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480)
신마의선-480화(480/500)
신마의선 (480)
이쯤 되니 사종악도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방금 뭐라고 지껄였나.”
사종악이 험악한 눈빛을 드러내자 좌자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그렇지만, 사 대협의 높은 긍지와 의지를 과연 휘하의 수하들이 알아줄까요?”
“그걸 왜 동창이 걱정하지?”
“안타까우니까요.”
“뭐라?”
“실제로 사 대협의 수하들이 무능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사종악의 눈썹이 꿈틀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역량이 부족한 자들을 이끌고 대업을 이루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걸 저는 누구보다 십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좌자가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어떻습니까? 이 기회에 저희와 손을 잡으시는 건.”
“난 네놈들을 믿지 않는다.”
“그것참 서운한 말씀이시군요. 전 오늘도 사 대협을 위해 선물을 가져왔는데 말입니다.”
“선물?”
이어진 좌자의 말에 사종악의 눈이 크게 홉떠졌다..
“현재 신마의선이 화산파를 떠나 무한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어떤 호위도 없이 홀로 말입니다.”
“그게 사실이냐?”
“제가 사 대협을 속여 무슨 이익을 얻겠습니까?”
좌자가 웃으며 사종악을 바라봤다.
“선물이 마음에 드십니까?”
사종악의 입꼬리가 들썩였다.
당연히 들다마다.
굳이 입을 열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야말로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눈앞에 쌓여 있는 문제들을 타개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번 정보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곳을 향해 달려갈 것처럼 기세등등한 사종악을 향해 좌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있습니다.”
“우려되는 점?”
“기우로 그친다면 다행입니다만…….”
의아해하는 사종악을 향해 좌자가 수심 가득한 눈빛을 건넸다.
“그자, 신마의선을 사 대협께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감히!”
사종악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솟구쳤다.
수하들의 보고에 따르면 신마의선이라는 놈도 상당한 고수인 건 분명했다.
하나 천하오절도 쓰러트린 자신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눈빛과 표정에서 흘러넘치는 사종악의 자신감에 좌자가 빙긋 웃었다.
“하긴……. 정사 일통의 원대한 포부, 그리고 그에 걸맞은 능력을 지닌 당금의 사 대협께 감히 어느 누가 견줄 수 있겠습니까.”
그의 입바른 소리를 무시한 채 사종악이 물었다.
“놈은 지금 어디에 있지?”
대답 여하에 따라 목이 떨어질지도 모를 위기 앞에서도 좌자는 태연했다.
“한수와 잇닿아 있는 단강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과 무한을 잇는 경로를 수색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는 사종악을 향해 좌자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사 대협을 도울 고수들을 추려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들을…….”
사종악의 서늘한 음성이 좌자의 말을 잘라 냈다.
“한 번만 더 지껄이면 그 가느다란 목을 꺾어 버리겠다.”
피부를 엘 듯 날아드는 살의에 좌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나름의 호의였습니다만……. 굳이 원하지 않으신다니 저로서는 더 권할 수 없겠군요.”
“…….”
“그럼 저는 머지않아 들려올 낭보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슬쩍 웃은 좌자가 고개를 숙이더니 그대로 물러났다.
홀로 남은 사종악이 생각에 잠겼다.
“놈만 처리하면 광정회는 구심점을 잃는다.”
제갈가의 젊은 가주가 회주라고는 하나 결국 놈만 제거하면 기세가 꺾일 터.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기대하는 건 따로 있었다.
“놈의 진원진기만 내 것으로 만든다면…….”
화산파의 장문인이었던 진명 늙은이와는 워낙 박빙의 싸움이라 진원진기를 흡수할 여유가 없었다.
하나 천하오절이 아닌 이상 그의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은 강호에 전무했다.
놈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늙은이만큼 대단하진 않을 게 분명했다.
놈만 해치우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그야말로 천하제일 고수로 거듭나는 것도 시간문제인 셈.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처럼 사종악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 * *
한수 끝자락에 위치한 단강구는 인구가 채 삼백 정도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도 인심은 넉넉했고, 객잔 역시 허름해도 음식 맛은 매우 좋았다.
소면으로 식사를 마친 단악선이 젓가락을 내려놓자 점소이가 차를 가져다주었다.
찻잔을 들어 입가심을 하던 단악선은 문득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종이를 발견했다.
단악선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종이를 펴자 그 안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했다.
역시나 눈에 익은 필체였다.
“참 걱정도 많으시다니까.”
몇 번이고 조심하라 당부하는 능소밀의 전서.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단악선이 종이를 움켜쥐었다.
탁탁.
가볍게 손을 터는 단악선의 손 아래로 부스러진 새하얀 재가 흩날렸다.
삼매진화로 서신을 태워 버린 단악선이 남은 차를 마저 마신 후 곧바로 객잔을 나섰다.
그러곤 무한을 향해 다시금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한때 무림맹이 자리 잡고 있던 곳.
그곳을 다시 찾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무한은 예로부터 양자강과 한수, 거대한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요지였다.
구성통구(九省通衢)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
동서로는 상해와 중경을 연결하고, 남북으로는 북경과 광주와 잇닿아 있었다.
한때 무림맹이 이곳에 위치해 있었던 이유도 그와 같은 지리적 요건이 크게 작용했다.
신속하게 정보를 취합하기에도 용이했고, 조속한 인력 파견을 통해 중원 각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로를 장악한 사종악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무한 일대를 되찾는 것이 중요했다.
과거 무림맹주였던 남궁백이 그곳에 터를 닦으며 가장 먼저 단행한 일도 수로연맹을 밀어 버리는 것이었다.
능소밀을 통해 자신의 행적을 일부러 동창에 흘린 것도 이 점을 노린 것이다.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였다.
지금쯤 사종악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터.
당연히 모든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직접 미끼가 되어 저들을 교란하는 사이, 지금쯤 해남검파를 비롯한 정파의 정예들이 뱃길들을 차근차근 점령하며 이곳 무한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 무렵.
“의외로 신중한 인물이었나?”
이쯤이면 반응이 올 법도 한데 여전히 잠잠한 사종악의 대응에 내심 실망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 무한까지는 불과 하루 이틀 정도의 거리만을 남겨 놓고 있을 뿐이었다.
가까운 수채라도 찾아가 한바탕 이목을 끌어야 하나 고심하던 그 순간.
단악선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우려는 다행히 기우에 그쳤던 모양이다.
저 멀리 관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는 소로.
그 중앙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는 장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시종일관 자신에게 고정된 채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 안에 담긴 농밀한 살의 역시 오롯이 자신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놓고 패도적인 기세를 뿜어내는 사내를 향해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군요.”
사종악이었다.
그가 아니고서는 당장 이런 존재감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강물을 뒤집는 용, 번강룡(飜江龍)이라는 별호에 부족함이 없는 기도.
그나저나 어지간히 속이 탔던 모양이다.
분명 수로연맹 측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우두머리인 그가 직접 나설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단악선이 자신을 알아보자 사종악 역시 히죽 웃었다.
“네놈이 신마의선이라는 애송인가? 놓치지 않아 다행이군.”
“맞아요. 다행스러운 일이죠.”
“……?”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사종악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이로써 불필요한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자리에서 사종악만 쓰러트린다면 오합지졸인 수로연맹이 무너지는 것도 그야말로 시간문제였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사종악이 잠시 어이없단 눈빛을 흘렸다.
“어린놈이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단악선이 웃었다.
어쩌겠는가.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운 게 그것뿐인데.
사종악은 잠시 말이 없었다.
상당한 고수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하고 보니 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지극히 안정적인 기도는 말할 것도 없었고,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눈빛엔 그 어떤 동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쨌거나 네가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입을 여는 사종악의 손에는 어느새 시커멓고 길쭉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만의 독문병기인 오죽간(烏竹竿)을 처음부터 꺼내 든 것이다.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
하물며 상대를 얕잡아 봐 모처럼 주어진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 버릴 수는 없었다.
단악선 역시 매고 있던 묵룡을 풀어 두 손으로 거머쥐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무기는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일단 장병기라는 점이 그랬고, 무기 전체가 묵빛을 띄고 있다는 점도 그랬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낚싯줄 형태의 사검(絲劍)이라는 것, 그 끝에 매달려 날카롭게 휘어진 낚싯바늘을 닮은 갈고리를 지닌 사종악이 거리상으로 좀 더 유리하다는 정도였다.
사용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롭지만 그만큼 예측하기 힘든 기병(奇兵).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악선은 오히려 사종악을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여간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것이 사종악의 심기를 건드렸다.
“건방진!”
단악선의 뺨에서 핏물이 튀어 오른 것도 그때였다.
사종악이 자신의 공격권에 상대가 들어서기 무섭게 오죽간을 휘두른 것이다.
뺨을 훑고 지나간 예리한 통증에도 단악선은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세에서만큼은 순순히 우위를 내어 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사종악을 중심으로 십 장 안의 공간은 이미 완벽하게 그가 지배하는 상태.
그 자체로 그 어떤 무기보다 예리하다는 사검(絲劍)은 허공을 찢으며 현란한 잔영만큼 서슬 퍼런 살기를 베어 물고 있었다.
그래도 단악선은 피륙의 작은 상처를 내어 주는 대가로 사종악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우우웅.
웅혼한 울음을 토한 묵룡이 허공을 가른 것도 동시였다.
그대로 자신의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묵빛 섬광을 목도한 사종악이 한순간 움찔했다.
눈앞에서 섬광이 번뜩인다 싶은 순간 이미 자신의 명치 부근을 파고드는 전율스러운 속도에 놀란 것이다.
일체의 변화를 배제한 쾌속한 찌르기.
지금껏 무수한 고수들과 자웅을 겨뤄 온 그였지만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일격은 화산의 진명 늙은이 이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파괴적인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사종악은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물러날 수 없었다.
그래서 오죽간을 마주 휘둘러 정면에서 맞받아쳤다.
쩌엉!
처음으로 무기가 격돌하는 그 순간.
“……!”
사종악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온 저릿한 충격.
비틀거리며 세 걸음이나 물러선 사종악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악선을 노려봤다.
자신과 다르게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단악선의 모습 때문이었다.
“역시 그랬군요.”
재차 공격을 이어 가지 않고 단악선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그분이 당신에게 당했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거든요.”
이어진 단악선의 말에 사종악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지금처럼 단단한 대지 위에서 겨루었다면 그 결과는 분명 달라졌겠죠.”
“헛소리!”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이내 단악선이 언급한 그분이 화산의 늙은 도사라는 것을 깨달은 사종악이 노여움을 담아 일갈을 터트렸다.
자신을 진명진인보다 아래로 두는 단악선의 말에 크나큰 모욕감을 느낀 것이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사종악이 단악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반면 단악선은 차분한 눈빛으로 검막을 방불케 하는 눈앞의 어지러운 검영(劍影)을 향해 묵룡을 내리그었다.
그리고 그 순간.
“……!”
처음으로 단악선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