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76)
신마의선-476화(476/500)
신마의선 (476)
단악선이 다시 모옥 안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방소방과 운중산이 한 동이의 도원향을 전부 비운 뒤였다.
살짝 혀가 꼬인 채 방소방이 불콰해진 얼굴로 물었다.
“이야기는 잘됐어?”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방소방이 강위룡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강 대협의 협의를 이 방 모가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강위룡이 눈살을 찌푸렸다.
“취했군.”
“예? 아닌데요? 고작 이 정도로 개방의 풍운쾌걸은 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방소방은 벌써부터 비틀대고 있었다.
“하여튼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친구야.”
반쯤 눈이 감긴 채 의자 위에서 모로 기울어지는 방소방을 운중산이 붙들었다.
탁자 위에 엎드려 물끄러미 진능하를 바라보던 방소방이 불쑥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운중산의 반문에 방소방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히죽거렸다.
“그렇잖아. 사실 여기 계신 주광도귀 선배님의 악명도 다른 분 못지않잖아. 그런데 그분의 제자는 번듯한 명문 정파의 후기지수처럼 느껴지거든.”
“저희 사부님 악명이 그렇게 높았나요?”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사부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던지 진능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되물었다.
“어우, 야. 말도 마라. 괜히 명호에 광(狂) 자와 귀(鬼)가 들어간 게 아니야. 이를테면……, 컥!”
신이 나서 대답하던 방소방은 사정없이 옆구리에 틀어박히는 주먹에 맥없이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야, 너 비겁하게…….”
옆구리를 움켜쥔 채 신음을 흘리는 방소방의 뒷덜미를 덥석 움켜쥔 운중산이 그대로 질질 끌고 모옥 밖으로 사라졌다.
“안 되겠다. 바람 좀 쐬자.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내가 뭘 어쨌다고?”
“고마운 줄 알아. 네 주사 때문에 개방과 강 대협이 척을 지게 될 뻔한 걸 내가 막아 줬으니까.”
아웅다웅하며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옅어졌다.
다음 날 아침.
단악선과 강위룡은 나란히 서서 한참 비무에 열중하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운중산이 진능하를 상대로 지도 대련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면 방소방은 다 죽어 가는 얼굴로 기둥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따듯한 차로 부대끼는 속을 달래는 중이었다.
“아무리 좋은 술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지.”
“…….”
강위룡의 말에 방소방은 말할 기력도 없는지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숙취로 고생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 모습에 단악선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물론 자신이 손을 쓴다면 쉽게 숙취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방소방은 한사코 거절했다.
이마저 도원향의 일부기에 끝까지 만끽할 거라나?
참 알면 알수록 이상한 친구였다.
비무에 집중하는 진능하를 지켜보던 강위룡이 지나가듯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한겨울 엄동설한에도 술독과 아이들은 얼지 않는다고 했던가.”
강위룡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뛰어다니면, 그게 언제든 봄이라 부를 만하지.”
그의 말대로 진능하는 모처럼 방문한 손님들 덕에 그 여느 때보다 신이 나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것도 잠시.
“이번 수로연맹 토벌에 참여하시는 것도 저 아이를 위해서겠죠?”
단악선의 물음에 강위룡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저 아이의 미래가 될 테니까.”
강위룡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제자로 들인 이상 저 아이는 앞으로 내 모든 은원과 명성을 짊어진 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협행을 하려고 한다. 그렇게 쌓은 덕이 조금쯤은 저 아이의 앞날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강위룡이 단악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래서 너와 네 친구들에게도 고마워하고 있다.”
의아해하던 단악선은 이어진 강위룡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만큼은 나처럼 고립된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한다. 홀로 강호를 거니는 것보다 함께 어울리며 얻는 것이 더 많은 법이라는 것을 너와 신마삼존을 보며 깨달았거든.”
예전의 모습도 나쁘진 않았지만 과거와 크게 달라진 강위룡의 모습이 단악선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묵묵히 대련을 관전했다.
* * *
보름 후.
단악선은 화산파를 방문했다.
산문으로 향하는 호젓한 소로를 걷던 단악선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멀리 보이는 화려하고 웅장한 네 개의 봉우리를 눈에 담았다.
기억에 남아 있던 풍광을 오랜만에 마주한 단악선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한설화와 함께 이곳을 오르던 당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방소방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단악선이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 방소방이 나란히 걷고 있던 운중산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왜? 긴장되냐?”
이미 여러 번 화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방소방은 티가 나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운중산의 모습이 그저 웃기기만 했다.
“하지 마라.”
“하지 마라.”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방소방의 모습에 운중산의 정색했다.
“무당이나 화산 모두 다 같이 정종 도가의 맥을 잇는 곳. 내가 긴장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아, 그러셨어? 여유로우셔서 그렇게 한껏 치장을 하셨나?”
“뭐?”
“도포 가슴팍에 붙어 있는 이파리나 떼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라고요.”
“……?”
운중산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고개를 숙여 가슴 부근을 확인했지만 그 어디에도 방소방이 언급한 이파리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속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인사 잘 받았다.”
“…….”
“어떻게 그걸 또 속냐? 그것도 매번.”
키득대던 방소방이 흠칫했다.
“어? 뭐야, 그 살기는? 설마 화산파 앞마당에서 품위 없게 치고받을 생각은 아니지?”
지그시 자신을 노려보는 운중산을 향해 방소방이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우리 강호의 소양과 덕목을 지닌 어른들답게 대화로 해결하자고. 언제까지 애들처럼 철없이 굴 순 없잖아. 서로가 지닌 무공을 대화를 통해 겨루는 거야. 이름하여…….”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방소방이 짝 하고 손뼉을 쳤다.
“화산논검(華山論劍)! 화산논검 어때?”
곱씹을수록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 방소방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캬, 멋들어지지 않냐? 이 절경을 배경으로 두 고수가 우아하게 대화로 초식을 겨루니, 훗날 천하가 이를 가리켜 화산논검이라 부르더라.”
혼자 제멋대로 흥에 취해 떠드는 방소방을 향해 운중산이 더없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그렇게 모든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면 왜 무공을 익히고 무림인이 되었단 말인가.
게다가 애초에 방소방을 상대로 언변으로 겨루는 건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운중산이 선택한 수단은 바로 폭력이었다.
가장 원초적이지만 그래서 더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
“헉!”
운중산이 날린 발길질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방소방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피하긴 했지만 방심하여 얻어맞았다간 늑골이 나갔을 게 분명할 만큼 위력적인 퇴법이었다.
“도사라는 놈이 뭐 이리 옹졸해?”
“너 때문에 주화입마 걸려 그렇다.”
오늘도 어김없이 티격태격하는 두 친구의 모습에 단악선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썩하게 산길을 중간 정도 올랐을 무렵.
단악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저 멀리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단악선은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바로 명검이었다.
흐트러짐 없이 바른 자세와 맑은 눈빛.
그 너머로 잘 갈무리된 내력이 느껴졌다.
한결같은 모습에 제법 원숙한 풍모까지 지니게 된 명검은 마치 잘 벼린 한 자루의 검처럼 느껴졌다.
삼 년 전에 겪은 장문인과 동문 사형제들의 죽음.
처음에는 몹시 낙담하며 모든 것을 놓고 피폐해져 있던 그였으나 이후 폐관 수련을 통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화산 내에서도 한 손 안에 꼽히는 검객으로 거듭난 그였다.
다만 이후로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다 들었다.
“오랜만이에요.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단악선이 건넨 인사에 명검이 마주 예를 갖추었다.
“여기서부터는 빈도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르시지요.”
방소방, 운중산과도 차례대로 인사를 나눈 명검이 앞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앞서 걷던 명검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직이 한숨을 흘리더니 단악선을 향해 돌아섰다.
“빈도가 감히 한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명검이 고민 가득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지금보다 더욱 빠르게 강해질 방법이 있겠습니까?”
“글쎄요.”
모호하게 말끝을 흐리는 단악선을 향해 명검이 재차 물었다.
“열일곱의 나이에 천마 정도 되는 대종사를 상대로 동등하게 겨룬 무인은 무림 역사 전체를 다 뒤져도 전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쭙는 것입니다. 혹 특별한 수련 방법이 존재하는 것입니까?”
“그걸 제게 묻는다 해도 전 달리 답해 줄 방법이 없어요.”
“어째서입니까?”
“저라는 사람 자체가 이미 정도를 벗어나 강해진 경우니까요.”
이미 또래의 무림인들 중에서는 단연 최고 고수로 손꼽히는 명검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자신을 다그치고 조바심을 내는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종악 때문인가요?”
단악선의 질문에 명검이 침음성을 흘렸다.
가까운 곳에서 장문인의 죽음을 지켜봤고, 사종악의 무공을 목도했던 그였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지닌 무공으로는 사종악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화산파의 무공이에요. 제가 감히 조언드릴 만한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영약과 의술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나서겠어요. 하지만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자칫 목적에 집착해 정도에 어긋나는 것만큼은 지양하셨으면 해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화산파는 계속 정도 무림을 지탱하는 기둥으로서 존재해야 하니까요.”
명검이 씁쓸한 눈빛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그의 얼굴에는 한 줄기 희망이 드리워졌다.
“그럼에도 굳이 제가 조언을 드리자면…… 곤륜파의 새로운 장문인과 대화를 나눠 보시라는 것 정도예요.”
“곤륜파의 장문인이라면…….”
명검은 최근 새롭게 곤륜파의 장문인으로 추대된 젊은 도사를 떠올렸다.
신지에서의 싸움 이후 단악선에 대한 무림 명숙들의 평가는 서로 엇갈렸다.
혹자는 천하오절에 근접했다고 판단했고, 어떤 이는 이미 천하오절을 넘어섰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눈앞의 청년은 이미 자신보다 월등하게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명검은 단악선의 조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단악선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긴 명검이 다시금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각쯤 걸었을까.
눈앞에 고아한 느낌의 오래된 석조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사라진 전진파(全真派)의 유적인 옥천원(玉泉院)이었다.
더없이 웅혼한 필체로 휘갈겨진 화산이라는 두 글자만 새겨진 현판.
그곳을 지나 더욱 안쪽으로 이동하자 이윽고 화산파의 산문이 나타났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화산 문하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도사건 아래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
인자한 눈빛 안에 폭발적인 기도를 깊이 갈무리한 초로의 도사는 몇 해 전 사형이었던 진명진인의 뒤를 이어 화산파의 새로운 장문인 자리에 오른 청심홍매(靑心紅梅), 진현진인이었다.
“우리가 참 대단한 친구를 뒀구나.”
방소방이 목소리를 낮춰 운중산에게 속삭였다.
아무리 단악선의 명성이 대단하다 해도 화산파의 장문인이 이렇게 직접 나서 맞이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운중산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진현진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건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