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78)
신마의선-478화(478/500)
신마의선 (478)
“앞으로 분명 여러 곳에서 피해가 속출할 테죠. 과거 마교와의 싸움 이후에도 그랬듯 이번 토벌에서 피해를 입은 문파와 무림인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으음…….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신마상단에 면목이 없는 터라…….”
제갈산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이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모든 과정에는 자금이 소요되는데, 그 자금은 결국 신마상단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악선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협의체에 신마상단도 포함시켜 정식으로 출범하고자 해요.”
“신마상단과는 협의가 이루어진 내용입니까?”
단악선은 대답 대신 어디론가 시선을 던졌다.
장내의 모든 이들이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좇아 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당황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하하…….”
수많은 명숙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가 민망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뒤이어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그의 말에 장내 곳곳에서 경탄성이 터져 나왔다.
“무명의 무림 말학이 고명하신 선배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소적산이라는 자로, 미력하나마 신마상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소적산이 멋쩍은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소적산은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또한 가급적 외부 일에는 나서지 않는 편이라,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름뿐이었다.
그래서 신마상단의 관계자를 제외하면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딱히 이 자리에 참석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저분이 바로……?”
“오! 시금양덕(施金養德) 소 대인께서 여기 계셨다니!”
뒤늦게 장내에 소요가 번져 갔다.
처음에는 소적산에게 큰 관심을 두는 이가 없었다.
다른 명숙들과는 특별한 점도 없었고, 무엇보다 존재감 자체가 너무 평이해 크게 눈여겨볼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미타불.”
나직한 불호와 함께 소림의 방장인 법연이 소적산을 향해 반장의 예를 취했다.
“그동안 도움만 받고 제대로 인사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소림을 대표해 빈승이 소 대인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를 시작으로 그동안 크고 작게 신마상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각파의 명숙들이 차례대로 소적산을 향해 감사한 뜻을 담아 한마디씩을 건넸다.
“하하……. 이것 참…….”
소적산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일일이 답례했다.
돈을 베풀어 덕을 쌓는다는 의미를 지닌 시금양덕.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와 같은 명호로 불린다는 사실도 이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내심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돈으로 명성을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샘을 사는 것이 세상 이치.
또한 주변에는 이권을 노리고 어슬렁대는 탐욕스러운 무리들이 들끓기에 몇몇 오래된 지인들을 제외하곤 늘 사람을 경계하고 의심했다.
당연히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인색하다느니, 야박하다느니…….
심지어 목석심장(木石心腸)처럼 몰인정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소적산은 지금의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일개 뒷골목 파락호에 불과했던 자신이 중원의 내로라하는 명숙들에게 이토록 존경과 환대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지난 십 년 동안 어떤 대가와 차별도 없이 물심양면으로 저희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세상에 어떤 상단이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제갈 세가에서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이 정리되면 반드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갈산의 말에 소적산이 당황해 손을 흔들었다.
“예? 보답이라니요? 전 그저 곡주님의 뜻에 따랐을 뿐입니다.”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 제가 부탁드린 건 오 년이었어요. 하지만 그 기한을 넘기고 나서도 다시 십 년으로 연장한 것은 아저씨의 결정이었죠.”
“그, 그야…… 당장 지원을 끊으면 어려움에 처할 문파가 한두 곳이 아니라…….”
“아저씨의 그 결정 때문에 이렇게나마 중원 무림이 버틸 수 있었던 거예요.”
단악선의 말에 회의장에 모인 명숙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존경과 감사의 눈빛에 소적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번에 모임을 결성하면 기존에 지원하던 문파뿐만이 아니라 수로연맹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곳까지 지원을 늘리고 싶어요. 현재 신마상단의 재정 상황으로 가능한가요?”
단악선의 물음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소적산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제갈산이 놀라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장강이 막혀 신마상단도 한동안 사업이 어려웠다 들었습니다만.”
소적산과 단악선의 눈빛이 한순간 마주쳤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적산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수로연맹 토벌에 성공하면 그동안 막혔던 남쪽 길이 열릴 테니 사업 복구는 금세 할 수 있습니다.”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소적산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소심하던 면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게다가 곡주님께서 돌아오셨으니 북방의 이민족들도 우리 신마상단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서방 무역도 재개할 수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인 제갈산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이제 이 모임의 이름이 필요하겠군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광정회(匡正會)가 어떨까요?”
“광정회라……. 잘못된 것을 원래대로 바로잡는다는 의미를 지닌 개선광정(改善匡正)에서 따온 것입니까?”
역시 척하면 척.
곧바로 그 뜻을 파악하는 제갈산이었다.
“만약 더 좋은 이름이 있다면…….”
“아니요. 저는 좋습니다.”
단악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무섭게 제갈산은 곧바로 수긍했다.
제갈산이 좌중을 둘러보며 의중을 물었다.
“혹시 더 나은 의견 있으십니까? 이 자리에 계신 명숙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남은 것은 회주를 정하는 일이군요.”
은근슬쩍 자신을 보며 운을 떼는 제갈산의 모습에 단악선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임의 명명은 제가 했으니, 회주는 가주님께서 맡아 주세요.”
“예? 하지만…….”
이번에는 단악선이 제갈산의 말을 가로채 좌중을 향해 물었다.
“혹시 회주를 맡을 의향이 있으시거나, 추대하고 싶은 다른 분이 계신가요?”
역시나 이번에도 반대는 없었다.
“하하! 천하의 제갈 가주께서 되로 주고 말로 받으셨구려.”
“이번에는 제대로 코가 꿰이셨소이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에 제갈산이 쓰게 웃었다.
그러다 이내 정중하게 여러 방향으로 포권을 취했다.
“미욱한 제게 중책을 맡겨 주시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비록 한시적인 직책이나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그렇게 광정회가 설립되었고, 초대 회주로는 제갈산이 추대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울러 신마상단은 정식으로 광정회 소속이 되어 재정과 물자 지원을 담당하게 되었다.
회의가 파한 뒤.
많은 이들의 환대를 받으며 화산을 내려선 소적산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간 소적산 정말 성공했구나.”
예전의 그였다면 그 안의 어느 누구도 감히 함부로 시선조차 마주하기 힘들었을 터.
그런 무림의 명숙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와 영향력을 인정받게 되자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곡주님.”
소적산은 더없이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예전 순의방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오며 신마상단을 일으켰던 수하들.
그들에게 자랑할 무용담 하나가 생긴 것이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자부심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었던 소적산은 바쁜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 * *
화산에서 시작된 광정회의 결성 소식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강호 전역으로 번져 갔다.
사종악과 수로연맹의 횡포에 시달리던 무림인들은 즉각 반응했다.
광정회와 뜻을 함께하겠다며 중소 방파들이 연이어 참여를 선언한 것이다.
광정회의 출범을 환영한 사람들은 비단 그들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적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일반 백성들도 광정회의 향후 행보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일신의 무공을 지니지 못한 이들은 허드렛일이라도 맡겨 달라 부탁했고, 가족을 잃은 이들 중에는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직접 복수할 방법이 없으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소식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장강수로채를 주축으로 한 수로연맹이었다.
수로연맹을 넘어 사파 연합인 사도련의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때아닌 악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장강 일대의 나루터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수적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하며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저간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기에 당장은 숨죽이며 흘러가는 분위기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덕분에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한 광정회 소속의 무인들은 수월하게 저들의 활동 지역을 점거할 수 있었다.
소림의 나한들을 비롯한 화산의 매화검수.
거기에 무당은 아예 무당칠자 전원이 제자들을 이끌고 산문을 내려와 농성을 시작했다.
아미와 공동, 형산도 마찬가지.
심지어 저 멀리 운남의 점창파마저 전체 전력에 해당하는 절정 검수들을 파견해 각 문파를 지원했다.
이에 뒤질세라 청성도 체면치레를 위해 무인들을 급파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문파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해남검파였다.
수상전에는 이력이 난 물귀신들을 필두로 각파의 고수들이 뒤를 받치고 있으니 그야말로 백전백승.
장강 일대 곳곳에서 몇 번인가 산발적이고 간헐적인 전투가 벌어졌지만 해남검파를 앞세운 광정회의 압승으로 마무리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사종악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그야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수로를 통해 밀염을 운반하던 선박 대부분이 광정회 놈들에 의해 침몰했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사종악의 눈매가 꿈틀했다.
나포된 수하들은 둘째 치고 배가 침몰했다니 그 안에 실려 있던 소금은 물에 녹아 사라져 버렸을 터.
‘빌어먹을!’
사종악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당면한 문제들이 겹겹이 쌓여 그의 숨통을 옥죄고 있었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다.’
신마의선이라 불리는 놈.
의원이라는 놈이 주제도 모르고 설치며 지금껏 그가 쌓아 왔던 모든 것을 야금야금 무너트리고 있었다.
현재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김없이 놈이 있었다.
수로연맹이 이익을 얻는 과정은 간단했다.
노획을 통해 얻은 전리품을 판매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흑점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거래처였다.
본디 흑점은 정보와 장물을 유통하는 곳.
다소 가격을 후려치는 감은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대량의 노획물을 한 번에 소화할 수 있는 곳은 흑점만이 유일했다.
거기에 신마상단의 눈치를 보며 몰래 노획물을 매입하는 군소 상단들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거래처였다.
그런데 최근 흑점과 거래가 틀어졌다.
차일피일 대금 지급을 미루나 싶더니, 어느 순간 돌연 거래 불가 통보를 해 온 것이다.
처음에는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흑점의 배후에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마의선이라는 놈이 암암리에 흑점을 장악하고 있다는 소문이 아주 근거 없는 낭설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다른 상단들도 장물의 구입을 꺼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헐값에 넘긴다는 제안에도 받아들이는 상단이 전무했다.
덕분에 원활하던 자금 흐름에 문제가 발생했다.
그나마 무너진 백사회를 흡수하며 얻어 낸 밀염의 유통망을 통해 말라 버린 자금 일부를 충당해 왔지만 이마저도 최근 난관에 봉착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당장 현금을 마련할 방법이 밀염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유일한 자금줄마저 막혀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