껏 끌어 올리는 방식의 전통적인 강소 요리였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는 말할 것도 없었고, 더없이 보기 좋은 모양새나 색감은 한눈에 봐도 예사 실력이 아니었다.
“너도 앉아라. 같이 들자꾸나.”
“예, 사부님.”
강위룡의 말에 공손하게 대답한 진능하가 탁자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진능하예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모습에 단악선이 웃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년이 생선 살을 큼직하게 떠 접시에 올리더니 공손하게 두 손으로 단악선 앞에 내려놓았다.
“드셔 보세요.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어요.”
단악선이 접시를 강위룡 쪽으로 옮기려 하자 진능하가 만류했다.
“괜찮아요. 손님이시니 처음 음식을 받는 게 당연해요. 그렇죠, 사부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강위룡이 방소방과 운중산 앞에 놓인 술잔에 도원향을 따라 주었다.
“어이쿠! 이 귀한 것을 감히 제가 맛봐도 될는지…….”
황송해하는 것과 달리 방소방은 그 와중에도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단숨에 술잔을 비운 방소방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히야!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 과연 이래서 도원향, 도원향 하는 거였구나!”
한바탕 감상을 늘어놓던 방소방이 운중산 앞에 놓인 술잔을 힐끗거렸다.
“왜? 안 마실 거야?”
운중산이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자신 앞에 놓인 술잔을 바라봤다.
도명을 받고 도첩에 그 이름을 올린 그 순간부터 그는 무당의 정식 제자.
도인으로서 당연히 술과 여색은 금기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술을 입에 댄 적이 없었다.
하지만 향긋하고 감미로운 도원향의 향기는 그런 그의 의지마저 흔들 정도로 강렬한 유혹을 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방소방이 씨익 웃었다.
“어쩔 수 없군. 친구가 곤경에 처했으니 돕는 것이 당연지사. 내가 기꺼이 너의 번뇌를 감당해 주마.”
탁.
슬그머니 뻗어 오는 방소방의 손을 쳐 낸 운중산이 술잔을 집어 들었다.
“어? 마시려고?”
“술을 마시는 건 죄악이 분명하나 존경하는 무림의 대선배님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무례. 무당의 제자로서 사문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지.”
“와……. 부러질지언정 절대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는 그 꼿꼿한 중산이는 어디 가고…….”
가느다랗게 눈을 뜬 방소방이 운중산의 멱살을 붙들었다.
“너 누구야? 진짜 우리 중산이는 어디다 숨겼어?”
그러거나 말거나.
운중산이 술잔에 담긴 도원향을 비워 냈다.
“아!”
운중산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형용할 수 있는 말이야 많았지만 그것 말고는 이 순간의 감동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방소방이 침을 꼴깍 삼키며 빈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연신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그 모습에 강위룡이 슬쩍 웃더니 도원향이 담긴 항아리를 방소방 쪽으로 밀었다.
얼굴이 금세 환해지는 방소방을 향해 강위룡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느냐? 내 술값은 무척이나 비싸다는 것을.”
“예? 하지만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거지인걸요.”
방소방이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나가서 물고기라도 한 마리 더 잡아 올까요?”
강위룡이 실소했다.
“네 사부가 그랬던 것처럼 너 역시 합당한 값을 치르면 된다.”
내심 긴장해 눈을 끔벅이던 방소방은 이어진 강위룡의 말에 엄숙한 표정이 되었다.
“오랫동안 살아남아 도원향의 명성을 널리 퍼트려 주면 족하다. 술값 떼어먹고 달아난 그 괘씸한 녀석처럼 일찍 죽지만 마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어느새 방소방은 자신의 술잔을 채우고, 인심 쓰듯 운중산의 잔에도 도원향을 따르고 있었다.
기분 전환이 누구보다 빠른 방소방의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강위룡의 달라진 태도였다.
도원향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만큼 그는 끔찍하게 자신이 만든 술을 아꼈다.
함부로 아무에게나 내어 주지도 않았다.
오직 내기를 통해 승리를 거둔 이에게만 도원향을 맛볼 자격을 허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아낌없이 베풀고 있었다.
“이야! 이 요리도 정말 훌륭한데? 이봐, 진 동생. 이거 어떻게 만든 거야?”
어느새 스스럼없이 진능하를 동생이라 부르는 방소방은 둘째 치고 모처럼 방문한 손님에 들뜬 진능하 역시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리고 운중산 역시 술기운을 빌어 자연스럽게 그 안에 녹아들어 갔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위룡이 슬쩍 일어난 것도 그때였다.
“나 좀 보자.”
강위룡을 따라 밖으로 나선 단악선은 어느 한적한 장소에 이르렀다.
흐트러진 억새 사이로 끝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가 인상적인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잠시 눈앞의 풍광을 바라보던 강위룡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네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한 번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위룡이 단악선을 따로 부른 이유를 언급했다.
“현 무림의 정세가 어떠하더냐?”
단악선은 신지에서의 싸움 이후 피폐해진 구대문파의 상황과 반대로 세를 확장해 장강 일대를 손아귀에 거머쥔 사종악과 수로연맹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어떻게 사종악이 그토록 강해질 수 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강위룡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북명신공이라니…….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화산신검 그 늙은이가 그렇게 당할 리 없지.”
솔직히 강위룡은 죽은 진명진인을 썩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아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걸어온 길이 달랐고, 또 걸어갈 길도 달랐기 때문이다.
정파와 사파로 대립하며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았으니 늘 서로가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거북함과 달리 그들은 천하오절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세월 한데 묶여 있었다.
정상에 선 자들만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
누구보다 이를 잘 이해했기에 그 동질감만으로도 서로를 인정하며 존중한 그들이었다.
그랬던 만큼 진명진인의 죽음은 강위룡에게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도우마.”
강위룡의 말에 단악선이 고개를 숙였다.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한 일이니 고마워할 것 없다. 이번에도 네게 모든 짐을 떠넘길 순 없으니까.”
조용히 웃던 단악선이 이어진 강위룡의 말에 멈칫했다.
“그런데 넌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이냐?”
“네?”
“십 년 전에 너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마교와의 싸움이 종식되면 무림인이 아닌, 의원으로서 다시금 살아가겠노라고.”
“……그랬었죠.”
“이것이 네가 그토록 바라 왔던 의원으로서의 삶이냐?”
차마 대답을 못 하고 침묵하는 단악선을 향해 강위룡이 씁쓸한 웃음을 건넸다.
“주역(周易)에서 말하길, 인도악영이호겸(人道惡盈而好謙)이라 했다.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허한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
“한데 나는 네 안을 가득 채운 채 웅크리고 있는 분노가 느껴지는구나.”
강위룡이 지그시 단악선을 응시했다.
“그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단악선이 무거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결핍이죠.”
강위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증오는 분노에서 기인하고, 분노는 고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시작은 대부분 상실감 때문이라 했던가?”
“……!”
단악선이 깜짝 놀라 강위룡을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강위룡이 조용히 웃었다.
“오래전에 감히 내게 그런 충고를 한 인물이 있었다.”
단악선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강위룡에게 충고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바로 신의였다.
언젠가 자신도 아버지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공허했겠지. 복수를 마쳤다곤 하나 그 복수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았으니까. 최후의 상대였던 천마 역시 결국 부모님의 흉수는 아니었고, 그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육마존 중에 네 손으로 직접 쓰러트린 자는 음마 정도였을 테니까.”
단악선이 무거운 한숨을 터트렸다.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는 강위룡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프게 폐부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단악선 역시 무작정 복수만 좇았던 것은 아니었다.
강호와 중원 무림의 평화를 위해 마교와 싸우는 것이 주였고, 그 결과가 부모님의 복수와 맞닿아 있었을 뿐.
한데 막상 마교를 무너트리고 나니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사실이 몹시 화가 났다.
아직 응어리진 분노는 채 풀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그 분노를 풀어 낼 대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자신은 언제가 될지도 모를 끝없는 고통 속에서 헤매야만 했다.
그런데 막상 중원에 다시 나와 보니 그토록 고생해 얻었던 평화가 물거품이 되어 있었다.
“복수는 반드시 피를 동반하는 법. 아무리 훌륭한 명분을 지니고 있다 한들 본디 그런 것이다.”
그렇게 운을 뗀 강위룡이 단악선에게 부드러운 눈빛을 건넸다.
“그래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게 뭐죠?”
“복수 자체가 망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직 산 자를 위한 것이지.”
이어진 강위룡의 말에 단악선은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복수라는 수단이 먼저 간 자에게 향한 미안함과 괴로움을 덜어 내기 위한 숭고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망자를 향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은 자칫 독이 되어 남겨진 자를 괴롭히는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
“복수라는 과정을 통해 먼저 간 이를 잘 보내야만 남겨진 자들도 아픈 기억을 털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지. 그런데 정작 그 복수에 미련이 남아 발목이 잡힌다? 그거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한없이 복잡한 눈빛을 흘리는 단악선을 향해 강위룡이 재차 입을 열었다.
“지금의 너의 행보 역시 결국 그 미련과 집착 때문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런 게 아니에요.”
단악선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다만 망가진 것을 제대로 고쳐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을 뿐이에요.”
“어째서?”
“저는 의원이니까요.”
강위룡이 피식 웃었다.
“하나 언젠가는 다시 망가질 터인데? 그렇게 계속 고치고, 또 고칠 생각이냐? 대체 언제까지?”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때까지요.”
그때였다.
강위룡이 돌연 장내가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다.
단악선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그가 왜 이렇게 웃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웃음을 거둔 강위룡이 단악선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방금 네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
“강호 위에 군림하는 절대자로서 무림인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
단악선은 일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중원 무림에 대한 이유 모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비로소 나는 안주할 곳을 찾았다.”
그렇게 말을 한 강위룡이 고개를 돌려 모옥 쪽을 바라봤다.
“이제는 너도 내려놓는 방법을 고심해 봐야 할 때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토록 네가 원하던 의원으로서의 길은 계속 멀어질 테니까.”
단악선은 순간 목이 메었다.
마치 강위룡의 목소리를 통해 아버지의 조언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